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광경은, 세계는 모든 것을 보는 者이다.> <관조, 그 이후의 사유는 그 관조의 현상적 경험이다.>
<노출된 세계를 응시하는 건 바로 나다.> 전제가 너무 거창한가?
나는 무엇을 쫓고 있고 무엇에 쫓기고 있는가.
<서울시장의 얼굴에 똥을 들이붇는 사건과 사라진 줄도 모르게 사라져버리는 보도방의 여인들> 스릴러의 대비는 그렇게 시작한다. 디테일이다. 엄중호(전직 기수대요원이었던, 김윤석紛)가 데리고 있던, 그 사라진 연인을 <너지? 넌 잡히면 죽는다>해서 도망가는 지영민(살인자. 하정우紛)에게서 김미진(출장안마사 서영희紛)을 구하기 위한 힘과 폭력에 대한 小考다. 여기서 나는 작가와 감독의 숨겨진 의도를 읽는다.
그렇다. 이 영화는 비리로 형사에서 짤린 출장 안마소를 운영하는 엄중호함께 사는 여자가 아닌 데리고 있던 여자 (서울이라는 특별도시, 현대, 현대인을 상징),를 필요에 의해 다시 건져보려는 거다.
영화를 여기까지 나 따위로 파고보는 이는 몇 안되겠지만.
사람을 죽이는 일을 살인이라 한다. 소외(성불구자인 지영민)된 지영민의 공권력으로 벌이는 살인(사형)이 아닌 지영민의 개인적(막가파)으로 벌이는 정신이상자의 존재론적 살인(잘못된?) 에 대한 추격이다.
시나리오는 1차 홍원찬, 2차 이신호가 썼고 작품성과 흥행성에 나홍진감독이 보탠 것 같다.
<금생에 나는 무엇을 쫓고 있고 무엇에 쫓기고 있는가. 쫓아가보기도 하고 도망가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