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르 마라이의 <하늘과 땅>, 솔, 2003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입니다만 세계문학에서도 당분간 그리했습니다. 산도르 마라이는 1900년 헝가리 태생으로 헝가리가 공산화된 후 이탈리아 스위스 미국 등 여러 곳을 떠돌며 망명생활을 합니다. 그의 작품은 그의 사후 1년 뒤 헝가리에서 간행이 되었고 다시 이탈리아 등지에서 발간됨으로 세계문학에 크게 알려지게 되었다.
오늘 소개할 그의 산문집 <하늘과 땅>은 사색의 깊이와 생각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책입니다.
책은 서문부터 황홀합니다.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산다. 불멸의 신적인 것을 가슴에 품고 있지만, 방 안에 혼자 있으면 코를 후빈다. 내 영혼 안에는 인도의 온갖 지혜가 자리하고 있지만...어느 주간 신문에 내 책에 대한 파렴치한 논평이 실렸을 때는 자살을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생각은 둔탁한 우리 머리가 미처 생각할 수 없는 삶의 물결들을 낱낱이 헤아리는 통찰을 지닙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이삼 백개의 제목으로 단상을 펼치고 있는데요, 아주 쉽게 고향이라는 것만 대해서도 그런 남다른 생각을 펼쳐놓습니다.
-공식적이고 역사적인 고향, 경찰이나 군대와 관계있으며 우렁차게 암호를 외치는 고향 속에서, 우리는 이를 악물고 끈기있게, 고통스럽게 주의를 기울여, 관대하고 섬세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진실한 고향을 찾아야 한다. 진실한 고향은 어쩌면, 언어나, 플라타너스 우거진 길, 언제가 열린 창문을 통해 세상으로 울러 퍼진 멜로디를 들었던 어느 단층집의 대문, 아니면 저녁노을이 진실한 고향인지 모른다. 공식적이고 역사적인 고향, 깃발을 나부끼는 고향이 자꾸만 은폐하려고 드는 이 고향이 진실한 고향이다.
이렇듯 흔히 추억하는 대상 곧, 고향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고향이란, 내가 살고 있는 현재에 멜로디처럼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식적인 고향, 시간만 가로지르는 공식적인 회상과 추억도 본질적인 고향을 훼손하는 적이라고 봅니다.
나는 글을 쓰면서 살기 때문에 내 생각이 이르지 못하는 곳에 어떤 작가의 생각이 먼저 이르러있으면 깜짝 놀라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게다가 소설이 아닌 짧은 산문집에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 산문집은 다릅니다. 산도르 마라이가 보여주는 사색의 거처는 정갈하면서도 새롭고, 대상을 정확히 겨냥하면서도 시적인 울림이 있으며, 다방면을 관찰하면서도 혼란스럽지 않으며, 사랑과 열정으로 대상을 껴안으면서도 삶의 허무와 황량함을 놓치지 않습니다. 경이롭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엄창석. 소설가)
첫댓글 산도르 마라이, 작가 이름이 멋 있는데요. 선생님 추천작 방송 끝나고 아쉬웠는데 꼭 읽어 볼게요
1990은 아닌 듯한데요? 1900년 아닌가요, 선생님?
그렇군요. 고쳤습니다. 글씨가 일반 게시글보다 읽기에 편한지 모르겠네요?
네, 부드러우면서도 각이 있어 눈이 덜 피로하네요.
추억은 멜로디라는 말로도 이해해도 될런지요. 어느순간 찾아오는 추억이 멜로디로 가슴을 저릿한 흔적을 남겨놓고 가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