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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
지은이 |
안공/운지에 대한 언급사항 |
대금정악 |
김기수.이상룡편저 (1979.9) |
. 대금안공표 . 중금안공법과 음역의 표 . 민첩한 운지 . 운지법을 익히는 훈련 |
대금정악 |
조성래 편저 (1990.10) |
. 대금의 음정과 손 잡는법 . 시가가 짧은 경우의 안공법 . 조선악기편에 나와있는 대금의 안공법 |
초보자를 위한 대금교본 |
조성래(2005.8) |
. 대금의 안공법 . 대금의 음정과 손 잡는법 |
민속악 대금교본 |
이생강(2003.5) |
. 경기민요를 위한 5관청 음정도 . 남도민요 5관청 주법 . 민요주법 . 대금산조 운지법 |
대금첫걸음 |
남궁련(2007.10) |
. 주요 율명의 음정별 운지와 부는 강약법 |
대금교본 (초급용) |
최성남(1995.12) |
. 바른 안공법, 음정관계구조도, 주법 |
대금교본 (중.고급용) |
최성남(2003.10) |
. 중요한 부호와 주법 . 4관연주, 5관연주, 6관연주 |
시중에 나와 있는 각종 대금교재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교재에는 어떻게 다루었는지 다음의 표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위 표에서 보듯이 대금교본마다 각각 다른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미는 같은 말인데도 용어를 달리하고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대금 초보자들은 혼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이처럼 다른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위의 교본을 만드신 분들이 대금을 처음 배울 때 대금선생님이 어떻게 표현하였느냐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됩니다.
산조대금의 용어는 대부분 정악대금에서 사용하던 용어를 그대로 가져왔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지금도 대금정악을 하시는 분들은 대체로 안공법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비하여, 산조대금 쪽에서는 운지법이라는 용어의 사용 빈도가 더 높고, 안공법이라는 단어도 병행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운지법이라는 말은 국악 뿐 아니라 서양음악에서도 사용하는 말입니다. 바이올린 운지법, 첼로 운지법, 기타 운지법, 피아노운지법....등등 각종 악기를 연주할 때 손가락을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설명할 때 사용합니다. 영어로는 핑거링(fingering)이라고 합니다.
말이나 단어는 어떤 행위나 현상, 사물의 특징 등을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낸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먼저 사용하는 말을 아무런 비판의식이나 원인규명을 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상대방이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의미의 단어인데도 지방마다, 스승이 누구냐에 따라 각각 다르게 사용하는 현상이 생겨났다고 보여집니다.
그간의 여러 자료를 종합해 보면, 대금에서의 안공법은 12율명의 소리를 내기 위하여 각 지공을 어떻게 닫고 여는가를 나타내는 표(表)라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안공표라고 하는 표현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운지법은 악보를 보면서 악보대로 연주하기 위해서는 손가락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를 나타내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요령에 가까운 표현이라고 보여집니다.
얼핏 보면 서로 비슷한 말 같지만, 우리의 조상님들이 안공과 운지를 따로 표현한 이유를 생각해 볼 때, 그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안공은 12율명의 소리를 내기 위한 기본적인 지공의 열고 닫음을 나타내고, 운지는 어떤 음악이나 가락을 원활하게 연주하기 위한 손가락의 움직임을 의미한 겁니다.
간혹 국악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보면 낱말의 뜻과 단어의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용어도 더러 있습니다. 또 그러한 용어를 무작정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금, 나아가 국악의 발전을 위해서는 사용하는 단어, 말 등도 어느 정도는 표준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조사하고 정리한 내용이 옳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보다 더 상세하고 정확한 내용을 추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건설적인 토의, 토론도 고대하겠습니다.
41. 대금과 대함(大笒)
예전에 시골 살던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가 서울로 전학을 갔습니다. 국어책 읽기 시간이었습니다. 국어책을 들고 읽기를 하다가, “설탕”이라는 낱말이 나오자 학생은 “서르당”이라고 읽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설탕”이라고 읽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어린 학생은 계속 “서르당”이라고 발음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읽기 시간을 마치고 그 학생과 면담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학생이 시골에 살 때, 시골의 선생님은 설탕을 서르당이라고 발음을 했더랍니다. 그 학생은 원래 그렇게 읽는 걸로 알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나라 역사 기록물 중에서 “대금(大笒)”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 악지 편이 가장 오래 된 자료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훨씬 이전에 중국 문헌인 『수서(隋書)』동이전을 보면, “고구려에서는 오현금·피리·횡취(橫吹)·소(簫)·고(鼓) 등이 연주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횡취라 하여 이미 대금처럼 생긴 악기가 삼국시대에 연주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제에서는 적(笛)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사기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新羅樂 三絃 三竹 拍板 大鼓 歌舞
신라의 음악은 삼죽, 삼현, 박판, 대고, 가무로 되었다.
舞二人 放角?頭 紫大袖 公?紅? 鍍金?腰帶 烏皮靴
춤을 추는 두 사람은 뿔처럼 튀어나온 복두를 쓰고, 자색의 큰 소매가 달린 공란을 입었으며, 붉은 가죽에 도금한 허리띠를 띠었고, 검은 가죽신을 신었다.
三絃 一玄琴 二加耶琴 三琵琶 三竹 一大 二中 三小
삼현은 첫째 현금, 둘째 가야금, 셋째 비파이었고 삼죽은 첫째 대금, 둘째 중금, 셋째 소금이었다. 』
조선시대 성종 때 지은 <악학궤범>에도 같은 내용을 싣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국악과 관련된 많은 교육기관, 예술단체, 개인은 물론 각종 학술연구에서도 대금을 언급하면서 이 부분을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신라 사람들이나 조선시대에 악학궤범을 만든 사람들이 정말 “대금”이라고 불렀는지, “대함”이라고 불렀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금이라는 악기 자체를 놓고 볼 때, “대함”이라고 불리었을 가능성도 있었음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글자는 “大笒”이라고 쓰는데, 발음은 대함, 대금, 대잠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뚱딴지 같은 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왜 그런지 살펴보겠습니다.
한자인 “笒”자는 세 가지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발음도 세 가지로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속 밴대 함’자로 불리고 있으며, 자전(字典)에는 실중죽(實中竹)이라 하여 가운데가 실한 대나무, 즉 속이 꽉 찬 대나무를 말합니다. 대나무의 섬유질이 다른 대나무에 비하여 두툼하고 촘촘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런 대나무를 흔히 쌍골대라고 합니다.
둘째는 ‘첨대 금’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첨대라 함은 뾰족하게 깍은 꼬챙이 같은 대나무를 뜻합니다. 여기에서 첨(籤)자는 ‘제비 첨’자라 하여, 심지 뽑기, 제비뽑기에서와 같이 길흉을 점치거나 당첨을 결정하는 심지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대나무를 잘게 잘라 다듬어서 제비 뽑거나 점을 칠 때 사용했습니다. 첨은 낚시할 때 사용하는 찌나 뾰족하게 깍은 꼬챙이를 뜻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대나무 조각을 일컬어 ‘금’이라고 부른 겁니다.
