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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의 얼굴
나의 미국여행은 동부해안의 ‘PIER39’에서 시작되었다. 금문교 이름하여 Golden Bridge로 상징되는 샌프랜시스코 만(彎)의 풍경은 전형적인 아메리카의 풍경을 보여준다. Bay Bridge다리 역시 가관인데도 금문교 그늘에 가려져서 그런지 여행을 위해 오고가는 동안만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 웅장함 역시 가관이다. PIER39에서 눈에 띠는 것은 물개농장일 것이다. 수 백 마리도 족히 넘을 듯한 물개들의 모습과 그들이 내뿜는 악취는 코가 비틀어질 정도로 심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외곽으로 달리는 버스에서 바라보면서 느끼는 바는 넓은 땅과 풍부함 자체였다. 50개 주 가운데 하나인 이 곳 미국의 한 쪽 귀퉁이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세계의 50%를 점유하고 있다하니 입이 벌어진다. 미국인구 2억7천만명 가운데 농사에 종사하는 인구는 극히 적다. 이 나라에서 농사라는 직업은 고소득 계층으로 농민은 부유층에 속한다. Farmer 즉 농민의 자격을 가지려면 농대 졸업을 해야만 하며 화학이나 유통 분야의 공부까지 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다. 갖가지 농기계 심지어 경비행기조종자격까지 무려 열여덟까징 이르는 자격증을 가져야 농민이 된다고 하니 그 나라 농민의 자질과 위치가 대충 어떠한지 짐작이 간다. 그래서 학교에 기부문화가 발달된 나라라서 그런지 아버지의 직업이 농사라고 하면 기부를 많이 할 수 있는 직업으로써 학교에서도 특별히 관리한다.
이 나라의 농사는 땅이 좁은 우리나라의 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 경비행기를 이용하고 있고 인공위성까지 동원한다. 나라가 넓기 때문에 인공위성을 활용하여 어느 지역의 강수량이 얼마인지 물이 어느 때 어느 지역에 얼마나 필요한지 등을 분석하고 그에 맞추어 인공비를 뿌려주기까지 한다. 인공위성에 나타난 지역별 강수량분포는 색깔별로 나타나 농사에 도움자료로 활용된다. 지나가면서 본 포도 농장의 규모도 규모거니와 그 방식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먹는 건포도 농장을 보았는데 농장 사이사이 차들이 들어 다닐 수 있는 길들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모른다. 포도가 익을 무렵이면 물 공급을 중단하고 자연 고사(枯死)시키는데 그러면 살아남기 위해 포도는 당도를 높인다고 한다. 그렇게 자연 건조된 포도는 파를 타고 지나가면서 막대로 털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첨단 영농기법은 가히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과학적 영농기법은 농사의 효율면에서도 가히 괄목할만한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토마토의 경우 샌디에고 지방의 경우 1에이커당 (1이에커는 약 1250평정도라고 함)1974년도에 1톤이 생산되었지만 1990년에는 같은 면적에서 50톤을 생산하고 있었다. 심지어 연중 3.4모작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생산된 막대한 양의 농산물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풍요의 상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은 농산물처리비용으로 전체 예산의 3.8%를 사용하는 나라다. 그래서 거저라도 줄 테니 가져가라는 것이다. 그것이 처리비용보다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만약 후진국들이 싸다고 문을 함부로 열었다가는 그 가격경쟁력과 물량공세에 자기네 농사는 물론 거덜날 것이 분명하다. 농산물은 전량 나라에서 사들인다. 그래서 농민들은 판로걱정을 할 필요가 없고 그저 농사에만 전념하고 농사만 잘 지으면 된다. 나라는 국민들의 애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분명했다. 농지는 정부가 7년동안 임대해주고 그 기간이 지나면 경작실적이나 농지상태등을 고려하여 불하해 준다.
농지는 2년마다 한 번씩 휴경을 하며 그 때는 우마(牛馬)를 방목하여 자연 땅을 회복시킨다. 그것은 최고의 자연보호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눈에 따는 것은 자그마한 언덕처럼 보이는 산 꼭대기마다 설치하여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풍력발전기였다. 이 풍력발전기는 시속 5마일이하의 바람을 이용한 것으로써 자연을 활용한 지혜를 보여준다.
풍요의 젖줄 서부개발
미국의 풍요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서부지역의 개발은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먼저 1846년 금광개발 붐은 캘리포니어주의 인구증가를 가져왔고, 이어 동서횡단철도의 개발과 함께 1884년의 블랙골드(Black Gold))라고 하는 유전발견은 오늘의 미국의 부(富)의 원동력이 되었다. 미국의 석유자원은 전세계매장량의 58%에 이르고 있지만 그것은 후손들을 위해 아끼면서 중동산을 사다가 사용한다. 그 양도 전 세계 사용량의 64%를 사용한다 하니 미국은 자손대대로 부(富) 독점할 기초를 다진 셈이라고나 할까.
