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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개요 o 산행일자 : 2004. 12. 26(일) o 기상상황 : 흐리고 바람(산 중턱부터는 눈발이 날림) o 산행인원 : 2명(부부) o 산행코스 : 도림사입구 시설단지 ~ 도림관광호텔 뒷길 ~ 돌탑길 ~ 형제봉 ~ 배너머재 ~ 동악산 ~ 청류동계곡 ~ 도림사 ~ 시설단지 o 산행동기 마지막 남은 달력을 보며 올해도 어느새.... 길~게 한숨을 내쉬며 가슴엔 무언가 맺혀오는 회한(悔恨) 같은 것이 전해진다. 돌아보면..... 올해 산행의 시작은 눈 덮인 무등산산행에서 출발하여 매월한두번 많게는 4~5번, 대체로 만족스러운 금년 한 해의 산행이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계획했던 산행, 우리 부부만의 산행도 좋은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묵은 인연들을 떠나보내기도 하고 새로운 인연을 맞이하는 일에는 소홀함이 많았던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금년 한해도 1주도 채 남지 않은 시간,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처럼 담쟁이 잎새가 하나 두울 떨어져 가는 안타까움으로 올해를 정리해 본다. 그리고.... 어지간히 산과 같이 해 온 사람들은 이맘때면 송년모임과 더불어 송년산행에도 제법 의미를 두고 떠난다. 몇몇의 직원들과 송년산행을 계획해 보았지만 실패하고, 부부끼리 가까운 산행을 다녀오리라 생각하고 곡성 "동악산"으로 떠나게 되었다. 지난 12월 11일 모후산 산행이후 약 2주일이 지나서 다시 산을 찾은 것 같다. 직장에서의 송년모임, 초등에서 대까지 동창회 3번의 송년회, 친구들끼리의 송년모임... 12월 한달은 송년모임으로 몸과 마음이 멍(?)들어 있고, 더욱이 술에 찌든 하루하루... 여기에 먹기만 하고, 운동부족으로 건강의 악순환까지... 이런 와중에 이번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 연휴 2일을 건강의 날로 정하기로 했다. 첫째날은 다른 운동을 하고, 오늘 둘째날은 꼭 산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 구간별시간 : 5시간 20분 (13.0km) 시설단지 주차장(10:00) ~ 형제봉(11:40/출발12:10) ~ 대장봉 중턱(12:30) ~ 배너머재(12:50) ~ 동악산(13:55) ~ 제3교(14:40) ~ 도림사(15:00) ~ 시설단지 주차장(15:20) □ 준비물 보온도시락, 돼지고기 300g, 김치(약간), 컵라면 1개, 물 500㎖ 2개, 술(알콜 15%) 350㎖, 보온병 0.5ℓ 2개, 커피 1회용 4개, 과자류(약간), 소형 가스버너 □ 산행 : o 시설단지 주차장(10:00) ~ 형제봉(11:40) 3.0km 09:25분, 광주IC에 들어서 호남고속도로를 따라 곡성IC로 빠져 나왔다. 편도 2차선의 잘 정비된 60번 지방도를 따라 곡성읍 방향으로 5분여를 달리면 신호등과 함께 도림사를 입구의 이정표가 나타난다. 여기에서 좌회전하면 넓은 시설지구와 함께 주차장이 있다.(09:55) 주차장 뒤편에 오토켐핑장처럼 잘 정비된 시설지구에 등산로의 이정표가 우뚝 서있다. 이 이정표의 뒤편으로 등산로가 나 있는데 자세히 살피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대부분이 도림사입구까지 들어가 도림사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를 택한다.) 10:00분, 산행준비를 하고 형제봉으로 향하는 등산로로 들어섰다. 등산로 표시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산행하는 사람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흐릿한 날씨에 바람까지 불고 무엇인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오래 전에 추수가 끝난 들판엔 말아놓은 짚무더기 위에도 하얀 서리꽃이 이따금 구름사이로 나타난 햇살에 반짝거린다. 아득한 어린시절, 서리꽃을 밟으며 논둑길 가로 질러 작은 걸음으로 학교에 다니던 유년시절엔 유난히 손이 시렸던 기억들이 어제처럼 선명해져 온다. 지금이야 따뜻한 장갑도 흔한 것을.... 그 시절엔 왜 그리 날씨가 추웠는지? 그리고 무슨 눈도 그렇게 많이 왔었는지....