셋째는 ‘대이름 잠’, ‘피리 잠’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笒”자는 세 가지 뜻과 세 가지의 발음이 있는데,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악기인 대금의 “금”자는 어느 쪽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함’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금(大笒)을 ‘대함’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중금, 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신 분이 있습니다.
「대금(大笒)의 금(笒)자는 본래 속이 배어 꼭 찬대(실죽 實竹)를 뜻하여 “속밴 대 함”으로 훈음이 되었으니 대함, 중함, 소함으로 부름이 옳겠으나 언제부터인가 대금, 중금, 소금으로 악기 명칭화 된 변칙 발음이 본명이 되고 말았다. 속밴대가 바로 쌍골대(雙骨竹)이니 이의 섬유는 황죽에 비해 성글어서 강유를 겸한 은근하고 온화한 오묘를 지녔다.」
위의 글은 1979년에 김기수.이상룡님이 편저한 <大笒正樂>이라는 책의 8쪽, <대금의 유래>에 실린 글입니다.
위 내용을 보면 어떤 용어나 말이 한번 잘못되면 자칫 영원히 잘못될 수도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그 어린 학생이 설탕을 서르당이라고 발음하는 것과 같이....
지금에 와서 대금을 대함이라고 고쳐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이미 대금이라는 명칭이 널리 통용되면서 완전하게 정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라도 대금에 대한 각종 용어나 낱말을 사용할 때는 보다 정확한 의미를 찾아서 정확하게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여 정리해 보았습니다.
42. 대금 공부방법
대금을 조금 일찍 공부한 사람들은 대금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을 보면,
대금 공부 열심히 하세요. 대금 열심히 부세요. 대금 연습 많이 하세요...등등의 조언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조언은 매우 추상적입니다.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열심히 하라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정작 본인들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고, 또 사람마다 공부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카페에는 대금 선생님께 공부하는 사람과 혼자 독학하는 사람도 있으므로 공부방법은 둘로 나눠서 언급하겠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금선생님들마다 각각 공부방법이 다르므로 보편적인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가. 대금선생님께 배우는 사람
대금 공부가 어려운 이유는 아직 대금소리도 잘 나지 않는데다, 악보를 보면서 가락을 익혀야 하고, 박자를 맞춰가면서 대금을 불기 때문입니다. 대금 소리만이라도 잘 난다면 대금 공부는 한결 쉽게 진행이 될 겁니다.
집에서 혼자 연습할 때는 그런대로 소리가 나다가도 선생님 앞에만 가면 긴장되고, 소리도 잘 안나지요.
보통 선생님께 공부하는 방법은,
선생님이 악보를 박자를 맞춰가며 구음으로 한 정간 한 정간씩 천천히 불러 주고, 대금으로 시범을 보일 겁니다.
시범이 끝나면, 선생님은 박자를 맞추며 구음으로 하고, 학생은 대금을 들고 따라서 불러 볼 겁니다.
그러다가 틀린 부분은 수정하고, 다시 부를 겁니다.
공부할 때 학생의 입장에서 꼭 체크해야 할 게 있습니다.
선생님께 사전에 양해를 구한 뒤 대금 공부하는 내용을 모두 녹음하세요.
악보가 지저분할 정도로 선생님이 강조하시는 내용이나, 본인이 느낀 점을 모두 기입하세요. 아니면, 아예 학습노트를 따로 준비하여 학습 노트에 기록을 하세요. 학습노트는 기존의 악보를 확대 복사하여 여백에 기입하는 게 좋습니다.
조금이라도 애매한 사항은 반드시 선생님께 질문을 하여 이해하도록 하며, 만약 그래도 잘 이해가 안되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을 그대로 기록하세요.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에 보면 금방 이해가 됩니다.
진도 나가는 것을 걱정 말고, 한 정간일지라도 꼭 이해를 하고 넘어가도록 하세요. 누구나 처음 배울 때는 금방금방 빨리빨리 진도가 나갔으면 하고 바라지만, 성급한 마음, 조급한 마음은 공부의 최대 적입니다.
학습노트에 반드시 기입해야 할 항목은
① 운지방법을 적어야 합니다. 몇 번 지공을 어떻게 열고, 닫는지 손가락 움직이는 순서를 적어두어야 합니다.
② 장식음이나 여러 음을 동시에 빨리 내는 것 등에 대한 운지요령을 적어둬야 합니다.
③ 숙이고, 재끼는 음에 대한 표시를 자기가 알아 볼 수 있도록 적어야 합니다.
④ 농음(요성)의 횟수도 적어두어야 합니다.
⑤ 세게 내는 소리와 약하게 내는 소리를 구분하여 표시해 둬야 합니다.
⑥ 장식음, 부호를 다 외우지 못했다면 선생님의 구음대로 음표를 풀어서 기입해둬야 합니다.
⑦ 숨쉬는 자리, 잠시 멈추는 자리 등을 표시해 둬야 합니다.
공부가 끝난 후, 시간 나는 대로 녹음했던 내용을 다시 들어야 합니다. 굳이 대금을 들지 않고 듣기만 해도 큰 공부입니다.
시간 나는 대로 소설책 읽듯이 학습노트를 읽어야 합니다. 깨알 같은 글씨 하나라도 빠트리면 안됩니다.
선생님이 시범 보인대로 구음을 따라서 합니다. 구음에는 낮은 소리, 높은 소리, 떠는 횟수, 약한 소리, 강한 소리 등을 그대로 따라서 해야 합니다.
구음이 어느 정도 비슷하게 되면 대금을 들고 한 정간씩 따라서 불러 봅니다.
구음이 잘 안될 때 대금을 들고 분다면 이상한 소리가 될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이상하게도 구음이 잘되면 대금 소리도 저절로 잘 나게 됩니다.
결국 대금공부는 구음 공부라고 보시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음...! 입으로 소리를 내야 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진양조 하나만 공부를 하고나면, 그 다음 부터는 한결 쉬울 겁니다.
공부 할 때는 다 이해하고, 아는 것 같지만, 공부 끝나고 돌아서면 이미 머릿속에 남은 게 없습니다.
그래서 녹음을 해야 하고, 세세하게 기록을 해야 하며, 틈나는 대로 다시 읽고 기억을 되짚어 봐야 합니다.
대금 공부하는 사람의 악보가 깨끗하면 헛공부하는 겁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아무런 각오도 없이, 그저 대금만 들고 왔다 갔다 하면 허송세월만 하는 겁니다.
대금 공부할 때는 선생님을 달달 볶아야 합니다.
밤늦게라도 답답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선생님께 전화해서 물어야 합니다.
나이, 체면, 직업, 학력, 재력 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대금 배울 때는 오로지 대금선생님과 배우는 학생의 입장만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대금 선생님과 아주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수시로 식사대접도 하고, 술자리도 같이 하면서 선생님이 갖고 계시는 대금에 대한 노하우를 배워야 합니다.
대금 선생님을 항상 존경해야 합니다.
이렇게 6개월만 하고나면 확 달라져 있을 겁니다.
위의 언급한 사항은 대금 초보자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나. 혼자서 대금배우기
대금 공부는 시작은 있는데, 그 끝은 없습니다.
