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정하지 말라(민수기 5장 강해)
민수기 5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땅 행군에 앞서 모든 부정한 사람을 골라내고 죄에 대한 값을 치르게 하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부정한 자들과 함께 계실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첫째, 부정한 사람들을 진영에서 내 쫓을 것(제의적 정결), 둘째, 형제에게 죄를 지을 경우 배상해야 할 것(윤리적 정결), 셋째, 아내의 불륜이 의심스러울 때 남편이 취할 수 있는 조치(부부간의 정결)을 다루고 있습니다.
(1)부정한 사람을 진영에서 내 보내라(1-4절)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모든 나병 환자와 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라고 하셨다. 그들 때문에 진영이 더럽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여호와께서 그 진영 가운에 계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서 이들을 진영 밖으로 내보내서 사람들과 떨어져서, 동굴이나 광야에 세운 장막과 같은 곳에서 살아야 했다(레13:46).
첫째, 죄는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죄인은 격리 조치해야 교회가 신성함을 유지할 수 있다.
둘째, 여호와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의 백성은 거룩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거룩함을 위해 조치로서 징계를 언급한 곳은 고전 5장이다. 고린도 교회 안에 어떤 이가 자신의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일이 있었다. 이런 음행은 이방인 가운데서도 없는 일이다. 바울은 그런 일을 행하는 자를 그들 중에서 쫓아내지 않는 것을 보고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책망을 한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누룩이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고 한다.
음행하는 사람과 사귀지 말라고 썼다. 이 세상에 음행하는 사람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이나, 약탈하는 사람들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전혀 사귀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그러려면, 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누구냐 하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을 숭배하거나, 사람을 중상하거나, 술 취하거나, 약탈한다면 그들과 함께 먹지 말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들을 심판할 것을 말한다.
구약에서 부정한 자들을 공동체에서 격리하라 하신 것처럼, 신약에서도 윤리적으로 부정한 자들을 향해서 징계할 것을 언급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모두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2,3장에서도 예수님은 일곱 교회를 향해서 그들의 영적 상태를 언급하면서, 한 교회를 빼고 그들의 죄를 책망하시면서 회개할 것을 요구하셨다.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는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가서 그들의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고 선언하셨다.
모든 교회는 죄로부터 멀리해야 한다.우리는 거룩한 주님의 몸이다. 또한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다.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 값으로 사신 몸이니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전3:16, 6:19-20).
첫째, 양심에 가책에 민감할 것
둘째, 말씀의 책망에 순종할 것
(2)배상에 관한 규정(5-10절)
이 부분은 다른 이들에게 죄를 짓고도 자신이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규정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 중에 남자나 여자가 남에게 죄를 범하여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면 그 사람은 죄를 지었으므로 먼저,그 죄를 고백해야 한다. 다음으로, 피해자에게 본래의 값에다가 오분의 일을 더 얹어서 갚아야 한다. 20%를 배상해 하는 것이다.
만약 그 피해자에게 대신 보상을 받을 근친이 없으면, 그 배상액은 죄를 속량하려고 바치는 속죄양과 함께 주님께로 돌아가, 제사장의 몫이 된다. 이때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 속죄 제물도 함께 바쳐야 했음을 알 수 있다.
정리하면, 형제에게 죄를 지어 피해를 입혔을 경우 정결 과정이 필요하다. 즉 회개와 배상 그리고 속죄제물을 바쳐야 한다. 배상에 대한 요구는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을 언급한 것이다.피해 보상을 하지 않으면서,죄를 고백하거나, 하나님께 속죄 제물을 드린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 했다고 할 수 없다.
반대로 피해 보상만 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죄제물을 드리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형제에게 피해를 입힌 죄는 당사자에게 죄 용서를 구함과 함께 배상을 해야 하며, 하나님께도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참된 화목이며, 개인 간의 윤리적인 정결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제의적 정결 뿐 아니라 형제간의 윤리적 정결도 중요하다. 형제와의 화목 없이 하나님과 화목 없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장에서도 예수님께서 형제에게 분노하지 말고, 함부로 하지 말하지 명령하시면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형제간의 화목 없이 열납되지 않는다. 반드시 형제와 화목 후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 그 일을 숨긴다고 하나님께서 모르시지 않는다. 따라서 숨기고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다. 이렇게 숨기는 경우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다.
