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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드보카트 감독 옆에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베어벡 신임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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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4강의 환희에 빠져 머뭇거리다가 한없이 추락한 기억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대한축구협회가 계약기간이 만료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후임자를 신속하게 결정했다.
27일 오후 3시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이영무 기술위원장은 아시안컵 등 앞으로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갈 새로운 한국대표팀 감독으로 핌 페르베이크 전 대표팀 코치를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2005년 9월 위기의 축구 대표팀을 구하기 위해 아드보카트 감독을 보좌해 한국에 다시 돌아온 페르베이크 전 수석코치는 2002년 월드컵에서도 히딩크 감독을 보좌해 한국의 4강을 도와 그 기량을 인정받았다.
페르베이크 감독은 지장(智將)
페르베이크 감독은 히딩크 호에서 브레인 역할을 했다. 2002년에 페르베이크가 발굴한 선수로 크게 김남일과 안정환을 꼽을 수 있다. 김남일과 안정환이 독일월드컵 개막전까지 부상과 부진으로 본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는데도 본선에서 크게 활용된 데는 페르베이크 코치의 절대적인 신임이 작용했다.
또 경기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전술을 보고 그 대처방안을 제시하는 데 뛰어나 전술에 취약한 한국대표팀이 좀 더 다양한 전술로 무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한국을 잘 아는 외국인 지도자
페르베이크 코치는 누구보다 한국을 잘 아는 지한파로 통한다. 한국이 위기에 처해있던 2005년 9월 아드보카트 감독이 선임될 수 있었던 것도 월드컵까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선수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페르베이크 당시 수석코치를 동행할 수 있었다는 장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아드보카트 입국 당시 아드보카트 호라는 표현보다 아드보카트-페르베이크 쌍두마차체제로 표현할 만큼 페르베이크 코치의 역할은 컸다. 페르베이크 당시 수석코치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은 2002년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여 2년 가까이 한국선수들과 생활하며 한국대표팀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2002년 경험을 살려 이번 아드보카트 호가 스코틀랜드 전지훈련장소로 이동할 때나 베이스 캠프에서 머물 때 페르베이크 당시 수석 코치는 친한 선수들끼리 짝지어 주는 등 선수들이 가장 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선수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
하지만, 감독경력이 짧다
1981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해온 페르베이크 감독은 네덜란드, 독일, 한국, 일본 등 다양한 곳에서 지도자 생활을 해왔다. 그만큼 한국 대표팀을 이끄는 데 상당한 노하우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페르베이크 감독은 J2리그의 교토 퍼플상가에 감독으로 취임했지만 성적부진으로 중도 사임했고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지만 곧 그만두고 말았다.
감독으로서 뚜렷한 성적이 없는 페르베이크 감독에게 한국 대표팀 감독직은 그가 세계적인 감독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부디 페르베이크 감독이 한국 대표팀을 발판 삼아 세계적인 감독이 되기를 희망한다.(펌글)
축구에서 감독의 역활이 중요하다고 모두가 인정한것이 히딩크,아드보카드
두 감독이우리 대표팀을 지도 한후가 아닌가 합니다.
히딩크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것이고,어벙쩡하게 월드컵을 기다리고 있던 우리 대표팀을 짧은 시간내에 추슬려 독일월드컵에서 이 정도의 성과(1승1무1패)를 낸 아드보카드 감독...
이번 월드컵에서도 수많은 감독들의 명암이 엇갈리게 나오겠지요.
전술과전략에 따라 축구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축구감독.
매력적이지만 그들만의 성취와고통은 선수들이 좌우 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선수를 가지고 감독하는 것도 행복하지만,우리처럼 척박한 풍토에서
결과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형편에서의 감독은 실력외의 알파가 첨부되어
있을 겄입니다.
새로운 베어벡 감독에게 희망을 거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축구 동우회감독은 실력외 술이 50%라고 합니다.
베리타스의 허감독은 과연 몇%인가?
그 비밀을 우리는 알 수가 있을까요.
우리의 허감독은 축구사랑이 순도 100% 아닌가?(글쎄)
술은 술이고
축구는 축구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