어느 정도 대금 소리 내는데 자신이 있으면, 그 다음부터는 혼자서 공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금 뿐 아니라 다른 국악도 그럴 겁니다.
예를 들어 판소리 공부하시는 분이 선생님께 소리 한바탕을 공부하고나면, 독공(獨功)을 하지 않습니까. 대금도 독공의 시간이 필요하지요.
솔직히 대금 산조 하나를 배우려고 몇 년씩 대금 선생님께 배우는 경우는 드물다고 봅니다.
이는 대금 전공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처음 대금을 배우는 사람은 선생님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기본자세와 대금기초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뜻 입니다.
처음부터 선생님께 기초를 배우지 않고 혼자서 공부하시는 분도 있지만, 나중에 대금실력이 늘지않아 애를 먹습니다.
처음부터 혼자 대금 공부를 하시는 분이나, 대금 기초를 선생님께 배운 후에 독공하시는 분들이 조심해야 할 게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자기 편한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편한대로 하지 말라는 겁니다.
① 기본자세를 항상 바로한 후에 대금 연습을 해야 합니다.
등을 벽에 기댄다거나,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으면 절대 안됩니다. 대금이 무겁다고 오른쪽을 너무 밑으로 쳐지게 들어도 안됩니다. 단 한번에 한음의 소리를 낼 지언정 반드시 대금의 기본 연주 자세를 갖추고 연습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왼쪽 팔굼치를 대금과 거의 수평으로 들어줘야 기도가 막히지 않습니다. 다리를 꼬고 앉는 것도 아주 좋지 않은 습관입니다. 서서 불거나, 앉아서 불거나 항상 대금연주의 기본자세, 바른 자세를 잊어선 안됩니다.
② 악보를 무시하면 안됩니다.
혼자 대금을 불다보면 옆에서 봐주는 사람이 없으므로, 자기 기분에 따라 가락을 변형하여 대금을 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악보가 어떤 가락을 표시하는데,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악보대로 연주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설사 악보를 다 외웠다 해도, 가끔씩은 악보를 보면서 대금을 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박자감, 장식음, 음의 길고 짧음 등을 잊지 않게 됩니다.
③ 대금 연습하는 샘플 음악을 선정해 놓고, 자주 듣고 따라 불러야 합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대금 명인님들이 연주한 대금산조나 기타 배우고 싶은 음악의 샘플을 확보한다거나, 인터넷 카페 등에 있는 음원을 확보해 놓고, 샘플 음악을 자주 듣고, 구음으로 연습하면서 따라 부르는 연습이 중요합니다. 요즘은 인터넷 카페 등에서도 동영상으로 대금을 가르쳐 주는 곳이 많습니다. 자주 이용하면 그만큼 득이 됩니다.
④ 가끔씩은 대금 동호회의 정모, 번개 등에 참여하여 현재의 자기 위치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혼자 공부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항입니다. 혼자서 대금 불다보면 우물안 개구리가 되기 쉽습니다. 물론, 나 혼자 만족하면 그만인데...라고 여기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혼자서 대금을 공부하다 보면 그만큼 빨리 싫증이 나거나, 어떤 고비를 만났을 때 빨리 포기할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그렇지만 정모나 번개에 가면 부담없이 편안하게 대금실력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습니다. 다루치기 하나만 배워도 그 기쁨은 정말 큽니다.
혼자서 대금을 공부하는 분들은 위의 4가지 유의사항을 반드시 염두에 두고 공부해야 자기가 원하는 대금소리를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혼자서 하는 효과적인 대금공부 방법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이는 순전히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① 컴퓨터를 최대한 활용하는 겁니다.
인터넷에 보면 아주 좋은 음악 프로그램이 아주 많습니다. 저는 사운드포지8.0 프로그램을 사용합니다. 특정 회사의 프로그램을 소개하려고 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그 프로그램은 혼자서 대금을 공부하는 분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아주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예를 들어 원장현류 대금산조를 컴퓨터 <내음악>에 저장 해 놓고, 음악프로그램을 불러와서, <진양조>를 선택하면 도표가 나타나면서 진양조가 막대그래프식으로 뜨게 됩니다. 그러면 오른쪽 마우스를 이용하여 공부하고 싶은 부분만 드래그하면, 그 부분이 진하게 표시되면서 연속 반복으로 듣고 따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한 정간의 음악도 가능하고, 한음의 음악도 가능합니다. 좀더 자세한 사항이 궁금하신 분은 별도로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아주 미세한 음까지도 확인하면서 따라 부를 수 있습니다.
② 대금의 12가지 율명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임.남.무.황.태.고.중의 운지를 빠삭하게 외워야 합니다.
저취, 평취, 역취에서 손가락을 어떻게 하면 무슨 음이다 하는 것을 완벽하게 외우고, 소리 낼 때의 입술, 입바람이 어떻다 하는 것도 자신감을 갖고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악보를 보면 손가락이 저절로 운지가 됩니다. 또한 각종 장식음, 부호 등도 외워야 합니다. 이것을 다 외우지 않고 대금을 분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언제 악보 보랴, 장식음이나 부호를 찾아보랴 하겠습니까.
③ 악보를 외워야 합니다.
대금 초보 때 대금소리가 시원찮은 것은 대금은 받쳐주지 않은데, 마음만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악보를 외워두지 않으면 더 바빠집니다.
최소한 대금산조 하나쯤은 진양부터 자진모리까지 완벽하게 악보를 외워야 합니다. 어떻게 외우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나이 들수록 뭔가를 외운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음악의 악보를 외우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악보를 외운다 생각하지 말고, 가락을 외운다고 맘 먹어야 합니다.
아침에 어떤 노래가 입안에서 저절로 흥얼거렸던 경험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면 하루 종일 그 음악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자기도 모르게 아침에 흥얼거렸던 음악을 오후에도 흥얼거리게 됩니다.
대금산조는 음악입니다. 임남무황태고중은 가사입니다. 그것도 반복되는 가사입니다.
단지, 일반 유행가 가사는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데, 대금산조 가사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우기가 더 힘듭니다. 방법은 반복 밖에 없습니다.
대금을 들지 않고 입으로만 노래 부르듯이 대금산조 한바탕을 다 불어야 합니다. 이게 구음입니다.
대금 공부는 구음공부라고 봅니다.
구음이 안되는데....어떻게 대금 가락을 연주할 수 있겠습니까.
글 읽듯이 자주 읽고, 음원 샘플을 들으면서 구음으로 따라 부르다 보면 악보가 외워질 겁니다.
거의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샘플 음원을 들으면서 구음으로 달달달 따라 불러야 합니다.
이 방법 이외의 방법은 없습니다.
④ 대금의 맛내는 방법이 뭔지 알아야 하고, 맛을 내는 기법을 익혀야 합니다.
대금소리의 맛은 음과 음의 연결에서 오는 미묘한 소리의 변화입니다.
대금의 맛을 내는 기법은 다루치기, 요성, 숙이고 재낌, 추성, 퇴성 등입니다.
