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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차 실기시험문제를 생각나는데로 자세히 기술하시고 어떻게 풀었는지 (건축과는 1차 언어 영어 수학 난위도라던가 후배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등등 ) 자세히 기술바랍니다
1차 시험 당시, 실기시간이 되자 책상을 둥그런 대형으로 만들게 했습니다. 모델이나 함께 보는 정물이 들어 올 거라 생각했고 짙은 천과 흰 아그리파가 놓여 졌습니다. 멋진 가죽바지를 입으신 분이 망치를 들고 들어오셔서 석고상을 산산조각 내었습니다. 교수님 설명이 따로 있을 것이라 하여 우리 실기시험실 전원은 그림을 그리지 않고 30분 남짓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조금 길어지는 듯 했지만 제각기 구상을 했고 시간이 지나자 결국은 설명 없이 시작되었습니다.
재료는 B연필, 3절지, 함께 쓰는 연필깎기 등이었고 깍지, 지우개 등의 배분 외 물품은 사용금지였습니다. 연필은 2자루에서 많게는 3자루까지 사용가능했습니다.
저는 취약점이 기초소묘, 입시소묘라고 생각했고 처음 아그리파가 들어왔을 땐 걱정이 들었지만 깨어지는 것은 보고 그대로 그리지 않아야겠단 결정을 했습니다. 여러 개의 에스키스가 나왔고 생각을 거듭하여 형태도, 내용도 변형하여 의미를 띄는 쪽으로 그려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시험 땐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통념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긴장, 압박, 고민 속에서 그려본 적 없는 것을 그리는 시도를 한 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딴 생각이 들어 집중이 흐려질 때면 그림에 눈을 돌리려 노력하고 그 생각마저 그림과 연결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리는 내 걱정은 해본 적 없는 것에 대한 완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 깨어진 석고조각의 모습이 흩어져도 알아볼 수 있는 흔적을 가지는 것을 보고 부분 부분을 묘사하였습니다. 부숴 져도 연결되는 일체의 단상을 떠올리며 그 조각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형상을 띄게 하였습니다. 바닥과 석고와의 흑백대비를 주려 노력하였으나 전체적으로는 안개 낀 듯 뿌옇게 보이기도 합니다. 석고의 조각들을 전체적으로 섬 형상을 띄게 하여 풀숲과 나무 세 그루를 그려 넣었습니다. 이는 깨어지면서도 유기적인, 떨어져도 형상을 잃지 않는 석고의 기묘한 일체성이 섬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파편들을 섬 주변의 작은 돌섬으로, 섬이 떠 있는 물엔 흐릿한 모습이 비치는 그림자를 그려 넣었습니다.
큰 실루엣 역시 섬의 의미와 연결 지어 외로움을 표현하였고 소묘의 진하기가 약하여 마지막까지 앞쪽의 것들을 올리고 묘사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마지막나무를 그려 넣을 땐 빈 가지였는데 의미와 형태에 있어 긍정성과 통일성을 주기 위해 풍성한 이파리를 더했습니다. 혹여나 시험관이 의미에 있어 너무 가식적이고 이상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냐하는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닐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려 넣었어야 했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옆에서 그려내는 진하고 화려한 그림들에 위축되기도 했지만 감독관이 걷어가는 순간까지 연필을 움직였습니다. 덜한 것 같고 미완성인 느낌에 찜찜하기도 했지만 후회와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끝났다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걷는 당시 한 시험생의 그림이 독특하고 눈에 들어와 저를 포함한 여럿이 주목했던 것입니다. B로 낼 수 있는 가장 강한 색감으로 3분의 2쯤 채워진 바닥에 작고 단순하게 그려진 하얀 석고조각이 그려진 그림이었는데 많이 인상 깊고 아직까지 그 추이가 궁금합니다.
