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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견성즉불 見性卽佛
견성이 바로 성불이다.
1-1
견성을 하면 즉시에 구경무심경(究竟無心境)이 현전(現前)하여 약과 병이
전부 소멸되고 교(敎)와 관(觀)을 다휴식하느니라.
纔得見性하면 當下에 無心하야 乃藥病이 俱消하고 敎觀을 成息하느니라
『宗鏡錄』1 「標宗章」 (大正藏48,p.419c)
진여혜일(眞如慧日)1의 무한광명은 항상 법계를 조요(照耀)2하고 있지마는, 3세 6추(三細六麤)3의 무명암운(無明暗雲)4이 엄폐(掩蔽)5하여 중생이 이를 보지 못한다. 운소장공(雲消長空)6하면 청천(靑天)이 현로(現露)하여7 백일(白日)8을 보는 것과 같이, 3세(三細)의 극미망념(極微妄念)까지 멸진무여(滅盡無餘)9하면 확철대오하여 진여본성을 통견(洞見)10한다. 이에 일체망념이 단무(斷無)11하므로 이를 무념(無念) 또는 무심(無心)이라 부르나니, 이것이 무여열반(無餘涅槃)12인 묘각(妙覺)13이다.
그러므로 『기신론』에서 “견성은 원리미세(遠離微細)14한 구경각”이라 하였으며,원효(元曉)15 현수(賢首)16도 그들의 『기신론소』17에서 “금강이환(金剛已還)18의 일체중생은 미리무명지념(未離無明之念)19”이라 하고 또한 “불지(佛地)는 무념”이라하였다. 그리하여 금강20 즉 등각(等覺)21 이하의 일체중생은 유념유심(有念有心)이니 등각도 불타의 성교(聖敎)와 법약(法藥)이 필요하며, 약병(藥病)이 구소(俱消)하고 교관(敎觀)을 함식(咸息)22한 무념무심은 무명이 영멸(永滅)하여 자성을 철견(徹見)한 묘각뿐이다.
고인(古人)이 말하기를 “불설일체법(佛說一切法)은 위도일체심(爲度一切心)이라 아무일체심(我無一切心)커니 하수일체법(何須一切法)이리오”23 하였으니,과연 그렇다. 제불의 일체 법문은 군생(群生)의 중병(衆病)24을 치유하기 위한 처방시약(處方施藥)이다. 무병건강한 자에게는 기사회생(起死回生)하는 신방묘약(神方妙藥)도 필요없는 것과 같이,범부심(凡夫心)·외도심(外道心)·현성심(賢聖心)·보살심(普薩心) 등 무량중생의 본병(本病)25인 일체 심념(心念)을 단연(斷然)26 초탈한 구경무심지(究竟無心地)의 대해탈인(大解脫人)에게는 아무리 심현오묘(深玄奧妙)한 불조(佛祖)의 언교(言敎)와 관행(觀行)이라도 소용없다.
그리하여 법약(法藥)과 중병(衆病)이 구소(俱消)하고 성교(聖敎)와 묘관(妙觀)을 함식(咸息)한 구경무심지만이 견성이이니, 이것이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철증(徹證)한 절학무위한도인(絶學無爲閑道人)27의 심경(心境)28이다.