여기에서 기법 하나하나의 요령을 일일히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도 잘 모르고, 잘 안되기 때문입니다. 많이 고민하고 연습해야 할 부분입니다.
⑤ 아무리 혼자 대금을 공부한다 해도 모르는 부분을 물어볼 수 있는 선생님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은 어지간한 도시에는 국악학원도 있고, 국악단도 있습니다. 국악 공연이 있을 때는 자주 구경도 가야 합니다. 틈을 내서 그러한 곳을 찾아가 대금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알고 지내는 게 좋습니다. 대금 선생님께 모르는 것을 묻는데 가르쳐 주지 않을 선생님은 안계십니다. 대금을 공부한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부담 없이 가르쳐 주시리라 봅니다.
혹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서 공부하시는 분이라면 인터넷을 이용하면 됩니다.
우리 카페 같은 경우도 대금을 오랫동안 공부하신 분들, 경험이 많은 분들, 대금을 전공하신 선생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무엇이나 질문을 하면 성실하고 친절하게 답변을 해드릴 겁니다.
너무 장황하게 설명을 한 거 같네요.
그래도 혼자 대금을 공부하시는 분들에겐 꼭 필요한 사항이라고 봅니다.
혼자 공부한다고 하여 너무 주눅들지 마시고, 최선을 다하시면 원하는 대금 소리를 얻으실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43. 대금 불기 전 준비사항
국궁(國弓)을 하는 분들은 활을 내기 위하여 활터에 가면 으례 해야 하는 몇 가지 절차 중에 빼먹지 않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활을 몇 십년 쏘아 온 구사(舊射)나 처음 배운 신사(新射)나, 국궁 9단의 명궁이나 국궁 1급의 일반 궁사나 궁시(弓矢)를 다 갖추고 맨 처음 사대(射臺)에 서면 화살을 뽑아 활에 끼우기 전에 과녁을 향해 고개를 숙이면서,
"활 배웁니다"라고 합니다.
평생 배우는 게 활 공부라고 합니다. 참으로 겸손한 미덕이라고 여깁니다.
대금도 불기 전에 미리 마음가짐을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
대금 한번 불어볼까 하여, 대금 가방을 척 열어서 대금을 꺼내들고, 취구를 입에 대고 곧장 부는 것과 대금을 불기 전에 미리 몇 가지 스스로 준비를 하고 부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겁니다.
① 대금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하는 겁니다.
깨끗한 면수건을 이용하거나 면장갑을 끼고 대금의 몸통을 문질러 주면서, 대금의 몸통, 지공, 취구, 청공 등을 미리 살펴보는 겁니다. 혹시, 대금의 골이 파인 부분에 금이 가거나 흠집이 생겼는지, 대금 내경이나 지공에 이물질이 끼어 있지는 않는지, 청공이 찢어지지 않았는지, 대금을 감고 있는 줄이 풀리지나 않았는지, 곰팡이가 생겼는지, 청 가리개 끈이 느슨하지는 않는지, 자기의 체온을 대금에게 전달하면서 자기의 마음도 대금에게 전해주는 겁니다. 그렇게 문질러주면서 대금을 따뜻하게 하면, 대금도 주인의 마음을 읽고 좋은 소리로 보답을 할 겁니다.
실제로 대금소리가 어제까지는 잘 났는데, 오늘은 갑자기 잘 안난다며 투덜대는 사람의 대금을 살펴보고 웃은 적이 있습니다.
대금 내경에 검정색 볼펜 뚜껑이 끼어 있었던 겁니다. 어떤 사람은 청이 살짝 찢어진 것도 모르고 소리가 이상하다 하기도 하고, 쌍골의 골 파인 부분에서 바람이 새는 것도 모르고 대금 탓만 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청 가리개를 묶는 끈이 너무 길어서 가리개를 열었다 닫았다 할 때 가죽끈이 청을 스치면서, 청을 찢는 경우도 봤습니다.
대금 내경에 칠한 붉은 색 페인트가 벗겨져 붙어 있으면서 원활한 바람의 흐름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대금의 취구 왼쪽 얕은 내경 부분에 먼지와 이물질이 켜켜이 쌓이면 대금 음정이 맞지 않을 경우도 생깁니다.
지공도 오랫동안 방치하면 지공의 내경에 먼지나 이물질이 쌓여 지공의 구멍을 작게 하기도 합니다.
자칫 대금 내경에 칠한 페인트가 불량할 경우, 페인트 칠이 조금씩 벗겨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먼지를 가볍게 여기면 안됩니다. 대금을 불 때 입바람이 대금 내경에 들어가면 내경은 촉촉해집니다. 그 상태로 대금가방에 넣어두거나, 그냥 방치해 두면 외부의 먼지가 안으로 모여들어 대금 내경, 지공, 청공 등에 붙게 됩니다.
그렇게 한달, 두달, 1년이 지나면 무시못할 만큼의 때가 끼게 되는 겁니다.
청공의 청은 정말 세심하게 잘 살펴야 합니다. 청은 누가 손대지 않아도 외부의 온도 변화에 의해 저절로 찢어질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아주 미세한 구멍이나 찢김은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안보입니다.
그래서 대금을 내 몸의 일부라 생각하고 평소에 애정을 갖고 잘 관리해야 합니다.
② 입술근육을 풀어주는 준비운동을 해야 합니다.
아나운서들이나 탈렌트, 영화배우들이 마이크 앞에 서기 전에 입술 근육을 풀어주는 모습을 본적이 있나요?
입술 주위엔 수많은 근육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평소엔 잘 사용하지 않는 근육들입니다. 대금 불기 전에 미리 입술 근육을 양손바닥으로 문질러 맛사지 하거나 아랫턱을 좌우상하로 움직이고, 푸우우 하면서 입술에 바람을 불어내거나 하면서 준비운동을 하는 겁니다.
아마 이런 운동을 하고 나서 대금을 불면 그 차이를 금방 느끼실 겁니다.
③ 입술과 입안을 촉촉하게 해야 합니다.
감기에 걸리거나 담배를 많이 피우거나 전날 과음을 하면 입술과 입안이 바짝 마르게 됩니다. 이때 대금을 불면 메마른 소리가 나고, 대금소리도 영 시원찮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가을철 환절기엔 입술이 마르거나, 입안이 더 마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을이나 겨울철에 대금소리가 신통치 않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겁니다.
평소에 맆그로스를 입술에 자주 발라주어 입술이 마르거나 터는 것을 막아주어야 하고, 입안이 말랐을 경우엔 사탕을 먹거나, 대금 불기 전에 물을 한 모금 머금었다가 마시고 나서 불면 한결 좋아질 겁니다.
입안에 침이 너무 많아도 대금을 불 때 지장을 받지만, 너무 메말라도 힘들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④ 목운동, 팔운동, 손가락 풀기 운동은 기본입니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다 아시는 내용입니다. 온 몸의 근육을 풀어주는 운동을 하고나서 대금을 불면 더욱 좋겠지만, 최소한 손목, 손가락, 목, 팔의 근육을 풀어주고 나서 대금을 불어야 대금소리도 잘 나고, 오래 불어도 쥐가 나지 않고, 지공의 운지도 원활하게 됩니다.
