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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적멸보궁 참배 순방기 (4-8)
설악산이 얼마나 깊은 산세인지는 산속을 오르는 어느 순간부터 매미소리와 새소리가 뚝 그치
고는 들리지 않는다고 종식이가 설명을 해주었다.
근데 또 어느 분이 금강산의 규모는 설악산의 10배요, 중국의 황산은 금강산의 100배라고 하니
도저히 상상이 안되네. 황산 한 번 가자... >.<
여기 전망대에서 잠시 다람쥐와 놀면서 다람쥐 삼매경에 빠져있는 사이에 아뿔사 비가 부슬 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봉정암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이다 보니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면서
서둘러 출발 차비를 차리고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3시간 30분 정도 걸린거 같은데 그다지 힘들지 아니하였기에 걱정은 한보따리에서
반보따리로 줄어 든 상태였는데 사실은 지금부터가 행복 끝 고생 시작이었다.
부지런히 올라가고 있는데 갈수록 빗줄기는 굵어지고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우선 급한대로
배낭은 방수카버를 씌웠지만 비옷은 입기가 싫었다.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은 알리라.. 비오는 날 야간 경계근무를 서보면 비를 맞지않는건 둘째 치고
라도 판쵸우의 속이 얼마나 갑갑하고 무덥고 후덥지근한지..
더구나 올라갈수록 경사는 점차 가파르지고 숨은 턱을 넘어 오기 직전이니 비옷을 입는걸 포기
하고 계속 올라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것은 시원한 비가 내리면서 땀이랑 힘든 부분을 시원하게 싸악 씻어주는
덕분에 계속 올라 갈 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었다.
한참 가다보니 깔닥고개라고 하던가 저 고개만 넘어서면 봉정암이라기에 마지막 피치를 내고
오르기 시작했다.
종식이와 같이 가고 싶었지만 내코가 석자라 우선은 고개에 올라가서 기다릴 속셈으로 앞서
가고 있는데 이게 웬일.....
갑자기 오른쪽 다리에 쥐가 나는게 아닌가...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10.5㎞ 인데 이정도 거리는 집에서 백양산 정상까지 갔다오면 13㎞ 정도
되는데 몇 번을 갔다와도 발에 쥐가 난 적이 없었는데 이게 웬일이여...
순간 걱정이 앞선다.
급한대로 길옆의 바위에 앉아 발가락을 앞쪽으로 제끼면서 종아리를 살살 주물렀다.
다행히 마비가 조금 풀리는거 같기에 다시 비를 맞으며 오르기 시작했다.
근데 조금 올라가니 또 오른쪽 종아리에 마비가 오는게 아닌가..
미칠 지경이었다.
다시 바위에 앉아 종아리를 만지며 앉아있으니 종식이 부부가 올라 오는게 보였다.
두 사람 역시 힘겹기는 똑같은거 같았다.
얘기하면 괜히 걱정만 시킬거 같아 가까이 오길래 다시 일어나 한 걸음 한 걸음 무거운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 덧 고개 끝 이였다.
먼저와 쉬고 있던 분들이 수고 하셨다며 이제 다 왔다길래 그런 줄 알았더니 고개에서 조금 더
올라 가야 되는데 그 조금의 길도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그분들은 좋은 뜻에서 말씀해 준것
인데도 나의 마음은 세상에 믿을 사람 정말 없구나 다왔다더니 왜 봉정암이 안보이는거야..
궁시렁 궁시렁 ㅡ.ㅡ..
계속되는 비에 몸은 천근이요 그러다 보니 내마음도 그만큼 많이 황폐해져 있었나 보았다.
그런데 저만치 계단위에 불자 한분이 우산을 받쳐들고 서 있는게 보였다.
다왔나보다 싶어서 힘겹게 계단에 올라서니 서있던 불자분이
“수고하셨습니다..이제 다 왔습니다.” 하는게 아닌가...
푸하하하핫!!!!!
정말 이런 맛에 산행을 하기는 하지만 유달리 이번 봉정산행은 힘든거 같았다.
초행인 봉정암 산행 중 가장 힘든 구간에 때마침 시원한 비가 내리지 않고 햇볕이 쨍쨍했다면 과연
올라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힘든 나를 위해 부처님이 시원한 비를 내려주신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종식이와 같이 배정된 방에 가보니
ㅎㅎㅎㅎㅎㅎㅎㅎ(처음에는 웃음 밖에 안나옴)
중간에 20㎝의 여분을 경계로 줄이 그어져 있는데 그 줄을 경계로 좌우로 정확히
가로 40㎝ 남짓, 세로 1M 40㎝ 남짓 선이 그어져 있었다. 아마도 그어놓은 선안이 대충 한사람씩
잘 수 있도록 되어 있는것 같았다.
