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송은 우리 마음의 문제점인 번뇌와 수번뇌에 대해 말하므로 괴롭다. 가까운 주변 사람이 너는 이게 문제야 하고 10가지만 말하면 속 뒤집어지지 않을 사람 없다. 14송까지는 우리가 원하면서도 얻지 못하게 하는 방해 요인들이 여기 다 나온다. 반야심경엔 의반야바라밀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나와 있다. 금강경 23분은 맑은 마음으로 선을 행해야 한다는 정심행선분이다.
수보리야 이 법은 평등하여 유무와 고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하는 것이다. 아상도 없고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이 온갖 선법을 닦으면 즉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수보리야 선법이란 것은 따로 있어서 선법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름 지어서 선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금강경 정심행선분>.
금강경이 전부 이런 식이다. 이렇게 넝쿨 식으로 돼 있어 넝쿨 금강경이라고도 한다. 좋은 법을 닦아야 깨달음을 얻는데 좋은 법이란 것이 좋은 법이 아니고 단지 이름이 좋은 법이니라 하니 우린 좋은 법이 뭔지 또 헷갈린다.
그 좋은 법이 바로 유식 11송에 나온다. 유식의 목적은 전식득지라 말했다. 유식에서 우리 마음이 부처님과 같은 지혜로운 마음으로 바꿔지는 구조를 직접적으로 밝힌 것이 전식득지다.
마음을 바꿔야 사주팔자도 바꿀 수 있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도 되고 선한 사람이 귀하게도 되는데 마음을 못 바꾼다. 불교공부가 뭐냐? 마음 바꾸라는 공부다. 그런데 마음이 뭔지 알아야 바꾸지. 내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것이 유식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마음이라지만 이 마음이 어디서 와 어떻게 내 마음에 들어있다 어떻게 밖으로 나가는지 잘 모른다. 내 마음 나도 몰라 그런 유행가 있다. 그 마음을 가장 잘 설명해 놓은 것이 유식이다. 용수보살은 마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心=前生業 總報 今生業 一切種子. 마음을 바꿔야 사주팔자가 바뀌고 지금의 불만족한 내 모습에서 조금 더 만족스런 내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다.
마음은 전생업의 총체적인 과보로 나타난다. 마음 쓰는 걸 보면 우리는 우리가 마음을 쓴다고 보지만 우리가 내는 마음도 아뢰야식도 있고 말라식도 있고 요별경식도 있어 내가 모르는 2가지가 더 섞여 이 마음이 나온다.
그러니 그 사람 마음 씀씀이를 보면 그 사람 과거가 다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우리들 마음이다. 그러나 이 마음은 어떤 결과를 낳았지만 그 결과는 지금 당장 금생업의 일체 종자도 된다. 마음을 바꾸는데 쓰는 것이 바로 정심행선분의 善이다. 그러면 도대체 善이 뭐냐? 선으로 바뀌면 우리의 업 종자가 바뀌고 마음이 바뀌어 가난한 사람이 부자 되고 귀한 사람 된다. 善 다음 나오는 것이 번뇌와 수번뇌다. 12-14송은 마음의 단어만 나와 있다.
[ 제 12 송 ]
煩惱謂貪瞋 痴慢疑惡見 隨煩惱謂忿 恨覆惱嫉悭 번뇌위탐진 치만의악견 수번뇌위분 한부뇌질간 번뇌 – 바라밀이 아닌 상황에서의 모든 생각 탐 – 갖고 싶다. 벌고 싶다. 진 – 나도 하고 싶다. 나라고 왜 안 돼? 치 – 이번에는 다를 거야. 막연한 기대. 만 – 자만심. 교만심 의 – 의심 악견 – 계를 깨뜨려도 좋다. 그러나 바른 정견을 무너뜨리면 안 된다. 수번뇌 – 따라붙는 번뇌. 화살을 두 번 맞음 분 – 마음이 산산 조각나는 형태 한 – 화살을 쏜 사람을 찾을 때까지는 안 뽑겠다고 함 부 – 화살이 왜 자기에게 왔는지 모르는 상태로 지냄 질 – 질투심 간 – 간탐심 몹시 인색하고 욕심이 많음.