⑤ 항상 대금을 배운다는 마음가짐을 하는 겁니다.
아무리 대금을 잘 부는 사람이라도 항상 새로 배운다는 마음가짐을 하는 겁니다. 마치 수십년 활을 쏜 사람이 항상 사대에 서서 활을 낼 때 "활 배웁니다"라고 하듯이, 대금을 들고 불기 전에 마음속으로 대금을 배운다는 각오와 다짐을 하는 겁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을 갖고 대금을 불게 되면 한번 불적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대금의 내공과 실력은 쌓여만 갈 겁니다.
대금은 불어서 소리만 내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어찌보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고, 자기수양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수행을 하는 마음으로 미리미리 준비하고 다짐을 하고 대금을 불면 언젠가는 높은 경지에 이르리라 확신합니다.
44. 대금 공부와 심우도(尋牛圖)
심우도(尋牛圖)는 “소를 찾는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합니다. “열 마리의 소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간혹 사찰의 대웅전이나 건물 벽에 어린 동자승이 산속을 헤매며 소를 찾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출가한 스님이 자기의 본성을 찾아 도를 이루기 위해 수행하는 과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원래 심우도는 중국 도가(道家)의 팔우도(八牛圖)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도가에서는 도를 이루어 가는 과정을 8단계로 나누어 구분하였습니다.
도가에서는 사람들에겐 원래 맑고 깨끗하며 자연스러운 자기의 본성이 있는데, 그것을 도(道)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때 부터인가 그 도를 잃어버리고 어둠속을 헤매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 도를 찾는 방법을 소를 비유하여 설명하였던 겁니다.
팔우도(八牛圖)의 단계별 개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심우(尋牛): 잃어버린 소를 찾아 나서는 단계
② 견적(見跡):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단계
③ 견우(見牛): 소를 발견하는 단계
④ 득우(得牛): 소를 찾아 고삐를 잡는 단계
⑤ 목우(牧牛): 소를 기르는 단계
⑥ 기우귀가(騎牛歸家): 소를 타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오는 단계
⑦ 도가망우(到家忘牛): 집에 돌아와 소를 잊는 단계
⑧ 인우구망(人牛俱忘): 사람과 소를 모두 잊고 초월하는 단계
도가에서의 팔우도는 마지막 단계가 인우구망(人牛俱忘)으로써 사람도 잊고, 소도 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도를 깨우치고 나면 나와 도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결국은 “아무것도 없음”의 세계인 무(無)의 세계를 마지막이라고 보았던 겁니다.
이러한 도가의 팔우도를 보고서 12세기 말 중국 송(宋)나라 때 곽암화상(廓巖和尙)이라는 스님이 도가의 팔우도가 사람과 소를 모두 잊는 단계, 즉 무(無)와 공(空)의 세계에서 끝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보고, 소를 찾아 떠나기 전의 근원으로 돌아와 그 속에서 보통사람들과 어울려 진리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면서 두 단계를 더 추가하여 <심우도 尋牛圖>라는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곽암화상이 추가한 두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⑨ 반본환원(返本還源): 소를 찾아 떠나기 전의 근원으로 다시 돌아오는 단계
⑩ 입전수수(入纏垂手): 근원으로 돌아와 일상의 삶이 곧 깨달음인 단계
왜 하필 “소”라는 동물을 사람의 본성이나 도(道)로 비유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소는 우직하고 순박하며 성급하지 않고 여유로운 천성에다, 소의 모습에서는 긴장감이나 성급함을 찾아볼 수 없으며, 순박한 눈동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평화로운 느낌을 지니게 하여 인간의 본래 품성도 그와 같지 않을까 하는 비유에서 비롯되지 않았을 까 봅니다. 옛날의 농경주심사회에서는 소가 없어선 안 될 아주 중요한 가축이었으며, 전쟁 시에는 중요한 군수물자의 운송을 담당하였고, 죽어서는 고기와 가죽으로 사람들을 크게 이롭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소는 아주 귀한 동물로 신성시 하기도 했습니다.
우두머리, 우이(牛耳) 등의 낱말도 소에서 비롯되었고, 아주 오래전의 고대국가에서는 소나 동물의 이름을 딴 벼슬명칭도 있었던 겁니다.
중국에서는 소 대신 말을 등장시킨 십마도(十馬圖), 티베트에서는 코끼리를 등장시킨 십상도(十象圖)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송(宋)나라 때 제작된 곽암본과 보명(普明)본이 전해져 2가지가 조선시대까지 함께 그려졌는데 현재는 보명본보다 곽암본이 널리 그려지고 있습니다. 곽암본과 보명본은 용어와 화면 형식이 달라서 곽암본은 처음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원상(圓相) 안에 그림을 그리는데 보명본은 10번째 그림에만 원상을 그려 넣고 있습니다.
대금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대금공부를 하나의 수행으로 보고, 심우도의 10가지 단계를 대금공부의 각 단계와 연계하여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 견해일 뿐이지만, 대금을 공부하는 분들에게 대금이라는 악기가 단순히 소리만 내는 악기가 아닌, 자기의 심성을 닦는 수행도구로써의 의미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풀어 나갈지, 얼마만큼 도움이 될는지, 아직은 막막하지만 그동안 제가 모아놓은 자료를 근거로 성심성의껏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겠습니다.
45. 풍류
풍류라는 말은 누구나 들어서 알고 있지요.
풍류 하면 연상되어 떠오르는 게 무엇 무엇일까요?
기생, 춤, 산, 강, 계곡, 바위, 정자, 술, 차, 선비, 소리, 대금, 가야금, 거문고...등등 아닐까요.
이 모든 것을 함축하면 결국 사람과 바람과 물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가지 풍류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상류 지배층은 지배층대로 일반 서민은 서민대로 풍류를 즐겼습니다.
그 모임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는 차차 언급하겠습니다.
풍류의 근원은 소리와 물입니다.
모든 소리는 결국 바람이지요.
바람 아닌 소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대금소리도 바람이요, 가야금 소리도 바람이요, 흐르는 물소리도 바람이요,
사람이 하는 노랫소리도 바람입니다.
그 바람이 귀에 들어와 소리로 들리는 거지요.
마시는 모든 것은 물입니다.
술도 물이요, 차도 물입니다.
그래서 풍류라 함은 단어자체는 바람풍자, 흐를 류자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모든 소리와 모든 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요.
혹자는 풍류를 바람 부는 대로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가자는 의미라고도 하지요.
바람을 닮고, 물을 닮아 우리의 삶도 그렇게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려고 하다보니 자연스레 소리(=바람)를 가까이 하게 되고, 물(=류)을 가까이 하는 거지요.
그래서 국악을 좋아하고, 차를 즐겨 마시는 사람은 이미 풍류객이 다 된 겁니다.
굳이 일부러 짐을 싸 들고 산과 강을 찾지 않아도, 평상의 삶속에서 풍류를 즐기는 거지요.
세상살이가 험난할수록 풍류를 찾고 싶은 사람은 더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몸이야 비록 세파 속에 시달리지만 마음만은 한 차원 높은 이상의 세계를 찾아가 쉬고 싶은 겁니다.
