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올림픽은 두 군부 출신 대통령, 즉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유치되고 개최되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양김씨 집권기간에, 즉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임기 내에 유치되고 개최되었다. 땅덩어리 작은 한국에서 서울올림픽과 한일월드컵 둘 다 국운 상승의 기회였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이 한미동맹을 크게 강화하였던 데 비해 한일월드컵 이후 한미동맹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두 군부 출신 대통령이 주도한 "88 서울올림픽은 국력 상승의 고속도로였지만, 양김씨가 주도한 2002년 한일월드컵은 나라를 내리막길로 치닫게 하였다. 그러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서울올림픽은 미국이 한미동맹의 보람을 가장 크게 느끼게 한 행사였다. 1981년 3월 3일 전두환 대통령 취임하던 해에 서울올림픽 개최 유치에 성공하였다는 뉴스가 있었다. 당시 경제 여건으로 보아 과연 우리나라가 그런 대형 국제 행사를 치루어낼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직후 동구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여지없이 무너져내렸다. 폐쇄 사회였던 동구 국가들의 선수단이 한국의 눈부신 발전상을 보았으며, 서울올림픽이 전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었으며,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두 눈으로 확인한 공산주의 국가들의 체제가 와르르 붕괴되었다. "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인은 국제사회에서 당당하게 어깨를 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한국은 국제 무대에서 외톨이가 되기 시작했다. 2002년 11월부터 한미 동맹이 급속도로 약화되기 시작하였는데, 한미 동맹 해체는 곧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왕따당하는 시대가 올 것임을 의미한다. 한미 동맹이 해체될 때 북한은 군사력으로 우리에게 압력을 가할 것이며, 러시아와 중국과 일본이 우리 민족을 대하는 태도도 돌변할 것이다. 즉, 구한말 시대로, 어쩌면 그보다도 더 못한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차라리 일제 시대에는 항일 투사들이 미국에 우리 민족의 도움을 요청할 희망이 있었으며, 한국 전쟁 때는 미국에 파병을 요청하며 원조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단 한국인은 우방을 배신하는 민족이라는 사실이 입증되고 나면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이다. 만일 민주주의 국가의 몰락을 자초하는 것이 민주화 운동의 목적은 아닐진대 그러면 어째서 이러한 현상이 한일월드컵 이후에 나타난 것일까?
2002년 6월 한일 월드컵 FIFA 2002 기간 동안 우리 민족은 위대한 국민 에너지를 세계에 보여 주는 듯하였다. 아! 한일 월드컵 기간 중에 박진감 넘치는 승부의 명장면이 얼마나 많았던가! 특히, 대 이탈리아 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을 때, 그리고 무적함대 스페인과의 격돌에서 홍명보 선수의 승부차기 볼이 전광 석화처럼 상대편 골에 꽂혀 4강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 감격의 스파크가 있었으며, 서로 얼싸안은 오천만 겨레의 희열의 함성이 지축을 흔들었다. 한일 월드컵 FIFA 2002 이 장엄한 피날레를 울리자 세계는 다시 우리 민족이 한일 월드컵의 그 위대한 국민 에너지를 어떻게 승화시켜 분출시킬 것인지 기대하였다.
그리고 반년이 지나 한국인의 함성이 다시 광화문에서부터 전 세계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뭔가 이상하였다. 그 때가 어느 시국이었던가? 북한이 제네바 협약을 어기고 비밀히 핵무기 개발을 해온 것이 밝혀지던 때에 광화문에서 요란하게 반미 함성이 울려 퍼지며 성조기를 찢는 모습이 미국 CNN 방송과 영국 BBC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되었다. 미국 대사관에 쳐들어가는 수십 만 명의 군중, Fuck USA, 양키 고우 홈을 외치는 군중, 길가에서 서양인을 험하게 째려보는 한국인들이 외국에서 보는 한국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한총련은 촛불 시위를 취재하러 온 외국 기자단들 앞에서 미국 성조기를 찢으며 "우리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지지한다" "주한미군은 철수하라"고 외쳤다. 물론, 결코 그것이 국민 전체의 의사가 아님에도 이렇게 우리는 한일 월드컵의 에너지를 좌파 운동권에 도적질당하였던 것이다.
무릇 모든 지도자에게는 각자의 역량에 따라 자기 시대가 있는 것이다. 한 민족의 영도자는 노사모 돌풍으로, 촛불 시위 열풍으로 급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국민은 노무현이 한 정당의 당수로서 그의 통치력이 검증받을 수 있는 기회를 원하였다. 김정일의 음흉한 적화통일 야욕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여줄 지도자를 원했던 국민은 노무현이 정당 통솔력과 외교 능력을 먼저 입증해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반칙 선거운동을 하던 노사모 돌풍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좀 더 대통령 수업이 필요한 자를, 난폭 운전 성향이 있는 초보운전자를 대통령으로 세우는 우를 범하였다.
