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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노래
윤 영 자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놓고 무엇을 배워 볼까 하다가 아름다운 가곡 부르기에 등록을 했다. 평소에 관심은 있었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던 차 우울해지려는 마음엔 노래가 약이라는 친구의 권고가 많은 작용을 했다.
나는 음악을 참 좋아한다. 음악을 들으면 모든 시름을 잊게 되고 마음이 깨끗하여 맑은 시냇물과도 같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펼쳐진 자연이 더욱 아름답고 캄캄한 밤 방안에 있어도 내 가슴속엔 하늘의 별이 내려와 반짝이기도 한다. 삶이 고단할 때나 기쁠 때 음악은 이렇듯 삶의 윤활유 역할을 해준 것이다. 예전엔 라디오 채널 FM 방송을 끼고 살았지만 요즘엔 인터넷 음악 카페가 있어 잘 차려놓은 밥상 같아 구미에 맞게 골라 들을 수 있으니 무얼 더 바라랴 싶다. 집안에서는 물론이려니와 텃밭에 나가 일을 하면서도 볼륨만 조금 높이면 음악을 즐길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그렇게 좋아한 음악을 이제 지도 교수로부터 배워 직접 불러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큰 기쁨인 것이다.
언젠가 써 두었던 수필에 ‘난 내 집에 내가 심을 나무 한 그루, 내가 부를 노래 한 곡조도 정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글귀가 있다. 바쁘게 살며 고생스러웠던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 같다. 지금은 한가롭게 노래를 불러보려니 그때 무심코 써 두었던 글이 떠오르며 마음이 또 울컥 해진다. 왜 그렇게도 그때는 번다하게 살아야만 했는지. 그렇게 많은 날을 살아왔지만 원하던 목표도 다 이루지 못한 채 이젠 바쁘게 살아보려고 해도 바쁠 수도 없으니 마음이 더욱 아프기만 하다. 노년과 건강 비결은 젊음의 기백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바쁘게 살아가는 데 있다더니 정말 그 말이 맞긴 맞는가보다. 예전 같으면 이 나이에 노래를 부르러 다닌다는 건 언감생심 엄두도 내지 못 할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도나도 자기 입맛에 맞춰 찾아간 문화센터마다 대만원을 이룬다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한 끼 굶는 한이 있어도 음악이 아니면 삶의 의미를 못 느낀 나이기에 가곡 교실에 나가게 된 것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엔 야외 수업이 있었다. 군데군데 억새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들판의 풍경이나 오색 단풍이 흩날리는 작은 산자락의 군무가 온통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연과 음악의 만남은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기도 했다.
-아 찬란한 저 태양이 숨져버려 어두운 뒤에 불타는 황금빛 노을 멀리 사라진 뒤-
이 노래는 지난주에 배웠던 가곡 비가(悲歌)이다. 가사와 곡이 제목처럼 슬픈 노래지만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내 마음은 감당 할 수 없는 희열에 차 있다. 오는 십이월 학습이 끝날 무렵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여하여 가곡 발표회를 가질 예정이라 한다. 피아노가 놓여있는 무대 위에 예쁜 드레스를 입고 노래를 부른다는 게 얼마나 꿈같은 장면이랴 싶지만 그 건 젊은이들의 몫으로 알고 그날 나는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는 관객이 될 마음이다. 무대라는 말이 나오니 초등학교 학예회 때 있었던 일이 아련히 떠오른다. 독창을 할 학생을 뽑는데 담임선생님은 정이라는 친구를, 무용을 가르치는 김 여선생님은 나를 추천 해 주었는데 선생님끼리 서로 우기다 결국은 애국가를 부르게 하여 목소리 큰 아이를 뽑기로 했다. 