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산대놀이 | 송파답교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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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산대놀이
지 정 : 중요무형문화재 제49호(1973. 11.11)
위 치 : 잠실동 47(서울놀이마당 내), 옛 송파진
보유자 : 김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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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대놀이의 유래는 매우 오래되었으며 경기지방에서 전해오고 있는 양주 별산대놀이와 송파산대놀이가 있다. 송파산대놀이는 서울 아현동 것의 계통을 이은 것으로 정통적인 원형을 가장 잘 전승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른 탈놀음과 같이 춤이 주가되고 재담과 창과 동작이 곁들어지며 반주음악은 3현 6각에 염불, 12박타령, 국거리장단이 주가되며, 춤사위는 염불장단의 거드름춤, 타령장단의 께끼춤, 국거리장단의 건드렁춤의 유형으로 나누며 40여중의 춤사위로 세분화되어 있어 한국민속무용의 춤사위로 대변될 만 하다. 마당구성도 탈놀음 12마당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으며 가면수도 32개로 산대도감탈들이 거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양주 별산대에서 이미 잊혀진 해산어멈, 신할미, 무당, 신장수가면 등이 남아있고 맡은 배역도 따로 있으며 가장 고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면이 돋보인다. 특히 옴중의 곰보타령, 취발이의 각설이타령, 무당의 무가와 넋두리 등이 새로이 발굴 채록 공연되고 있다. 송파산대놀이의 구성을 보년 제 1과장에서는 상좌 둘이 춤을 추고, 제 2과장에서는 옴중과 먹중이 춤을 추며, 제 3과장에서는 연닢, 눈끔재기, 먹중이 춤을 추고, 제 4과장에서는 먹중 애사당 왜장녀가 춤을 추고, 제 5과장에서는 먹중 여덟이 춤추고 염불한다. 제 6과장에서는 노장이 소무와 놀아나는 것을 취발이가 징치하여 소무를 뺏고, 제 7과장에서는 소무가 취발이애를 낳으며, 제 9장에서는 말뚝이와 쇠뚝이가 양반을 조로하고, 제 11과장에서는 신할미가 신할애비와 싸우다 죽어 무당이 진오귀굿을 한다. 탈은 평면적이고, 춤은 구성지고 해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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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답교놀이
지 정 :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1989. 9.20)
위 치 : 잠실동 47(서울놀이마당 내)
보유자 : 한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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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세시풍속에 정월 보름이면 딱딱한 과일을 깨물어 버리면 부우름. 곧 부스럼을 앓지 않는다 하였고, 보름달을 보면서 다리 열둘을 건너면 다리가 튼튼해 진다고 하여 그날이면 남녀노소가 모두나와 서울의 청계천 여러다리를 건너 복잡하기가 이를데 없었다고 한다. 자연 실없는 사람의 장난도 곁들여 그것을 싫어하는 상류층에서는 하루 전날(14일) 건넜는데 이것을 양반답교라 하였고, 또한 부녀자들은 16일 저녁에 다리를 밟았다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귀인들도 가마를 타고 이날 거리를 나왔고, 태평성대에는 임금도 간단한 호위를 받으며 이 행사에 참가했었는데, 그날의 임금행차를 재현한 것이 답교놀이의 유래라고 옛분들은 설명한다. 이때 송파에서는 정월 닷새부터 아이들이 장남삼아 하다가 점차 어른들이 참가해 13일쯤 본격적인 예행연습을 끝내고 당일 송파 거리를 고루 돌고 몽촌까지 가서 그곳 다리(오동부다리)를 몇차례 오고간 뒤 돌아올 길에 좋은 공터를 가려 삥 둘러 서서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등 선소리를 합창하며 질탕하게 놀고, 달빛이 기운 뒤에야 헤어지는 것이 본래의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전승이 단절되었다가 문학사상사가 개업 10주년을 기?으로 이곳 기능 보유자를 초청해 용인민속촌에서 재현했던 것을 계기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현재도 서울놀이마당에서 매년 그날이면 공연되고 있다.
* 출처 : 송파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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