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평론>>2008.겨울에 게재한 논문 탑재합니다.
곽노완
달러지배체제의 위기와 21세기 코뮌주의의 한국경제 비전
곽노완(서울시립대 HK교수)
1. 들어가는 말
자본주의의 제국 미국에 공황이 닥쳤다. 서브프라임(subprime) 붕괴에서 시작된 미국의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파급되면서 전반적인 공황이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파산의 위험에 처한 미국의 금융자본들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증권시장에서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원/달러 환율이 급속히 치솟고 주식시장은 반 토막이 났다. 2007년 말 기준 상장주식시가총액에서 미국금융자본의 지분이 32.4%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비록 최근 미국금융자본이 한국의 주식시장에서 급속히 이탈하면서 비중이 낮아졌지만, 2008년 10월말 현재에도 약 25%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미국의 공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음에 따라 한국의 주식시장은 더욱 더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국내주식시장의 몰락은 다시 국내금융자본 및 주식소유자(400만 명을 초과한다)의 파산을 불러와 금융노동시장을 경색시키고 국내소비를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국내유동성 악화로 인한 실질금리상승을 부추길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다시 부동산 담보대출에 대한 원리금 상환부담을 증가시켜 민간소비를 더욱 더 위축시킬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택시장이 경색되어 건설사들의 대량 파산과 건설노동자의 대량실업도 불가피할 것이다. 비록 미국의 공황으로 국제유가가 급락세로 반전되었고, 이로 인한 한국의 무역수지 개선 효과가 대미 수출감소의 마이너스 효과를 압도하더라도, 국내 금융시장의 위축이 실업률을 증가시키고 민간소비를 위축시키는 간접적 파장이 커서 한국경제도 미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침체가 불가피하다.
미국 공황의 발발은 2000년대 들어 급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증권화 및 2001년 이후 2004년까지의 저금리 정책으로 촉진된 버블의 붕괴로 시작되었다.1) 그런데 한 번 더 캐물어보자. 그런 버블이 왜 다른 나라도 아닌 자본주의 패권국 미국에서 생겨났으며 수년간 지탱될 수 있었는가? 이 질문을 통해 더욱 근원적인 차원을 문제 삼을 수 있다. 다르게 물어보자. 2008년 9월말 현재 외채규모가 2007년 연간 GDP와 비슷한 13조 7천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최대의 채무국 미국은 왜 아직까지 외채위기나 외환위기를 겪지 않았을까? 다른 나라라면 이미 수없이 외환위기에 시달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저금리정책은 자국통화가 급격한 평가절하를 동반하므로 수년간 저금리정책을 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그럴 수 있었고, 오히려 뒤늦게 그 버블이 폭발하였다. 어떻게 이처럼 미국의 공황이 지연될 수 있었는지가 오히려 문제이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만 미국의 공황이 잠재적으로 향후 어떤 진폭과 시공간을 차지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범위를 좁혀보자. 2007년 기준으로 미국의 GDP가 세계의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대 일시적으로 상승한 때를 제외하곤 2차 세계대전 이후 점차 하락하여 25.4%에 불과하다. 그리고 세계 수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4%, 수입시장에서의 비중은 14.3%에 불과하다(한국은행, 조사통계월보 2008. 10). 그런데 세계외환보유고에서 미달러화의 비중은 1990년에는 50%, 1998년에는 70%, 2007년에는 61%에 달한다(Vasudevan, “Finance, Imperialism, Dollar Hegemony”, Monthly Review vol. 59, 2008: 42). 문제는 오히려 이처럼 거대한 불균형과 이에 기초한 미국경제의 버블이 서브브라임 버블이 진행된 2001-2005년만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어떻게 지탱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군사적 패권이 배경으로 작동하겠지만, 달러지배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질서가 좀 더 근본적인 토대로 작동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미국 공황의 근원적인 토대는 달러지배체제의 현대자본주의 세계경제질서라 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서브프라임 붕괴에서 시작한 미국의 공황은 잠재된 달러지배체제의 대공황이 본격화되는 서막에 불과할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맹주 부시정부의 추종자였던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마저 “통화문제를 논의하지 않고서 금융위기를 얘기할 수 없다”(2008년 10월 25일, 아시아-유럽 정상회담)고 미달러지배체제의 재편을 주장하는 현재의 상황은, ‘달러주조이익’이라는 버블에 의존해왔던 미국자본주의가 달러지배체제의 붕괴로 인해 몰락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붕괴의 근원적 토대이자 미국경제의 항상적인 버블을 가능케 한 달러지배체제의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은 향후 미국 공황의 파장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가늠할 이론적 기초가 될 것이다. 나아가 한국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는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고 한국에서 21세기 코뮌주의가 어떤 시공간적 조건에서 출발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기초가 될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를 개괄적으로 보여주려는 시도이다.
