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뜰은 윗삼천리 아래로 흐르는 삼천천의 주변에 형성된 논밭이다.
뜰을 가로 질러 개천이 흐르는데, 이 개천 주변에 여기풀[정식 명칭은 여뀌]이 많다고 하여 여기뜰이라 불린다.
여뀌는 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로 키가 40∼90㎝ 정도 자란다. 물고기를 기절시킬 정도의 독성분이 있어서 ‘어독초(魚毒草)’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지금은 한낱 잡초로밖에 취급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지혈의 효과가 있어 상처가 났을 때 찧어서 바르기도 했고, 매운맛을 내는 조미료로 사용하거나 누룩을 빚는 데도 사용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생선요리에 사용하고 있다.
고어(古語)로는 엿귀라고 했는데, 엿귀가 어떤 의미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 중기 선조 대 송강 정철이 지은 「성산별곡」의 가을 풍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 가사에 나오는 홍료화가 엿귀[여뀌 중 붉은 여뀌]라고 한다.
짝 마잔 늘근 솔란 조대(釣臺)예 셰져 두고/ 그 아래 배랄 띄워 갈대로 더져 두니/ 홍료화 백빈주 어나 사이 디나관대/ 환벽당(環碧堂) 용의 소히 배 넌패 다핫나니.
어린 시절 삼천천에서 친구들과 함께 여뀌를 뜯어 편평한 돌 위에 올려놓고 주먹만한 돌로 짓찧어서[돌로 찧을 때 잎사귀만 찧는 것이 아니라 꽃과 뿌리도 함께 짓찧어야 효과가 더 나타남] 한 손 가득 묶어 냇가에 풀면 잠시 후 냇물 위로 송사리며 작은 붕어 등이 여뀌의 독에 중독되어 두둥실 떠올라 손으로 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뀌풀의 효과가 오래가지 않으므로 재빨리 잡아야 했는데, 그것도 냇물의 흐름이 빠르면 풀의 독이 금세 씻겨 내려가기 때문에 물의 흐름이 완만한 곳에서 푸는 것이 요령이었다.
지금 여기뜰을 가로지르는 삼천천에서는 더 이상 물고기를 잡는 사람은 없다. 각종 농약과 생활 오수로 인해 물이 오염된데다 삼천천의 상류에 들어선 공장에서 흘려보내는 오폐수로 인해 물고기가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직 여기뜰이라는 명칭만 전해 내려와 물 맑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았던 옛 시절의 그림자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기뜰의 고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아서, 수도권 전철 4호선이 지나면서 철로를 놓기 위해 축대를 높게 쌓아 여기뜰과 마을이 갈라지게 되었다. 이제 삼천리에서 여기뜰로 가려면 4호선 전철이 지나가는 축대의 가운데 뚫린 굴다리를 지나 왼쪽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과거처럼 마을 앞에 넓게 펼쳐진 여기뜰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