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을 하고 난 후 덩그러니 남은 석벽이 보기 좋지 않다고,
녹색 페인트를 발랐다는 중국 한 지방의 기사입니다.
이런 짓을 자행한 집단은 다름아닌 지방 공무원들...
이 석벽을 녹색으로 칠하기 위해 든 돈도 돈이지만,
이 페인트를 벗겨내기 위해 쏟을 노력에 들어갈 화학약품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다음은 관련기사와 사진입니다.
======================================================================================================
녹색 페인트칠로 민둥산 '푸르게'
중국 윈난성 쿤밍시 푸민현 해괴한 녹화사업
[한겨레 2007-02-20]
중국 윈난성 쿤밍시 푸민현에서 산이 푸르게 보이도록 녹색 페인트를 칠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해 현지 언론들이 혀를 차고 있다.
<청두완바오> 등 현지 언론 보도를 보면, 푸민현 임업국은 최근 채석장으로 쓰이던 라오서우산 수천㎡에 녹색 페인트를 칠했다.
인부 7명이 45일 동안 작업한 이 해괴한 ‘녹화사업’에는 47만위안(약 5640만원)어치의 페인트가 들어갔다.
한 주민은 “이런 돈이면 5~6개의 산에 묘목을 심을 수 있다”며 “이런 엉뚱한 일에 예산을 낭비할 수 있느냐”고 비난했다.
녹색 페인트를 뒤집어 쓴 라오서우산은 곧 준공될 푸민현 당위원회 건물과 마주보고 있다.
인부들은 “임업국과 당위원회가 풍수지리를 얻기 위해 산이 푸르게 보이도록 페인트칠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7~8년 전부터 채석장으로 쓰이던 라오서우산은 돌을 캐낸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황량한 상태였다.
라오서우산 주변 마을엔 페인트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산 곳곳엔 쓰고 버린 페인트통이 뒹굴고 있다.
쿤밍시 환경보호국은 “페인트 성분에 의한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 등의 문제는 전문가의 현장 조사가 이루어져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
기사의 표현대로, 해괴합니다. 참으로 해괴한 일입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너무나 기상천외한 사건이라고 밖엔 표현할 수 없군요.
그런데 문득, 이런 일이 벌어지는 곳이 비단 중국의 한 지방 뿐은 아니라는 생각이 스칩니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녹색 페인트 사건은 '녹색'의 '페인트'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녹색'의 '좀비잔디'로도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현장은 다름아닌 골프장입니다.
잘 정돈된 잔디, 마치 섬세하게 깎아놓은 듯한 이 푸른 식물의 매끈해 보이는 모습에 감탄사를 흘릴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 안에는 그 어떤 생명도 온전하지 못합니다...
땅에 스며들고도 차고 넘쳐 비에 씻겨 주변 하천을 흐르고 지하수에 침투한다는 과다한 농약 사용,
그리고 파릇한 잔디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심지어 녹색의 착색제도 뿌린다는 잔디의 현실.
그것이 지렁이가 살던 땅에 뿌린 녹색의 독약, 자연에 바른 페인트, 좀비 잔디의 현실입니다.
땅이 살아있지 않은데 그 위에 뿌리박은 생명은 과연 온전할까요?
저 잔디는 살아있지 않습ㄴ다. 박제된 채 산 모습을 유지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적어도 제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군요...
수려한 해안선을 타고 깎아지른 절벽 위에 녹색 페인트를 발랐습니다.
이 모습이 멋있어 보일 수 있죠....
제 눈에도 순간 '엇' 하는 놀라움의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옵니다.
'저런 절경에 샷 한번 날려봤으면' 할 골프 매니아는 또 몇일까나....
하지만 원래 모습은 어땠을지 한번 상상해 볼까요?
얼마나 더...더...더....
멋있었을까!
원래의 푸른 초원 위에는 어떤 생물이 숨쉬었을까.
저 절벽 위에 살던 나무는, 풀은 얼마나 파아랬을까.
풀들 사이를 뛰어다니던 곤충들은 어떤 색깔들이었을까.
그 나무들 사이사이에 깃들었던 날개달린 생명들은 얼마나 힘차게 날았을까.
저 절벽을 돌집삼아 살던 물새들은 어떤 울음을 울었을까.
저 푸른 바다 속에 살던 물고기는 얼마나 많았을까.
지금은 저 녹색 페인트에 질려서, 어디로 사라졌을까.
사람들은이제는 사라진 것들의 자취를 찾는 일에는 게으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게으른 탓이겠죠.
그러나 분명 그 공간, 그 공기를 마시고, 그 풀사이에, 그 나무 위에,저 절벽 위에, 혹은 그 바다 속에...
살아있던 것들이 있었을 겁니다.
지금은 없어서 볼 수 없는.
한 섬이 녹색 페인트에 비명을 지를 날이 멀지 않았다는 소식.
제가 마치 그 섬에 사는 풀, 나무, 새, 동물, 물고기가 된 것 마냥 비명이 나올 것만 같습니다.
저 산을 깎고, 저 절벽을 깎고, 저 나무를 자르고, 저 풀을 베고, 저 바다에 농약을 흘려보내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요....?
자연이 도망간 산천에 남을 것은 좀비 잔디, 자연에 바른 녹색 페인트 뿐일 겁니다.
그리고 자연이 살 수 없는 곳은 사람도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조금 더 무감각하고, 조금 더 무심하고, 조금 더 무신경하고, 조금 더 질긴 탓인지.
자연이 떠난 그 곳에서 스스로에게 병을 선사하며 서서히 죽어가는 일에 무감각합니다.
굴업도를 한순간에 죽이고, 자신이 죽어가는 것은 모를 것입니다.
태고적부터 있었던 굴업도의 자연을 몰아내고
한 법인(法人)의 인격도 스러지고, 함께하는 사람(人)의 인격도 스러지고,
한 섬의 역사도, 자연도, 귀함도, 소중함도 ....모두 스러질 위기.
굴업도는 녹색 페인트가 칠해진 골프장이 되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후세에 길이 남길 자연의 보물섬이 될 것인가.
만약 그 결정이 내 왼손과 오른손에 달려 있다면,
그리고 골프장을 만드려는 손이 오른손이라면,
저는 주저없이 좀더서툴고 약한왼손을 들어 노련하고 힘센그 오른손을 못쓰게라도 만들어야 할 겁니다.
아니, 반드시 못 쓰게 되어야 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고 나는 반드시 오른손이 하는 그릇된 짓을 막는 왼손이 되어야만 합니다.
첫댓글 이것도 지난 6월 말 처음 다녀온 굴업도를 생각하며 쓴 글입니다. 이때의 마음을 다시 되새겨 봅니다....
골프장 사진좀 퍼다 쓸게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