정이는 공부도 나보다 더 잘 하고 또 노래도 잘 부른데다 무엇이든지 1등을 차지해야 직성이 풀린 당찬 친구임으로 나는 일부러 애국가를 작게 불러 결국은 탈락이 되고 말았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무대는 오래 전부터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어려서는 그렇게 해서 독창 무대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였고 지금은 그때처럼 대결할 일이 없이 내 몫으로 주어진 무대이련만 이미 설 자리 앉을 자리를 파악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던가. 오늘은 내내 기다려지던 토요일, 가곡 교실에 가는 날이다. 맑은 가을 날씨만큼이나 내 마음도 밝아진 느낌이다. 버스에서 내려 음악실을 가자면 한참을 숲이 우거진 동산을 지나가야 한다. ‘아리랑 쉼터’라고 팻말에 쓰여 있는 걸로 보아 일부러 숲길을 조성 해놓은 것도 같다. 아름다운 동산과 만난 지 얼마 안 되지만 도심 속에 자리하고 있는 이 호젓한 산길을 나는 참 좋아한다. 잎이 무성하게 자란 도토리나무들이 귀여운 알맹이들을 떨어뜨리면. 숲 속에서 날쌘 다람쥐라도 바스락대며 튀어 나올 것 같은 산길, 내 어릴 적 추억어린 고향 길과 다를 바 없다. 여기저기 서 있는 단풍나무들도 손짓을 하며 반겨주는 듯 해 가슴에 쏴아 그리움이 밀려들며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떨어져 내린 나뭇잎을 보노라니 인생의 무상함이 오소소 찬바람이 되어 시린 가슴을 파고든다. 언젠가 읽었던 글귀가 언뜻 뇌리를 훑고 지나갔다. - 노년은 산야에 쌓인 백설처럼 장엄하면서 밤하늘에 높이 뜬 샛별처럼 은은하게 빛날 수 있다. 노을 빛 같고, 흰 눈빛 같고, 별빛 같은 나이 그것이 노년이다. 인생의 황혼기! 구름사이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석양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한다. 나는 내내 곱게 물들어간 오색 단풍나무로 서서 모두에게 감사 할 줄 아는 마음이 아름다운 노년을 장식 하고 싶다. 가곡 교실에 다다랐는지 청아한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온다. 고운 음률에 전율이 인다.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나도 모르게 콧노래로 따라 부르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 한 것보다 나은 분복은 없나니' 성경 한 구절이 머릿속에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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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중앙, 핑크빛 아름다운 드레스에 설레이는 아름다운 이나 언니~맞은가요? ㅎㅎㅎ
흐르는 세월 붙잡아 매셨남요!!!
을미년에도, 기대되는 아름다운 가곡 아카데미 공연을 꼭 올려보시게요~~~
교육대 아름다운 가곡 클래스 파이팅!!!
그날은 봄 꽃 벙그는 듯 한 설렘 속에 그냥 내 나이 여나므자락 뚝 떼내어 천장에 매달아 두고서 날아갔지요 나비처럼요 ㅎㅎ.... 언제라도 노래는 즐겁고 행복을 가져다주어요. 아름다운 글 감사합니다.
'고향의 노래' 늘 즐겨부르던 노래입니다.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시는 언니를 아름다운 음악이 있는 곳에서~좋은 글과 함께 만나 행복합니다.
늘 영육 간에 강건하시고, 신앙과 문학, 음악의 하모니 속에~
건안, 건필, 건승하시고 행복한 여정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샬롬!!!
청화 아우님의 예쁘고 진심어린 글 많은 힘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오메~~ ~~ 핑크색 드뤠~~쓰가 요로코롬 잘 어울리신디......
마양님 공부하느라 바쁜데 이렇게 글까지 올려주시니 무지 고마워용.
별말씀을요.....겁나 부지런하시구마요~ ㅎㅎ
아름답습니다, 글로 표현해 주신 "황혼의 노래"도 잘 읽었습니다. 정말 멋쟁이시네요,
글도 잘쓰시고 예쁘게 짬짬히 취미도 즐기시는 멋쟁이 노후생활이 부럽군요,계속 발전 하세요.
카페사랑과 고운 댓글 감사합니다. 행복한 칠월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