노무현은 난폭 운전 성향이 있는 인물이다. 노무현의 민주화 운동 경력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1988년 성공적인 서울올림픽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께 누명을 뒤집어씌우려는 무리들로 인해 청문회가 개최되었을 때 전두환 대통령 얼굴에 명패를 던져 일약 유명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김정일에 비굴한 노무현이 전두환 전 대통령 얼굴에 명패를 집어던졌을 때 그 의미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성공적인 경제 정책에 대한 부정이었다. 그것은 성공적인 서울올림픽에 대한 부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광주사태 진압 명령자는 광주사람 정웅소장이었으며, 당시 보안사령부의 전두환 소장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었다는 진실에 대한 부정이었다. 그리고 거짓으로 진실을 누르기 위해 명패를 던졌다는데에 노무현의 난폭 운전 성향이 있는 것이다.
노무현은 5월 27일(2004년) 연세대에서 리더십 강연을 하는 도중 자기는 성공하였다고 자랑하였다. 그렇다. 그는 자기를 대통령 후보로 추천한 민주당을 당수가 되자마자 배신하고 일년만에 와해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 다음에는 나라 무너뜨리기에 성공하려 하는가? 노무현의 성공 철학이라는 것이 결국 그런 것인가? 문제는 그가 제시한 네가지 성공 비결 중 두 가지는 미신에 관계된다는 사실이다. 즉, 그는 점과 사주가 그를 대통령이 되게 하였다고 연세대에서 강연하였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설립한 학문의 전당 연세대는 미신 타파를 통한 한국 개화의 전초기지였다. 바로 그 개화 운동의 상징인 연세대에서 노무현이 점과 사주가 자기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강연하였다. 그가 무슨 소리를 하였는가? 그러면 대학생들도 성공하기 위해서 점쟁이를 찾아야 한다는 말인가?
노무현의 점에 대한 강연 어록을 요약 인용하면 이러하다. 노무현은 그날 ‘변화의 시대, 새로운 리더십’ 특강에서 그의 성공 비결의 첫 번째 이유로 "경선 후보되기 전에 점치고 될 것이란 확신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의 또 하나의 성공 비결은 "사주가 제법 괜찮다고 한다"였다. "운칠기삼이라는데 그렇게 가다보니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 상징적으로 비슷하게 보였나 보다. 그러니 너 대통령 한번 해라 시켜준 것 아니겠나"라고 노무현은 말했다. 한술 더 떠 그는‘점과 사주’가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강연하였다. 결국 노무현이 말하는‘진보’는 개화가 안되었던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이요, 노무현이 말하는 개혁은 합리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미신적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점을 치러 가는 사람이나 점을 쳐주는 사람이 바라는 게 무엇인가? 그것은 이기주의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기껏해야 운수가 트여서 그저 남들보다 출세하여 많이 소유하고 편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 사는 정신, 공동체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어느 미개 사회에나 점을 쳐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점쟁이들이 다른 나라에 가서 연세대학교를 설립하여 주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점을 치러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공동체 번영 정신이 없기에 점쟁이가 많은 나라는 후진국으로 머물러 있다. 그리고 점을 치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는 이타주의가 없기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 왕따당하는 민족으로 전락한다.
급기야 주한미군 감축 사태와 안보 위기를 초래하고 만 노사모의 반미 성향은 그들의 중국 사대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리고 한일월드컵 이후 노사모의 중국 사대주의가 그 모습을 드러냈던 바, 중국 언론은 한일월드컵 기간 동안 한국을 대한견국(大韓犬國: 개새끼나라)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노사모는 한국을 대한견국이라 부르던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한국이 미국과 동등해지는 길이라는 논리를 주장하였다. 선거 유세때 미국에 사진찍으러 안간다고 공약하던 노무현은 중국에 사진찍으러 갔을 때 모택동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북핵위기 해법을 거부하며 자기가 자주적으로 해결하겠다던 노무현은 중국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반미주의자 노무현은 이렇듯 중국 사대주의자였다.
그런데, 좌파의 중국 사대주의는 붉은악마 숭배와도 관련 있어 보인다. 두 군부 출신 대통령이 준비하였던 "88년 서울올림픽 때는 귀여운 호돌이 휘장이 한국에 대한 호감을 전세계에 심어주었다. 그러나 양김씨가 준비하였던 한일월드컵 때는 흉측한 붉은악마 마스코트가 정서적으로 한국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켰다. 즉, 치우(蚩尤)라는 중국 도깨비가 건국 신화의 상징으로 내세워지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붉은악마 응원단이 응원석 앞에 걸거나 휘두르기도 하던 대형의 도깨비 얼굴을 그린 깃발이 붉은 악마의 표식으로 쓰인 치우천왕기(蚩尤天王旗)였다. 자,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단군(檀君) 대신 대한민국 건국 신화의 상징으로 들어앉은 이 도깨비의 정체는 무엇인가?