깨닫기 전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다 번뇌다. 반야바라밀에 의지해서 나온 생각이 아니라 업에 따라 흘러나온 생각이기 때문이다.
뭘 하고 싶다는 것이 다 貪이다.
瞋은 너는 되는데 나는 왜 안 돼? 이러면서 화를 내는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사람이 탐을 냈다 그것이 충족 안 되면 공부를 더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어리석은 사람은 화를 내거나 떼를 쓴다.
痴는 어리석음이다. 우리에게 제일 무서운 것이 痴다. 워렌 버핏은 주식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가장 위험할 때가 상투로 사람들이 이번에는 다를 거야 라고 생각할 때 라고 말했다.
올림픽 끝나고 89년도에 이번엔 다를 거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주식투자를 했지만 손해를 봤다. 당시 일본도 엔화를 세계의 기축통화로 만든다며 미국 땅을 마구 사들일 때 일본기업을 믿고 많은 사람들이 일본어 공부를 했지만 결론은 많은 사람들이 손해 봤다.
우리나라는 보통 Per10 정도지만 당시 일본 기업의 Per는 100이었다. 같은 돈을 투자해서 저런 기업을 만들려면 100년은 걸릴 것이다 해서 100배를 쳐 주었다. 그때도 This time is different 이었다. 2006년도 우리나라에 부동산 투자열풍이 불었다. 당시도 이번엔 다를 거야 생각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다. 최근 중국펀드 안 하면 큰 일 날 것 같아 투자했지만 상해지수는 이미 반 토막이 됐다. 중국의 저력 하면서 이번에도 이번엔 다를 거야 생각했다.
이런 어리석음은 고칠 수 없다. 사람은 고통을 겪어도 그 고통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유식에서 말하는 번뇌는 전부 54가지다. 그러나 그 번뇌를 우리는 제거하지도 못하고 잘 다루지도 못한다. 어느 스님이 빚 보증 잘 서는 보살 보고 말했다. 보살은 탐심은 버렸을지 몰라도 치심이 아직 있다. 탐심 버리는 것도 좋지만 치심도 버려야 한다. 양보하고 참고 주는 것이 굉장히 좋은 줄 알지만 치심인지 돌아볼 줄도 알아야 한다. 금강경 신묘장구대다라니 공부하는 이유가 다 지혜를 얻고 치심을 벗어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의심은 상대방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부처님에 대한 의심이다. 부처님이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좋다는 거야 부처님이 살생하지 말라는 것이 뭐 꼭 살생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게 좋다는 거야 그러면서 부처님 말씀을 곧이 곧 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달리 해석하거나 의심하는 것을 말한다. 이 의심과 연결되는 것이 바로 악견이다.
8정도의 맨 처음 나오는 말이 정견이다. 바른 견해가 아닌 것이 악견이다. 우리는 모두 인연 공으로 이뤄져 있는데 있다고 믿는다. 없는 게 정견인데 있다고 믿으니 악견이다.
용수보살께서는 심지어 계는 깨뜨려도 좋지만 바른 견해를 무너뜨리면 안 된다 라고 말씀하셨다. 계를 지킨다고 잘못된 견해를 고집하느니 차라리 계를 깨고 견해라도 바로 해라. 견해가 바르면 설사 계를 깨뜨리고 잘못돼도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견해가 잘못 되면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 정견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사이비 혹은 외도로 가게 된다. 정견을 갖기 위해 경전공부 좀 해야 한다. 정견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끊임 없이 반복되는 교육이다. 정견이 아닌 악견이 바로 번뇌다.
번뇌에 이어 따라 나오는 것이 수번뇌다. 화살을 두 번 맞지 말라는 부처님 말씀이 바로 독화살 비유다. 탐진치만의악견이란 화살을 이미 맞은 다음 따라 붙는 두 번째 화살이 수번뇌다. 忿은 한자를 보면 마음이 나눠지는 모양이다. 분은 마음이 분한 것으로 이걸 때려 말아 하면서 마음이 갈라지는 것이다. 나라고 왜 안 돼? 나만 왜 자꾸 손해 봐? 나는 왜 예쁘게 못생겼어? 이런 식으로 화살을 한 번 맞았는데 연이어 계속 스스로 괴롭혀서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恨은 한국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폭발력도 있다 하지만 어리석기도 하다. 그러니 화살 두 번 맞는 사람이 많다.