2. 달러지배체제의 메커니즘과 모순
달러지배체제는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전 세계로부터 거대한 조공을 거둬들이는 ‘수탈(Expropriation)’2)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이는 다른 나라가 달러화를 세계기축통화로 수용하여 종이쪽지뿐인 달러화를 더욱 더 축적하기를 열망함에 따라, 미국이 ‘달러주조차익’을 누리면서 전 세계에서 생산된 부를 거둬들이게 되는 메커니즘이다. 물론 이러한 달러지배체제는 2차 대전 이후 2단계를 거쳐 왔다.
첫 번째 단계는 브레튼우즈 협정의 시대로, 전후부터 1971년에 이르는 시기이다. 브레튼우즈 협정 시대에 국제통화질서는 미국의 35달러가 1온스의 금을 대표하는 금태환지폐로 발행되는 대신, 다른 나라의 화폐들은 금태환을 폐기하고 달러화와 고정환율제로 연계되는 방식으로 달러화가 세계기축통화로 작동했다.3) 하지만 국제무역의 확장속도에 비례해서 금의 공급이 증가하지 못하고, 미국이 금지급준비율을 갈수록 낮추면서 베트남전 군비를 마련하기 위해 달러화 발행을 남발하자 달러화의 가치하락을 우려한 프랑스 정부 등 각국 정부는 그간 무역수지 흑자 등을 통해 축적해 온 달러화를 미국 연준리(FRB)가 보관하고 있는 금으로 태환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1971년 닉슨 미국 대통령은 브레튼우즈 협정을 어기면서 달러화의 금태환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이어 1973년에는 급기야 브레튼우즈 협정의 파기를 선언함으로써, 달러화를 세계기축통화로 하는 고정환율제는 붕괴되고 각국의 외환거래는 기본적으로 변동환율제로 전환되었다. 이제 자본주의에서 최종적인 지불수단은 더 이상 금이 아니라 지폐로 전환된 것이다. 이로써 자본주의의 최종지불수단인 화폐는 상품화폐인 금(또는 은)일 수밖에 없다고 한 맑스의 테제는 자기 시대의 사례를 절대화한 것임이 역사적으로 판명되었다.4) 그리고 이처럼 환율과 외환이 시장에서 결정되는 메커니즘으로서 금융 자유화‧지구화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룬다.
브레튼우즈 협정 시대 동안 미국은 이미 막대한 달러주조차익을 누려왔다. 왜냐하면 금공급량이 국제무역의 증가속도를 따라잡지 못하자, 미국은 금지급준비율을 계속 낮추어 왔던 것이다. 곧 명목적으로는 35달러가 1온스의 금으로 태환되게 되어 있지만, 미국 연준리에 그만큼 금이 보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모든 예금자가 일시에 현금을 인출하는 경우가 드물듯이, 모든 달러소유자가 일시에 금태환을 요구하는 일이 쉽게 일어나지는 않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모든 달러소유자가 금태환권을 갖는 것도 아니었고, 금태환권은 외국정부 내지 금융기관 등에게 국한되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 정부와 연준리는 계속해서 금지급준비율을 낮추면서 달러화를 증발하고 무역적자를 확대한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당시 미국의 누적무역적자는 전 세계로부터 미국이 거둬들인 조공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는 그만큼 미국에 ‘수탈’당했던 것이다. ‘달러화주조차익’은 바로 이처럼 전 세계로부터 미국이 수탈한 부에 대한 점잖은 이름이다.
