경주시 경계종주 5구간 산행
*일시 :2004년 11월 7일 *출발 장소 : 황실 예식장 고수부지 *종주 코스 : 기계-포항간 31번 국도-매봉재-mbc송신소-도음산-대명공원묘원-달성교-칠성현-507봉-어래산-임도 *참석자 명단 : 장미, 호래이, 여우비, 동보(사모님), 서산애, 한계령, 공산, 항아, 산토피아, 곰바우, 찬웅, 산꾸러기(13명)
오늘은 시경계 산행치고는 제법 장거리 산행이라 약간은 걱정도 되지만 막상 부딪치면 모두들 잘 하리라 믿으며 황실 고수부지를 향해 차를 몰고 달려간다. 혹시나 늦을까봐 염려를 했지만 오히려 넉넉한 시간이다. 그런데 막상 도착을 하니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앙드레정 고문님과 공산님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문님은 아직 몸이 불편하셔서 산행은 못하시지만 배웅을 하기 위해 어려운 발걸음을 하셨다고 하신다. 낙동때부터 늘 저희들을 위해 배웅을 해주시는 성의에 다시 한번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잠시 후 항아님이 오시고 여러 회원님들도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시고 장미님과 한계령님은 시청 삼거리에 계신다고 한다. 그리고 참석하시기로 했던 두분 회원님은 집안일로 다음을 기약하고... 조금은 지연된 시간에 출발을 하여 상쾌한 아침공기를 마시면서 쏜살같이 달려 8시경 목적지에 도착을 한다. 차를 주차시키고 준비를 해서 8시 7분 산행을 시작한다. 들머리는 지난번 산행때 확인을 해 두고 표지기도 매달아 놓아서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초입의 잡목지대를 뚫고 올라서니 흐릿한 등산로를 따라 김해김씨묘가 나오고 차례로 청주정씨묘와 달성서씨묘도 나오는 것을 보니 길은 잘 찾아온 것 같다. 8시 21분 첫 봉우리에 올라서고 8시 22분 곧이어 두 번째 봉우리에 올라서니 좌측으로 소나무숲 사이로 농장이 보인다. 8시 25분 지적 경계점이 있고 옆에는 무너진 돌탑이 있으며 좌측 달성사거리와 기계쪽 조망이 뛰어나고 멀리 봉좌산과 이리재 근처의 산봉우리들도 한눈에 들어오고 대구-포항간 고속도로가 훤히 뚫려 있는 것도 보이는데 이 고속도로는 내고향 영천하고도 우리 마을 바로 아랫동네로 지나가는 도로이다. 그리고 산등성이 곳곳에는 여기도 어김없이 많은 송전철탑이 늘어서 있으며 우측으로는 포항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길은 서쪽으로 진행되다가 곧이어 북쪽으로 진행되며 8시 32분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221봉에 올라선다. 이후 내리막길을 조금 내려가다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잠시 착각을 해서 우측으로 진행을 해야 되는데 흐릿한 좌측 내리막길로 내려가는 바람에 약 3분정도 알바를 하게 된다. 8시 43분 합판에다 송이 채취금지구역이라 적어 놓았으며 여기서(매봉재) 좌측길로 가야한다. 곧이어 우측으로 고속도로가 보이고 갈림길에서 좌측 능선길을 따르면 된다. 8시 48분 터널속으로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봉우리에 도착 계속해서 소나무숲 지대로, 곳곳에 붉은 노끈으로 묶어 두었는데 이곳도 송이가 나는 지역인 것 같다. 8시 52분 경주김씨묘를 지나는데 무전과 등대지기님의 전화가 동시에 걸려와 둘 다를 받으려니 무척 바빠지고 8시 53분 무너진 묘 2기가 있는 지점에서 임도가 나오고 좌측으로 안강시내와 달성 사거리와 안강들과 기계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확 뚫린 대구-포항간 고속도로 등도 시야에 들어오고 산야는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옷을 갈아 입고 우리를 어서오라고 반기고 있는 듯하다. 8시 58분 264고지 정상부에 무덤 1기가 있고 길은 계속 임도를 따라 북쪽으로 진행을 하게 되며 포항 앞바다에서는 뱃고동 소리가 울리고 곧이어 방산님이 전화를 해서 안부를 전한다. 9시 5분 경주김씨 묘를 통과한 후 9시 10분 약 262m정도 되는 봉우리에 도착하니 길은 완전히 우측으로 휘어지고 정면으로 도음산 기지국이 보이는데 여기서 약 10여분간 간식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한다. 9시 22분 시경계 마루금은 임도를 따르다가 우측 능선길로 접어들게 되고 9시 28분 봉우리 올라가면서 좌측으로 휘어지게 된다. 9시 29분 반정도 무너진 경주최씨묘가 나오고 묘에서 직진(북쪽길)을 해야한다. 