覆는 자기 행위가 덮여있는 것이다. 드러나면 아는데 덮여 있어 모른다. 그래도 우리가 불교를 알아 연기도 알고 인연도 알고 그러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있었나 생각도 해보게 될 텐데 그런 것 없이 지내는 것이 覆다.
嫉은 질투심으로 남 잘되는 것 시기하는 것이다. 悭은 간탐심으로 인색한 것이다. 인색하면 복 짓기가 어렵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쓴 로버트 기오사키와 토마스 앤더슨 목사는 미국 교회를 다니면서 주식 경매 부동산 재테크 그림 사는 법을가르쳤다.
미국은 개신교 국가다. 미국은 아이들이 악마한테 영혼을 판 사람으로 대접을 받아 돈에 대해 잘 질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말 때문에 돈에 대해 자유로이 질문하거나 공부하지 못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가난한 사람이 악마에게 더 쉽게 영혼을 팔더란 것이다. 우리 사회도 보면 많은 문제들이 가난 때문에 일어난다. 과거의 농업 상업 산업자본주의를 배운 사람들에게 가르쳐줄 내용과 오늘날 금융자본주의 하에서 가르쳐줘야 할 내용이 틀리다.
예전엔 근면함만 있으면 됐다. 그러나 지금은 돈이란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단지 느낄 수만 있는 존재로 표시만 숫자로 되는 추상적인 존재로 돈이 바뀌다 보니 주권 채권 본 적 없다. 통장에 숫자만 찍힌다. 성경보다는 훨씬 깊이 있고 인과 관계가 명확한 불교를 통해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나쁜 길로 안 가게 주식 증권 돈 강의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 부자 되면 덜 인색해지고 한도 분한 마음도 덜해지고 악견에서 정견으로 복을 짓고 덕을 쌓고 지혜를 챙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12강. 우승택 유식삼십송 12송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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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을 배워 한 차원 높아져야 한다. 목우는 못해도 견우까지는 되야 한다. 항상 자기를 떼놓고 봐야 한다. 운전자는 야구공이 어디서 날아와 자기 차를 때렸는지 모르지만 위에서 보는 사람은 그 상황을 안다. 많이 높을 필요 없이 한 차원만 높이자. 불교를 공부할수록 속상한 일이 더 많아진다. 예전엔 모르고 지나가던 문제점이 자꾸 드러난다. 사실 알고 보면 한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올바른 생각으로 바꾸는 일이 수행이라 생각한다. 내가 승진 안 된 것은 결과다. 그 결과로 화 내고 분하고 미워하고 욕하는 자기 모습을 본다. 유식을 공부하는 사람은 안 된 결과의 과정을 보고 뜯어 고쳐 좀 더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어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시장 점유율은 결과다. 그런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과 노력을 더 해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우리 제품이 좋다면 많은 사람들이 와 물건을 살 것이고 사면 마켓 쉐어가 늘어날 것이다. 같은 말이다. 유식을 공부하는 사람은 과정을 생각해서 만족할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이 한 생각 내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 이것이 유식의 가르침이다.
우리도 남처럼 밥 먹고 술 먹고 하는 일 똑 같다. 그러나 경계에 부딪쳤을 때 적어도 불교인이라면 생각하는 힘이 질적으로 달라야 한다.
불교 말고 세속공부만 잘 해도 안다. 우주과학은 좀 더 지혜롭게 살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다. 그러나 공부만 해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요즘 돈 벌이 잘 되는 일은 영재 컨설팅이다. 그러나 우리 애가 학습지진아 같으면 숨기고 싶어한다. 더하기 빼기 큰 수 작은 수의 개념을 잘 아는 아이가 11+14=7로 답을 적는 이유는 자리 수 과정을 이해하지 못해 그런 것뿐이다. 학교 교육과정은 선이 아니라 점프 단계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문과는 수학공식이 272개 이과는 356개로 이뤄져 있다. 그러니까 272개의 약속과 356개의 약속으로 돼 있다는 말이다. 논리적으로 된 일이 아니라 그냥 이렇게 하기로 사람들이 게임의 규칙을 정한 것이다. 이 아이는 계단 올라가다 발을 삔 것뿐인데 눈 밝지 못한 선생들이 학습 지진아로 치부해 버린 것이다.