또 한 가지, 한 시간 가량을 남겨두고 내년에 다시 오겠다며 낙담한 학생이 있었는데 소심한 위로를 건넸지만 일찍 퇴실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남은 시간을 더 하였다면 좋았겠다는 오지랖 섞인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안도와 약간의 허무를 느끼며 남은 걱정을 안고 1차 시험을 종료하였습니다.
2. 2차 실기시험문제를 생각나는데로 자세히 기술하시고 어떻게 풀었는지 자세히 서술하사기 바랍니다. 어떤 쪽에 중점을 두고 만들었는지 등등 ( 건축과는 작문과 실기시험을 어떻게 봤는지 등등)
1차에 비해 2차는 좀 더 마음을 비울 수 있었습니다.
우선 장소가 극장이었기에 영상관련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험환경은 많은 배려로 이루어진 것 같았습니다. 비닐이 바닥 전체에 깔리고 4인 1조 형식으로 모아진 책상엔 화판으로 된 칸막이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4개의 책상들은 크게 두리번거려 보려는 의도가 없다면 신경 쓰이지 않는 거리로 본인의 집중력에 따라 작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료는 길고 얇은 나무막대 여러 개, 스카치 테이프2개, 평범한 커터칼, 정사각형의 스펀지, 노란고무줄 한 봉지, 2절크기정도의 한지 혹은 습자지, 둥글게 말린 은색 철사였습니다. 막대를 제외한 재료들은 지퍼백에 들어있었지만 함께 들어있는 연필과 지우개는 제공된 4절지와 함께 만들기엔 쓰이지 않았습니다.
문제지가 주어진 후 두 개의 짧은 영상을 10회 정도 반복하여 보여주곤 잠깐의 질문시간을 가졌습니다. 첫 번째 영상은 아주 복잡하게 얽힌 복도를 한 남자가 큰 상자를 들고 아슬아슬하게 뛰며 사고가 날 것 같았는데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두 번째 영상은 조용하고 멋드러진 동틀 무렵, 한적한 도로를 달리던 차가 슥 지나갈 것 같더니 장난감처럼 전복되어 데굴데굴 굴러 튕겨져 나가는, 큰 사고현장을 담은 내용이었고 두 영상은 영화 속의 여느 부분을 가져온 듯 했습니다.
저는 영상이 시사하는 바가 1차시험과 연결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결론의 ‘의외성’과 다른 듯하면서도 밀접히 연관된 두 영상의 ‘연결성’이었습니다.
당시 1차시험 이후 건강문제로 2차 모의시험을 치루지 못했고 이전에 치룬 두 번의 시험역시 낮거나 어중간한 완성도를 낸 상태였습니다. 이를 떠올리지 않으려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들었던 컬투의 라디오나 작년에 비교적 완성도 있었던 2차시험작을 생각하며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배운 나무젓가락손질법으로 옆 친구의 커터칼 톱질을 안타까워하며 나무막대로 뼈대를 만들고 우선 첫 영상의 복잡한 공간을 표현하였습니다. 네모 창틀이 순차적으로 이어지고 그 틀엔 남자가 나오는 컷을 표현한 습자지를 붙였습니다. 착안은 전통 문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위에는 스펀지와 고무줄로 만든 자동차를 철사에 끼워 사고의 움직임을 나타내고 나무막대로 만든 조형물과 연결시켰습니다.
중간 배가 고팠지만 어디선가 나는 김밥냄새를 제외하곤 밥을 먹는 이가 없어 학교 앞에서 사온 빵을 간단하게 먹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귤 등의 간식을 먹으며 작업했습니다.
급히 만든 나머지 슬쩍 주변을 보니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았고, 크고 추상적인 작업물들에 제 것이 유아적인 인상을 준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한 시간 반 가량을 남겨두고 주어진 4절지에 작업물 드로잉과 설명을 썼습니다. 얼핏 본 학원 디자인반 시험작을 생각하며 레이아웃에도 신경 쓰려 하였습니다. 종료가 가까워오며 10여분 정도가 남아 최대한 꼼꼼하려 영상 끝 무렵에 보았던 글자를 표현하였지만 그 퀄리티가 오히려 괜히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잠깐의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완성된 모습은 망치진 않았지만 뛰어나지 않았기에 무념무상의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나오며 둘러 본 작업물들 중에 눈에 들어오는 몇몇 시험작들이 단계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게 해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여담으로 붙여놓은 시계를 두고 오는 바람에 되돌아가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있었습니다. 징한 인연이라고도 마지막 걸음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하며 돌아왔습니다.