곧이어 나오는 봉우리에서 우측길로 경계선은 이어지고 9시 37분 294봉으로 보이는 봉우리에서 약 10여m정도 좌측으로 우회를 하게 되고 우측으로 난 길은 포항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도음산을 향해 좌측으로 휘어져 진행을 하니 9시 42분 월성이씨묘를 통과하게 되고 곧이어 9시 44분 여강이씨묘를 통과하게 된다. 9시 49분 묘2기가 나오고 바로 뒤에 또 1기가 있으며 나뭇가지 사이로 앞 봉우리에 통신탑이 보인다. 9시 50분 mbc 송신소가 나오고 길은 좌측으로 임도를 따라 가는데 선두는 도음산을 향해 계속 진행을 하고 호래이 대장님과 송신소에 잠깐 들렀다가 계속 진행을 하는데 북서쪽으로 임도를 따라가면 우측 앞으로 포항공원묘지가 보인다. 마침 부부가 탄 빈 트럭이 송신소를 향해 지나가고 9시 58분 ‘김소위 전적비’라고 적힌 팻말이 붙어 있는 곳을 지나는데 단구리 전곡저수지쪽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그러고 보면 이 일대는 6.25 전쟁 당시 치열한 포항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으로 우리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간 곳이다. 남과 북이 이데올로기로 인해 젊은이들이 왜 죽음을 무릎쓰고 서로의 가슴에다 총부리를 겨누어야 하는지. 젊은이들의 영혼과 넋이 산자락 곳곳에 스며들어 있으니 이들의 거룩한 애국정신을 우리 후세들은 가슴깊이 새기고 간직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40여m전방에 세콤 이동통신탑이 나오고 곧바로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좌측임도(묘2기 있는곳)을 따라가다 보면 포항쪽 우측계곡에는 아름다운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10시 3분 임도를 따르다보니 연일정씨 묘로 올라서게 되고 봉우리에 서니 산불흔적이 보이고 다시 내려서니 도음산 안내판이 서 있다. 도음산은 옛 흥해군(興海郡)의 진산(鎭山)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산 동쪽자락 천곡령(泉谷嶺) 아래에는 소문만 영천(靈泉)이 있었는데 신라27대 선덕여왕(善德女王)이 이곳에서 목욕하고 피부병을 완치하고는 자장율사(慈裝律師)에게 명하여 천곡사(泉谷寺)를 창건하였다 하며 조선조 19대 숙종(肅宗)은 이절에 붓과 먹을 하사하여 보관되어 오다가 6.25전쟁의 병화로 12동(棟) 규모의 거찰천곡사는 소실되고 천곡사지(泉谷寺地)의 영천자리에는 석정(石井)이 다듬어져 있다. 천곡사 석정(石井)에 관련한 일화로는 고려말 천곡사의 한 중이 괴력(怪力)을 얻어 민가의 규수를 농락하는 일이 빈발하므로 관가에서 잡아들여 힘의 근원을 물으니, 10년간 이 절에서 나는 약수를 먹은 탓이라 했다. 그래서 관아에서는 그 중이 먹었다는 샘을 메우고 그 자리에 변소를 짓게 했다는 얘기도 전해온다고 한다. 길은 좌측 임도길을 버리고 직진 능선길로 접어드니 계속해서 산불로 인해 소나무들이 죽어 있다. 도음산 바로 직전까지 산불 흔적이 남아있고 갈림길에서 직진 능선길로 올라가는데 여름에는 이곳은 길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넝쿨과 수풀로 우거질 것 같다. 10시 10분 도음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정상에는 삼각점(포항23, 79년 제설) 옆으로 흥해건강조기회에서 1995년 세운 정상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으며 표지석 뒷면엔 "도음산은 옛 흥해군의 진산이다" 라고 적혀있다. 표지석 좌, 우로 무덤이 자리하고 있으며 도음산에서의 조망은 말 그대로 멋지다. 북쪽으로 포장도로가 나 있으며 바로 아래 대명공원묘원이 들어서 조금은 보기가 싫지만 그래도 그 건너로 안강시내와 안강들이 넓게 펼쳐지고 동으로는 영일만 일대가 조망될 뿐만 아니라 포항시 창포동, 장성동쪽 아파트단지와 흥해일대, 선린전문대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안계저수지와 멀리 아화의 관산도 보이고 비학산이 바로 앞에서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면서 유혹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방향에도 산불흔적이 뚜렷하며 기념촬영을 마치고 출발을 한다. 10시 26분 도로 절개지에 도착하니 비학산이 정면으로 보인다. 