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에서 팽이치기, 썰매타기가 전부였지만 지금의 얘들처럼 부모를 보채거나 말썽을 부리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설단지 뒤편을 따라 오르니 어느 이름모를 묘지 사이를 지나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잘 정비된 오솔길을 따라 10여분 오르니 그 누군가 쌓아 놓았는지 돌탑들이 나타났다.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조그만 돌탑을 보니 문득 마이산의 탑사가 떠오른다. 탑사의 돌탑은 그 규모가 매우 크고 커다란 돌맹이로 쌓아올렸지만 이곳은 조그만 돌맹이를 차곡차곡 쌓아올려 그 정상에는 조금 큰 돌을 얹어 산불조심, 자연보호 등의 글들을 새겨 놓았다. 이 돌탑에 대한 전설이나 사연을 적은 표지는 없고 다만, 돌탑이 끝나는 505봉 지점에 큰 돌탑하나와 그 옆에 공사시공공로자 명단이 새겨진 석물이 하나 서 있었다. 505봉 지점을 지나 약간의 내리막이후 계속되는 오르막이다. 지금까지 오는 동안 단 한 팀도 만나지 못하였다. 왜 이리도 오르는 사람이 없을까하는 의아심을 가져 보았지만 조금 더 오르니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길을 분간할 수 없는 바윗길을 따라 계속되는 오르막.... 오직 밧줄 하나만을 의지하여 올라야하는 오르막의 연속이다. 등산이 아니라 암벽등반을 연상케 한다. 출발한지 한시간이 되어서야 오름에 지쳐 쉬고있는 한팀을 산객을 만날 수가 있었다. 이따금씩 눈발이 날리고 있다. 올 겨울들어 처음보는 눈발이다. 산상의 눈은 기온의 탓인지 조금내렸지만 녹지 않고 하얗게 쌓여있다. 지겨운 바윗길의 오름은 심신을 지치게한다. 그러나 멈출 수 없이 계속 전진하였다. 715봉 고지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출발한지 한시간 20여분이 지나서였다. 잠시 길섶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따뜻한 커피한잔을 하였다. 진한 커피향이 코끝에 와 닿아 자극한다. 형제봉으로 오르는 능선부에서 북동쪽을 바라보니 형제봉에서 도림사로 길게 뻗어내린 산맥의 이름없는 기암괴석과 웅장한 바위능선을 바라보니 지금까지 바라본 풍경과는 사뭇 색 다르게 보인다. 그야말로 기기묘묘하고 형형색색한 절경이 마치 영암 월출산의 능선길과 흡사하다. 이 능선길을 따라 형제봉으로 오르는 산객들의 보습이 보인다. 우리도 저 산의 능선을 따라 오를 것을 하는 후회도 하였다. 잠시 휴식후 잠시 내리막을 따라 내려가다가 형제봉을 향한 마지막 오르막이 시작된다. 10여분을 더 오르니 많은 인파의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출발한지 1시간 40분이 지나서 형제봉 정상에 도착하였다.(11:40) o 형제봉(12:10) ~ 배너머재 ~ 동악산(13:55) 5.3km 형제봉 정상에 오르니 제법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00신협의 0이사와 순창에서 사업을 하는 0사장 일행이 반겨 주었다. 정말 뜻밖의 만남이었다. 0이사와 0사장 일행은 길모퉁이에서 벌써 가스버너에 라면을 끓이고 한잔씩을 하고 있었다. 맥주에 소주를 탄 폭탄주 한잔을 내게 권하여 시원하게 한잔을 비웠다. 건네주는 라면발과 국물 안주가 시원하게 목을 타고 넘었다. 한잔의 폭탄주와 시원한 국물이 어울어져 온 몸에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배넘어재에서 점심식사를 할 계획이었으나 여기에 합류하여 짐을 풀었다. 마누라가 요리한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술 한잔씩을 곁들이니 일품이다. 추운 날씨에 술 몇잔을 들이키니 얼큰하다. 몰려드는 인파가 점점 더 많아지고 소란스러워진다. 형제봉, 해발 750m의 동악산 최고봉이다.(일부 기록은 높이가 상이함.) 원효대사가 성출봉(聖出峰, 형제봉 동봉으로 동악산 최고봉) 아래에 길상암을 짓고 원효골에서 도를 베풀고 있는데 하루는 꿈에 성출봉과 16아라한이 그를 굽어보는지라 깨어나 즉시 성출봉에 올라가 보았더니 1척 남짓한 아라한 석상들이 솟아났다는 것이다. 원효가 열일곱 차례나 성출봉을 오르내리면서 아라한 석상들을 길상암에 모셔 놓으니 육시(六時, 불교에서 하루를 여섯으로 나눈 염불독경의 시각으로 신조, 일중, 일몰, 초야, 중야, 후야)만 되면 천상에서 음악이 들려 온 산에 퍼졌다 한다. 