서부바람이 불어오면서 스테이크라는 음식이 각광받게 된다. 스테이크는 사실 상놈들의 음식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1869년 동서횡단철도가 건설되자 방목 소들은 서부에서는 거의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그 가치가 곤두박질 쳤다. 그래서 심지어 길에서도 그냥 마구잡이식으로 잡아먹는 일이 흔했고 그래서 생긴 것이 스테이크라고 하니 상놈들의 음식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특이한 것은 이른 바 독점법을 제정하여 결코 경제가 정치를 좌우하도록 놔두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기고 나는 제주가 있어 돈을 많이 벌어도 재벌이 나라보다 더 클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번은 컴퓨터 황제 빌게이츠도 이 법에 걸려 혼줄 난 적이 있다고 하니 법 앞의 평등은 이 나라를 더욱 부강하게 만들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오늘날 미국이 잘 살게 되어 세계를 지배한다고들 하는데 그 이유를 좀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는 청교도들의 몸에 밴 개척 및 근검정신으로 프론티어 정신이라고도 한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온 청교도들은 이 나라에 발을 딛고 난 후 맨 처음으로 교육기관의 기능도 아울러 수행할 수 있는 교회를 세웠다. 아이들은 부모말씀에 절대 순종을 배워나갔고 대대로 지켜 나갔다. 프론티어 정신에는 용돈이라는 개념은 없으며 일 자체가 용돈이었다. 그래서 자녀들은 공짜라는 것은 없는 것을 배워 나간다. 그 자녀들이 오늘날에도 시간당 5달러정도 주는 잔디 깎는 일을 가장 싫어한다. 하지만 돈은 노동을 통해 버는 것이 가장 정당하며 그러기 위해서 놀아서는 안 된다. 어릴 때부터 귀하게 버는 것을 배우는 것이 그 나라 교육이다.
여행당시는 IMF가 우리나라를 강타하고 겨우 벗어날 무렵이었다. 그래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사람들이 보는 IMF국가에 대한 반응이 궁금했다. 그들은 IMF맞은 나라들을 한 마디로 타락한 나라라고 했다. 대부분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하고 정부는 갈팡질팡 하면서 나오게 되는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모 개그맨이 진행한 프로그램 중에 ‘양심냉장고’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양심을 팔아먹은 시대상을 잘 반영하는 것 같아 할말을 잃었다.
캘리포니아 지역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많이 눈에 것 중 하나는 오크 트리(Oak tree)라는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다. 이 나무는 그 모양이 마치 머리 풀어헤친 모습이 유령 같다 하여 유령나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여행의 묘미 가운데 하나는 양념처럼 들려오는 그런 이야기 것이다. 정말 그렇게 보니 해거름 녘에 정말 그렇게 보였다.
미국을 여행하다 보면 참 큰 나라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하로 지루하여 이제 목적지가 얼마 남았느냐고 물으면 ‘조금가면 됩니다’하면 한 대여섯 시간 정도는 족히 걸린다는 말이도 ‘업지면 코닿을 거리’라고 하면 한 두시간정도 남았다고 보면 된다. 그 먼 거리를 가면서도 신기한 것은 운전자 사고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의 운전기사는 박사 수준이라고 한다. 실제 버스 운전자들은 가면서 계속 기록을 했다. 어디서 몇시몇 분에 출발했고 몇시 몇분에 어디에서 주유를 했으며 어디서 잠시 쉬었다는 것까지 로드북(Road book)에 기록한다. 그리고 길 가다가 w마시 과속이라도 하면 언제 나타났는지 금방 경창차가 나타나 딱지를 끊는다. 지나가는 차들이 무조건 신고들 하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비정하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자유 민주주의라는 틀을 유지하는 수단이었고 국민들은 기꺼이 거기에 참여하고 있었다.
요세미티국립공원
캘리포니아 안에는 높이 5.300미터에 318개나 되는 많은 호수를 가지고 있다는 미국의 최고봉 위턴산이 있다. 그 안에는 그 규모나 아름답기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기도 크기만한 요세미티 국립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여행객들에게는 필수코스다. 서부시대 당시의 옛 마을을 그대로 복원한 지역도 있고, 거인의 나라에 온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최소 50미터 이상의 거대한 키를 자랑하는 메타세콰이어라는 나무들의 숲도 있다. 숲의 위용은 인간의 나약함을 발견하게 하며, 오랜 세월 속에서 풍상을 겪은 나무들이 드러누워 서서히 썩어가고 있는 모습들은 인간의 오만을 겸허하게 만드는 만들어 버린다. 