하지만 달러화의 금태환이 파기된 이후에 부분적으로 독일 마르크화와 일본의 엔화가 국제결제수단으로 등장했으며 21세기 들어서는 유로화가 달러화를 위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달러화는 세계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근본적으로 상실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방식들을 통해 달러화지배체제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어 왔다. 그리하여 1973년 이후 지금까지 두 번째 단계의 달러지배체제가 유지되어 왔던 것이다.5)
그 다른 방식은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식인 ‘달러재활용’의 문제는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다루었고 언론을 통해서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편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이 막대한 무역흑자를 통해 축적한 달러화를 미국 국채 등 달러표시 금융자산을 매입함으로써, 미국에서 유출된 달러화가 다시 미국으로 유입되는 데 공조했음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일본은 달러화를 일본중앙은행 금고에 썩혀두는 대신 이자수익을 거둘 수 있었으며 엔화의 급속한 절상을 억제함으로써 미국으로의 수출증대를 지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은 달러화폭락을 방지하고 외자를 저렴하게 조달하여 재정적자를 보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들어 세계 최대의 달러보유국으로 등장한 중국을 포함하여, 한국 등 세계의 주요 달러보유국들은 일본의 달러재활용 모델을 답습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은 누증되는 무역수지적자에도 불구하고 달러화의 폭락을 막으면서 달러지배체제를 유지시킬 수 있었다.
두 번째 방식으로 신흥국들의 금융‧외환 시장개방에 대한 미국의 압력 및 이로 인한 신흥국들의 외채‧외환위기 발발, 그리고 달러지배체제에 대한 예속 강화 메커니즘이 있다. 바수데반(Vasudevan)이 지적하듯이 남미와 아시아 등의 외환위기 때, 미국은 IMF를 통해 이들 국가들이 열렬히 달러를 축적할 동인을 만들어 냄으로써 세계경제에서 달러화수요를 꾸준히 증가시키는 데 성공하여 달러지배체제의 위기를 지연시킬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금융위기를 개도국들에 수출하는 메커니즘이다(Vasudevan, “Finance, Imperialism, & Dollar Hegemony”, Monthly Review vol. 59, April 2008: 41-49). 다른 측면에서 이는 신흥국들 스스로가 열렬히 미국물신주의(Amerikafetischismus)에 실질적으로(reell) 그리고 동학적으로 포섭(Unterwerfung, Subsumtion)되는 메커니즘이기도 하다.6) 물론 이는 신자유주의의 신봉자였던 미국 정부와 연준리가 의도하고 계획한 결과라기보다는 그들의 신념이 초래한 의도되지 않은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신흥개도국들의 금융시장개방은 거의 예외 없이 외채위기 내지 외환위기를 불러왔다. 신흥개도국들의 금융시장은 미국의 거대 금융자본의 유출입에 따라 크게 출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신흥개도국들의 증권시장은 절대적으로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도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나아가 신흥국들의 금융시장개방은 초창기에 미국의 금융자본의 달러화를 유입시킴으로써, 신흥국통화의 절상을 초래하여 수출을 감소시키고 수입을 증가시켜 무역수지를 악화시킨다. 더구나 신흥국의 증권시장에 대한 미국 금융자본의 투기는 증권가격상승뿐만 아니라 신흥국 통화절상으로 인한 환차익까지 포함한 ‘승수적 투기수익’을 올릴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적 금융지구화는 맑스 시대에 없었던 새로운 가공자본(fiktives Kapital)으로서 환율이 승수적으로 결합된 해외 증권에 대한 투기시장을 열어젖혔다고 할 수 있다.7) 거꾸로 신흥국의 증권시장은 그만큼 승수적으로 증폭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렇게 신흥국 증권시장에 투기된 달러화는 신흥국의 경기가 불안하거나 미국 금융자본이 유동성위기에 처하거나, 아니면 더 매력적인 신흥금융시장이 나타나면 순식간에 빠져나갈 수 있다. 