여기서 잠시 길을 찾느라 헤매게 되고 10시 31분 북쪽 정점에서 좌측으로 꺾이고 10시 32분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김해김씨묘는 이장을 하고 상석만 뒤집어 놓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계속 산불지역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 직진능선길로 접어드니 10시 43분 묘2기가 나오고 뒤에 묘는 오천정씨묘고 앞에 묘는 대머리묘로 곧이어 또 묘가 나오고 산불지역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꺾이지만 길을 찾기가 상당히 어려운 구간이다. 계속 산불지역(소나무)을 통과 하면서 장미님의 장난끼가 발동하여 숯으로 변한 소나무의 검정을 손으로 묻혀 여러 사람들의 얼굴에 장난을 치기도 하면서 내리막을 내려온다. 몇분의 얼굴을 보니 어릴적 밀서리를 해 먹고 그 손으로 얼굴을 마사지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11시 10분 대명공원묘원을 따라 내려가는데 길 우측에 낯익은 분의 납골묘가 보인다. 지난날 신라문화 동인회에 다닐 때 함께 활동하던 분의 납골당인 것이다. 계속해서 공원묘원 우측길을 따라 내려가니 공원묘원이 끝나는 지점에서 길은 왼쪽으로 90도 휘어지고 우리는 11시 29분 공원묘원 끝부분에서 우측 임도로 올라서게 된다. 곧이어 갈림길에서 직진길(능선)로 진행을 하다가 다시 좌측 내림길로 내려서면 좌측에 기계유씨 묘2기가 있고 조금후 비석이 있는 월성이씨묘 2기가 나온다. 11시 39분 억새밭에 도착하니 넓은 공터에는 바람따라 억새가 물결을 치고 있다. 역시 기념촬영을 남긴 후 앞에 보이는 능선으로 올라서니 시경계는 좌측으로 꺾이고 조금후 345,000볼트의 송전철탑을 지나 30m쯤 진행하면 갈림길에서 다시 좌측길로 접어들면 된다. 월성이씨묘를 지나 148봉에서 우측능선으로 꺾어서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냉수새각단 마을이다. 12시 12분 포항시와 경주시 경계 이정표에 도착하여 도로를 건너 우측 사과밭과 좌측 벼논 사이의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을 한다. 곧이어 마을이 나오고 내단 3리는 기계면과 신광면의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바로 옆 용산의 불무혈이라는 용산 머리 북쪽 아래의 마을로 300여년 전 최국일, 박충국 두 선비가 개척했다고 하며 종단(宗丹)마을이라고도 부른다. 마을을 지나자 사과 밭에는 사과가 탐스럽게 열려 있으며 동보님은 사과를 사자고 한다. 그런데 주인이 팔지를 않아서 되돌아오고 12시 25분 내단3교 다리 밑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한다. 그런데 옆에서는 아저씨 세분이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우리의 코를 자극하고 있으며 거기에다 쇠주를 곁들이고 있다. 찬웅님이 참기가 어려운지 옆에 끼여 쇠주를 한잔 얻어 마시고 오신다. 우리도 여기에 뒤질세라 가지고 온 진수성찬을 펼치고 포도주와 백세주에다 중국술까지 배낭에서 쏟아져 나오니 우리도 남부러울 것이 없다. 식사는 빠르게 진행이 되어 13시에 출발을 한다. 좌측으로 단구휴게소와 축사 등이 보이고 비왕산업 공장을 우측에 두고 축사와 교회등이 있다. 13시 21분 기계국도에 도착하여 곰바우님과 한계령님은 세워둔 차량을 가지고 어래산 임도로 오겠다고 하며 우리는 우측 가구공장을 지나 대구-포항 고속도로 밑을 통과하는데 하천을 따르는 길은 각종 생활하수와 축사에서 흘러나오는 오수로 인해 고약한 냄새와 악취가 진동을 한다. 어렵게 하천을 따라 진행을 하다가 더 이상 하천을 따를 수 없는 지점에서부터 도로를 따르게 되는데 13시 34분 달성교에 도착을 한다. 실제 시경계는 기계천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보 아래의 하천으로 이어지지만 물길을 건너는 것이 곤란하여 달성교로 우회한 것이다. 내단천은 신광쪽 냉수지 아래에서 시작되어 이곳 달성교 전단에서 기계천과 합류하여 형산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달성교를 지나니 차를 타고 가면서 모두들 이상한 모습으로 바라보는것 같다. 성계1리(이인골) 버스정류장 바로 옆 숲속으로 올라서니 들머리 입구에는 포항고 OB산악회 포항시경계 종주 표지기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으며 13시 46분 능선을 올라서니 묘2기와 헬기장이 나온다. 아마 이곳이 142.8봉인 것 같다. 이곳은 조망이 뛰어나 기계 면소재지와 안강들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오늘 산행한 시경계길이 멀리서부터 한눈에 들어온다. 13시 57분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안동권씨묘를 지나면서 계속 소나무 숲길을 걷게된다. 14시 7분 186.3봉에 도착하여 한계령님과 수차례 교신을 하면서 약간의 오르내림이 반복되다가 14시 17분 칠성현에 도착한다. 