원하는 답이 안 나오면 어디서부터 답이 잘못 나왔는지 알아야 한다. 자기 딴엔 똑똑하다 사업하지만 잘 안 된다. 이럴 땐 몇 번째 계단에서 내가 잘못해 발을 삐었는지 알면 되는 것이다. 그게 유식이다. 지식으로 배우면 암기식으로 쭉 한다. 금리가 내리면 주가가 오르고 유가가 오르면 경기가 안 좋다 통화량이 늘면 주식이 좋다 이런 말은 다 거짓말이다. 함수 관계가 정확하지 않다. 만약 경제학자 신문들이 말과 글로 표시한 것이 사실이라면 경제학자 기자들 다 부자 돼야 한다. 학교 공부 열심히 한 사람은 주식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 그러나 결코 원하는 것을 얻지는 못한다.
아이들에게 지도처럼 그려 놓고 물으면 동그라미라고 답한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동그라미 알려준다 그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4각형 그리고 각이 4개라 4각형이라 설명하고 각이 3개면 몇 각형? 하고 물으면 3각형 이라 대답한다. 이제 아이들은 각을 떠나 학문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부처님 가르침이 꼭 이렇다. 여기까지 오고 난 다음 4성제 팔정도 37조도품 가르쳐 주는 것이다. 맨 마지막에 8각형 그리고 각이 8개면 몇 각형? 하고 물으면 8각형이요 하고 답한다. 맨 나중에 아이들 보고 동그라미 그려보라면 동그라미가 뭔지 모르지만 각이 무지 많은 걸 그린다.
이렇게 부처님은 가르치신다. 그리고 다시 지도처럼 그려 놓고 뭐냐 물으면 제대로 공부한 애들은 찌그러진 동그라미라 답한다. 모습이 변형 되도 그 핵심을 아는 애들은 안다. 이것이 破邪顯正이다. 잘못된 것을 하나씩 깨나가면 바른 것이 저절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이것이 세모다 네모다 하고 지식만 알려주면 나중에 찌그러진 동그라미 나와도 답을 못 찾지만 잘못된 것을 깨서 바른 것을 찾게 가르치면 변형된 모습이라도 핵심을 안다. 그래서 부처님 학습방법이 꼭 이렇다.
깨달은 5%는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종합 주가지수가 1500이면 2000갈까? 아니면 다시 1200으로 내려올까? 이렇게 한 점으로 생각한다. 계속 Point만 찾는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들은 면 Zone을 찾는다. 지금은 싼 지역에 있다 비싼 지역에 있다 그것만 안다. 왜냐하면 깨달은 사람들은 소수지만 많은 돈을 갖고 있다. 못 깨달은 95%는 사람 수는 많지만 돈이 적다. 따라서 이들 사이에 주식을 사고 팔 때는 굉장히 시간이 걸린다. 이들은 Area나 Zone을 보기 때문에 어느 한 점에서 물건을 사거나 팔 수 없음을 직시하고 있다.
5%들은 사람들은 내리면 내리고 있다 해서 극도의 공포심이 생긴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들은 싸지고 있다 라고 생각한다. 못 깨달은 사람들은 오를 때 오르고 있다고 좋아하지만 깨달은 사람들은 비싸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오르면 기분 좋고 떨어지면 기분 나쁘고 그렇게만 살면 업에 인연에 세상에 끌려 다니기 때문에 결국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비록 우린 95%에 속해 있지만 5%처럼 행동해 줘야 한다. 내리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점점 싸지고 있다고 알아야 한다. 깨달은 5%는 우리와 게임의 법칙도 다르고 물건을 보는 관점도 생각도 다 틀리다.
12시1분이면 깨달은 사람들은 밤이 시작됐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해가 져야 이제 밤인가 보다 한다. 아주 멍청한 사람들은 자기가 자야 밤인 줄 안다. 깨달은 사람들은 밤 12시가 딱 지나면 이제 여명이 시작됐구나 낮이 시작됐구나 안다. 보통 사람들은 해가 떠야 낮인 줄 안다. 아주 멍청한 사람들은 자기가 잠에서 깨야 낮인 줄 안다.