상품의 이동과 달리, 은행 간 국제결제제도가 확립된 오늘날 화폐가 이동하는 데는 거의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신흥국의 통화는 급격히 절하되고 증권가격은 폭락하며 신흥국은 외환부족에 직면하게 된다. 바야흐로 신흥국에 외채위기 내지 외환위기가 도래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을 개방한 신흥국의 외환위기 취약성은 승수적으로 증폭된다(No-Wan Kwack, 앞의 글). 따라서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을 개방한 신흥개도국들은 무역흑자를 올리지 않으면 항상적으로 외환위기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처럼 신흥개도국들이 외환위기에 직면하면 신자유주의의 제국인 미국은 IMF를 통해 구조조정과 더불어 더욱더 완전한 금융‧외환시장 개방을 강요한다.8) 그리고 외환위기를 겪은 신흥국은 더욱 더 달러축적에 매진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지구적 차원에서 달러수요를 증가시킴으로써 달러지배체제를 강화하거나 달러지배체제의 위기를 지연시키는 데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인해 세계 각국의 준비금에서 미국의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의 50%에서 동(남)아시아에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8년에는 70%로 증가하였다. 이는 1970년대에조차 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Vasudevan, 앞의 글: 42). 신흥개도국들은 외환위기 이후 달러화 수요를 증대시켜 세계경제에서 달러화의 역할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하게 되었다(Vasudevan, 앞의 글: 43).
세 번째 방식은 미국 내에서 새로운 가공자본 및 금융투기시장의 버블을 창출함으로써, 미국 내 금융공황의 폭발을 이전시키거나 지연시킬 뿐만 아니라 세계 금융자본의 잉여달러를 미국 내로 흡수하여 달러화의 폭락을 방지하고 달러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메커니즘이다. 1970년대 이래 미국의 실질노동소득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의 GDP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2%에 이를 만큼 이례적으로 높다. 이는 금융투기소득 및 자산투기소득이 급속히 증대하여 과소비를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9) 이런 상황에서 2000-2001년 실리콘밸리 주식버블이 꺼지면서 미국 증권시장이 위축되고 금융소득이 감소하여 미국의 민간소비가 위축되어 일본식의 만성적 경기침체(economic recession)10)가 우려되는 상황에 직면했다(Li, “An Age of Transition”, Monthly Review vol.59: 21). 이러자 미국 연준리는 12례에 걸쳐 실질금리를 인하하여 2003년에는 0% 이하로까지 낮췄다.11) 물론 달러지배체제가 흔들리고 달러화가 폭락할 가능성이 높았다면 이는 선택할 수 없는 정책이었다. 90년대 후반부터 모기지론의 증권화를 통해 주택담보대출과 모기지 담보부증권 시장이 활성화된 조건에서 이는 주택시장버블과 모기지 담보 증권시장의 버블로 이어졌다. 곧 주택담보대출금리가 하락하자 주택수요가 급증하였고, 은행측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을 모기지 담보부증권을 매각하여 조기에 현금화하게 되자 대출상환위험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주택가격의 100%까지 대출을 해주는 등 방만한 대출이 팽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택매입자 및 주택소유자들은 주택가격이 연 두 자리수로 상승하자, 매년 더 많은 담보대출을 받아 저리의 이자를 상환하고 남는 돈을 소비에 지출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자 미국의 GDP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에 72%로까지 상승하여 실질경제성장률은 2001년 1.2%에서 2003년 2.5%, 2004년 3.6%, 2005년 3.1%로 호조를 보였다. 