강설
모든 일엔 목표가 있기 마련이다. 불교의 목표는 무엇인가? 불교의 목표는 부처가 되는 성불(成佛)이다.그럼 성불이란 무엇인가? 목표의 실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추구한다면 그것은 맹목적 열정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성불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 성불의 내용을 알아야 한다.성불의 내용에 대한 갖지 말씀이 여러 경론에 다양하게 설해져 있는데 가장 근본이 되는 최초의 설법에서 그 연원을 살펴보자.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무상정각(無上正覺)29을 성취한 뒤에 녹야원(鹿野苑)으로 다섯 비구를 찾아가 맨 처음 하신 말씀은 “나는 중도를 바르게 깨달았다”는 중도 선언이다.마음을 깨달았다느니 불성을 깨달았다느니 하는 그런 표현을 쓰지 않으시고 “나는 중도를 바르게 깨달았다” 고 말씀하셨다.이것이 최초의 법문이다. 스스로 말씀하시길 “중도를 깨달아 부처가 되었다”고 하셨으니 중도가 무엇인지 알면 곧 성불의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중도(中道)란 무엇인가? 양극단에 떨어지지 않는 중도를 설명하는 데도 여러 가지 방식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불생불멸중도(不生不滅中道)이다. 생과 멸을 따르지 않는 우주의 근본이치가 바로 중도이고, 이는 또한 ‘불성(佛性)’, ‘법성(法性)’, ‘자성(自性)’, ‘진여(眞如)’, ‘법계(法界)’, ‘마음’ 등 여러가지로 표현되기도 한다. 따라서 중도란 곧 마음자리를 말하는 것이고, 중도를 깨쳤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자리’, ‘근본자성’을 바로 보았다는 말로서 이것을 견성(見性)이라 한다.따라서 견성이란 근본 마음자리를 확연히 깨쳐, 즉 중도의 이치를 깨달아 부처가 되었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한데 요즘 항간에서 견성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사례들을 살펴보면 견성의 본뜻과 거리가 먼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자면 유럽을 여행하다가 일본인이 운영하는 선방을 견학하고 온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많은 유럽인들이 선방에 모여 참선을 하고 있는데, 찬찬히 둘러보니 그 좌석배치가 견성한 사람의 좌석과 견성하지 못한 사람의 좌석으로 나눠져 있더라고 한다.게다가 견성한 사람이 앉는 좌석에 견성하지 못한 쪽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더라는 것이다. 견성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이 하도 신기해 “당신 정말로 견성했습니까” 하고 물어보았더니, 스승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인가받았냐고 되물었더니, 자기는 스승으로부터 점검을 받고 무자화두(無字話頭)30를 참구해도 된다고 허락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지금 “무!” 할 줄 안다고 대답하더란다. 그러니 결국 그들이 말하는 견성한 사람과 견성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무!” 할 줄 아는 사람과 “무!” 할 줄 모르는 사람의 차이였던 것이다.이는 일본사람들이 가르치고 있는 선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이런 어처구니 없는 현상들이 현재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국 선방에 견성 못한 사람이 도리어 드문 것이 현재 한국 불교의 실정이고, 이 자리에 앉은 선방 수좌들 역시 나름대로 견성에 대한 견해를 한 가지씩은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흔히 참선하다가 기특한 소견이 생기면 그것을 두고 “견성했다”거나 “한 소식 했다”고들 하는데 정작 만나서 살펴보면 견성하지 못한 사람하고 똑같다. 과연 무엇을 깨쳣나 점검해 보면 제 홀로 망상에 휩싸여 생각나는 대로 함부로 떠드는 것에 불과하다. 견성에 대한 그릇된 견해와 망설은 자신만 그르치는 것이 아니다.이는 선종의 종지(宗旨)를 흐리고 정맥(正脈)을 끊는 심각한 병폐이다.『선문정로』를 편찬하면서 첫머리에 ‘견성이 곧 성불’임을 밝힌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견성하면 곧 부처임은 선종의 명백한 종지이다. “견성해서 부지런히 갈고닦아 부처가 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부산에서 서울 가는 일로 비유를 들자면 저 삼랑진쯤이 견성이고, 거기서 길을 바로 들어 부지런히 달려 서울에 도착하는 것을 성불로 생각한다. “견성한 뒤 닦아서 부처가 된다”는 것은 견성의 내용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서울 남대문 안에 두 발을 들이고 나서야 견성이지 그 전에는 견성이 아니다. 견성하면 그대로 부처지, 닦아서 부처된다고 하는 이는 제대로 견성하지 못한 사람이다.