도림사 응진전에 봉안된 아라한상들이 당시의 것이라 전해지고 있으나 신빙성은 없다. 마을 주민들은 곡성 마을에서 장원급제자가 탄생하게 되면 이 산에서 노래가 울려 펴졌다고도 한다. 남원 실상사 약사전의 약사여래상처럼 나라에 불길한 징후가 나타나면 땀을 흘리는 흉조를 나타내는 불상이 있는가 하면 동악산처럼 길조를 알리는 산도 있는가보다. 몇 잔의 술과 함께 점심을 마치고 먼저 인사를 나누고 일어섰다. 조금 얼큰한 기분으로 대장봉을 향하여 출발하였다.(12:10) 형제봉에서 대장봉(형제봉 서봉, 해발 735m)까지는 0.7km 구간으로 급경사의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다. 급경사를 따라 5분여를 내려가면 해발 660m의 헬기장이 나타나고 여기에서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15분정도 올라야 대장봉이다. 대장봉으로 오를까 망설이다가 대장봉 중턱의 산등성이길을 따라 곧바로 배넘어재로 향하였다. 잘 깎아놓은 오솔길따라 직진하면 해발 540m의 배넘어재에 도착하게 된다. 형제봉에서 배넘어재의 구간은 약 3.2km로써 약 40분이 소요되었다.(12:50) 곡성의 진산인 동악산은 크게 두 산덩어리가 남북으로 놓여 있다. 각 산덩어리는 비슷한 높이의 정상이 있는데 이 두 산덩어리를 가르는 것이 배너머재이고, 북봉에 동악산, 남봉에 형제봉 이라 표기해 놓고 있지만 최고봉은 형제봉이 된다. 산이름의 유래가 성출봉(형제봉 동봉)에서 유래됐다는 것과 주요 등산로가 형제봉을 중심으로 더 잘 나 있다는 점은 형제봉이 동악산의 주봉임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곳 매너머재(표지판에는 배넘어재로 표기됨)는 사거리길로써 2.0km를 직진하면 동악산, 우측의 내리막길을 따라 2.4km를 내려가면 도림사, 좌측길을 따라 2.0km 정도를 내려가면 입면 약천저수지가 나타난다. 동악산에 설치된 표지판은 제대로 된 것이 거의 없다. 글자 표기, 거리 등이 지워져 있고, 산객들의 손망도 있지만 오랫동안 정비되지 않은 탓인지 떨어져 나간 것도 한 두개가 아니다. 한번쯤 일제정비가 필요하다. 배너머재 인근에는 유난히도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문득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읽은 것 같은 수필가 이양하씨의『페이터의 산문』이 떠 올랐다. 참다운 지혜로 마음을 가다듬은 사람은, 저 인구에 회자하는 호머의 시구 하나로도 이 세상의 비애와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나뭇잎과도 흡사한 것, 가을 바람의 땅에 낡은 잎을 뿌리면 봄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잎, 잎, 조그만 잎, 너의 어린애도 너의 아녀자도 너의 원수도 너를 저주하여 지옥에 떨어뜨리려 하는 자나, 이 세상에 있어 너를 헐고 비웃는 자나, 또는 사후에 큰 이름을 남긴 자나, 모두가 다 가지고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 그들은 참으로 호머가 말한 바와 같이 봄철을 타고 난 것으로 얼마 아니 하여서는 바람에 불리어 흩어지고 나무에는 다시 새로운 잎 이 돋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공통한 것이라고는 다만 그들의 목숨이 짧다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마치 그들이 영원한 목숨을 가진 것처럼, 미워하고 사랑하려고 하느냐? 얼마 아니 하여서는 네 눈도 감겨지고, 네가 죽은 몸을 의탁하였던 자 또한 다른 사람의 짐이 되어 무덤에 가는 것이 아닌가? 때때로 현존하는 것, 또는 인제 막 나타나려 하는 모든 것이 어떻게 신속히 지나가는 것인지를 생각하여 보라, 그들의 실체는 끊임없는 물의 흐름, 영속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그리고 바닥 모를 때의 심연은 바로 네 곁에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 때문에 혹은 기뻐하고, 혹은 괴로워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 아니냐? 무한한 물상 가운데서 네가 향수한 부분이 어떻게 작고, 무한한 시간 가운데 네게 허용된 시간이 어떻게 짧고, 운명 앞에 네 존재가 어떻게 미소한 것인가를 생각하라. 