곧 실질임금이 30년간 정체된 상황에서 부동산 버블과 모기지 담보부증권의 버블이 경제성장의 최고의 동력이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증권투기시장의 버블 폭발이 주택시장 및 이에 연동된 모기지 담보부 증권시장의 버블로 전이되어 금융위기가 지연되었음을 뜻한다. 더구나 모기지 담보부증권 특히 서브프라임모기지 담보부증권 수익률이 폭등하자, 유럽과 아시아 및 중동 산유국들의 잉여달러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담보부증권 투기시장으로 몰려들어 달러화는 초저금리에도 불구하고 폭락하지 않았다. 이처럼 기형적인 자기재생산방식에도 불구하고 달러지배체제는 순조롭게 유지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고유가로 물가상승압력이 커지고 중국 주식시장으로 달러화 투기자금유입이 증가하여 달러화가 하락하자 미국 연준리는 다시 명목금리를 5.25%로까지 인상하는 고금리정책으로 귀환하였다.12) 그러자 주택가격과 모기지 담보부증권은 곧바로 폭락했다. 전세계 금융자본이 큰 손해를 보면서 이로부터 철수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세계에서 유례없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의 민간소비(2007년 기준 미국 GDP의 72%)가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저임금기조로 인해 상당부분 금융소득 및 주택가격상승에 따른 대출확대에 기인하는 소득을 통해 가능했기 때문에, 미국의 민간소비가 크게 축소되어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한 상황이다.13) 이는 금융자본뿐만 아니라 연속해서 건설업, 자동차 및 가전제품 등 내구재산업, 사치재산업 자본의 파산을 급증시킬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실업자가 폭증할 것이며, 이는 다시 민간소비를 더욱 축소시킬 것이다. 경제대국들의 저금리 정책공조로 부시정부는 달러화의 폭락을 막으면서 저금리정책과 금융자본 및 건설사, GM 등 자동차회사 빅3에 7,0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할 정책여지가 생겼지만, 이는 많은 한계를 갖는다. 우선 미국의 민간소비가 회복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왜냐하면 공적자금이 국민 모두에게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금융자본과 거대자본에게만 제공되며 국민 모두의 세금부담을 가중시켜 미 국민의 실질소득 하락과 소비축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14) 뿐만 아니라 미국의 지속적인 저금리정책과 공적자금 마련을 위한 재정적자확대는 달러화의 폭락을 넘어서 달러지배체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어, 마냥 선택할 정책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금리 효과가 모기지 담보 대출 및 주택가격 하락효과를 상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만약 달러화가 폭락하고 달러지배체제가 붕괴된다면 미국은 1920년대 말 이후 대공황보다 훨씬 위력적인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1990년 소련 붕괴 이후 지금까지 루불화가 50억분의 1로 폭락했음을 감안할 때, 달러지배체제가 붕괴할 경우 당시 소련보다 더 많은 자국통화가 해외에 나가있는 미국의 몰락은 소련의 몰락 이상으로 처참할 수도 있다. 이미 선진국들의 금융공조에도 서서히 균열이 커지고 있다. 앞서 보았듯이 부시와 찰떡궁합을 보이던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조차 달러지배체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곧 유로화블록은 이 기회에 달러화와 더불어 유로화를 최소한 세계기축통화의 한축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는 달러화를 거치지 않고 양국 간 교역을 곧바로 위안화와 루블화로 하겠다고 천명했다. 동아시아에서도 한중, 한일, 한중일간 통화스왑 내지 달러화를 통하지 않는 자국통화로의 교역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남미에서도 지역단일화폐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최대 주요달러보유국들이자 미 국채시장과 달러표시금융자산의 큰손들인 중국과 일본, 한국 등이 미국 달러표시 금융자산에 투자한 달러화를 철수시킨다면, 달러화는 폭락하고 미국의 구조화된 부채버블은 폭발할 수밖에 없다. 