요세미티는 빙하가 지나가면서 깊게 패인 자국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빙하는 U자영 계곡을 만들었고 그 주변에는 하프돔, 높이 1천미터의 엘카피탄 바위, 바위절벽 꼭대기 아스라이 면사포처럼 흘러내리면서 수줍게 얼굴을 가리는 모습으로 하여 붙여진 면사포폭포, 지구 최고(最古)의 나무라고 일컫는 삼마무의 일종인 레드우드, 마리포사글로브 등을 만들어 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 공원에서 송어낚시를 한 후 돌아보면서 그린벨트를 착안하였다고 한다. 그 외 전두환전 대통령이 다녀갔다는 와우노 호텔이랄지 영국의 엘리자벳 여왕이 그렇게 이 공원을 방문하기를 소원했다는 말이나 이 공원을 자손대대로 보존하기 위해 미 대통령이 공원관리국에 최소의 인원만을 입장허용토록 지시하였다는 말도 바람결에 들려온다. 언젠가 이 아름다운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불이 났다. 당시 전해오는 목격담 가운데는 불난 모습이 마치하늘에 닿았다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그 때 불은 자연발화된 것으로 자연발화에 필요한 요소인 열, 산소, 그리고 송진이라고 하는 매개체가 필요했고 자연히 흘러내린 송진이 뜨거운 날씨와 숲이 만들어낸 산소와 어우러져 발화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 나라는 인공산불은 진화하지만 자연산불은 그대로 끄지 않고 자연 소멸될 때까지 기다린다고 한다. 그것은 후손들이 그 불난자리가 훗날 어떻게 변해갔는가 알 수 있도록 하는 배려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산불을 자연그대로 기록으로 남기고 심지어 그 자리에 타임캡슐까지 묻는다고 하니 자연과 후손까지 생각하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불났다고 하면 무조건 다려들어 끄고 마는 우리와 다른 모습이었다. 공원안의 마리포사 글로브지역은 나무나이 약 5300년이나 되는 메타세콰이어라는 나무들의 집단 서식지이다. 레드 우트트리라고도 하는 이ㅡ 나무는 인디언 추장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오래전 죽을 병이 든 한 사람이 미국판 고려장(高麗葬)을 당해 이 숲에 버려졌는데 오히려 오래 장수하고 천수(天壽)를 누렸다고 전해지는 지역이다. 그만큼 숲이 좋고 죽어가는 생명까지도 살릴만큼 강력한 생명의 복원력을 가진 신비한 지역이다.
요세미티공원에는 1년에 약 4천만명이 찾아온다. 그 많은 관광객에도 불구하고 휴지 한 장, 빈 병 하나 찾을 수 없다. 자칫 나뭇가지 하나, 돌멩이 하나라도 실수로 가지고 나오다 적발되면 감옥갈 각오와 함께 관광버스기사 및 안내원까지도 법적 처벌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관광버스 기사와 안내원들이 가장 겁내는 곳이 이곳이라고 한다. 숲속의 주인인 동물에 대한 배려도 각별하여 오후 5시이후에 기분좋다고 ‘야호’ 한 마디라도 질러 댔다가는 동물안면방해죄로 처벌된다. 산이 70%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 산에만 갔다하면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는 것과 비교되었다. 남의 숲속에 와서 주인이 쉬고 있는 집 앞에서 내 기분낸다고 소리를 질러내는 것은 정말 무식한 행위다.
후손을 위해 아끼는 부존자원
사막을 지나가는 길은 그리 녹록치 않다. 아무리 땅이 넓은 나라라고 하지만 우리네 사람들 상식으로는 근 하룻길이니 상당한 거리다. 길 양편에 나타나는 마을들의 모습은 차들로 분주한 도로와는 달리 한가하기 그지없다. 동네마다 마을 운동장엔 야간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고 아이들은 밤에도 야구 등을 하면서 논다. 부자의 나라답다. 가다보면 길 가 농지에 커다란 나귀 모양의 철구조물들이 펌프질 하는 것이 자주 보인다. 이 기계는 우리나라 이민3세인 홍씨라는 사람이 발명한 유전을 뽑는 기계로써 홍스펌프(Hong's pump)로 부르며, 특허가 난 제품이라고 한다. 주로 이런 구조물들은 베이커스필드라고 하는 지역에서 보이며 그 지역은 최대산유생산유전(油田)지대라고 한다. 그러나 사유지에서만 퍼울리며 공유지에서는 퍼내지 못한다고 한다. 정말 길가 농장한 가운데마다 물을 퍼내듯이 기름을 퍼올리는 나라로 과연 이 나라는 부러울 게 없는 부존자원(賦存資源)천지다.
99번고속도로는 미국내 최대의 농산물유통도로의 구실을 한다. 농산물인지 공산품인지 모를 제품들을 가득 실은 차들의 행진이 끝이 없다. 미국의 고속도로는 시공때부터 미리 가운데 여분의 땅을 미리 확보하고 건설한다. 교통량 증가시에 대비하여 그런다고 한다. 참으로 거시적 행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고속도로 한가운데 주로 심어진 나무가운데 하나는 유도화라는 나무다. 그 나무는 독성이 강한 유실수로 그 나무의 뿌리를 갉아먹는 두더지와는 천적관계에 있다. 그렇다고 두더지를 잡을 경우 처벌하며 죽일 경우 2달정도의 징역에 처한다. 강력한 동물보호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놀라운 것은 고속도로 양 옆으로 철사로 주로 야행성 짐승이 넘어오면서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동물보호협회에서 만들어 놓은 보호막이다. 끝없이 긴 고속도로 옆에 쳐있는 펜스는 사람과 동물의 공존을 위한 장치였다. 참으로 도로를 넘다가 피흘리며 차에 치어 죽어간 동물들을 차바퀴로 다시 밟고 다니는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미국엔 씨티(city)즉 도시가 산재해 있는데 그 가운데는 아주 5가구밖에 살지 않는 초미니도시들도 있다. 지천으로 널린게 땅인지라 주민들이 모여 자치행정이나 치안을 하겠다면 그대로 인정해주는 나라다. 국민이 그야말로 주인인 나라이다.