절 달력에 삼재 나오니 불교가 미신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삼재는 지금 들은 게 아니다. 이미 12년 전 진도 1로 시작해 지금 진도 7.8정도 되고 있으니 조심 하시요 하는 말이다. 경제가 어렵다 해서 돈을 푼다. 그러나 우리 같은 95% 사람들이 느끼려면 시간이 걸린다. 연방준비위원회에서 돈을 풀면 기업으로 가 한국으로 물건 구매도 하고 기업이 월급 주고 월급쟁이가 미장원 가고 다시 기업의 주가가 좋아지는 데까지 보통 통계학적으로 9-14개월 정도 걸린다.
그러면 눈 밝은 사람들은 저쪽에서 진도 1로 좋은 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안다. 이처럼 보는 안목과 차원이 다 다르다.
큰 흐름은 그렇게 보고 작은 흐름은 유통업 건설업 IT 금융업 등 좋아지는 업종을 보면 안다. 좋은 선생이 왔다고 반 아이들이 다 공부 잘하는 것은 아니다. 선생님과 인연 맞는 애들이 뜨는 것이다. 환률이 오르면 고통스런 수입업자들이 많아진다. 유가가 올라 기업이 어렵다 하지만 유가가 올라 돈 잘 버는 회사들도 많다. 단편적으로 생각할 일이 아니다. 일어난 현상들이 반영되는 것이 다 틀리다.
[ 제 15송 ]
依止根本識 五識隨緣現 惑俱惑不俱 如濤波依水 의지근본식 오식수연현 혹구혹불구 여도파의수
근본식은 아뢰야식이다. 근본식에 의지해 생각이 일어나는 데 5식은 인연 따라 나타난다. 우리 생각이란 것은 우리가 생각을 내는 것이 아니라 아뢰야식에 의지해 생각이 난다는 말이다. 항상 의지해 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의지해 내고 어떤 때는 저 혼자 낸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이 주식 사면 대박 난대! 하면 그냥 빨려 든다. 업이란 항상 과거의 일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짓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욕심에 그냥 끌려가 버린다. 마치 파도가 물에 의지해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은 파도에 불과한 것이다. 실제로 바다나 큰 물은 아뢰야식이다. 그래서 기도하고 착한 마음 내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빨리 하고 싶으면 무주상보시를 해야 한다. 돈을 안 내더라도 마음이라도 그렇게 내야 한다. 그게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 머무는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 절에다 3만원 내면 나 오늘 3만원 냈다는 생각이 끊어지질 않는다. 그러면 그게 낸 거냐? 그 생각이 끊어져야 진짜 낸 것이다. 무주상보시가 이렇게 어렵다. 그러나 상보시라도 자꾸 해라. 그러면 그게 근본식에서 작용하고 있다 시절 인연이 되면 기막힌 생각을 낸다는 것이 유식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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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송부터는 수행을 통해 지금의 불만족스런 내 모습을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실감나게 볼 수 있다.
어떤 스님은 참 석가는 대마귀 같다 말했다. 차라리 아무 소리도 안 했으면 모르고 살다 죽으면 되는데 괜히 너는 네 마음이라 그러지만 그게 네 마음이 아니거든 너라 생각하는 너는 네가 아니고 여러 가지가 합쳐 된 것으로 사실이 아니거든? 이렇게 우리 인생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 대마귀 같다 말한 것이다. 그러나 모르고 수천 년 사느니 단 하루라도 알고 사는 것이 낫다. 식은 다른 말로 마음 심이기도 하다. 우리는 마음 느낌 감정 생각 정신 영혼 성깔 성질 성품 품성 굉장히 복잡하게 여러 말로 쓴다. 그러다 보니 불교 마음공부가 어렵다. 그러나 그 마음은 딱 3개로 말하면 심과 의와 식인데 그게 다 식이 변화해서 나타난 패턴이라 가르쳐주는 것이 유식삼십송이다.