그리고 기꺼이 운명의 직녀 클로토의 베틀에 몸을 맡기고, 여신이 너를 실삼아 어떤 베를 짜든 마음을 쓰지 말라. .................... 배넘어재에서 북봉인 동악산으로 가려면 북쪽으로 뻗어 오른 능선을 타고 약 20분 정도 올라 동악산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암릉을 거쳐 북봉 정상에 도달한다. 배너머재에서 삼거리까지의 능선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오솔길처럼 호젓한 길이어서 걸음을 빠르게 재촉할 수가 있었다. 능선길 서쪽경관을 바라보니 입면의 촌락, 반듯이 정리된 들판이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하며, 약천저수지에 담겨진 맑은 물이 한가롭고 아름답다. 배너머재에서 동악산으로 가는 동안 제법 많은 산객들을 만나 인사를 주고받았다. 대부분이 도림사계곡을 따라 동악산을 거쳐 배너머재로 오는 사람들이다. 동악산 삼거리의 표지판도 억망이다. 삼거리에서 동악산까지의 길은 오르내리는 암릉길의 연속이다. 앞쪽에는 형제봉과 도림사를 연결한 거대한 바위능선이 장엄하고 웅대하게 펼쳐져 있다. 표지판이 땅에 떨어진 조그만 삼거리길이 나타났다. 좌측은 삼인동체육관, 우측은 동악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암릉길 모퉁이를 따라 오르내리고 긴 철계단을 지나 드디어 동악산 북봉의 정상에 올랐다. 배너머재를 넘어 약 한시간, 형제봉에서 약 1시간 45분이 소요되었다.(13:55) 10:00분 산행을 시작하여 약 4시간의 산행이었다. o 동악산(14:00) ~ 청류동계곡 ~ 도림사 ~ 주차장(15:20) 4.7km 동악산(動樂山, 동악산의 북봉, 해발 735m), 행정구역상으로는 곡성읍 서쪽으로 또 곡성군 입면, 겸면, 삼기면의 3개면에 걸치는 산맥을 가진 산으로서 위치상으로는 지리산(만복대)으로부터 서남쪽에 위치하고, 산세의 형상으로서는 최악산과 형제봉의 서남쪽그룹, 동악산과 삼인봉이 이루는 북동쪽그룹으로 구성되고, 두그룹사이의 능선 안부에서는 도림사로 이어지는 산행로가 이어져 있고, 삼남제일의 암반계류 청류동 계곡과 사찰 도림사가 있다. 또한, 곡성팔경의 제1인 동악조일(動樂朝日 - 동악산에서 바라보는 해돋이의 모습은 웅장하고 마치 숲속에서 태양이 솟아오른 듯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낸다)과 제2인 도림효종(道林曉鐘 - 동악산 기슭에 자리한 천년고찰 도림사의 종소리가 새벽기운을 타고 수십리 밖까지 전해져 그 은은한 종 울림소리를 적시어 준다)은 동악산의 아름다움을 다시한번 연상케 한다. 動樂山을 동락산이라 읽지 않고, 동악산이라 읽는 까닭은 천상의 노래, 즉 음악이 울린다(동한다)는 전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며,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율에 맞춰 춤을 추다 오늘날의 산세를 갖췄다는 전설로 유명한 산이다. 일망무제의 길... 또한 막힘도 없으며 걸림도 없는 곳.. 그 정상에 서있다.. 멀리 내다보이는 들판,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조망되는 산줄기, 그리고 산의 물결들... 그 풍경들을 바라보고 감상에 젖어보면서, 정상에 오른 기쁨을 맛보고 있다. 정상을 정복해보지 못한 사람은 이 기분을 느끼지 못하리라... 늘 바라만보는 하늘... 하늘을 가까이 하려고 산을 찾고 산위에서 자신의 꿈과 희망과 미래를 생각하고... 그래서 산은 언제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사람을 맞는다. 산은 언제나 오름의 길이 있으면 내림의 길이 반드시 있다. 차고 매서운 산상의 겨울바람에 못 이겨 하산의 차비를 하였다. 정상에서 하산길은 세갈래의 길이 있다. 정상에서 서쪽을 향하여 배너머재로 가는 길, 남쪽을 가로질러 도림사로 가는 험로(2.8km), 동쪽으로 나있는 죽동, 월봉리로 가다가 도림사로 내려가는 길(2.7km) 동릉을 따라 도림사로 내려서는 코스로 300m쯤을 가니 다시 삼거리가 나타났다. 곧바로 직진하면 신선바위를 거쳐 죽동으로 가고, 오른쪽 내림길을 택하면 도림사이다. 약간 가파른 도림사로 내리는 길을 택하여 내려갔다. 오솔길 같이 편한 길이어서 내림의 속도를 빨리 할 수 있었다. 40여분쯤 왔을까 배너머재로 오르내리는 길과 합류되는 계곡 입구 삼거리가 나타났다. 대부분의 산객들이 이길을 택하여 배너머재에 오르고 일부는 형제봉으로 일부는 동악산으로 오르게 된다. 