그어진 칸이 22칸이니 그 작은방에 22명이 잠을 잔다는 이바구 >..<
집 떠나면 고생인줄은 알았고 또한 종식이로부터 개략적인 얘기는 들었지만 이정도 일줄은 몰랐
었다. 비교적 체구가 작은편인 내가 누워 다리를 세워도 여분의 중간선을 침범함은 물론이요 양쪽
어깨도 선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즉 소위 말하는 칼잠을 자야 한다는거였다.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정말 많은 사람이 올 때는 오늘 주어진 방에 50여명이 배정 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눕는건 고사하고 앉아서 졸거나 법당에서 밤새 기도를 한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칼잠이라도 잘수 있는 우리는 행복한거라나 뭐라나..^^*
어찌되었든 비에 젖은 옷을 홀라당 벗고 새 옷으로 갈아 입고(따로 갈아있는데도 없음. 낫살이나
먹은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훌러덩 훌러덩) ^^*
어찌 잘거나하는 고민을 뒤로하고 저녁 공양을 하러 종식이와 함께 갔다.
미역국 한 그릇에 한 주걱의 밥을 말아주고 양념오이 6조각을 넣어주는 한 그릇의 따뜻한 공양이
비를 맞은 싸늘한 몸속으로 들어가자 행복한 감정이 절로 생기는건 뭔일인지.
역시 인간은 환경의 동물인가.........
숙소로 돌아와 씻을 여유도 없이 앉아 쉬고 있는데 숙소의 분위기가 쎄한거 같아서 분위기를 보니
일행중 한명이 도저히 여기서는 못자겠다고 용대리로 내려 가겠다는거였다.
그 사람을 소개해서 데려온 일행도 어지간하면 이틀만 고생하면 되니 그냥 같이 지내자고 해도 기
어이 내려간다고 하는것이였다.
그 사람도 나처럼 정식 불자는 아니고 불자의 소개로 온거 같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말은 못하고
속으로는 집에가면 귀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나..
오랜 기간도 아니고 오늘과 내일만 고생하면 되는데 어두워지는 설악산을 내려 간다니 그냥 참고
지내지 하는 분위기 인데도 굳이 내려 가겠다면서 내려갈 준비를 하는거였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유부장이 그럼 자기와 같이 내려가자면서 인수인계를 해야하니 잠시만 기다
리라고 하니 이보다 더한 훈련도 받은적이 있다며 혼자 내려가겠다고 우기고 있다.
책임자의 입장에서 비는 내려 미끄럽기도 하고 곧 어두워 질텐데 혼자는 절대 못보내니 후임자에
게 간단히 인게하고 올테니 기다리라고 하고 자리를 잠시 비운사이 그 사람은 기어이 혼자 내려가
고 말았다.
가자마자 여기 저기서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나 또한 그들의 불만소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또 한가지를 배우고 있었다.
유부장이 곧이어 출발했지만 백담사에 도착할때까지 그 사람을 따라 잡지 못했다고 한다.
유부장의 산행 실력은 몇 번 보기도 봤지만 종식이의 말을 빌리면 히말라야인지 에베레스트인지
그런 고봉도 등반한 실력파라고 한다.
유부장이 내려가는 도중에 봉정암으로 올라오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먼저 내려간 사람이 잘 내
려가고 있으니 괜히 고생하지 말고 다시 올라가라고 여러번 유부장에게 이야기를 하더라는 거였
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계속 내려간 유부장은 결국 백담사에서도 못만나고 백담사에 도착해서 용대
리에 있는 버스 기사에게 전화를 해서 차를 한 대 수배(이미 백담사와 용대리간 서틀버스는 끊긴
상태)해서 백담사로 바로 보내라고 한후 먼저 내려간 그 사람에게 연락해서 차가 곧 오니 같이 타
고 가도록 하자고 연락을 하였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백담사에서 용대리로 걸어가고 있는 그 사람을 만나 차를 같이 타고 가면서 제법 많
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어보니 그 사람은 유부장에게 비록 따로 따로 내려왔지만 정말 고맙다고 말
하면서 자기가 내려와야만 했던 이유를 이야기 하더라는 것이였다.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봉정암의 숙소 환경과 관련된 아픈 과거가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이기에 자세한 이야기를 할수는 없지만 우리들은 눈에 보이는 사실이 전부
다는 아니다는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흔히 눈에 보이는것이 전부 다 인양 치부하고는 다수가 소수
를 매도하는 우를 자주 범하지 않던가...
다음날 봉정암을 내려와서 이 이야기를 듣고는 나 또한 전체 분위기를 해치는 건 아니다라고 생각
했던 한 사람중의 일인이었기에 정말 부끄러웠다.
누가 우생(愚生)이 아니라고 할까봐....언제 쯤 이 경지를 넘어설까나.. 에고 ...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더더욱 부끄러운거였다.