고갯마루 오른편으로는 거대한 고인돌 두기가 자리하고 있고 이 고인돌 옆에는 제가 소속되어 있는 모임에서 세운 안내판이 있다. 물론 저도 12월 둘째주 일요일날은 문화연구 교사모임을 이끌고 팔공산 갓바위와 동화사, 부인사, 송림사 등을 답사하면서 설명을 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보는 순간 더욱 반갑고 애착이 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안내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칠성고개 큰고인돌 ☻ 이 큰 바위(높이 4.8m, 둘레 15m)는 청동기시대에 살았던 우리 조상의 무덤으로 8개의 받침돌(고인돌, 지석) 위에 큰 덮개돌(개석)을 올려 놓은 남방식 고인돌이다. 이 칠성고개 고인돌은 영남지역에서 가장 큰 것으로 여겨지며 부근에 5기가 더 있다. 또한 고개 남쪽 노당리로부터 북쪽 성계리, 문성리, 인비동까지 30여기의 고인돌이 줄지어 있기도 하다. ☺ 2000.11.11 경주 문화연구 교사모임 ☺ 칠성현의 고인돌은 과거에 칠성바위라고도 불리었으며 왼쪽 고갯마루 북쪽 아래의 성계리도 예전엔 칠성마을이라 불리어졌다고 한다. 칠성(七星)은 바위의 갯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매장풍습에서 시신을 올려놓은 칠성판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며 무덤자리라는 뜻으로 칠성이란 말이 쓰였으며 북쪽에 영혼이 머문다는 북두칠성의 준말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고 보면 무심코 지나칠 바윗돌들이 청동기시대의 족장의 무덤인 고인돌인 것이다. 모르면 하나의 바위에 불과한 것이지만 어쨋든 아끼고 보존해야 할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임이 틀림 없지만 한편으로 이 거대한 바위를 평지도 아닌 이곳 산기슭까지 어떻게 옮겨왔을까 하는 의구심은 끝내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오늘날의 칠성현은 이미 잊혀져 가는 고개인 듯 좌우로 내려서는 길은 오솔길 같고 고갯마루에 쌓여진 돌무더기 흔적으로 보아 과거에 성황당터 자리였던 듯 묵묵히 옛 선인들의 질곡한 애환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침 여기서 간단히 고인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중년의 부부산꾼이 내려오다가 잠시 설명을 듣고는 기계쪽으로 내려간다. 오늘 산행을 이곳에서 마치고 싶은 욕망도 생기지만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계속 강행을 하기로 하고 다시 오르막을 올라가는데 또 한기의 고인돌이 길가에 자리잡고 있다. 14시 31분 계속된 오르막 봉우리에 올라서니 이장한 묘의 흔적이 있고 14시 38분 바위 위를 통과하는데 좌우측으로 안강들판과 기계들판이 내려다 보이며 양쪽 사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14시 40분 다시 봉우리에 올라서니 우측 바위지대에서 뛰어난 조망을 즐길 수 있으며 기계 뒤편에 있는 비학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14시 52분 기계들과 비학산 줄기와 포철공단이 바라다 보이는 오름길 바위지대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간식을 먹고 15시 3분 다시 출발을 한다. 15시 19분 409봉에 올라서니 멋진 조망을 제공하고 곧이어 묘1기가 있는 봉우리 정상에 올라서게 되고 15시 37분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444봉에 도착하니 좌측으로 포철공단과 포항시가지 그리고 안계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무엇 때문인지 우측 기계 방면 정상주변의 나무들을 벌목을 한 상태다. 15시 42분 바위봉을 올라서니 기계들판과 봉좌산 등의 뛰어난 조망을 감상할 수 있으며 대머리를 한 묘지가 있다. 곧이어 나오는 봉우리는 좌측으로 우회를 하고 15시 50분 월성손씨 묘에 도착하니 묘 둘레를 돌로 쌓아 두었다. 