3. 면접 당일 표정 이라던가 면접장 들어가서의 자세한 질문사항과 대답은 어떻게 했는지 포트폴리오 면접은 어떻게 봤는지 ........ 교수님은 몇 분 오셨는지 등등 자세히 기술
면접 당일 평소와 달리 최대한 차려 입고 급히 집을 나서던 중 손에 들고 있던 작지 않은 크기의 거울이 떨어져 깨졌습니다. 종교가 있어 큰 영향을 받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남아 있습니다. 면접 3일째 1번이었는데 들고 갈 수 있는 포트폴리오는 모두 챙겨갔습니다. 막상 대기 장소에 가니 단촐히 들고 온 이들이 많아 주춤하며 보관상태가 좋지 않던 한 작품과 습작 몇 장을 뺀 것은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양으로 밀어 붙일 필요는 없지만 준비하여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여주는 것인 좋았을 것 같습니다.
대기 장소에서 2차 시험작을 A4용지에 간단히 스케치 했습니다. 그림은 포트폴리오 비닐에서 모두 빼내어 면접장으로 들어갑니다. 면접 도우미 분들과 포트폴리오(평면작업, 입체물)를 바닥에 늘어놓고 중앙 멀찌감치 놓인 의자에 앉습니다. 책상이 있지만 용도는 손을 올려놓는 정도입니다. 1차 시험작, 2차 시험작 스케치, 포트폴리오를 함께 봅니다. 그림 중 2장 연작이 있었는데 스스로 순서를 교정하여 놓지 않으면 그냥 늘어진 상태에서 면접을 치르게 됩니다. 질문은 급작스럽게 시작되었습니다. 인사부터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둘러 인사하니 여기저기 유쾌한 느낌의 웃음소리도 들렸습니다. 첫 번이라 그런지 시작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교수님은 열 분이 넘게 계신 느낌이었고 긴장한 탓에 제대로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안규철 교수님 팬이었지만 제대로 뵙지 못하여 아쉬웠고 개인적으로 면접 내 좋은 인상을 받은 성함은 모르는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주로 그림에 대한 이야기였고 설명을 부탁하셨습니다. 여기저기 질문이 툭툭 떨어지는 형식이었고 침착하게 생각한 바를 말씀드리면 되는데 머리가 복잡해지며 겉핥기식의 대답만 하기도 했습니다. 전날 학원에서 지적받은 사항의 동시수용이 헷갈리게 느껴지더니 면접 때 여실히 드러나 아쉬웠습니다. 배경이 그려진 몇몇 그림의 공간설명을 부탁하셨는데 관념적 설명을 하였고 한 그림의 질문에는 전체 그림 이야기를 하며 문답소통에 어려움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나름대로 그림의 통일성을 생각하여 낫겠다 싶어 원근을 생각지 않고 급한 모양으로 그려낸 반복적 패턴의 그림이 있었는데, 오히려 통일성을 지적당하고는 말귀가 어두워 다른 대답을 열심히 하였다가 답이 안타깝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평면 작업에 질문량이 많았고 그림에 전체적으로 일관성은 있지만 조금 어둡다는 평엔 많이 밝아지고 있다 답하여 웃음으로 답해주셨습니다. 입체물 설명 시 다행히 생각한 바를 전할 수 있던 작업물이 있었는데 어디서 사온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밝게 유지하려던 표정이 그만 정색을 하고 말았습니다. 애착이 컸던 두 입체물을 제외하곤 다른 작업은 관심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1차시험이 늦게 시작된 반이 아니냐고 질문도 하셨는데 저는 구상하는 시간이 되어 큰 무리가 되진 않았다고 답하였습니다. 2차 스케치 설명을 부탁하셨는데 버벅거린 기억이 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자기소개서를 구석구석 읽으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여러 질문 중 일부는 제대로 답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그림에 대한 열의와 생각을 물어보셨고 소개서 속 맞춤법 지적이나 나이, 작업방향등에 관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대답으로는 ‘다른 일을 많이 해보았지만 그림을 그릴 때 느껴지는 손끝의 희열, 그 느낌은 다른 직업군, 음악가던 수학자이던 모두 같을 것이라고, 그래서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 하였습니다. 