언제인가 복잡한 서면지하철역에서 경수엄마와 지하철을 타려고 지하철 표를 끊는데 한 장이 나
오고 두 번째 승차권(3급이상 장애인은 보호자 표까지 2장이 가능)이 나오지 않는거였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지 두 번째로 복지카드를 대는데 뒤에서 누가 소리를 치는거였다.
“아, 그기 한 장밖에 안나와요...사람들도 기다리고 있는데 비켜주세요”
주위 사람도 한 장 밖에 안나오는데 하면서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나름대로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미안한 맘이 있는데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니 미
안한 마음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기계의 멍청함에 대한 짜증과 왜 하필 경수엄마에게 이런 병이 와
서 여러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가 하는 아픔과 남을 배려 할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섭섭함이 짧
은 순간에 어우러져 머리는 뚜껑이 열리기 직전이고 소리친 그 사람을 바로 보면서 한 소리 할려고
하는데 마침 그 때 승차권이 나오는거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갑자기 조용해지며 소리 친 사람의 눈이 휘둥그래 지는것이였다.
그 사람들은 가까운 가족 중에 장애인이 없으니 알 수가 없었을 터 하지만 요즘 사회가 너무 자신
들만 생각하는 섭섭한 마음에 승차권을 꺼내고는
“배려 좀 하고 삽시다!”
하고는 줄을 나오니 경수엄마가 옆에서 혹시 싸움이라도 하는가 싶어서 큰 눈을 더 크게 뜨고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목적지로 가면서 경수엄마에게 부지런히 운동해서 이런일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남의 사정을 배려하고 이해할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은 만나기 어려우니 우리자신이 남의
배려가 필요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더욱 더 열심히 운동을 하자고 이야기를 한 기억이 있다.
직접 경험한 나이기에 더욱 떠난 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그 사람은 용대리에서 그 날 밤에 속초로 넘어갔다고 한다.
그 사람도 눈치는 있으니 남아있던 사람들이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지는 대략은 짐작할 터 다들 이
해를 했으니 오늘 있었던 일은 훌훌 다 털어버리고 부디 속초에 가시거든 좋은 곳 구경 많이 하시
고 좋은 기분으로 귀가하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분위기가 좀 이상해진거 같은데 다시 봉정암으로 돌아와서........
모두들 여기저기서 쓰러져 그냥 잔다.
종식이도 피곤했는데 누워있더니만 바로 코를 골고 잔다.
아! 잠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여기 저기서 들리는 천둥소리가 더 큰 문제였다.
ㅜ.ㅜ !@#$%^&* Oh! My God!!!!!!!
시간은 이제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기에 피곤한 몸을 어떡하든지 조금이라도 자 볼려고 칼
잠으로 누어보니 코고는 소리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기도하는 법당에 갈려고 해도 비만 안오면 밖에서도 할 수 있지만 비가 오니 여보살들이 모두 빽빽
하게 법당을 차지한 관계로 남자들은 모두들 숙소에 있는 상황인데 그 와중에도 코 골고 자는 사람
과 나처럼 잠을 자 볼려고 누워있는 사람, 한 숨을 쉬면서 앉아있는 사람, 못 참고는 비가 오는 밖
으로 나가는 사람.......
고행이 따로 있는게 아니고 바로 이런게 고(苦)이며 인생 자체가 고(苦)인것을...
집 떠나봐야 집 좋은 줄 알어!!! 이것들아!!!!
끝까지 한 번 자볼려고 누워 있는데 슬핏 잠이 들었다가 코고는 소리에 다시 깨고 다시 슬핏 잠들
었다가 세워놓은 다리가 나도 모르게 펴지면서 다른 사람의 발과 부딪치면서 다시 깨고를 반복하
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일어나 보니 시계는 새벽 1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자켓과 담배를 챙겨서 밖으로 나와보니 몇사람은 나와서 처마 밑에 앉아서 조는 사람도 있고 구석
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기에 나도 슬그머니 동참해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는 법당으로
가보았다.
(새벽 1시에 피우는 담배 한 대의 기쁨^^*)
군데 군데 빈곳이 있길래 가서 앉아서 스님들의 경전 읽는 소리를 듣다가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니 다리가 또 저려서 일어나서 나와서 하늘을 보니 아직도 비는 부슬 부슬 내리고 있었다.
새벽 2시가 다되어 숙소로 가니 종식이가 일어나서 기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종식이가 나가고 난 뒤에야 종식이 자리까지 차지해서 행복한 맘으로 편하게 2시간 남짓 숙면을
취할 수가 있었다.(역시 친구는 좋은거야... 고마운 친구)
두런 두런 소리에 잠이 깨어 일어나보니 시간은 새벽 5시가 채 안되었는데 전등은 켜져 있고 반 정
도는 일어나 있고 반 정도는 자고 있는 중이었다.