곧 중국, 일본, 한국은 미국 몰락의 결정적인 아킬레스건을 쥐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이 현재의 공황을 다른 버블을 통해 지연시킬 여지는 아주 협소하다. 새로운 가공자본과 투기시장의 확충은 자본주의의 공황을 이전시키고 지연시키는 도구이다. 특히 미국은 그간 달러지배체제의 공고화로 인해 큰 제약을 받지 않고 실리콘밸리 주식버블에서 주택가격 및 모기지 담보부증권 버블로 자본주의의 공황을 손쉽게 지연시킬 수 있었다.15) 하지만 이제 달러지배체제가 기로에 서 있다. 따라서 더 이상 미국의 공황을 지연시킬 수단은 크게 제약되어 있어서 미국의 공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공황은 달러지배체제가 잉태한 미국 발 공황의 여러 가능성 중의 하나가 지연되어 폭발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비록 지금의 공황이 다른 버블로 이전되어 잠정적으로 긴급 상황을 벗어난다 해도, 이는 더욱 더 커다란 공황을 예비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미국 자본주의는 달러지배체제자체에 기인한 엄청난 버블(미국에 누적된 재정적자뿐 아니라 무역수지적자는 달러지배체제가 붕괴할 경우 일시에 사라질 버블이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버블은 전 세계 민중들이 미국에 갖다 바친 조공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달러지배체제가 붕괴하여 미국 제국이 기울어갈 경우 이 조공은 미국 자본주의가 일시에 갚아야할 빚이 되어버린다. 가시적인 외채(2008년 9월 현재 13조 7천억 달러 - IMF) 외에도 외국에 누적된 빚은 2007년의 미국 GDP 13조 9천억 달러를 상회한다(2008년 8월까지 누적재정적자: 약 10조 달러, 1993-2008. 8. 누적 무역적자: 약 4조 8천억 달러 - IMF 및 한국무역협회).
이러한 상황에서 수십 년 동안 미국경제의 버블을 가능케 했던 달러지배체제의 붕괴 가능성이 점증하고 있다. 어쨌든 최근 G-7을 대체하는 G20의 테이블의 등장으로, 최소한 기존에 누려왔던 미국의 누적된 수탈부분을 묻지 않더라도 달러지배체제는 주요국 간 통화스왑 체제, 또는 경제대국 통화들의 바스켓체제 내지 다극체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에도 미국은 국제외환시장에서 자신의 생산 몫 이상으로 누려왔던 달러를 통한 수탈권(‘달러주조차익’)을 박탈당하고 몰락의 길로 빠져들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세계 GDP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5.4%에 불과하므로 세계외환시장에서 차지하던 61%의 지위가 25.4%를 향해 축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이 차지하는 25.4%의 GDP마저 그간 달러지배체제에 기인한 버블이 있었기에 가능했기 때문임을 고려하면 미국자본주의의 몰락은 시간문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중국, 브라질, 인도 등 신흥경제대국을 포함한 G-20이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20개국 간 통화스왑체제, 또는 통화바스켓체제 내지 다극체제는 집단적으로 약소국을 수탈하는 국제통화체제이다. 이는 달러지배체제를 통해 미국 혼자 약소국들을 수탈했던 권리를 경제대국 20개국 내지 그 중에서 특히 강한 유로화블록이나 일본, 중국 등이 나누어갖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도 환율의 급변과 강대국의 버블을 방지하기에는 한계를 갖는다. 전 세계의 통화를 근원적으로 안정시키고, 강대국의 기축통화를 통한 약소국에 대한 수탈을 차단하는 방법은 세계단일화폐체제밖에 없다.16) 이런 차원에서 달러화에 예속되지 않는 지역단일통화를 도입하려는 진보적 남미국가들 및 주변국들과 통화스왑을 도입하려는 중국의 시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원하는 나라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세계단일화폐체제를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또는 중국 등이 주창했다면, 제3세계 국가들에게 많은 희망을 주었을 것이다.
3. 결론: 미국의 공황과 21세기 꼬뮌주의의 한국경제 비전
서브프라임 붕괴와 미국의 공황으로 인한 피해는 미국경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MBS 시장에 투기했던 서유럽‧동아시아‧중동의 금융자본들도 서브프라임 붕괴 및 미국의 공황으로 인해 손실을 보았다.