한떼의 인파가 몰려 내려오고 있었다. 경상도지역에서 단체 관광객이 왔는지 유난히도 큰 목소리의 경상도 사투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이제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만 남아있다. 인파에 휩싸여 내려가고 있다. 단체객들이지만 남,녀, 노,소가 섞여있다. 아마도 보기에 시장상인의 집단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가 큰소리로 말한다. "겨울은 추워야 겨울장사하는 사람들도 먹고 사는긴데..." "갱제도 어려운데 날씨까지 안 도와주니....어떻게 살어..." 아마도 요즈음의 따뜻한 겨울날씨 때문에 장사가 잘 안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어느 비닐하우스를 운영하는 시골농부에게는 난방비가 반으로 줄어서 좋을 것이고, 요즘 뉴스에 나오는 서울 달동네 노인들은 추운 겨울이 밉기만 할 것이다. 이렇듯 우리내 인생사는 정과 반의 연속이다. 이익이 있으면 손해가 있고,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다. 철제다리 몇개를 건너고 계곡길을 따라 내려오는 길가의 널따란 암반위에는 물줄기가 졸졸 흐르고 음각이 뚜렷한 글씨들이 새겨져 있다. 역시 삼남제일의 계곡이라고 할만도 하다. 동악산 남쪽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것으로 동악계곡, 성출계곡과 더불어 아홉구비마다 펼쳐진 반석 위로 맑은 물줄기가 마치 비단을 펼쳐 놓은 듯이 흐르고 수맥이 연중 그치치 않을 뿐만 아니라 노송, 계곡, 폭포들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는 도림사 계곡은 지방 기념물 101호로 지정되어 있다. 주변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반석들이 있어 예부터 풍류객들의 발길이 잦았으며, 이곳 9개의 반석에는 선현들의 문구가 음각되어 있어 그들의 풍류를 엿볼 수 있고 한 아름 반석 위로 흐르는 계곡 물에 몸을 담그는 맛이 색다르다. 청류동계곡이라 부르는 이 계곡의 암반에는 새긴 글자도 무수히 널려 있다. 누군가 이 암반계류의 절경마다 일곡, 이곡하며 구곡까지 새겨 놓았었는데, 더러는 깨지고 더러는 도로확장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도림사 입구 상가 주차장 부근에서 2곡, 4곡, 5곡 등의 곡이름과 청류동(淸流洞), 단심대(丹心臺), 낙락대(樂樂臺) 등의 지명, 樂山玩草 吟風弄月(요산완초 음풍농월)이니 淸流水石 動樂風景(청류수석 동악풍경)이니 하는 싯구, 그리고 아무개 장구처라 하며 자기 이름이나 호를 새긴 크고 작은 각자들을 마치 설악산 비선대나 두타산 무릉계에서처럼 발견할 수 있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길가 계단위의 사찰 입구에는 허백련 화백이 쓴 「도림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도림사는 신라 무열왕 7년(660)에 원효대사가 화엄사로부터 이주하여 지었다고 전해지며 현재는 응진당, 지장전, 칠성각, 요사채 등이 있고, 도선국사, 사명대사, 서산대사 등 도인이 숲같이 많이 모여들었다 하여 도림사라 하였다 하며, 1984년 지방문화재자료 22호로 지정되었고, 사찰내에는 도 유형문화재 119호 괘불(掛佛)이 소장되어 있다.
도림사 옆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상가지구와 주차장이 나왔다. 계곡의 끝은 어디인가... 커다란 암반계곡은 끝없이 펼쳐지고 계곡을 따라 아스팔트 포장길은 계속연결되어 60번 지방도와 연결된다. 상가지구에서 약 1km를 지나면 집단시설지구가 나타난다. 오늘의 등산도 여기에서 마무리된다.(15:20) 2004년도 마지막 마무리 산행도 성공적으로 끝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마음은 한층 가볍다. (동광주 인터체인지에서 도림사까지는 약 42km 거리였다.) - 우리 전남 소방인과 가정에 언제나 건강과 행운이 충만하여 얼마남지 않은 금년 한해도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다가오는 을유년 새해에도 풍성한 결실속에 복된 한해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