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방 선원서 '사자새끼' 많이 나오길....'
2547년 동안거 결재 / 원로의원 성수스님
겨울이 코앞까지 달려왔다. 봄과 여름이 번갯불처럼 지나가고 가을마저 낙엽을 떨어뜨리며 작별인사를 한다.
논과 밭은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무엇 하나 이룬 게 없구나”라는 허전함이 뼈속깊이 다가오는 계절이다. 이럴 때 맞이하는 동안거 결제는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곧추 세울 수 있는 마지막 비상구이다. 겨울안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평생양식’을 얻게 될 것이다. 길을 모른 채 공부만 할 수는 없다.
바른 공부는 무엇이며 정진의 길인지를 묻기 위해 산청 해동선원에 주석중인 성수(性壽)스님을 친견했다. 올해 여든한살인 성수스님은 “기왕 공부를 하려면 목숨을 걸고 제대로 해야 한다”면서 지혜의 보검을 선보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결제철이 돌아왔습니다. 화두를 들고 정진하겠다는 원력을 세운 수행자들에게 한 말씀 주시지요.
“수행자에게 결제 해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제대중이 되려면 ‘생사자재법을 깨닫겠다’는 발심(發心)과 ‘기필코 도의 경지를 맛보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겠다’는 분심(忿心)을 일으켜야 합니다.”
결제에 대한 스님의 생각은 확고하고 분명했다. “내가 왜 선을 하는지에 대한 깊고 간절한 의심을 갖지 않으면 목석(木石)보다 못합니다. 생사자재법을 반드시 배우고 깨치겠다는 각오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성수스님은 “도를 구하지 못하면, 부처님이나 어른스님들에게 따지고 항의해야 한다”면서 “부처님 뺨을 한대 쥐어박고, 늙은 중의 목을 베는 각오를 다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저 화두만 들고 앉아 있다고 공부가 되지 않습니다. 하루 이틀에 되지 않으면 사흘, 일주일, 한 달 내에 기필코 경지에 도달하겠다는 원력이 있어야 합니다. 목숨이라도 내놓겠다는 분심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스님의 말씀은 안거에 드는 목적의식을 뚜렷이 하고, 천금같은 시간을 아끼고 쪼개어 정진하라는 경책이다.
- 바르게 공부하는 방법을 일러주시지요.
“스스로 하고 싶어야 공부가 되지, 남이 공부 하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니오. 인연이 있으면 공부하라는 소리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합니다.”
그러나 납자나 불자들이 공부하도록 유도하는 ‘비결’을 성수스님은 갖고 있다. 분심을 일으켜 공부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것이다. 1970년대 한국해양대 교수 부부가 스님을 찾아왔다. 성수스님은 교수에게 “오늘 마누라를 데리고 왔소, 아니면 따라왔소”라고 경책을 했다. 명색이 교수인데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부인을 따라온 것에 대해 일침을 가한 것이다.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미지근한 틀에 박힌 공부 가지고는 좋은 공부하기가 힘들어요.”
공부하는데 절박한 각오가 필수요건이라는 스님의 생각은 스스로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스물세살 청년시절 이야기다. 해인사 방부를 들이기 위해 조실 효봉(曉峰)스님을 찾았다. 두 스님의 대화이다. “너는 무엇하러 왔노” “도를 배우러 왔습니다” “무(無)자가 도(道)니 칠일 내로 해결지어라” “이칠일(십사일)의 기간을 주십시오” “무자도(無字道)를 이칠일 내로 해결하지 못하면 너는 내 주장자에 맞아 죽어도 아무 말 못한다는 서약서에 도장을 찍어라”
조실 요사채를 나와 부처님 앞에 가서 맹세를 다진 성수스님은 마음속으로 7일 이내로 해결하겠다는 원력을 다진 후에 ‘죽기 살기로’ 공부에 매달렸다. 밥 먹을 틈도 없이 밤낮으로 공부에 열중하니 온몸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당시 입승을 보고 있던 서옹스님(현 고불총림 방장)이 만류했지만, 성수스님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고 한다.
결제 대중되려면 목숨 건 분심.발심 있어야…
선지식 멱살이라도 잡고 싸워야 제대로 된 화두
“장부의 기상과 기개가 있어야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성수스님의 뜻이다. 때문에 이번 결제기간에 “도를 놓고 한판 거량을 할 수 있는 ‘사자새끼’가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당부했다. “흐리멍텅한 생각을 지니지 않고, 용기와 지혜가 있는 ‘놈’이 찾아오면 업고 춤을 추겠습니다. 뜻이 통하면 한대 때려도 고맙고 욕을 해도 하나도 밉지 않아요.”
- 제대로 된 화두 공부는 무엇인지요.
“부처에게 속았다고 욕을 바가지로 해야 화두가 제대로 됩니다. (부처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있을 때 거기서 뭐가 나옵니다. 선지식 멱살이라도 잡고 싸워야 합니다. 천하제일의 선지식도 잡아 먹을 수 있는 사자새끼가 돼야 조금이라도 맛을 볼 수 있지, 착한 것만 갖고는 안 됩니다.”
성수스님은 “악업은 참회할 길이 있지만 선업은 참회할 길이 없다”면서 “제대로 공부를 하겠다는 절박한 마음과 각오가 전제되지 않는 공부는 ‘시간 죽이기’일뿐”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스님은 “부처님도 세상만사 모든 것이 다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나서 부처가 되었다”면서 “진실한 인간이 되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정말 제대로 알아야 공부도 되고 도를 구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 공부를 하면 어떤 점이 좋습니까.
“공부를 하면 견성(見性)을 할 수 있습니다. 견성을 하면 정신을 잃지 않게 됩니다. 몸과 정신이 맑아지니, 견성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인간은 천지차이입니다.”
성수스님은 “견성하면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길을 찾는 것’이다”라면서 “견성한 뒤에는 정진을 해야 하고, 그러면 힘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힘이 생기면 걷는 것도, 보는 것도, 앉는 태도도, 피부색깔도 달라집니다. 공부는 말만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맛을 보아야 합니다.”
- 결제에 들어가는 수행자들에 당부의 말씀을 주시지요.
“시작이 반입니다. 선지식과 탁마를 해야 공부가 됩니다. 남도 때리고 나도 맞고 하는 탁마를 통해 상승(相乘)할 수 있습니다. 쇠도 펄펄 끓는 단불에 집어넣으면 나쁜 이물질은 모두 떨어지고 순수한 쇠만 남습니다. 이처럼 사람도 몇 번을 태우고 태워야 합니다.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겨야 도의 맛을 볼 수 있고, 그래야 사는 길과 죽는 길을 알게 됩니다.”
성수스님은 “참선을 꼭 하고 싶거든 알고 해야 하며 시간만 낭비하지 말라”고 간곡하게 당부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따끔한 경책’으로 이번 결제기간에는 전국 각지의 제방선원에서 ‘사자새끼들’이 나오길 기대했다. “선은 진리입니다. 흐리멍텅하면 안 됩니다.”
/ 성수스님은…
1923년 경남 울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1944년 3월 득도한 후 60여 년간 수행정진하고 있다. 1967년 8월 조계종 교무부장과 조계사 주지를 역임했고, 1968년에는 범어사 주지, 1972년에는 해인사 주지 소임을 보았다. 1981년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종단 대소사를 살폈다. 지금은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고견을 전하고 있으며, 법수선원, 황대선원, 해동선원에서 납자와 재가 납자와 재가 불자들을 지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