내가 착한 마음 먹고 하면 결과도 좋아야 하는데 왜 나쁜 결과가 나올까? 그 때문에 좌절도 많이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도대체 착하다는 것이 뭐고 나쁘다는 것이 뭐냐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명상이란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그렇게 보니 좋은 주식은 뭐고 나쁜 주식은 뭔가? 단기 중기 장기 투자 말하는 데 도대체 단기는 몇 개월이고 장기는 몇 개월인가? 다 헷갈린다. 그런 모든 것을 딱 명쾌하게 정의를 내리신 분이 세친보살이다. 정말 유식을 몰랐으면 그냥 살 텐데 유식을 알아 더 복잡해졌다 생각할 수 있다. 16송부터는 그 복잡한 모습이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 제 16 송 ]
意識常現起 除生無想天 及無心二定 睡眠與悶絶 의식상현기 제생무상천 급무심이정 수면여민절
의식은 항상 나타나고 일어나는 것이다. 단 무상천에 태어나는 경우와 무심무상 2가지에 정이 들었을 때 그리고 잠잘 때와 기절했을 때는 제외된다.
의식 혹은 생각은 항상 나타나고 일어나는 것이다. 참선하든 명상하든 번뇌 망상이 끊임 없이 일어난다. 여기서 말하는 의식은 망상이 아니라 의도적인 생각이다. 이제부터 유식을 한 번 공부해 봐야지 3년 동안 1억을 한 번 만들어봐야지 내가 ~을 해야지 라고 하는 것을 의식이라 표현했다. 무상천은 생각이 없는 세계다. 삼계 중 무색계의 무상천이다. 생각 없이 하라는 무심과 무정을 2정이라 한다. 또 잠잘 때와 기절했을 때도 역시 의식 또는 생각은 일어나지 않는다.
잠잘 때나 기절했을 때는 우리가 의도했던 바가 생각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의도하지 않던 것이 나타난다. 그게 꿈으로도 나타나고 돌아가신 조상님으로도 나타나고 생전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이 나타난다.
왜 나타나나? 중생이란 말 많이 쓴다. 짐승의 어원은 중생이 즘생 즘승 짐승으로 변한 것이라 말한다. 대학교 시험에도 그렇게 나온다. 중생이란 말은 짐승의 다른 말이다. 그러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중생은 전혀 그런 뜻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중생은 3가지 특징이 있다 말씀하셨다. 첫째 중생은 생각이 하나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아뢰야식 말라식 요별경식이 여러 가지가 모여 태어난 존재다.
두 번째 중생은 여러 생이 반복되는 끊임 없는 윤회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가 다 한꺼번에 뭉쳐 태어난 존재다.
세 번째 무리를 지어 다니는 특징을 갖고 있는 존재다. 그래서 인터넷 동호회도 다 그런 이유로 만든다. 그러나 살다 보면 자식도 남이고 부모도 남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인간은 초대받지 않고 와서 허락 받지 않고 가는 존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생일잔치들 많이 한다. 그러나 내가 태어난 것은 축복 받을 일이 아니라 뭔가 할 일이 있어 온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과연 내가 태어난 일이 축복받을 일인가? 부처님께서는 태어나는 자체가 고통이었노라고 정반대로 말씀하셨다. 태어나면 엄마 아빠 형제들이 모두 나를 위해 해주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다 어느 날 유아원에 가 보니 나를 미워하고 경계하고 싸움하자는 애들이 생긴다. 그러다 학교 가면 성적표 때문에 엄마한테 선생님한테 혼난다. 살면서 어! 내 편이 별로 없네? 그런 생각을 그제야 한다.
그러다 내 편이 별로 없다는 점을 알고 배우자를 찾아 다닌다. 그러다 결혼해 자식 낳고 살지만 여전히 마누라도 자식도 내 편이 아니란 것을 안다. 이렇게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그러니까 유식 공부하는 사람 음악 하는 사람 그림 하는 사람이 나온다. 그러다 나이 들면 향우회 동호회 나가다 결국 죽을 때 다 돼서 부처님 말씀이 맞네 정말 혼자네? 하고 간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부처님은 우리에게 모든 진리를 다 말씀해 주셨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는 끊임 없이 부정한다. 그게 중생이다. 그래서 우리들 삶을 대부분 보면 나에게 일어난 생각과 그 생각의 부정 그리고 또 다른 생각과 부정으로 이뤄져 있다. 그 생각을 16송에서 의식이라 말했고 그런 의식은 항상 나타나고 일어난다 말한 것이다. 그런데 무상천 무심에선 안 일어난다 한다. 솔직히 나도 무상천 무심 잘 모른다. 공부 많이 한 스님들은 참선 중에 이미 다녀오셨겠지만 선정에 든다는 것이 아마 이런 말일 것이다. 그러면 내가 가본 곳은 기절은 안 해봤지만 수면뿐이다.