이러한 직접적 피해뿐만 아니라, 금융지구화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장의 동조화(Coupling)로 인해 전 세계 주식시장이 크게 축소되었다. 이러한 축소는 상당부분 해외주식시장에 투기한 미국의 금융자본들이 파산의 위험에 처하자, 각국의 시장에서 매도한 주식을 달러로 교환하여 미국으로 복귀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공황에 처한 미국의 달러화가 오히려 2008년 여름부터 주요통화 대비 강세로 뒤바뀌는 진풍경이 발생했다.
한국과 동아시아의 경우 1990년대 말 이후 주식시장의 대미의존도가 크게 증가하여, 미국경제가 악화되면서 유동성위기에 몰린 미국금융자본이 유출되어 한국 및 아시아지역의 주가하락은 불가피하다. 한국의 경우 반 토막 난 주가는 향후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비록 미국금융자본이 한국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3년간 40%대에서 25%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미국의 공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파산위기에 처한 미국금융자본들이 국내주식시장에서 계속해서 철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주가가 폭락하면 국내금융자본 및 개인투자자들도 파산하거나 금융소득이 줄어들어 국내소비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 더구나 정책금리가 하락함에도 불구하고 국내예금은행들의 예금대비 대출비율이 2008년 6월 기준으로138%로 악화되어 실질금리가 상승하면서(이한진, 「미 금융위기와 한국 금융시장」, 미국발 세계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제4회 맑스코뮤날레 긴급토론회 자료집, 2008. 10.) 부동산 담보대출 이자 상환부담이 증가되어서 소비위축은 더욱 심각해 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2004년 이후 미국의 실물경제와 세계의 실물경제 사이에 디커플링(Decoupling)17)이 커지면서 미국경제가 공황에 빠져도 세계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직접적으로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세계경제 성장률과 미국경제 성장률 사이의 상관계수는 2004-2007년에 0.68로 2000-2003년의 0.97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뿐만 아니라 각국의 대미수출 의존도도 크게 축소되었다. 한국의 경우 총수출 중 대미 수출의존도는 2007년 12.3%로 떨어져 대중국 수출의존도 22.1%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낮아졌다. 따라서 미국경제가 더 악화되어도 상대적으로 한국의 실물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그리 크지 않고 오히려 미국의 석유수요 감소에 따라 국제유가가 하락하는 긍정적인 요인도 있을 것이다. 2008년 들어 9월까지 대미수출은 350억 달러에 달했고(대중 수출은 740억 달러), 석유수입은 704억 달러에 달했다. 따라서 최근 미국의 공황으로 석유수요가 감소하면서 국제유가도 반 토막이 되어 한국으로서는 대미수출이 줄어도 오히려 무역수지가 개선될 것이다.