『종경록』31에서 “자성을 보면 당장에 무심경이 된다”하였는데 제6식만 제거되어서는 망심이라 하지 무심경이라 하지 않는다. 무심이란 제6식의 추중망상(麤重妄想)뿐 아니라 제8아뢰야식32의 미세망상(微細妄想)까지, 즉 3세 6추가 완전히 제거된 것을 일컫는 말이다. 부처님 팔만대장경은 중생들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약방문이다.환자야 약방문이 필요하지만 병의 근본뿌리 까지 완전히 제거한 이에게 무슨 약방문이 필요한가? 진여자성을 확연히 깨달아 무심경이 된 사람, 즉 성불한 사람에게는 어떤 가르침도 어떤 수행도 필요하지 않다. 부처님의 팔만대장경도 조사의 1,700공안도 모두 필요 없는 그런 사람이 견성한 사람이다. 역으로 가르침이 필요하고 수행이 필요하다면 그는 구경무심을 체득하지 못한 사람이고 견성하지 못한 사람이다. 제8아뢰야식이 근본무명까지 완전히 제거되어 구경의 묘각을 성취한 것이 견성이지 그러기 전에는 견성이라 할 수 없다.
이는 나의 억지 주장이 아니다. 부처님의 바른 뜻이 담긴 경전과 만대(萬代)의 표준이 되는 정론과 종문 정안조사들의 말씀을근거로 하는 말이다. 이에 『능가경』·『대열반경』·『대승기신론』·『유가론』·『육조단경』·『종경록』·『원오록』 등에서인용하여 그 전거를 밝혔다.
종파를 초월해 대조사로 추앙받는 마명(馬鳴)보살의 『대승기신론』은 대승의 표준이 되는 불교총론으로 공인된 책이다. 『기신론』에서도 미세한 망상이 완전히 제거된 묘각 즉 구경각(究竟覺)만이 견성임을 분명히 하였다. 또한 원효와 현수 두 스님도 금강유정에 든 등각보살도 아직 망념이 남아있는 중생이라 하여 견성하면 곧 부처고 견성하지 못하면 중생임을 그 소에서 각기 밝혔다.
견성했다고 하면서 정을 닦느니 혜를 닦느니 하는 것은 아직미세 망상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건 견성이 아니다. 더 이상 배우고 익힐 것이 없는 한가로운 도인, 해탈한 사람이 되기 전에는 견성이 아니다. 이것이 『선문정로』의 근본사상이다. 요즘 견성했다는 사람이 도처에 있어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 자리에도 혹 견성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내게도 그런 이들이 심심치 않게 찾아오곤 하는데 난 그런 이들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혹 자는 “분명히 견성했는데 저 노장이 고집불통이라 인정하지 않는다”며 불평하는데, 그건 견성병(見性病)이 골수에 사무친 것이지 진짜 견성한 것이 아니다. 내가 괜한 심통을 부려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보잘것없는 개이적 체험과 견해를 견줘 우열을 다툴 이유가 없다. 나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부처님 대조사스님들을 재판관으로 삼고 판결을 받아보자는 것이다. 스스로 불자라 자부 한다면 부처님대조사스님들의 말씀을 표방해야지 소소한 사견을 내세워 불조를 능멸해서야 되겠는가? 그건 터럭 하나로 허공과 견주려들고 물방울 하나로 바다와 견주려드는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니 혹 참선을 하다 나름대로 기특한 견해가 생기고 기이한 체험을 하더라도 그걸 견성으로 여겨 자기와 남을 속이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한 올의 터럭 한 방울의 물이라 여겨 아낌없이 버리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1 진여의 지혜가 내뿜는 광명을 태양에 비유한 표현.
2 밝게 비춤.
3 『기신론』의 설로서 근본무명에 의해 진여가 생멸·유전하여 허망한 법을 전개시키는 과정을 아홉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미세한 작용인 무명업상(無明業相)·능견상(能見相)·경계상(境界相)을 3세(細),뚜렷이 파
악되는 지상(智相)·상속상(相續相)·집취상(執取相)·계명자상(繫名字相)·기업상(起業相)·업계고상(業繫苦
相)을 6추(麤)라고 한다.
4 무명을 어두운 구름에 비유한 표현.
5 가리고 덮음.