꿈에 보면 내가 원하지 않은 일들이 막 일어난다. 그래서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몰라 꿈 해몽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면 이것은 어디서 나타나는 것인가? 이를 부처님은 잠재된 의식인 아뢰야식과 말라식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서양은 이를 무의식의 세계와 표면의식의 세계로 나눴다. 그러나 서양은 어떻게 무의식의 세계에서 그런 일들이 뭉쳐 일어나는지 답을 몰랐다. 그러나 부처님 세친보살께서는 그 뭉치는 모습을 좀 더 좋은 모습으로 뭉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말씀해 놓으셨다.
그래서 번뇌가 많은 사람은 밤에 이 생각 저 생각하지만 공부 많이 한 스님들은 꿈을 안 꾼다. 인연의 고리를 다 끊으니 그 인연들이 찾아오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기절하면 아무 것도 못하는 것 같지만 눈까풀이 계속 움직인다. 어딘가와 계속 교신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식물인간으로 자식에게 현몽하는 경우도 있다. 단지 의식이 일어나지 않을 뿐 의식 자체는 존재한다. 이런 것을 16송에서 말하고 있다.
참선 할 때 보면 난 왜 그렇게 망상이 많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어 하는 사람들 많이 있다. 하지만 망상은 복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불자들은 망상이 일어나는 것을 안다. 이미 관 위파사나가 되고 있는 것이다. 끌려가지만 않으면 작은 망상은 작은 깨달음을 큰 망상은 큰 깨달음을 많은 망상은 많은 깨달음을 준다. 직업도 보면 사실 많은 망상 덩어리다. 때문에 수행에 도움이 된다. 나는 깨달은 사람이 아니고 수행자다. 열심히 수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시절 인연이 되면 깨달음을 갖게 될 것이다.
주식이 올랐다 내렸다. 어제보다 올랐어도 올랐다 하고 자기가 산 것보다 올랐어도 올랐다 한다. 그래서 올랐다 내렸다가 정확하지 않다. 그런데 유식을 공부하면 올랐다 내렸다를 정확히 알게 된다. 싸다 비싸다. 요즘 집값이 싸졌지? 그러나 무엇이 싼지 모른다. 요즘 삼성전자 주식 비싸졌잖아? 뭐가 비싸졌는지 모르지만 못 산다. 그런데 혹 어떤 사람은 더 비싸질지도 모른다고 사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싸다 비싸다도 모르면서 말들이 많다. 좋다 나쁘다. 요즘 뭐해야 돼요? 어떤 게 좋은 주식이고 나쁜 주식인지 아나? 솔직히 우리는 올랐다 내렸다 싸다 비싸다 좋다 나쁘다도 모르면서 맨날 이런 말들을 많이 한다.
성공한 사람과 못한 사람의 차이는 알고 하느냐 모르고 하느냐의 차이다. 저 사람은 투자의 귀재다 그런 말 한다. 대표적인 망상이다. 부처님은 많은 사람이 사실이라 말했다 해서 그 말을 믿지 말라 오랜 전통으로 말했다고 해서 그 말을 믿지 말라 권위 있는 사람이 말했다고 그 말을 사실로 믿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부동산 투자 설명회에서 무슨 말 했다고 Lotto하듯 믿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올랐다 내렸다 싸다 비싸다 좋다 나쁘다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누가 모른다고? 내가 모른다.
사회 나와보면 문제가 뭔지도 모르면서 답부터 찍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증권 주식시장에 많다. 그러면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큰 부자는 하늘이 내고 작은 부자는 근면함이 낸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도출한다. 부처님이 아니라 하셨다. 그것은 지혜 문제 복 문제지 사주팔자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주식은 사는 사람도 있고 파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가격을 보면 안 된다. 가격은 칼 끝을 보는 것이고 규모나 거래량을 보는 것은 상대방의 눈동자를 보는 것이라 전에 말했다. 올랐다 내렸다 싸다 비싸다도 정의를 할 필요가 있다. 제일 먼저 알아야 할 점은 좋다 나쁘다 이다.