물론 금융의 글로벌 동조화와 실물의 탈동조화는 단순히 가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저임금구조의 지구화로 인해 미국에서만큼은 아니더라도 세계와 한국에서 금융소득 내지 자산소득이 민간소비와 경제성장의 중요한 한축을 이루는 버블경제가 구조화되어 있다. 따라서 금융시장위축으로 인해 각국의 소비가 위축되어 한국의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금융시장 위축도 국내 소비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18)
따라서 미국 공황이 한국의 주식시장을 통해 국내소비 등에 미치는 간접적인 효과를 고려할 때, 한국경제도 성장률 둔화 내지 침체를 피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다만, 유가하락 및 대미수출비중 감소로 인해 한국경제의 침체는 시간적으로나 정도에 있어서 미국의 공황만큼 진폭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단, 미국 국채 등 달러화자산에 투기한 달러보유고와 국내금융기관의 달러화자산에 대한 투기자금을 조기에 회수하지 않는다면 한국도 달러화 유동성이 악화되어 원화가 급격히 절하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유가하락에도 불구하고 수입물가가 급등하여 국내소비는 대폭 축소되어 경기침체 이상의 공황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쨌든 최선의 경우에도 한국경제는 당분간 경기침체와 연이은 실업 및 해고 증대 등을 겪게 될 것이다. 우선적으로 노무현정부 이래 버블의 원천이었던 건설사들과 금융자본들이 일차적인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해고와 실업이 급증할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정부는 파산위기에 처한 건설사들과 금융자본에 공적자금과 구제금융을 대규모로 투입할 것이다. 이는 전 국민의 조세부담증가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명박정부는 노무현정부의 비정규악법을 더욱 개악하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려고 한다. 따라서 경기침체와 더불어 한국의 계급 간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충돌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년 전 외환위기 시절처럼 한국의 피착취계급이 해고반대, 비정규직법 개악 반대 등의 수세적 저항에 매몰된다면 자본주의의 지배는 더욱 더 공고해질 것이다. 자본주의의 맹주 미국 제국이 몰락의 기로에 처한 지금,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좀 더 전향적이고 대안적인 목표를 가지고 연대의 폭을 넓히면서 혁명의 싹을 키워야 한다.
필자는 21세기 코뮌주의의 경제모델로 주식회사의 전 사회성원의 공동소유로의 전환, 이에 대한 노동자 자주관리, 그리고 자본소득과 불로소득을 폐기하여 ‘50%의 사회연대소득+50% 노동소득’으로의 전환 등을 제시한 바 있다(곽노완, 「빠레이스: 반유토피아적 맑스주의의 유토피아」, 진보평론 35호 2008 봄). 이는 불로소득 60%, 노동소득 40%로 이루어진 자본주의 경제모델보다 노동유인과 생산력에서 앞서는 모델이다. 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 성원에게 연령별로 균등하게 지급되는 가처분 GDP의 50%의 ‘사회연대소득’19)은 맑스의 “필요에 따른” 분배처럼 삶의 안전망과 연대를 확장시키는 계기가 된다.
미국의 공황과 세계 경제위기 내지 경기침체는 이러한 기획에 다가서기 위한 적극적인 계기를 포함하고 있다. 미국 부시정부조차 금융자본을 국유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서는 축적된 230조 원의 연기금과 은행자본(및 대출채권)을 사회성원들의 공동소유인 ‘사회연대기금’으로 전환하며, 이에 기초해서 기존 기업대출을 모두 주식으로 전환하고 기존 연기금을 전액 주식매입에 사용한다면 상장기업뿐 아니라 거의 모든 주식회사를 사회의 공동소유로 전환할 수 있다.20) 특히 최근의 금융위기로 인해 한국의 상장주식시가총액이 반 토막 되어, 이를 실현하기가 호황기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그리고 지배주주인 사회연대기금의 권한을 이용해 배당을 하지 않기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낼 경우, 자본주의는 사실상 폐기된다. 그러면 이러한 이행기를 거쳐 보다 완전히 사적소유를 폐기하는 21세기 코뮌주의에 바짝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사회의 공동소유로 전환된 기업의 경영권을 노동자들에게 전체 사회성원이 위임하고 기업별 수익의 50%를 사회연대소득의 재원으로 거둬들이고, 나머지 50% 수익은 기업별로 노동자의 소득으로 분배한다면 노동자계급과 극소수의 자본가계급을 제외한 사회 전체성원의 연대는 크게 확장될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좌파정치세력은 이러한 청사진을 갖고 보다 진취적으로 계급투쟁의 지평을 확장해야 한다. 정리해고 반대 등 수세적 투쟁이 불가피한 경우라도, 노동자의 경영권 및 기업대표 선출권을 요구하며 나아가 금융자본과 주식회사를 전사회의 공동소유로 전환하여 기업의 수익 중 50%를 전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가능케 하는 ‘사회연대소득’으로 전환할 것을 제시하는 것은 전 사회성원의 연대를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어 좌파정치의 시공간을 크게 확장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