백인 그리고 흑인
본래 미국은 인디언의 나라다. 인디언들은 아시아에서 유입된 종족으로 빙하기에 추위를 피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6월에 얼고 2월에 얼음이 풀린다고 하는 동토(凍土)의 베링해협을 건너 알래스카너머 푸른 초원을 찾아 남하한 그들은 우랄 알타이어족이다. 처음에는 그들은 캐나다등지에서 수렵생활을 하면서 점차 미대륙으로 퍼져나갔다. 그들은 록키산맥과 애팔래치아산맥 시에라네바다산맥을 무대로 삼아 활동하면서 나중에는 남미대륙까지 진출했다. 이제 ‘이 곳은 내 땅’이라고 할 정도가 되자 갑자기 콜럼부스를 주축으로 한 백인이 등장했다. 그들보다 먼저는 3년전쯤 네덜란드계 바이킹이 들어왔지만 결구 돌아가자 백인이 들이닥친 것이다. 당시 탐험가였던 아메리고베스부치 시절 백인과 인디언의 관계는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세계는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휩쓸었다. 그들은 동물박제를 좋아했으며 아프리카를 선호하였으며 영국 청교도들은 네덜란드로 눈을 돌렸다. 산업혁명기에 접어든 영국은 공장인력을 필요로 하였고 그 수요는 흑인들이 채우게 된다. 흑인을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노동력으로 보았던 시절 그 애환은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와 같은 흑인의 삶은 영가에 잘 나타난다. 흑인을 노예로 취급하던 주는 미국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스물 한개의 주에 이른다. 뿌리라는 영화 즉 ‘루트(root)’에서 주인공 쿤타킨테에게 ‘네 이름이 뭐냐?’라는 물음에서 볼 수 있듯이 흑인들은 우리처럼 창씨개명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결국 링컨의 노예해방운동이 일어났지만 그것은 인권전쟁이었다기보다는 남북간의 경제전쟁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다. 흑인에 대한 차별은 그 역사가 길고 길다. 링컨도 결국 흑인의 진정한 해방을 구현시키는데 실패하였고 그것은 1960년대까지도 아니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자본주의는 오늘날 경제적 논리를 앞세워 제2의 노예제도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보여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동남아 지역의 근로자들에 대한 인권유린이나 착취를 볼 수 있다. 1960년대에 들어서자 제2의 흑인노예해방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하여 흑인 깡패조직을 거느려 이른 바 x세대(x generation)의 기원이라고 하는 말콤 엑스 등의 투쟁은 그것을 잘 말해준다. 말콤 엑스는 본래 깡패였으나 수감중 회교 율법책을 접한 후 기독교에서 회교도로 개종한 후 나중엔 인권운동가로 변신한 인물이다. 그 결과로 흑인들은 무심코 받아들일 수 있는 자유로운 여행도 가능하게 되었다.
지금은 자꾸 줄고 있는 흑인에 대해 특별관리정책을 사용한다. 즉 흑인이 아이를 낳으면 한 사람당 18세까지 6백달러를 지급하기도 하며, 각종 세제상 혜택도 준다. 특히 피부색이 가무잡잡하여 흑인이나 다름없이 취급되는 인디언들의 경우 보호구역을 정해놓고 거주하게 한다. 미국인들이 바라보는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은 게으르고 그래서 노동을 하기 싫어하며 그 결과 서서히 멸종되어 갈 것이라고 보는 편견이 아직도 많다. 그러나 'I have a dream'이라는 슬로우건으로 흑인에 대한 인권을 일깨웠던 흑인 인권 운동가 마르틴 루터 킹 목사등을 통해 흑인들은 이제 깨어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사막을 옥토로 만든 사람들
영화 무대에도 자주 등장하는 네바다 사막은 미국 전체 지도로 보면 서부끝에 위치해 있다. 아주 옛날 바다가 뭍으로 솟아올라 만들어졌다는 이 사막은 정말 민둥민둥한 산이다. 나무는 없고 가다보면 깊은 바닷속을 가는 기분이 든다. 아스라한 사막의 수평선 지점에는 수석같이 생긴 작은 산들이 마치 빗자루로 깨끗하게 쓸어놓은 듯 매끄럽다. 온 천지에 깔린 것은 온통 선인장이나 덤블트리(dumble tree)같은 식물들 뿐이다. ‘구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잇는 덤블트리는 바람이 불면 떼굴떼굴 굴러다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신의 창조섭리가 첨 오묘하다. 선인장은 멀리서 보면 마치 두 팔을 높이 쳐든 용사같이 보인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죠슈아트리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여호수아를 연상시켜 붙어진 이름이라고 하며 서부대륙개척에 많은 공헌을 했다고 한다. 사막에는 물을 먹지 못하면 죽는 사막거북도 있고 방울뱀, 토끼, 전갈들도 산다. 아무것도 살지 못할 것 같은 사막 안의 작렬하는 태양을 지붕삼아 살아가는 동식물들의 강인한 생식력이 놀랍다. 이 곳 사막을 무대로 사람들은 많은 역사를 만들어 나갔다. 그 중 하나는 말일성도 그리스도라고 불리우는 몰론교이뎌 이 곳이 주 무대였다. 그 교주는 14살 때 신의 계시를 받고 창시했다고 전해진다. 사막 안에는 크고 작은 도시들이 많다. 사막을 버려진 땅에서 옥토로 만든 일은 주로 개척정신으로 무장한 서부시대의 사람들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모하비시티다. 