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샬롬~~~안녕하세요!!! 궁금한 것이 있어서 글을 올립니다. 무교회주의 운동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이 운동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nswer
1. 넓은 의미에서 "무교회주의"는 "교회주의"(조직화된 제도로서의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견해)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신앙이나 신학사상을 말합니다.
한국에서의 무교회주의 운동은 무교회주의 창시자인 우치무라 간조의 문하생으로 있던 한국 유학생들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김교신은 1921년에 우치무라 간조의 로마서 강의를 청강했으며, 귀국할 때(27년 3월)까지 약 7년간 우찌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해서 함석헌, 송두용, 정상훈, 유석동, 양인성 등이 1927년 7월에 동인지 형태의 월간지 《성서조선(聖書朝鮮)》을 발간했습니다. 그리고 이 잡지가 한국에서 무교회주의 운동을 일으킨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2. 김교신은 "무교회주의가 진정한 기독교이며, 무교회주의자가 진정한 크리스챤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제도화된 교회의 유무(有無)나, 세례의 유무는 참 신자가 되는 데 아무 관계가 없으며, 무교회주의가 복음이고, 무교회주의자가 곧 신자라고 말합니다. 그는 참 기독교는 교회가 없어도 존재할 수 있으며, 구원을 받는 것도 교리가 없어도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무교회주의 신앙형태는 그의 동료인 함석헌에 와서 사상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함석헌은 '무교회주의'를 교회가 바리새인화 되는 것, 즉 조직교회가 복음에서 벗어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대안(代案)으로 보았습니다.
3. 그러나 아직까지도 무교회 주의는 교회 밖에서 외치는 '재야의 소리'로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현재는 임세영 교수, 최정일, 한병덕 교사, 박상익 교수 등이 3세대 인물들이 성서연구를 통해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김교신과 같이 소규모 성서연구 모임을 가지면서, 제도로부터 한 걸음 비켜선 채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서조선>의 뒤를 잇는 <성서신애>, <성경연구> 등을 발행하여 회원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는 여러 무교회주의자들이 있지만, 제도적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무교회주의 교세는 오류동 모임의 이진구 선생이 발행하는 <성서신애>가 약 2백 부 정도, 그리고 종로 YMCA 모임에서 발행하는 <성경연구>가 약 4백부 전도 발행되고 있다는 것을 통해서 그 세력을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또한 무교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여름과 겨울에 한 차례씩 연합성서집회를 열고 있으며, 이 집회에는 약 7-80명 전도가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 무교회주의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상익 교수의 칼럼(http://column.daum.net/clio53)에 약 3백 명의 회원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4. 무교회주의자들의 성경연구
그러면 기독교인들이 정말로 제도화된 교회 조직이나 목회자에 의존하지 않고 개별적인 노력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사실 특별한 영성과 성경에 대한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 아닌 이상, 교회나 목회자 없이 홀로 성경을 배우고 신앙을 지켜 나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를 위해서 김교신 선생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어, 독일어, 희랍어 공부를 하도록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혼자 성경을 연구하려면 권위 있는 성서 주석을 직접 읽어야 하며, 성경 원문을 직접 해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실제로 성경 공부를 위해서 독일의 루터의 성서주해나, 기독교 고전 등을 직접 참고하기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교회 신앙의 뿌리를 종교개혁자인 루터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들은 루터가 교회의 권위에 매달리지 않고 스스로 성경해석을 하여 성경의 본질적인 가르침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방법이 바로 목사라는 직제를 거치지 않고 직접 복음에 접근해 나가는 방법이며, 루터가 말한 만인제사장직과 성경지상주의를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무교회주의자들의 성경 공부 방법을 독학으로 검정고시 치는 것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러한 성경 공부 방법은 가능하기만 하면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영어, 독어로 된 기독교 고전을 참고하고, 헬라어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직접 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정말로 극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실 신학교를 졸업하고도 헬라어-히브리서 성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학 교육을 받지 않은 평신도들에게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무교회운동이 지적인 일에 종사하는 교수나 교사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5. 무교회주의자들의 구원관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 있으면 "교회 밖에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말은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들은 제도화된 교회에 출석하거나 교회에서 세례를 받지 않아도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교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교회의 제도나 형식을 거부하지만 복음을 믿기 때문에 기독교인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무교회주의자들은 교회의 형식이나 목사에 의존하지 않고, "나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통해서 신앙 생활을 해야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 신앙을 세우지 못하는 사람들은 교회와 목사가 필요하지만, 독립적인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교회 제도나 목사가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그들은 우찌무라 간조나 김교신을 의지해서도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교인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신앙이 깊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것이 바로 우상 없이 홀로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숙한 성도들의 경우에는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신앙 생활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주님도 처음에는 제자들을 자기 곁에 두고 훈련을 시키셨지만, 그들을 훈련하신 후에는 세상에 선교사로 파송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성령 안에서 교회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전도해서 그 곳에 교회를 개척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교회에서 정상적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남의 도움이 없이도 스스로 설 수 있는 신앙을 가져야 하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로 이끄는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교회 제도나 목사의 도움 없이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새로 믿은 성도들이 교회와 목회자 없이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일은, 마치 부모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저절로 성인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그들이 교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게 하려고 교회에 목사와 교사들을 주셨습니다(엡 4:11-12). 또한 성령께서도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들을 주셨습니다(고전 12,14장). 그리고 성찬과 세례는 사람이 만든 제도가 아니라 주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것이며, 사도들에게 세례와 성찬을 하라고 지시하신 분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마 28:19, 눅 22:19). 그러므로 이러한 모든 제도를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6. 결론
우리는 위에서 무교회주의자들의 주장하는 신앙 생활 방법이나 구원관에 대해서 생각을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러한 주장은 교회가 극도로 타락해서 그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특별한 경우에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제도적으로 타락해서 더 이상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면 루터처럼 종교 개혁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특별히 교회 제도와 목회자를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무교회주의자들이 말하는 신앙생활은 극도의 지적인 능력과 뼈를 깍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나 가능해 보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사람 중에 원어로 기독교 고전을 읽고 히브리어 헬라어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마 이러한 사람들은 기독교인 중에 1%도 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실제로 무교회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분이며, 크게 확장되기 어려운 특성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 생각에는 나머지 99%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교회와 목사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사도 때부터 지금까지 교회제도와 목사제도는 전도와 양육, 선교와 예배, 봉사와 구제를 위한 원동력이 되어 왔습니다. (기독교인들에 왜 교회에 출석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이 글(http://biblenara.org/q&a/Q113.htm)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