차 한잔을 앞에 두고 대금 한가락 즐길 줄 아는 사람은 그 이상의 다른 행복을 굳이 찾지 않을 겁니다.
차 한잔..., 비록 홀딱 마셔버리는 차 한잔이라고 우섭게 봐선 안되지요.
그 차 한잔 속에 담긴 의미는 우주라고도 합니다.
내 앞에 놓인 차 한잔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대금소리는 안 그렇습니까.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지요.
진정으로 풍류를 즐기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귀에 들리지 않는 그 무엇마저도 볼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안목을 지니게 됩니다.
이제 일상의 삶속에서 참 풍류를 찾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가져보시면 어떨까요.
그것은 누가 주는 게 아닙니다. 나 스스로 찾아 즐길 줄 알아야 하지요.
굳이 격식을 차리지 않고, 평상의 삶속에서 즐기는 풍류를 찾아보시지요.
46. 서민들의 풍류
어느 정도 역사를 훑어보다 보면 조선시대에 가장 재미있고 사람답게 산 사람은 양반들이 아닌 일반 서민들의 삶이 아니었을까 싶어집니다.
결론적으로 이도령 보다는 방자의 삶이, 춘향이 보다는 향단이가, 놀부 보다는 마당쇠의 삶이 더 재미있었을 거라는 거지요.
서민들의 삶의 풍자, 해학 중 상당 부분은 양반들 놀리는 재미가 아니었을까 여깁니다.
흔히 풍류라고 하면 조선시대 사회적, 경제적 신분이 지배층이라고 할 수 있는 양반계층에서의 전유물로 보지만, 사실은 일반 서민이나, 농민, 중인 계급 할 것 없이 골고루 다 즐겼다고 봅니다.
그만큼 신분을 넘어 우리 민족은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향유한거지요.
양반계급에 있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역적으로 몰리고, 노비로 전락하고, 귀양을 가고 하여 신분상으로 보면 엄청난 변화가 많았지요. 그러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양반이 저절로 서민으로 바뀌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서민들의 삶에도 양반들의 풍류 문화가 스며들기도 했고, 다산 정약용의 경우처럼 귀양지에서 일반 서민들과 어울려 풍류를 즐긴 경우도 있었지요.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고, 사실은 근본적으로 우리 민족의 특성이 풍류적 삶을 좋아했다고 보는 게 적절할 겁니다.
서민들의 풍류문화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화전놀이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농사철을 앞두고 진달래 꽃 피고, 골짜기에 얼음물이 녹아 철철 넘쳐 흐를 무렵에 먹거리를 마련하여 산에 가서 노는 겁니다.
화전놀이의 주역은 서민들이었고, 아녀자들이었지요.
평소에 말도 없고 얌전하던 아낙네들도 이 날 만큼은 시끌벅적하게, 산골짜기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장구치고 노래하고 춤추고 놀았던 겁니다.
무속인들에 의한 굿판도 서민들의 풍류판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죽은 자를 빌미로 살아있는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질펀한 굿판을 벌이고, 먹거리를 나눠 마시고, 같이 울고 웃으며 지내는 시간은 대리만족의 놀이문화로써 훌륭한 풍류문화의 한 가닥이었던 겁니다.
이러한 문화는 내륙보다는 해안지방이나 섬 지방에서 더욱 활기를 띠었지요.
요즘에도 전해져 오는 복(伏)날의 몸보신 문화도 풍류문화였습니다.
더위를 이겨내고, 농사일에 지친 체력도 보강할 겸, 고단백질의 먹 거리를 장만하여 솥을 걸어놓고 웃통을 벗어 제치고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먹고 노는 재미를 양반들이 어찌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그중 전해오는 일화중 하나는 남자의 양기를 북돋는 가장 좋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복날 계곡에서 황구(黃狗)로 배를 채운 후, 햇빛이 잘 드는 바위에 벌거벗고 누워서 양기(햇빛)를 가득 받는 거라 합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농사를 주로 했던 만큼, 농사문화는 곧 풍류문화였습니다.
1년 농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농사를 끝마칠 때까지의 힘들고 고된 육체적 피로를 풀고, 농사의 성패를 하늘에 맡기고,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서로 어울려 노는 풍류문화였던 겁니다.
지금도 지방마다 지역마다 얼마나 많은 놀이 문화가 전해 오고 있습니까.
천석꾼, 만석꾼으로 불리던 지방의 부자집 사랑방은 아예 풍류방이었지요.
수많은 예인, 기인들이 머물며 그 나름의 독특한 놀이, 풍류문화를 만들어 냈던 겁니다.
농사와 관련된 특정 날짜(단오, 백중, 칠석...등)나 명절날의 놀이도 큰 범주의 서민풍류문화였습니다.
작은 규모의 풍류문화로 산에 나무를 하러 가는 일꾼들에게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도시락 하나를 지게에 걸치고, 지게 작대기를 두드리며 흥얼대는 것도 멋진 풍류의 하나인거지요.
따지고 살펴보면 풍류 아닌 게 없습니다.
다만, 누가 시켜서 하면 노동이고 스스로 알아서 즐기면 풍류인거지요.
어찌보면 우리 민족의 삶 자체가 하나의 풍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먹고 살기가 각박해지다 보니, 이젠 서민들의 삶은 풍류가 아닌 전쟁이 되어버린 겁니다.
요즈음 아무리 힘들고 여유가 없는 삶이라 해도, 스스로 여유를 찾아 즐기는 삶...그게 더욱 절실히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47. 양반들의 풍류(1) - 동적(動的)인 풍류
양반이라는 단어는 예전에 궁궐에서 왕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문무백관이 서열 순으로 나란히 서 있었는데, 그 양쪽에 서는 사람을 일컬었다고 합니다. 문관과 무관을 합쳐서 이르는 말인 거지요.
그러나 나중에는 꼭 벼슬을 하지 않아도 가문의 명예를 존귀하게 여기던 사람들은 걸핏하면 양반입네 하고 거드름을 많이 피웠지요.
당시 양반하면 거의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상류 지배층을 일컫는 총칭이었습니다.
저는 서민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양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겠습니다.
기록 상으로 전해오는 양반들의 풍류는 선비문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현직 벼슬길에 있는 사람이나,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한 사람이나, 아예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은 선비들이 남긴 풍류문화의 흔적은 아주 많습니다.
서민들의 풍류문화가 자연과 더불어 먹고 마시고 노는 삶의 연장이었다면, 양반들의 풍류문화는 약간은 형식과 격식을 따진 면이 있습니다.
자연을 찾아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긴다는 것은 같았어도 그 내용에 있어선 차이가 있었던 거지요.
양반들의 풍류를 보면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시끌벅적하게 어울려 자연을 찾아 노는 동적인 풍류와, 맘에 맞는 벗이나, 아니면 혼자서 조용하게 즐기는 정적인 풍류가 있었지요.