이 도시는 사막 한 가운데 만들어진 도시로 인구 2천 5백명정도이며 유태인들이 만들었다. 유태인들은 그 곳에 미국전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비행기들의 보관장소와 수명이 다해 폐기처분해야 할 비행기들의 처분시 그 처리장소에 착안했다. 비행기 격납고를 만들었고 그것을 항공사들에게 대여해준다. 이른바 비행기 창고대여업인 셈이다. 그 후 그들은 중고비행기매매센터로 업종을 전환하였고 그 다음으로는 신형 비행기검사정을 만들었다. 유태인들은 비행기창고대여업으로 돈을 벌었겠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다른데서 돈벌이수단을 찾았다. 창고대여비는 아주 싼 반면 그 대신 그곳을 이용하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이 묵을 호텔 숙박비를 엄청나게 물렸다. 먼 거리에서 찾아온 손님들에게는 사막 한가운데서 묵을 숙박시설은 그 곳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는지라 유태인들이 세운 숙박시설을 상요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자연스레 형성된 도시와 함께 자연 유명한 차세대 전폭기인 F18기라거나 스텔스기 등이 뜨고 내리는 에드워드공군기지가 바로 그 옆에 위치한 것도 사막의 도시를 키운 원인이 되었다. 미 대통령 전용기가 뜨고 내리는 곳도 바로 이 곳이다. 사막의 안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사막 내에 만들어진 활주로는 그 길이가 얼마나 긴지 저격수의 총알이 날아가다가 미치지 못하고 그냥 떨어질 정도다고 한다. 사막에다 그런 시설을 만들어 돈벌 궁리를 해 낸 유태인의 발상이 참 놀랍다. 위대한 생각이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사막에서 숨쉬는 미국의 정신
바스토우시티는 전 세계 식량이 너무 많이 남아 돈 시기에 형성된 도시다. 그래서 남아도는 식량을 실어나르기 위해 철도를 놓았고 그 곳은 철도산업의 요충지가 되었다. 바스토우는 유니언 퍼시픽(Union Pacific)이라는 철도회사의 부회장 이름을 딴 것이다. 서부영화 ‘하이눈’에 나오는 지역도 이 곳이다. 눈을 감고 영화장면을 떠올리면서 그 당시를 회고하는 동안 기차지나가는 소리에 눈을 떴다. 끝이 안보이는 긴 기차였다. 깊은 해저(海底)를 지렁이처럼 기어가는 기차는 90량짜리였다. 일명 마일트레인(miletrain)이라고 부르는 기차는 보통 백량은 된다. 한번 건널목에서 서 있노라면 30분은 족히 소요된다고 할 만큼 길고 긴 기차는 그 거름걸이도 느리기만 하다. 한인식당(식당이름 sizzler)이 사막 한 가운데 있어 잠시 들러 배를 채운다. 이국땅에서 벌어먹고 사는 우리 민족의 강인함과 동포애가 치밀어 오른다.
사막에는 영화촬영장소가 많았다. 헐리데이비슨이 구형차 4대를 끌고서 백인의 자존심을 보여준 장소도 있고 사막의 여우라고 하는 전차군단의 패튼 장군의 기갑훈련장소와 미해병훈련보급단도 있다. 칼리코(CALICO)라는 이름의 은(銀)광산은 지금은 사향길이라서 그런지 도시이름도 고스트타운(유령의 도시)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스트타운은 젊은이들의 상징이랄 수 있는 블루진 즉 청바지의 기원이다. 청바지는 이 곳 광산촌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옷을 찾다가 천막 천을 가지고 만들어 입은 것이 그 시작이었는데 리바이스라는 사람이 최초로 상품화에 성공했다.
사막을 횡단하면서 100년 앞을 내다보는 미국인들의 시야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비록 신기루가 상징되는 불모의 척박한 땅이지만 그들은 사막안에 문자 그래도 쭉 뻗은 고속도로와 철도를 만들고 미래의 자원인 태양열을 이용할 연구소를 만들었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15번고속도로는 미국의 자존심으로 일컬어진다. 미국은 사막에서 숨쉬고 있었고 사막에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불모지에 핀 꽃 라스베이거스
라스베이거스는 사막 가운데 세워진 빛의 도시이다. 라스베이거스로 들어가는 수많은 차들을 보면서 안내원이 미국내 3대 양아치 직업이 있는데 그것은 자동차 세일즈맨(딜러 Dealer), 보험회사직원, 변호사PI(변호사에게 일감을 물어다주는 보조원)이라고 하는 사이 차는 환락의 도시로 들어선다. 낮의 라스베이거스는 희끄무레한 시멘트 건물뿐이다. 이 곳 라스베이거스는 카지노로 유명하다. 이 곳에서 1년에 한국인들이 연간 쏟아 붓는 돈은 약 3억달러정도라고 한다. 지금은 세계 유명 골퍼가 된 박 세리도 한 때 이 곳에서 약 80만달러르 날렸다는 라스베이거스, 얼마나 한국인들이 이 곳을 많이 찾는지 대한항공에서 직항로까지 든 계획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20달러도 안 되는 품삯을 벌기위해 거리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망할 놈의 카지노라는 울화도 치밀어 오른다. 한국에 IMF가 그냥 온게 아니라는 안내원의 흥분에 작은 애국심이 일어난다. 라스베이거스에는 참 유면한 것도 많다. 세계최고 아니면 상대 안한다는 미국의 자존심이 극명하게 반영된 도시다. 이곳을 찾는 미국인들 가운데는 젊은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젊은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그져 즐기기 위해 찾아온다. 눈으로 보기에 정말 뚱뚱한 사람도 많다. 이 나라에서는 몸무게가 3백파운드를 넘어서면 장야자로 분류되고 나라에서 연금이 나온다고 하니 참 살기 좋은 나라처럼 보인다.