6 하늘 저편으로 구름이 사라짐.
7 “푸른 하늘이 나타나”
8 밝은 태양.
9 조금도 남김 없이 완전히 없앰.
10 속까지 꿰뚤어 봄.
11 완전히 끊어서 전혀 없음.
12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의 준말로 반열반(般涅槃)·원적(圓寂)이라고도 한다. 진리를 체득해 번뇌의 속 박
에서 영원히 해탈하고, 진실의 세계인 불생불멸의 법신으로 돌아간 것을 가리킨다.
13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깨달음을 지칭한 말로서 보살 수행 계위의 마지막 지위이다.모든 번뇌를 끊고 지혜
가 원만히 갖춰진 자리를 가리킨다.
14 미세한 번뇌까지 완전히 벗어나 있음.
15 신라의 고승(617∼686).각종 경론에 통달하고 수많은 저술을 남겼을 뿐 아니라 대승의 보살행을 몸소 실
천해 불교의 대중화에 크게공헌했던 선구자.
16 중국 화엄종의 제3조로 법명은 법장(法藏:643∼712).80권 『화엄경』의 번역에 동참하였고,화엄의 교리
를 체계화한『화엄경탐현기』·『화엄오교장』등의 명저를 남겼다.
17 원효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와 현수의 『기신론의기(起信論義記)』를 말한다.
18 금강정에 이르기 이전.‘이환’은 ‘이전’의 뜻.
19 무명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다.
20 금강삼매(金剛三昧)·금강정(金剛定)·정삼매(頂三昧)라고도 한다.보살이 구경의 과위인 불과(佛果)를 이
루기 전 최후에 드는 삼매로서 견고한 금강과 같이 모든 번뇌를 끊어 없애는 선정.
21 금강심(金剛心)·일생보처(一生補處)·유상사(有上士)라고도 한다.보살 52수행 계위 중 제51위(位). 보살
중에 가장 높은 지위로서 그 지혜가 부처님과 평등하다는 의미에서 등각이라 한다.
22 ‘구소’와 ‘함식’둘 다 ‘모두 사라지다’의 뜻.
23 선어록에 자주 등장하는 경구로서 대표적으로 『원오어록』을 들 수 있다. 대체로 마지막 구절은 ‘하용
일체법(何用一切法)’으로 써서 “부처님께서 일체법을 설하신 것은 모든 마음을 제도하려 한신 것이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마음이 없으니 일체법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의 형태로 등장한다.
24 모든 병.
25 근본 병.
26 확실하게.
27 영가현각(永嘉玄覺) 대상의 『증도가(證道歌)』에 나온다. 첫 구절에서 “그대 알지 못하는가. 배움이 끊
어진 하릴없는 한가한 도인은 망상도 없애지 않고 참됨도 구하지 않는다[君不見 絶學無爲閑道人 不除
妄想不求眞]”고 하였다.
28 마음 상태. 마음이 도달한경지.
29 부처님의 깨달음을 일컫는 말로서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아뇩다라삼먁삼보리 (阿耨多羅三藐三菩
提)라고도 한다.이보다 뛰어난 깨달음은 없으므로 무상(無上), 치우침과 삿됨을 여의었으므로 정(正),진
리를 깨달았으므로 각(覺)이라 한다.
30 선문의 대표적 공안(公案) 중 하나. 조주종심(趙州縱
:778∼897)에게 어떤 이가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
니까?”라고 묻자 “없다[無]”고 대답한 일화에서 유래한 화두.
31 법안종(法眼宗) 제3조인 영명연수(永明延壽)가 대승의 경론 60부와 300성현의 말씀등을 인용하여 불법
을 총망라하고 선종의 종지를 밝힌 100권의 저술.
32 무몰식(無沒識)·장식(藏識) 등으로 한역한다. 일체법의 근본이 되는 식이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장’
에 능장(能藏)·소장(所藏)·집장(執藏)의 세 가지 뜻이 있어 아뢰야(阿賴耶)·비파가(毘播迦)·아타나(阿陀那)
의 이름을 붙인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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