<명인명창 풍류랑과 가진 호사시켜 교군 태워 앞세우고 일등 세악수 통영갓 방패철융안장 말을 태우고 팔도 풍류남아 성쇠도 있고 화렵도 있어 아름아리 멋도 알고 간드러진 풍류남아 수 백명 모두 모아 각기 찬합 행찬 장만하여 팔도강산 구경가세....>
위 노래는 거문고의 명인 신쾌동님께서 거문고병창으로 불렀던 <팔도유람가>의 가사 중 앞부분입니다.
이 가사를 보면 양반들의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그대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악기를 다루고 소리를 하는 명인 명창과 돈도 좀 있고, 멋도 좀 알면서 풍류를 알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온갖 호사스런 차림으로 각각 먹 거리를 마련해서 팔도의 유람을 가자는 내용입니다.
이 노래를 보면 당시 양반들의 동적(動的)인 풍류가 무엇인지 잘 나타나 있지요.
이러한 동적인 풍류는 계절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에 맞게 자연 속으로 들어가 풍류모임을 했던 것이지요.
풍류 모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술(酒)과 시(詩)와 가악(歌樂)이었습니다.
특히, 시를 짓는 능력이나 시를 읊는 실력은 풍류에 참석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지요.
그래서 각종 시사(詩社)의 모임이 지방마다 특색있게 활발했습니다.
그중 경상도 지역의 어느 풍류 모임의 이름은 학시사(鶴詩社)였는데, 자기가 평소 애지중지 기르던 학을 한 마리씩 품고 나와 학을 보면서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다산 정약용 같은 경우 유배지인 전라도 강진에서 그곳에 사는 선비들이나 일반 서민들과 어울려 풍류를 즐겼습니다.
그중 재미있는 것은 살구꽃이 피는 날 만나서 놀기, 첫 차잎을 따는 날 만나서 차 마시기, 첫 매실을 땄을 때 만나기..등등 계절마다 특징 있는 사안을 정해 놓고 그때마다 어울려 풍류를 즐겼습니다.
나중에 유배가 풀려 한양으로 돌아간 뒤에도 한동안 그 모임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한 예를 들자면 엄청 많습니다.
이렇듯 양반들은 양반들 나름대로 어울려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겼던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풍류의 준비나 뒷처리는 항상 서민이나 노비들의 몫이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되지요.
48. 양반들의 풍류(2) - 정적(靜的)인 풍류
연꽃이 피기 시작하는 초가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하얀 도포를 입고 큰 갓을 쓴 양반들이 하나 둘 한양성 서쪽 모화관(慕華館) 앞 연못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모화관은 중국(명나라)의 사신을 영접하고 환송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입니다.
연못가에 다다르자 미리 준비한 자그마한 조각배에 한사람씩 몸을 싣고 소리 없이 조심조심 연꽃 사이를 저으며 나아갑니다.
각자 눈여겨 봐 둔 연꽃 옆에 조각배를 멈추고, 연 꽃 몽오리가 탐스럽고 기다란 연줄기에 넙적한 연 잎이 갸우뚱한 곳에 귀를 대고 숨소리마저 죽인채 기다립니다.
해가 떠오르자 밝은 햇살이 연잎에 비추입니다.
그러자 연잎에 맺혀 있던 이슬들이 쪼르르 쪼르르 굴러 연못 물 위로 "퐁" 떨어집니다.
이윽고 한껏 부풀어 올랐던 연 꽃 몽오리가 "푱"하고 열리는 소리가 납니다.
연못 여기저기서 푱, 푱 소리가 납니다.
하얀 도포에 갓을 쓰고 연잎에 귀를 대고 있던 선비들은 한 마리 학과 같습니다.
연꽃 몽오리가 다 열리자 귀를 대고 있던 선비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들고 일어납니다.
다시 조각배를 저어 물가로 나옵니다.
그때서야 한곳에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고, 자기가 들었던 이슬이 구르는 소리, 연꽃잎이 열리는 소리에 대한 느낌을 말하고 다음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모화관은 지금의 서대문 독립문 근처에 있었다고 합니다.
1년에 한번 한양에 살던 선비들이 모여 연꽃 피는 소리와, 연잎에 맺힌 이슬이 연못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기 위한 풍류 모임을 그렇게 가졌던 겁니다.
풍류 모임이라고 해서 반드시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시만 짓는 게 아니었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아름답고 조용하며 운치 있고 멋진 풍류모임입니까.
조선조 연산군 때 성현(成俔)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의 아들 성세창의 친구인 홍모라는 사람이 성현의 집 동원별당(東苑別堂)에서 밤새워 이야기 하고 노는데 어디서 거문고 소리가 났습니다.
홍모는 궁금하여 문틈 사이로 밖을 내다보니, 한 노인이 눈이 소복히 쌓인 매화나무 밑에 자리를 깔고 앉아 은은한 달빛 속에 하얀 백발을 날리며 거문고를 타고 있었습니다.
홍모가 깜짝 놀라 성세창에게 "저 노인이 누구냐?"고 물으니, 성세창이 자기 아버지인데 가끔 저렇게 혼자서 거문고를 타며 노신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나중에 홍모는 그 때의 감동을 다음과 같이 남겨놓았습니다.
<그 때 달빛이 대낮 같고 매화가 만개했는데, 백발은 바람에 날려 나부끼고 맑은 음향이 암향(暗香)에 흐르니 마치 신선이 내려 온 듯, 문득 맑고 시원한 기운이 온 몸에 가득함을 느꼈다>
-기재잡기(寄齋雜記)에서
이렇듯 조용하게 혼자서 즐기는 풍류도 있었습니다.
49. 대금 공부의 핵심 "여조삭비(如鳥數飛)"
아무리 이름 난 대금명인님이나 대금고수님께 대금을 배운다 해도, 본인이 노력하여 공부하거나 연습하지 않으면 절대 대금 공부를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큰 돈을 들여 명품 대금을 샀다고 해도, 본인이 불지 않고 모셔두기만 하면 하나의 대나무 막대기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머리 속에 대금에 대한 지식이 많이 들어있다 한들, 직접 대금을 불 줄 모르면 그 또한 헛된 일입니다.
아무리 좋은 공부를 많이 했다손 쳐도, 말과 행동이 다르면 금방 들통이 나고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대금공부 뿐 아니라 어떤 공부를 한다고 할 때,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여조삭비(如鳥數飛)"라고 답을 하고 싶습니다.
여조삭비라는 말은 "새가 나르는 연습을 하듯이"라는 뜻입니다. 줄여서 "조삭비"라고도 합니다.
논어집주(論語輯注) 「학이(學而)편」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學之爲言(학지위언)은 效也(효야)라.
배운다는 말은 본받는다는 것이다.
人性皆善(인성개선), 而覺有先後(이각유선후)하니,
사람의 성품이 누구나 다 선하지만 그 선한 이치를 깨닫는 데는 앞과 뒤가 있으니,
後覺者必效先覺之所爲(후각자필효선각지소위)라야
미처 깨닫지 못한 자는 반드시 앞서 깨달은 자가 행한 바를 본받아야
乃可以明善而復基初也(내가이명선이복기초야)라.
본성의 선한 것을 밝혀 그 본래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
習(습)은 鳥數飛也(조삭비야)라.