라스베이거스는 호텔 전시장이다. 그것도 저마다의 특생과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다. 어둠이 내리면 허물벗은 뱀처럼 낮의 사막의 지루함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요염한 자태를 뽐낸다. 엠지엠(MGM)호텔은 객실 5천개에 엘리베이터만 99개나 되어 그 규모에 있어 압권이다. 시저스 팔레스호텔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비버리힐스 다음으로 비싼 쇼핑을 할 수 있는 호텔이다. 비운의 복서인 우리나라의 김득구 선수가 사망한 호텔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세계에서 가장 큰 금덩어리를 가지고 손님을 끌어들이는 호텔도 있다. 거리에 넘치는 인파, 눈동자를 가만히 멈추지 못하게 하는 휘황한 불빛, 육교에 설치된 엘리베이터와 도로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 움직이는 하늘,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지 자칫 방심하다간 영원한 미아가 되기 쉬운 곳이다. 그 뿐인가! 거리에는 남의 전혀 의식하지 않은 연인들의 포옹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쾌락의 도시, 하룻밤 풋사랑을 위해 과감히 몸을 던지는 밤의 도시, 맘에 맞지 않으면 언제라도 헤어지고 감정적으로 맘에 들면 그 자리에서라도 결혼을 약속하는 도시 그래서 거리엔 ‘결혼하고 가세요! 주례비 세일, 단돈 70불!’이라는 팻말을 목사님이 들고 호객행위를 하는 도시, 그 도시의 밤이 깊고 거리엔 각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의 인파에 밀려 우리는 어디론가 떠밀려간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분수쇼, 파리의 에펠탑, 바이킹시대를 연상시키는 호텔의 노천쇼, 거기에 호텔들 마다 만원인 카지노장 이 곳 라스베이거스는 분명 환락을 먹고 살아가는 도시다. 카지노장에서서 쓸 돈 30만달러를 가지고 오는 고객에게는 긴 리무진과 왕복 항공료에 호텔을 떠날 때까지 숙식 등 모든 것이 무료 제공된다는 라스베이거스, 그것은 돈을 쓰려는 자에게는 천국이었지만 돈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배려하지 않고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두 얼굴의 도시이다. 환락의 밤을 뒤로 하고 코로라도의 강을 따라 서 있는 리버 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콜로라도는 이 일대의 젖줄이다. 밤을 그냥 보낼수 없어 혼자서 강변에 나가 본다. 칠흑같은 어둠에 적막한 밤거리가 묘한 조화를 이루는 도시에 강은 더없이 도도하다.
그랜드캐니언 가는 길
이리조나주는 미국에서 약 80만 명의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콜로라도 강을 건너면 아리조나주다. 이 주는 한반도의 2배 면적에 인구는 180만명이다. 백인이 지배하는 미구사회에서 이상스럽게 들릴 모른지만 그래도 동양적 효를 생각나게 하는 곳은 흑인들이 사는 곳이라 한다. 흑인 자녀들은 비록 교육은 잘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부모 모실 줄 안다고 한다. 이국땅에서 듣는 효에 관한 이야기가 새롭다. 그랜드캐년으로 가는 길에서 먼저 만나는 도시는 불헤드시티다. 도시 이름은 ‘소대가리도시’라는 뜻이라 한다. 이 도시에는 월남참전용사들의 정착촌이 있다. 이 곳 역시 사막지대이며 사시사철 덥다. 그런데 사막의 날씨는 신경통을 낫게 한다고 하여 노후에 은퇴하여 일부러 이 곳을 찾아 장착하는 미국인들도 많다고 한다. 노인에게 큰 암적 존재인 신경통을 허용하지 않는 사막은 그야말로 천연 드라이 사우나탕인 셈이다. 지금도 인디언들은 설렁탕을 먹고 아이를 업어키우며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으로 보아 역사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진한 혈연의 정을 감지하게 만든다. 다음으로 스쳐 지나가는 도시는 킹맨시티다. 이 곳에서 인디오들과 백인들 사이에 긴 전투가 있었다. 인디오들의 지도자 제라니모는 백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나중에 천연요새인 후알라파이산에서 인디언들이 다수가 멸족당했다고 전해진다. 인디언들과 백인간의 싸움은 이 곳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있었다. 인디언총연합사령관이었던 씨링벌장군은 록키산맥을 무대로 하여 미국인 5천명과 전투를 벌였고 급기야는 250명이 캐나다로 피신했으며 그들은 캐나다에서 서커스단을 운영하면서 생업을 유지했다고 전해진다. 이윽고 들어선 곳은 인디언트레이드(TRADE)다. 그 곳에서는 타 지역 사람이 들어와 가게라도 차리려 할 경우 그 지역 주민들 3사람만 반대하면 허용되지 않을 만큼 소위 텃새가 심한 지역이라고 한다.