한계령님은 벌써 어래산에 올라와 있다는 연락이 왔으며 곰바우님은 안강에서 볼일을 보고 임도를 향해 올라오다가 대장님이 시원한 막걸리와 순대를 사오라고 연락을 해서 안강까지 나가서 다시 음식을 준비해 오기로 한다. 15시 54분 바위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골안지 위로 포장된 길이 보이고 길은 계곡을 따라 계속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16시 10분 506봉에 도착하니 정상은 제법 넓으며 억새풀이 많으며 산불초소가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16시 13분 너덜지대를 지나면서 우측으로 다시 임도가 보이고 멀리 임도 정상에는 나의 흰색 베르나 애마가 눈에 들어오고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계속 이어지다가 갑자기 우리 앞에는 지금 봉우리들보다 한수 높은 어래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 곧이어 집터 흔적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길 찾기가 약간은 애매한 구간이다. 물론 여기서 앞서간 항아님과 동보님 내외분은 우측 사면으로 내려가 버리는 바람에 약간의 알바를 하게 되고, 길은 좌로 잠시가다 다시 우로 가야 정확한 시경계를 따라 어래산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집터를 지나니 오르막길에 묘1기가 나오고 동보님과는 계속 교신을 하지만 정확한 위치 파악이 되질 않는다. 조금 더 올라가다하니 항아님과 동보님 내외분이 산사면을 타고 올라오고 있는데 알바를 제법한 것 같다. 16시 32분 어래산 직전 봉에 도착하니 무덤이 있고 안강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옥산지도 보이기 시작한다. 16시 40분 뾰족하게 보이던 563m의 어래산 정상 헬기장에 도착하니 막상 보기보다는 밋밋한 봉우리에는 한계령님이 귤과 배, 그리고 생수를 회원들이 먹을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준비를 해 두었다. 기념촬영도 하고 간식도 먹으면서 특히 벌써부터 서산애님이 한잔하자고 하는 것을 정상에서 먹자고 남겨둔 백세주를 꺼내 곁들인다. 이곳 어래산(魚來山)은 예전에 기우제를 올리는 단이 있었고 어을암(於乙庵)이라는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옛날 해일로 인해 바닷고기가 이 산까지 왔으므로 어래산이라는 전설이 있고 지금도 산정엔 조개껍질이 발견된다는데 이는 지반의 융기현상이라는 추측이며 일명 어을산(於乙山), 구피산, 어래산, 어지어산(於之於山)이라 불려 지기도 했다고 하며 옛 기록엔 경주의 삼산(三山)중의 하나로 꼽혔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16시 55분 출발을 하여 올라왔던 길을 잠깐 되돌아 내려가다가 좌로(북쪽) 진행하게 되는데 좌로는 옥산지와 민내마을이 우로는 골안지가 눈에 들어오고 잠시 후 로프가 설치된 바위틈을 통과하니 급경사 내리막이 이어지고 동보님은 혼자서 먼저 내려가 보이질 않는다. 17시 10분 안부에 도착하니 산속이라 그런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곰바우님이 음식을 준비해 차에 실어두고 마중을 오는데 동보님은 보질 못했다고 한다. 17시 16분 마지막 봉우리인 414봉을 올라서니 안동권씨, 여강이씨 합장묘가 나오고 이후 계속된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17시 21분 풀없는 묘 4기가 연달아 있고 17시 27분 임도에 도착하여 곰바우님이 준비해 둔 막걸리와 음료수 그리고 순대로 주린 배를 채운다. 그런데 앞에 내려간 동보님이 또 사라지고 없는 것이 아닌가. 무전을 하니 어딘지를 모르겠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안부에서 능선으로 계속 진행해야 하는데 좌측에 보이는 임도를 따라 내려가서 반대편으로 진행을 하는 바람에 사모님이 걱정을 하는 가운데 상당한 시간이 지나 주위가 어두워져서야 만날 수 있었다. 역시 동보님은 알바의 귀재인 것 같다. 이것으로 시경계 5구간 산행도 무사히 마쳤는데 오늘 산행은 완전히 S자처럼 산행이 이루어진 것 같으며 우리를 태운 애마는 어둠을 뚫고 서서히 내리막길을 내려와 기계를 거쳐 안강의 타이거김님 숯불갈비집에서 맛있는 도야지와 쇠주로 하루의 쌓인 피로를 풀게된다. 오늘도 장거리 산행을 하시느라 수고하신 여러 회원님들과, 배웅을 나오신 앙드레정 고문님을 비롯하여 늘 산에 보내놓고는 걱정이 되어서 안부전화를 하면서 사기를 북돋우어 주시는 방산 부회장님을 비롯한 여러회원님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이것으로 산행기를 마칠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