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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강마을 입구에 세워진 송강정철시비 ⓒ뉴스한국
자(字)는 계함(季菡) 호는 송강(松江), 학창시절 한번씩은 외워본 적이 있는 관동별곡, 성산별곡 사미인곡의 저자 정철(鄭澈, 1536~1593)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송강 정철의 정치적 행보를 두고 지금까지 왈가왈부할 만큼 그는 분명 녹록지 않은 정치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비록 범인들은 그를 16세기 조선시대 문인으로,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대가로 기억하고 있지만 말이다.
한문이 주류를 이루던 때 국문으로 시를 제작하면서 화려한 꽃을 피웠던 가사문학, 사대부 가사의 절정에서 그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이러한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자 하는 흔적들은 한국가사문학관이 있는 전라남도 담양을 비롯하여 정송강사(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소재, 송강 정철의 위패가 있는 사당)가 있는 충북 진천 등 그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송강마을과 송강문학관도 포함된다.
송강마을은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에 위치한다. 원당에서 의정부 방향으로 가다 보면 통일로와 마주치는 고가 도로가 나온다. 그 고가도로 조금 못 미처 왼쪽으로 야트막한 산이 솟아 있다. 중턱에 송강 선생의 묘가 있었던 화산(華山)이다. 높은 언덕 정도 되어 보이는 산 한 자락에 옹기종기 20여 채의 가옥이 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정철 선생이 살아생전 머물렀다는 송강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지난 1997년 고양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만든 송강정철 시비가 우뚝 서 있다. 아담한 마을은 농촌의 정취가 남아 사위가 고즈넉하지만 큰 음식점들이 제법 들어서 옛모습 그대로를 볼 수 없어 아쉽다.
선생의 묘는 현재 정송강사가 있는 충북 진천으로 1665년 이장되었다. 그러나 부모와 장자 등 가족들의 묘는 화산에 남아 있으며, 선생이 부모상을 당해 여막을 짓고 시묘(侍墓)를 살았던 터가 아직도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선생을 사모했던 기생 강아의 묘도 그대로 있다. 서쪽으로 송강고개, 동쪽으로 곡릉천을 가로 막아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저수지 송강보, 곡릉천을 바라보고 있는 송강 낚시터, 거기에 송강문학관까지 그의 호를 딴 지명들이 마을 곳곳에 남아 이곳에 머물며, 시작(詩作)에 몰두한 선인의 자취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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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송강문학관 처마 끝의 풍경 2. 송강 선생을 사랑했던 기생 강아의 묘 3. 송강문학관 뒷산의 여막 ⓒ뉴스한국
송강마을에서
송강문학관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송강문학관’ ‘관동별곡’이라고 쓰인 큼지막한 두 개의 간판이 도로변에서부터 눈에 띈다. 멀리서 보이는 문학관은 뒤로 산을 이고 있는 정갈한 한옥의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추녀 끝 풍경 소리가 운치를 더한다. 그러나 충북 진천의 정송강사와 달리 송강문학관은 운영도 관리도 열악하기 그지없어 초라하기까지 하다.
멀리서 왔다는 여행자의 말에 잠긴 문을 열어주는 이은만 관장을 따라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10여 평 남짓한 내부는 입춘이 지난 2월 날씨에도 바깥보다 춥다. 선생의 이름이 적힌 족보와 아들 기명에게 썼다는 편지나마 본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 외에 송강 선생의 문학작품, 친필, 유품 등 직접 연관이 있는 자료는 없다. 정리되지 않은 채 여기저기 쌓인 자료들은 대부분이 조선 중엽 이후 집에서 여인들이 공부할 때 사용한 교서와 교지들을 수집해놓은 것이라는 관장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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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강 선생이 아들 기명에게 썼다는 편지(위)와 송강 선생의 족보(아래) ⓒ뉴스한국
송강문학관은 이은만 관장이 사비를 들여 운영하고 관리하는 사설 문학관이다. 이은만 관장은 조상 대대로 고양시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이 관장이 송강마을과 송강 선생의 관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0여 년 전, 고양시향토문화보존회 회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이다. 우연히 송강마을 지명의 유래를 알게 되면서 송강 문학의 맥을 찾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1997년에는 고양 시민들의 성금으로 송강정철시비를 제작했다. 송강고개, 송강보, 송강낚시터 등을 찾아내고, 이어 1998년 지금의 송강문학관 자리에 한옥을 지어 문학관을 개관했다. 자료를 수집해 송강마을과 송강 선생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자를 발간하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지난 2001년부터는 해마다 5월이면 문화 예술인들을 초청한 가운데 백일장, 시 낭송, 전통 춤과 소리, 예절 배우기 등으로 송강문화제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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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강문학관의 전경 ⓒ뉴스한국
그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송강문학관에 송강의 문학은 없었다. 나그네의 아쉬운 마음을 알았을까? 이은만 관장은 추위가 풀리면 찾아오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 한다.
“송강 선생은 대문장가이자 효행의 모범입니다. 특별히 지원을 받는 곳이 없어 중단된 상태지만 문학과 효행의 메카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반드시 좋은 문학관을 만들 겁니다.”
50년 가까이 고양시에 살면서 송강 선생이 이곳에 머물렀던 사실을 뒤늦게 알아 안타까웠다는 이 관장은 송강마을과 송강문학관을 옛 선조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문화의 터전으로, 송강 선생의 문학을 폭 넓게 연구하고 토론하는 학문의 장으로 키워나갈 꿈을 가지고 있다.
봄이 오고 햇볕이 비추고 따라서 문학관 뒷산으로 푸르름이 우거지면 송강문화제가 열릴 것이다. 문화제와 함께 어서 봄이 오기를 송강문학관도 기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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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강마을 가는길(출처:고양시청 홈페이지) ⓒ뉴스한국
교통편 송강마을과 송강문학관은 생각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다. 고양시청 앞에서 의정부 방면으로 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고양시청 홈페이지의 안내는 거의 무용지물이다. 고양시청 앞에서 송강문학관은 물론 송강마을이라는 지명을 아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휴일에는 시청 안내 전화도 잘 받지 않아 문의할 곳이 없다. 어렵사리 알게 된 교통편이 신촌 전철역을 출발해 고양경찰서, 고양시청을 경유해 내유동까지 왕래하는 800번 버스다. 유일하게 송강마을로 가는 시내버스인 셈이다. 이은만 관장은 언제든 찾아오라며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연락처:010-5587-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