그랜드캐니언은 갑자기 나타난다고 했다. 안내원의 설명으로 긴장하는 사이 도착했다는 안내가 나온다. 그랜드캐니언은 사진을 찍어가는 곳이 아니라 한다. 그 곳은 가슴에 담아가는 곳이며 경견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향하여 죄를 토설하는 곳이라 한다.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은 그랜드캐니언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서 ‘하나님 저는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았습니다’라고 고백하고서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꽁무니를 뺐다는 곳이다. 그랜드캐니언은 억겁의 세월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흔적을 남긴 곳이다. 신(神) 도성처럼 거룩하고 경외심(敬畏心)이 우러나오는 곳이며 현재 속에서 과거를 바라보고 미래를 보잘것없이 만들어 버리는 곳이다. 이 곳을 찾아오기 위해 긴 사막을 가로질러 온 끝에 일자로 수평선을 긋듯이 놓여있는 그랜드캐니언! 바라보면서 신의 무한한 경륜을 느끼게 되고 인간의 유한함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 곳에서 인간의 오만을 속히 벗어야 하며 경건의 옷을 조심스럽게 갈아입어야 한다.
아! 이 곳 그랜드캐니언에서 난 신(神)을 보았네/죽을 것 같네/사막의 끝자락에 서있는
성전, 그 거룩함을 보았네/ 이제는 자유롭게 볼 수 있지만 경외심은 구름처럼 피어오르네/ 그대, 먼 길 걸어서 찾아온 길손이여/ 신을 벗으라/ 그대의 오만을 내려놓으라/지금 서 있는 곳, 이 곳은 거룩한 땅이니/ -이한규-
성지 그랜드캐니언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엔 황금빛 노을이 뒤에서 배웅한다. 내려오는 길 옆 숲속의 향나무들은 기도하는 자세로 서 있다. 달은 벌써 저만치 기울어가고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다. 이제 다시 저 거대한 사막을 지나 우리는 어디로 가는 있는 것인가! 종일을 달려도 새 한 마리 볼 수 없다는 긴 사막의 여정에 길동무하려는 듯 외로운 길만이 실처럼 뻗어 있다.
자원의 보고 사막
다시 사막으로 들어간다, 올 때 왔던 그 길은 아니다. 바스토우를 거쳐 가는 길목엔 이상한 건물들도 많다. 물어보니 사막의 소금지대도 있고 석탄지도도 있어서 그런다고 했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이용하여 솔라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곳도 있다. 이 솔라 에너지는 소금을 이용하여 생산하는 전력이다. 액화시킨 소금은 4백킬로미터 이상을 건너와 화력발전에너지로 사용된다. 사막은 그러고 보면 무한한 자원의 보고(寶庫)이다. 쓸모없게 보였던 불모의 사막의 돈 덩어리다. 자연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보화덩어리가 되기도 하고 골치덩이가 되기도 한다는 교훈을 가르쳐 준다. 우리 인생도 사막같이 감내하기 힘든 기간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 활용여부에 따라 더 성숙한 인간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가다보면 니들스시티(needles city, 바늘도시라는 의미)가 나온다. 그 곳 태양의 뜨겁기가 바늘처럼 쑤시는 것처럼 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런 사막 도시에도 자치위원회가 있으며 의회가 있다. 의회회의는 보통 오후 1시간 30분정도 열려 안건을 처리하고 의원들은 곧바로 생업으로 돌아간다. 의원 4.5명정도는 꼭 쓰레기장 같은 실생활에 필요한 것들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간다고 한다. 바람직한 의원들의 활동모습이다.
한국인 그리고 일본인
우리 한국인과 일본인은 쇼핑에서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일본인들의 친절은 손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공항면세점에서의 친절은 말할 것도 없고 탑승직전 비행기 문 앞에까지 들어와 물건을 들고 와 일일이 손님을 찾아 건네주는 그들의 상술에 전율이 느껴진다. 도처에 쌓인 일본제품들, 거기에다가 메이드 인 차이나가 점령하고 있다. 한국은 어디 있는가? 이 나라에 더 이상 미국은 없다는 성급한 생각도 든다.
한국인은 상품가게에 가면 5분내지 10정도면 건성으로 쇼핑을 끝낸다. 인사치레 상품시기에 가격 깎기에 바쁘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2시간정도 꼼꼼하게 물건을 살피고 난 후 구매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일본이 여전히 앞서가는 것과 잘사는 이유가 조금은 보인다.