중국 전설에서 무용(武勇)이 걸출한 괴물이요, 은(慇)나라 때에 도철이라는 무서운 괴물의 모습으로 청동기에 새겨져 부적으로 사용되었던 도깨비 치우가 우리 민족 수호신이라고 주장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중국 도깨비의 문양을 그대로 옮겨 치우천왕이란 이름을 붙인다 하여 그가 우리 민족의 시조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무엇이 사실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소리 크게 주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들은 동양신이 서양신보다 우월하다고, 그리고 치우 도깨비가 우리 민족의 신이라고 큰 목소리로 우기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좌파가 그렇게 큰 목소리로 우기니깐 치우 도깨비가 우리 민족 신이라고 믿고, 붉은 티셔츠에 Red Devils 라는 문양을 다는 것이 애국인 줄로 속는 시민들도 생겼다. 무엇이 김대중 정권의 관광사업이었던가? 그것은 흉칙한 치우 도깨비 사진들로 가득한 관광책자를 한일월드컵 관광객들에게 나누어주면서 바로 그 붉은악마가 한국의 수호신이라고 거짓말하는 것이었다.
두 군부 출신 대통령이 준비한 "88년 서울올림픽과 양김씨가 준비한 2002년 한일월드컵 모두 단합된 국민 에너지를 보여준 초대형 국제 행사였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그러나, 한국적 가락과 한국적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서울올림픽의 개회식, 폐회식 행사와 달리 한일월드컵 응원가 꼬레아는 외국인이 미국 록음악 장르 표절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서울올림픽 때 국제사회에 대한 봉사정신으로 온 국민이 단합하였던 데 비해 한일월드컵 때는 국수주의적 민족주의 색채가 강하였다. 한일 월드컵의 특징은 고함과 반칙이었다.
그런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고함 소리가 한일월드컵에서 끝났어야 했는데, 큰소리를 치는 쪽이 이긴다는 좌파의 거리 정치 정신이 문제였다. 그들이 미국 대사관 앞에서 "미선이와 효순이를 살려내라"고 고래고래 지른 소리가 미국 CNN 방송과 영국 BBC 방송을 통해 해외에 보도되었을 때 한국말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는 그 말이 "주한미군 철수" 요구와 반미 선언으로 들렸다. 그들이 미국 부시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내었다. 이겼는가? 아니다. 그때부터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 준비에 들어갔다. 고함소리와 더불어 한일월드컵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반칙이었다. 여기서 불공정했던 심판에 대해서는 생략한다. 그러나 치우천왕기를 꽂아 주술을 건 것은 반칙이었다. 좌파는 치우천왕기에 주술의 효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말로 주술의 효험이 있었다면 치우천왕기를 경기장 응원석 앞에 꽂아 주술을 걸었던 것은 응원 반칙이었다.
이처럼 한일월드컵 때는 주관주의와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의 요소가 너무도 강하였다.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붉은악마를 응원단 명칭으로 선택한 것은 잘못이었다. 붉은악마를 응원단 명칭을 고집한 자들 중에 실제로 붉은악마 숭배주의자들이 있었으며, 김대중 정부도 국고를 낭비하며 붉은악마가 한국 민족의 조상이요 한국의 수호신이라는 내용의 영문 관광책자 제작을 지원하였기 때문이다. 한 사회는 미신을 타파하는 만큼 발전한다. 그런데, 미신적 사고방식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진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한일월드컵 직후 점쟁이를 찾아가 점을 보았던 노무현이 자신을 진보주의자로 자처하며 개혁의 칼을 빼들겠다고 하였다.
노무현이 점을 보았다는 사실은 그가 개화 이전의 구시대의 인물, 여전히 주관주의에 빠져있는 인물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에게는 객관적인 잣대가 없다. 그는 국법을 어기고도 자기가 옳고 국법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점 보러 다닐 정도의 극도의 주관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 극단적인 주관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옳고 그름에 대한 명확한 판단의 잣대가 없기 때문에 큰 목소리로 이기려는 국민성이 형성된다. 후진국, 미개국에서 민주주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극단적인 주관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국정 운영에 무능한 선동 전문가들이 정권을 잡는다. 선동 전문가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는 객관적 사고 능력이 있는 인사들에 대한 탄압이다. 이인제 의원과의 경선 전에 점을 보았던 노무현이 이인제 의원에게 올가미를 씌워 구속하였으며, 아무런 혐의가 없는 신일순 대장을 체포하였다.
두 군부 출신 대통령이 주도한 "88년 서울올림픽과 민주화운동 양대 산맥을 자처하는 양김씨가 주도한 2002년 한일월드컵 사이에는 이처럼 국가 발전의 쌍곡선이 있다. 서울올림픽의 성공 비결은 합리론과 과학적인 사고 방식이었다. 과학철학이 있는 곳에서 미신은 추방된다. 그리고 객관적 사고 능력 위에 민주주의는 건설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민주화운동 정권 등장과 더불어 과학 철학이 쇠퇴하고, 점쟁이들과 무당들이 늘어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인터넷 시대에 사람들의 인식론이 구한말 이전으로 후퇴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후퇴가 진보이며 개혁이라고 큰 목소리를 내는 자들이 있다. 우리는 노사모에 그들도 점궤가 좋아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믿는지, 그리고 과학철학을 파괴하며 객관주의를 탄압하며 합리론을 부정하는 것이 개혁인 양 주장하는 노무현을, 점과 사주가 신빙성이 있다고 강연하는 노무현을 대통령으로서 국민이 신뢰할 근거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