유명한 운동 선수들을 발굴한 사람들은 좋다 나쁘다를 아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눈 밝은 스승을 만났으니 인복 있는 사람들이다. 부동산에도 좋은 땅 나쁜 땅 건물도 좋은 건물 나쁜 건물 주식도 좋은 주식 나쁜 주식이 있다. 따라서 좋다 나쁘다에 대한 안목이 있어야 한다. 돈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금리다. 천만 원 은행에 맡기면 1년에 60만원 번다. 천 만원 갖고1년에 60만원 못 번다면 사업할 필요 없다. 때문에 은행에서 돈 더 빌려다 사업하는 것이다. 기업들 중엔 은행 금리보다 훨씬 좋은 수익을 내는 회사들이 있다. 그게 좋은 기업이고 그게 안 되면 나쁜 기업이다.
한국은 2002년도까지는 좋은 투자시장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금리는 2자리 수 이상이었는데 기업들 이익은 한 자리 수였기 때문이다. 예로 금리는 11%인데 기업 이익은 9%밖에 안 됐다. 그래서 당시 집안이 갑자기 망하고 싶으면 주식을 하란 말이 있었다. 왜냐하면 나쁜 것을 갖고 투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3년을 넘어서면서 우리 기업들 이익은 금리보다 좋아졌다. 일단 좋다 나쁘다는 금리를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그 기업들 중에서도 훌륭한 것을 찾아야 한다. 이익이 계속 증가하는 기업을 좋은 기업 계속 증가하는 시장을 좋은 시장이라 한다. 한국은 굉장히 좋은 시장이다. 일본도 중국도 그렇게 좋은 시장이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자기자본수익률이 좋은 회사들을 좋다 말한다.
ROE<Return of common Equity> 자기자본 수익률 보통주 소유주에게 귀속되는 순이익을 보통주의 자기자본으로 나누어 계산한 것
이젠 삼성전자가 좋다 포스코가 좋다 그런 말 이젠 하지 마라. 부처님 말씀처럼 좋은지 안 좋은지 확인해 봐라. 다 착각이다. 옛날에 종금사 지방은행들 얼마나 좋았나? 그러나 IMF때 다 망했다. 까보니 아주 나쁜 회사였다. 그러니 명성에 흔들리지 마라. 싸다는 보통 이유나 근거 없이 떨어지는 것을 싸다 말한다.
지난 주 유가가 배럴 당 139불 갔다. 그래서 주식이 400포인트가 내렸다. 유가가 올라 주식이 내렸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유가와 주식은 아무 관계가 없다. 유가가 오른다는 말은 사람들이 잘 살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연탄 때던 사람들이 기름 땐다는 말이다. 중국 인도가 막 땐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장한다는 소리다. 이렇게 아무 관계도 없는데 관계가 있는 것처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떨어진 것을 싸졌다고 하는 것이다.
계속 싸질 수도 있다. 예전에 김일성 사망설이 나오면 주식이 막 올랐다. 김일성이 죽으면 좋을지 나쁠지 정확한 근거도 없는데 올랐다. 이렇게 근거도 없는 데 오른 것이 비싼 것이다. 싸다 비싸다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과 거꾸로 나타난 현상이다.
올랐다 내렸다도 싸다 비싸다와 혼용해서 쓰는 사람들 많다. 그러나 간단히 말하면 사는 사람이 파는 사람보다 많았을 때 올랐다 하고 파는 사람이 사는 사람보다 많았을 때 내렸다 하는 말이 옳다.
그런 말보다 훨씬 더 중요한 말은 오르겠다 내리겠다 싸지겠다 비싸지겠다 좋아지겠다 나빠지겠다를 아는 일이다. 주식시장은 미래 가치를 사고 파는 곳이지 절대 과거나 현재 가치를 사고 파는 곳이 아니다. 때문에 어떻게 되겠다를 알아야 한다. 옛날에 왜 실패했는지 알면 그게 회광반조다. 자기 잘못을 알아 비추어 보면 그때부터 밝은 길로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