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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담동 등 강남을 비롯 도심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멋진 고급 레스토랑들. 호텔 안에 있는 레스토랑들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한마디로 경쟁관계다.
호텔 레스토랑들이 최근 ‘초고급’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늘어만 가고 있는 시내의 고급 레스토랑들에 맞서 호텔들은 그보다 한단계 이상의 ‘초고급’ 타이틀을 내걸고 있는 것.
호텔들이 서둘러 최고급화를 지향하는 혁신에 나서고 있는 것은 국내 외식 환경의 변화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호텔 레스토랑 하면 ‘누구나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었던’ 최고의 명소였던 것이 이제는 옛말이 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내 곳곳에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서는 각종 고급 레스토랑들은 지금 호텔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호텔에 버금가는 높은 수준의 음식과 서비스를 갖추고 비용도 호텔보다는 저렴한 가격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이들 시내 고급 레스토랑들은 호텔 레스토랑의 고객들을 잠식해 빼앗아 가고 있는 양상.
롯데호텔월드, 400억 들여 새단장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게 된 호텔들도 서둘러 혁신과 업그레이드에 나서고 있다. 특히 롯데호텔과 신라호텔, 인터콘티넨탈호텔 등은 가장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호텔 레스토랑의 ‘초고급화’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롯데호텔월드는 지난 연말 5곳의 호텔 내 레스토랑 등 식음료업장 전부를 새 시설로 단장했다. 이번 새 단장은 호텔월드 전관에 걸쳐 행해진 리노베이션의 일환으로 객실, 로비, 연회장 등과 함께 3년간 무려 400억원의 공사비가 투자됐다.
레스토랑들이 리뉴얼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새 시설들이 모두 최고급 트렌드로 꾸며졌다는 것. 대신 종전 9개이던 호텔 내 식음료업장 수는 5개로 줄였다. 한마디로 ‘되는’ 레스토랑은 더 업그레이드 시키고 ‘안 되는’ 레스토랑들은 과감하게 정리한 셈이다. 한 호텔이 일시에 여러 레스토랑들을 접은 것은 거의 전무후무하다 할 정도로 호텔업계에서는 이례적이고도 파격적인 행보로 받아들여진다.
이번에 새로 오픈한 중식당 ‘도림’은 종전 2층에서 32층 스카이 라운지로 자리를 옮겼다. 이는 비즈니스 미팅 등 고급 손님들이 주류를 차지하는 중식의 특성상 석촌호수와 관악산이 한눈에 펼쳐지고 잠실의 주변 경관이 내려다 보이는 ‘최고급 층’으로 둥지를 옮긴 것. ‘격이 높은 고급 손님들을 최고의 장소에서 모시겠다’는 의도다.
포시즌, 콘래드 등 세계 유수 체인호텔의 디자인을 담당했던 윌슨 앤 어소시에이츠사가 설계를 맡은 실내 인테리어도 모던하면서도 오리엔탈적인 요소가 가미됐다. 중국의 자작거리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격자 무늬의 화강암 바닥이나 자개를 이용한 도어 등도 근래 보기 드문 ‘럭셔리’ 아이템들로 꼽힌다.
또 뷔페 레스토랑 라세느는 2층 넓은 공간으로 이전하면서 푸드 트레인 컨셉트의 즉석 요리뷔페 시스템을 강조했으며 베이커리 델리카한스도 간단한 음료와 식사가 가능한 ‘베이커리 카페형’ 고급 사교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이처럼 리뉴얼된 레스토랑들이 최고급으로 옷을 갈아 입은 대신 한식당과 일식당, 커피숍 겸 양식 레스토랑인 ‘페닌슐라’, 철판구이 전문식당 등 4곳은 모두 문을 닫았다. 이 중 일식당은 시내에 산재한 일식당들과 인건비 등 경쟁에서 밀리고 호텔 내 한식당 또한 고객의 발길이 멀어져 온 탓이다.
또 페닌슐라는 커피 등 차 손님이 많은 로비 라운지와 기능이 중복된다는 점이 지적됐고 철판구이 또한 그리 호응이 높지 않았다. 이밖에 1년 전 이탈리아 레스토랑 하나도 잠정적으로 문을 닫은 것까지 감안하면 간판을 내린 레스토랑은 절반인 5개로 늘어난다.
이런 변화에 대해 롯데호텔은 ‘선택과 집중’ 전략을 강조한다. 어차피 수년마다 한 번씩 시설 개·보수를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경쟁력이 있는 곳은 과감하게 키우고 그렇지 못한 것은 결단성 있게 접는다’는 것이다. 잠실 지역 인근 아파트 중에 재건축이 많아 일반 고객 수요가 잠시나마 줄어들었다는 것이 변수이기도 하다.
그랜드 인터콘티넨탈호텔이 최근 일식당 하코네를 새 단장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젠 스타일의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탈바꿈시키면서 기존 데판야키(철판구이) 자리에 별실을 추가로 늘린 것. 이는 일식당의 특성상 홀보다는 룸에서 얘기를 조용히 나누기를 선호하는 고급 비즈니스 손님들을 겨냥한 것이다. 기존 스시바 또한 의자 뒤로 파티션을 제작해 고객의 사생활을 최대한 배려토록 한 것도 같은 의도에서다.
최고를 추구하는 고객층 겨냥
신라호텔도 지난해 끝마친 리노베이션에서 신개념의 레스토랑 트렌드를 선보였다. ‘라이프 스타일 호텔로의 대변신’을 타이틀로 내건 2년여 혁신 과정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이번 레스토랑 리노베이션의 코드는 ‘새로운 트렌드의 고품격 레스토랑’.
캐주얼 레스토랑 더 파크뷰는 ‘방금 요리한 음식을 고객에게’라는 모토로 언제든지 신선하고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는 ‘올데이 다이닝(All day dining)’ 개념으로 일품요리와 함께 뷔페를 선보였다. 신라호텔 홍보팀 장우종 팀장은 “즉석요리(a la minute) 방식은 종래의 뷔페 레스토랑과는 질적인 면에서 확연한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라 말한다.
또 고객에게 직접 음식에 대한 유래나 먹는 법 등을 설명해주는 음식 컨시어지(food concierge) 서비스나 회의를 하면서 식사를 원하는 비즈니스맨을 위한 별실 구비로 고객을 위한 시설과 서비스를 대폭 강화한 것도 색다르다. 특히 정통 중식의 명가 ‘팔선’도 새롭게 단장, 중국적인 아름다움과 현대적 세련미를 가미한 실내장식으로 실내를 업그레이드했다.
휴식과 유쾌한 사교를 원하는 고객들을 위한 라이프스타일의 라운지&바, 더 라이브러리(The Library)에 고품격 싱글 몰트위스키 콘셉트를 가미한 것도 새로운 시도들로 꼽힌다.
이들 특급호텔에서 시작된 이런 변화는 선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앞으로 다른 호텔들도 비슷한 경향의 개혁에 나설 수밖에 없다. 늘어만 가는 시내의 고급 레스토랑들과의 경쟁에 계속 맞부닥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롯데호텔 홍보팀 이용재 팀장은 “호텔 레스토랑은 여전히 음식과 서비스, 실내 공간 등 모든 면에서 최고를 추구하는 고객층의 수요가 항시 존재한다”며 “호텔만이 가진 이런 특성을 살리면 외부 경쟁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해석했다. 호텔업계의 한 관계자는 “호텔 레스토랑 하면 무조건 좋다는 인식이 사라져 가고 있다”며 “앞으로는 호텔 레스토랑도 차별화된 경쟁력 강화가 절실해지고 있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