다소 예를 들 때에 직접적으로 언급한 설거지, 서빙 등의 단어는 불필요한 말이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또 나이에 관해 아직은 어리지만, 그렇다고 적진 않은 나이이기에 이 정도의 그림을 쌓아온 것이라 생각하며 더욱 많이 배우고 싶다고도 답하였습니다. 두 답엔 수긍해주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시금 소개서에 한 줄 정도 짤막하게 쓰인 환경을 언급하며 면접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나올 때 ‘다음에 또 뵐게요’라는 인사는 시험이 종료되고 발표 전까지 저를 간지른 기억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론 2차와 같이 망치진 않았지만 실수한 기억들과 안도감이 버무려진 기분이었습니다.
면접을 마치며 감히 제 생각으로는 저에게서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보고 100%로 끌어올려진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문서상으로 확인이 되면서도 이것을 쓰는 지금까지 실감이 들쑥날쑥합니다. 그러한 작은 생각을 하며 손끝 떨린 기억도 있습니다. 결과는 받아들여지는 것이기에 복잡한 심경속에서 기쁨을 맞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지금 역시 면접 때 보여주지 못한 부분을 되새김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한번 뿐인 면접이라는 것을 직시하여 질문을 침착히 듣고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의 결과는 본인이 가장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여의치 못한 상황속에서 혹자는 바램을 말하거나 다른 이는 가방을 싸는 상상속 시도만으로도 해소를 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결정적인 행동인 것처럼 말입니다. 앞서 보여주지 않으면 우물쭈물 하는 것은 아쉬움만을 남기며, 자기기준선에서 제자리에 있었다고 외쳐봐야 아무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주관과 수용의 확실함이 제겐 큰 모자람으로 남았던 것 같습니다.
4.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썼는지
제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부분을 자기소개서에 옮기려 노력하였지만 시간관계상 작년에 길게 써두고 쓰지 못한 것을 토대로 하였습니다. 우선 제가 자라온 환경과 겪어온 일들을 적고 어떻게 그림을 하게 되었고, 얼마나 그림을 하고 싶은지를 구구절절 적었습니다. 지적받은 사항인 감성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최대한 설명하였습니다. 작년에 처음 썼던 소개서는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단점을 삭제시킨 반면, 다시 쓰게 된 소개서는 수정을 가하여 ‘나는 이런 환경에서 자랐고 이런 단점도 있다. 하지만 그림을 제일 좋아한다. 정말 그리고 싶다.’식의 내용을 적었습니다. 학원에선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하는 지적도 있었지만 크게 손대어 고치진 않았습니다. 학과 수업이나 진로에 관해 많이 알아보고, 생각도 하여 성의 있게 적으려 노력하였습니다. 책은 어렵지 않은, 기억에 남은 것을 적었습니다. 마지막 말로는 ‘학교가 내 그림의 전부는 아니지만 나는 준비가 되어있고 뽑아주시면 잘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실제 생각하던 것들을 적고 상세하고 솔직하려 노력했습니다.
5. 학원에 와서 수업하면서 어떤 점이 좋았다 그리고 내년도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에게 당부의 말
좋았던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자기반성적, 자아성찰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또 무엇보다 끈기와 정과, 함께 그리는 그림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내년 학생들에게 제가 감히 당부를 드려 한마디 적고 싶은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