참배 일정에 따르면 06:00시 공양 후 바로 백담사로 출발해야 하니 오늘은 봉정암에 사람들이 많으
니 05:30분에 모든 출발 준비를 끝낸 후 배낭을 가지고 공양간에 가서 기다렸다가 06:00시 공양 후
바로 출발하자는 얘기였다.
얼른 일어나서 어젯밤 비에 젖어 늘어놓았던 옷가지들을 챙겨 배낭에 넣고 옆자리를 보니 종식이
는 배낭정리를 끝내고 기도하러 갔는지 정리가 다되어있고 아직도 오지 않는 걸 보니 기도 중 인것
같았다.
기도를 마친 종식이가 왔기에 05:30분에 공양간으로 가니 우리보다 더 빠른 사람도 있었다.
아침공양은 어제와 동일 미역국에 말은 밥으로 한 그릇 뚝딱하고는 저녁에 못가본 사리탑에 태준
이 엄마가 같이 가보자고 한다.
봉정암에 오기 전 천원권을 못 바꾸어 가지고 있던 5천원 짜리를 봉정암에 작은 정성이라도 보시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어디에서 흘렸는지 없어져 버려서 죄송하게도 작은 정성도 보이지
못하고 부처님 사리탑에 예만 표하고는 태준이 엄마와 같이 내려왔다.
혹시라도 내가 보시를 잊어실까보아 부처님게서 미리 가져 가신건가 하는 우매한 생각은 나만의
생각인가 ㅡ.ㅡ..
사리탑에서 보면 우측은 용화장성이고 좌측은 공룡능선이라는데 안개가 뿌옇게 있어 선명하지는
않지만 한 폭의 동양화 처럼 보였다.
친구들 보여 줄 욕심에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오호! 통재라! 봉정암에서 찍은 모든 사진은 헛수고였으니...
멍청하게도 어찌하다가 잘못 눌러져서 사진을 전부 동영상으로 찍은것이였다.
캡처라도 해볼려고 집에와서 컴을 잘 만지는 작은 아들에게 한번 실력 발휘를 해 보라고 하니 캡쳐
는 되는데 화질이 영...아니 올시다. ㅜ.ㅜ
근데 이상한 건 또 백담사에 도착해서 찍은 사진들은 또 바르게 찍혀있으니 이건 뭔 일인지... >.<
아무래도 부처님이 봉정암에 다시 오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인가....
내려오니 모두 줄을 서서 인원점검과 함께 내려가는 계획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눠주는 주먹밥을 챙기고는 하산을 시작하였다.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워낙 고지대라 배낭은 방
수 카버를 씌우고 비옷은 호주머니에 챙겨 아쉽지만 봉정암을 뒤로하고 ......
하산하면서 계곡에 발도 담그고 주먹밥과 간식을 먹으면서 아름다운 풍경들을 눈에 꼭꼭 담으며
백담사로 내려왔다.
설악산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백담사에 도착했다. 몇 번이나 이미 봤을터인데도 초행인 나를 위해
서 종식이가 백담사로 들어가서 안내를 한다. ^^*
그리고 이상하게 여기서부터 찍은 사진은 또 동영상 촬영이 아닌 제대로 사진으로 찍혔다.
뭔 놈의 조화인지!!!
아무래도 부처님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필히 봉정암에 한 번은 더 오라는 계시처럼 느껴 지는건 나만의 생각인가....>.<
부처님!!
아무쪼록 다음에 올 때는 경수엄마와 함께 올 수 있도록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이제~가면 ~~~ 언제~ 오나~~
가까워 지자 아쉬움에 발을 담그고 도란 도란...
“니 내 좋나? 나도 니 좋다........!@#$%^&*”
백담사 도착 직전 마지막 계곡에 발 담그고.....
(식아 또 묵나 마이 묵었다 아이가!!!!!)
백담사 전경
백담사 입구 다리(백담교)
백담사 잠수교에서 본 백담계곡
백담사에서 잠수교를 통하여 백담사로 들어오는 일행
(맨 우측 분은 금정산 지킴이로 금정산 북문에서 금정산장을 운영 하시는 분 )
백담사 내 전경(튼실한 엉덩이와 종아리를 가진 자 누구인고?)
백담사 내부 전경
백담사 내부 전경(전두환 전 대통령이 거주하던 숙소)
백담사에서 본 백담교 전경
단풍이 살짝 들어가는 모습.. 이제 여름도 곧 가겠지...
(태준이 엄마가 꼭 경수엄마 보여주라고 하길래....나는 찍었을 뿐이고....)
5-8 Coming Soon !!
첫댓글 이제는 어느 산에도 갈 수 있겠네...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