LA의 망향가
태평양을 마주하고 한국과 거의 수평으로 마주보이는 곳이 LA다. 세계적 수준의 행사를 소화해 내려면 우선 호텔객실이 많아야 한다. LA에는 약 22.2000개의 특급객실이 준비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5천개에 비하면 정말 엄청나다. 30만명 정도의 행사도 있는데 그 때에는 그래도 객실이 부족하다고 하니 역시 국제적 도시라는 실감이 난다.
세계 최대의 부자나라 미국의 LA엔 그러나 거지도 많다. 거지 가운데는 한국인 의사도 있으며 최고학부를 나온 미국인들도 있다고 한다. 도시 마천루 뒷골목 으스름한 곳 어디나 거지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빌딩들 가운데 70 내지 80%는 일본인 소유라고 한다. 그 도시가 낮엔 화이트칼라의 도시지만 밤엔 흑인과 할렘으로 상징되는 유령의 도시가 된다. 그래도 겨울에는 거지들을 몰아다가 시청 한쪽에 임시바람막이를 만들고 겨울을 나도록 배려한다는 것을 보면 이 나라의 인권을 보는 것 같았다.
LA미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동포들은 태평양 건너의 우리 한국 소식을 우리보다 더 빨리 접한다. 그들은 이 먼 까지 와서 사진 찍기에 바븐 한국인은 혐오한다고 했다. 국민들 혈세(血稅)로 출장 온 공무원들이 배우고 가기보다는 관광에 열을 올리고 돌아갈 즈음에는 하부직원들이 미국 지역단위 관공서에 들려 관청 유인물을 수거하러 다니는 모습을 보면 화난다고 했다. 이 나라는 개인이 총을 소지할 수 있다. 호신용으로 소유하다가 총을 모으는 것D 취미가 된 사람도 많다고 한다. 뉴스에선\서는 총1정당 5달러에 수거한다는 뉴스도 나온다. 잠시 들린 LA한 호텔 면세점에서 만난 한 한국인 중년여성 종업원은 서너 번 정도 총기강도로부터 위험을 받았다는 고백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치안의 어려움이 있다. 우리를 실은 관광버스 기사도 가게를 운영하면서 들이닥친 강도에게 총 5방을 맞고 살아나 상대방을 죽이고 더 안전한 직업으로 버스를 운전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IMF때 교포들이 금을 모으고 서럽게 번 돈, 그래서 자신도 아까 와서 쓰지 못하고 모아둔 돈 4억 5천만 달러를 모아 한국의 빚 갚는데 보태라고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들 눈에 한국은 정쟁에 날이 새는 줄 모르는 모습에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고 한다.
차라리 다른 말은 몰라도 너희들 잘 사는 나라에서 돈벌었으니 한국에 좀 쓰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한다. 100% 순수하게 국가의 도움 없이 자신들만의 노력으로 일군 것이고, 우리나라 정부가 동포들의 애환을 듣고 미국정부에 세금 한 푼 덜 내도록 해준 일이 없는데도 함부로 이야기 하고 헐뜯는다는 소식에 분개하기도 했다. 그 곳 LA에만 한국인 교회가 약 9백여 개 가 된다. 그렇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예외 없이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라라 목사님들 사모까지도 접시닦이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나라다. 그래서 사는 게 고단하기 짝이 없다. 모처럼 한국에서 아는 사람이 아 어온다면, 내심 괴롭다고 한다. 그래서 아는 사람일수록 그냥 모른 체 하고 가는 것이 자신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한다. 안다고 전화하지 말고 그저 자신들 일정에 맞추어 떠나면서 공항에서 ‘나중에 기회 되면 만나자’는 전화한 통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고 했다.
우리가 들른 한인 식당가 소위 한인 타운은 마치 조선족 자치구 연변처럼 미국인들의 생활상에 비해 초라하다. 인종차별은 그 나라에서 우리에게만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인종차별은 노인층으로 갈수록 그리고 남부로 갈수록 더 심하다고 한다. 백인이 보기에 한국인은 아무래도 유색인종으로 분류하고 차별을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 동포들은 잡초처럼 억세고 질긴 모습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몇 년 전 LA흑인폭동을 회고하면서 그들은 약소민족의 설움에 눈물을 흘리고 한다. 지금은 그저 흘러간 노래처럼 기억될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힘없는 이방인의 서러움을 뼈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당당한 미국의 시민권을 가진 시민의 자무심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우리가 무관심한 도안 그들은 억척스레 살아남아 미국의 일원이 되었다. 가끔씩 LA교민회장을 지낸 분들이 그들의 권리옹호보다는 얼마 안 되어 자신의 영달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간 다음 정치인의 길을 밟고 교민회를 이용하는 사례들이 있어 화가
난다고도 했다.
독버섯처럼 살아남은 우리네 동포들, 그들의 공통된 소원은 단 한 가지, 그래도 고국에 돌아가는 것이다. 고국에 묻히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소망이다. 눈을 감고 있으면 태평양건너 저편에 한국이 보인다고 한다. 흐린 날에도 보인다고 한다. 그들에게 그리움이 얼마나 진하고 깊은지 알 것 같다. 서쪽 바다건너 나의 조국이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이다. 하루 종일 틀러놓는 교포방송으로 한국에의 그리움을 해소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우리가 할 일은 좋은 소식을 자꾸 보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