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청도 모계고의 <불타는 별들>을 보고 오는 길에 햄버거며 통닭이며 잔뜩 먹고 갑자기 똑똑해진 종미가 제의했다. 겟판의 "연극보러가자" 난에 소감문을 싣자고. 종미는 먹고 나면 참 똑똑해진다. 오늘부터 우리가 본 연극의 소감문은 여기에 올려 서로 나누기로 했다. 앞으로 추천할 만한 작품, 함께 보러 가고 싶은 연극 제목과 날짜, 장소, 입장료 등도 함께 올려놓기로 합시다.
"킹"부터...
밤이 너무 늦어 생각이 잘 안 나지만, 오늘 연극을 보면서 우린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며칠 동안 청소년 연극제 출품작을 보러 다녔는데 이상하게도 올해 연극들은 수준 미달이 너무 많아 그 동안 좀 답답했었다. 오늘 연극 역시 작년에 모계고가 한 수준으로 보아 별로 다를 게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방황하는 별들>을 공연하게 될 4기생들에게, 특히 형원이에게 나름대로 참고가 될 것 같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거기까지 갔다.
그런데 내 예측이 틀렸다. 차가 너무 밀려 우린 10분쯤 늦었는데 안내하는 아이들이 "시작됐는데요" 하며 우리에게 주의를 주었다. 잔소리 듣긴 했지만 기뻤다. 시작된 후 들어가면 안 되는 걸 아는 아이들은 별로 본 적이 없으니까. 게다가 그 아이들은 직접 문을 소리 안 나게 열어주고 커튼까지 쳐 주는 것이 아닌가. 실력은 없어도 아이들 교육 하난 똑부러지게 시켰네 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폭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나중엔 옆에 앉은 종미를 치다가 의자를 치다가 웃었다. 재밌어서.^^ 때로 배우들이 오버를 해서 작품성을 해치기도 했지만 너무 재미있는 연극이었다. 작년에 우리가 공연했던 <꿈꾸는 별들>처럼 아이들의 아이디어와 장난기, 그러면서도 진지함이 돋보였다. 학생극은 이래야 한다는 내 생각에 꼭 맞은,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작품이었다. 준민이-나타모부와 경호-엄마의 장난기가 많이 생각났다. 앙상블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다. 아이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사실 대사하는 솜씨는 제일 못한 측에 들지도 모르지만 지도교사가 아이들 완전히 '잡은' 티가 났다. 정말 연습 많이 했다는 걸 느낄 수 있더라는 말이지. 기막히는 앙상블은 처절한 연습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 배우는 작년의 그 형편없던 배우 그대로인데 작품은 도저히 그 팀 작품이라 믿기 힘들었다. 연습은 그 작품의 질을 결정한다고 했던 어느 연출가의 말이 새삼 실감났다. 아이들 하나하나 실력은 별로 없지만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낸 모계고 연극반을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더나기와 닮았을꼬 감탄했다. 그리고 동지를 만난 듯 기뻤다. 춤과 패션쇼, 어느 하나 소홀한 곳이 없었다. 서사극 요소를 도입했는데 이 작품의 연출자는 서사극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배우의 옷을 완전히 바꾸지 않는 것, 무대 모양 바뀌는 모습을 직접 재미있게 보여준 것, 1인 다역을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준 것... 무엇보다도 학생역에서 다시 변호사역으로, 그리고 엄마역으로 변신한 배우의 머리에 둘러진 수건과 능청스럽고 귀여운 연기를 보면서 작년의 창수-엄마(강경호) 생각이 참 많이 나 더 많이 웃었다. 아이들은 대사법에 능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대사가 어눌한 모범생('옆집아이')은 일부러 대사를 더 천천히 했고, 사투리를 극복하지 못한 검사와 변호사의 대사도 어느 정도 감춰져 있었다. 어딜 봐도 손을 많이 댄 흔적과 땀흘린 흔적이 보였다. 다만, 모델지망생과 가수지망생이 일인다역의 묘미를 살리지 못하고 완전히 변신한 모습으로 나온 것, '마식'역을 한 학생이 좀 잘난 척을 해서(폼을 잡아서) 튄 점, 군데군데 나오는 경상도 사투리와 경상도식 억양이 좀 거슬렸고, 영화 <친구>를 지나치게 모방한 듯한 점이 커다란 흠이었지만, 나는 이 팀에게 최고점을 주고 싶다. 아이들의 정신, 자유로움, 그리고 하나된 마음이 보인 연극이었고, 너무나 애쓴 흔적이 완벽에 가까운 앙상블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돌아오면서 우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모처럼 속시원하고 신나는 연극을 보았기 때문에. 그리고 아이들은 '선생님게 배운' '살아있는 연극'을 다른 팀에게서 본 것이 너무 신기하고 기쁜 모양이었다. 우리가 그 동안 제대로 보지 못했던 우리들의 아름다움을 오늘 이 연극에서 보게 되었다. 아주 행복한 관객의 입장에서... 나는 봉화여고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오늘 이 작품이 경북대표로 뽑히길 희망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학교 연극은 이래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흠이 있어도 학생다운 순수한, 따뜻한 정과 뜨거운 땀방울, 눈물의 흔적이 보이는 연극 말이다. 새로운 지도자를 만나 몰라보게 성장한 모계고, 파이팅!! 그리고 이 연극을 통해 무언가 길을 찾았다는 우리 연출 김형원,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