반드시 형제에게 지은 죄에 대해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우리도 우리의 형제에게 피해를 입혔으면 용서를 구하고, 배상하고, 하나님께도 회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절차는 우리의 거룩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거룩하신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우리는 형제에게 지은 죄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히12:14)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3)부부의 순결에 대한 법(11-31절)
남편이 보기에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것 같다. 하지만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을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이 남편이 의심이 생길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언급하는 말씀이다. 이것을 소위 의심의 법이라 하는 데, 의심과 질투로 가정과 사회가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려고 주신 법이다.
그 절차를 살펴보자. 남편은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 간다.의심의 소제를 드린다. 다음으로, 제사장은 그 여인을 여호와 앞에 세운다. 토기에 거룩한 물을 담고 성막 바닥의 티끌을 취하여 물에 넣고,의심의 소제물을 그의 두 손에 두고 제사장은 저주가 되게 할 쓴물을 자기 손에 들고 여인에게 맹세하게 한다(19-22절)
그리고 제사장은 저주의 말을 두루마리에 써서 그 글자를 그 쓴 물에 빨아 넣고 여인에게 그 저주가 되게 하는 쓴물을 마시게 한다. 만약 여인이 범죄 하였으면, 그 쓴물이 여인의 속에 들어가서 쓰게 되어 배가 붓고 넓적다리가 마르게 된다. 즉 임신 능력을 상실하게 되거나 유산하게 된다. 이 일로 그 여인은 그 백성 중에서 저줏거리가 된다. 그 반대이면, 즉 여인이 정결하면 해를 받지 않고 임신하게 된다. 여호와에게서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여인에게 취한 조치가 매우 가혹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의심하게 된 남편에게 간음으로 기소당하는 것 보다는 낫다.그런 면에서 남편이 아내를 제사장에게 데려가는 것은 아내를 향한 배려이며, 이와 같은 분명한 조치를 통해서 아내의 인권을 보호하는 제도인 셈이다. 따라서 이 법은 이스라엘 가정의 정결을 유지하는 제도 일 뿐 아니라, 아내를 보호하기 위한 공의로운 제도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개인 뿐 아니라 부부간에도 거룩해야 한다.가정의 거룩이 무너지면 공동체도 무너진다. 부부가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 가운데 임재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축복의 땅을 정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음행을 매우 엄하게 다룬다.음행은 죄악된 일이다. 성도는 그 이름조차 부르지 말아야한다. 그러한 자들과 함께 교제도 하지 말 것을 언급한다(갈5:19,엡5:3,고전5:11고전6:9엡5:5히13:4)“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부부간의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고전 7장)남편은 아내에게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와 같이 남편에게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라고 말한다(3절). 즉 혼인한 부부는 일정한 성관계가 있어야 한다. 성관계를 거절하는 것은 상대 배우자의 당연한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4절). 이것은 남편과 아내 둘 다 성관계에서 부부의 권리와 상대방에 대한 독점권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무조건 요구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각자가 자신의 몸이라고 주장하면서 거부하는 것은 성경적인 가치관이 아니다. 부부는 서로 상대를 위해서 섬길 수 있어야 한다.
둘째,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5절). 서로 분방하지 말라는 것은 방을 따로 쓰지 말라는 문자적인 의미이기 보다 서로 상대방의 성적요구를 물리치지 말라는 것이다.
방을 따로 쓰는 것은 부부간의 관계가 멀어질 위험성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다. 그것은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서 얼마 동안 합의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기간이 지나면 다시 서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배우자와 일정한 성관계를 가지지 않으면 사탄의 유혹에 의해 성적으로 부도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이며, 성적 요구가 매우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설교 시간에 이러한 주제를 언급하는 것이 경망스럽고 낯 뜨겁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부부간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룬다. 아가서와 에스겔을 보라.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비유하고 있다. 부부간의 아름다운 관계는 거룩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부부에게 주신 선물이다.
(고전7:2)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잠언과 전도서는 두 가지 면에서 언급한다.
첫째, 아내를 즐거워하라(잠5:15-19) 둘째,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라(전9:9)
공동체 안에 모든 죄악을 제거해야 한다. 각각의 성도는 죄를 멀리하기 힘써야 한다. 교회는 이러한 죄에 대해서 징계해야 하며, 죄를 지은 성도도 회개하고 돌아와야 한다. 그것만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다. 또한 인간관계 속에서 피해를 입혔으면 그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책임있는 배상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만 회개하지 말고 그 사람에게도 진실한 마음과 행동으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부부는 서로 한 눈 팔지 말고 자신의 짝을 사랑하기 힘써야 한다. 아내와 남편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이다. 그것만이 음행에서 벗어날 수 있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