익힐 습자는 어린 새가 반복하여 나는 것이라.
學之不已(학지부이)를, 如鳥數飛也(여조삭비야)라.
끊임없이 배우기를 새가 반복하여 나는 것과 같이 하라는 것이다.
새가 둥지에서 어미가 가져다 준 먹이만 받아먹고 편안하게 있다면 결코 하늘을 날수가 없습니다.
먹이를 먹고 힘을 길러서 넘어지고 떨어지고 상처가 생기더라도 어미의 나르는 모습을 흉내 내어 끊임없이 나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대금공부도 이와 같습니다.
대금 잘 부는 사람의 자세, 행동, 소리를 듣고 흉내 내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어느 단계가 되면 새가 스스로 하늘을 날듯이 자기만의 소리를 내는 겁니다.
어찌 대금공부만 그렇겠습니까. 인생의 삶 또한 그와 같은 이치라고 봅니다.
50. 대금과 화경청적(和敬淸寂)
화경청적(和敬淸寂)이라는 말은 다도(茶道)에서 쓰이는 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차를 마시는 도(道)인 다도(茶道)를 언급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중국, 일본입니다.
옛날의 선조들께서는 한 잔의 차를 마시는데도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여 수행하듯이, 도를 닦듯이 하셨습니다.
다도를 행함에 있어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으로 화경청적(和敬淸寂), 중정(中正), 정행검덕(精行儉德), 다선일미(茶禪一味)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화경청적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화합하고, 공경하고, 맑고, 고요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처음 만들어 사용한 사람은 중국 송(宋)나라 때의 백운수단 스님이라고 합니다.
중국 강서성 평향시 상률구 양기향 양기촌에는 보통선사(普通禪寺)라는 절이 있는데, 송나라 때 양기방회(楊岐方會·992~1049)선사가 그곳에 머물면서부터 중국에서는 선차문화(禪茶文化)가 시작되어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그 양기방회선사의 제자인 백운수단 스님이 “화경청적”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 사용하였고, 백운수단 스님의 제자인 원오 극근선사가 일본인 제자에게 전결체로 써 준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글자가 일본으로 전래되어 일본 차 문화의 근본철학 되었다고 합니다.
화경청적!
일본의 다도에서는 화경청적의 의미를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① 화(和) : 차를 마시기 위해 참석한 사람들과 주인이 하나가 되는 것
② 경(敬) : 주인과 손님 모두가 각기 불성(佛性)을 지닌 인격체가 되는 것
③ 청(淸) : 물질적 정신적인 욕심을 떨쳐낸 맑은 마음을 통해 자유롭게 되는 것
④ 적(寂) : 공간적 고요함과 그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열반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
불가(佛家)에서는 화경청적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① 화(和) : 일체의 형상과 마음이 화합하는 것으로 서로 간에 어긋나서 맞지 않는 것 까지도 조절하여 일치점을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외부적으로 적당한 섞임이 아닌, 안과 밖이 함께 완전하게 어우러짐을 말합니다.
② 경(敬) : 생명이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일체의 존재를 공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③ 청(淸) : 자신의 내면과 외부의 더러움을 깨끗이 하는 것으로 내면세계를 깨끗이 하는 자성청정(自性淸淨),
외부의 더러움을 깨끗이 하는 이구청정(離垢淸淨)을 모두 나타냅니다.
④ 적(寂) : 마음에 번뇌가 없고 몸에 괴로움이 없는 해탈, 선정의 상태로써 문자적 의미로는 고요하다는 것이지만 불교적
해석은 생사의 인과를 없애 다시는 어두운(迷) 일을 반복하지 않는 적정한 경계를 의미합니다. 즉, 마음에 번뇌가 없고 몸에 괴로움이 없는 상태로서 해탈, 선정의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대금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있어 화경청적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① 화(和) : 대금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겁니다. 대금이 프라스틱 대금이던, 비싼 쌍골죽 대금이던 일단 “나의 대금”이 되었다면, 대금을 대금으로 보지 않고 내 몸의 일부로 여기는 겁니다. 아주 특이한 사람을 제외하고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대금과 내가 하나가 되었을 때 대금과 나는 따로 놀지 않게 될 것이며, 내가 말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듯이 대금을 연주하면 나의 뜻대로 원하는 소리가 나게 될 겁니다. 처음부터 곧바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일정기간 나의 정성과 애정이 깃들고, 나의 혼이 스미도록 연습을 해야만 그렇게 되겠지요.
어떤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그 음악연주연습을 한다는 것도 그 음악과 내가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음악과 내가 따로 겉도는데 그 음악을 잘 연주할 수가 없지요. 결국, 대금에 있어 화(和)의 의미는 대금과 내가 하나가 되고, 연주하려는 음악과 내가 또 하나가 되는 그러한 경지를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② 경(敬) : 대금을 공경하고, 연주할 음악을 사랑하고, 같이 대금을 배우고 즐기는 사람들을 공경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겉으로만 그런 척 하는 게 아니고, 마음 밑바닥에서 진실로 우러나는 공경심을 의미합니다. 자기의 대금을 자기가 사랑하지 않고, 연주하고자 하는 음악을 시큰둥하게 여기고, 같이 대금을 배우는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하고 뒤에서 헐뜯고, 험담이나 하면서 이용하려는 생각만 한다면 결코 감동을 주는 소리가 나지 않을 겁니다. 내 대금보다는 자꾸 남의 대금이 더 좋아 보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다른 대금으로 바꾸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거나, 평소에 대금 관리를 소홀히 하면서 좋은 대금소리가 나기를 바란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말입니다.
③ 청(淸) : 대금을 배우고, 대금으로 음악을 연주할 때는 항상 맑고 청정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대금에서 나오는 소리도 맑고 깨끗하면서 나 자신 뿐 아니라 남에게도 감동을 주는 소리가 나올 겁니다.
항상 남을 속이고, 눈 앞의 내 이익만을 추구하고자 하는 탁하고 추한 생각이 가득 찬 사람이 아무리 대금을 잘 분다고 해도, 그 음악 속에는 그 사람의 그러한 마음도 섞여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대금소리는 그 사람의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는 소리입니다. 아무렇게나 아무데서나 대금을 꺼내들고 분다고 하여 다 좋은 대금소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처음부터 곧바로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금공부는 자기수행이고, 도를 닦듯이 연습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거울에 쌓인 먼지를 닦아 내듯이 대금을 불적 마다 마음의 때를 씻어낸다는 마음을 지닌다면, 언젠가는 아주 좋은 대금소리가 나리라 봅니다.
④ 적(寂) : 앞서 이야기 한 화, 경, 청의 수행과정을 이룬 다음에 나오는 대금소리가 바로 이 단계의 소리라고 봅니다.
대금과 내가 하나가 되고, 몸과 마음이 청정하여 번뇌, 잡념, 망상이 사라진 상태에서의 대금소리를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대금소리는 분명히 귀로 들리는 소리이지만, 소리에 형상이 있던가요? 소리가 멈추면 이내 한없는 고요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가하면 내가 부는 대금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온갖 번뇌와 시름을 떨쳐낸다면, 그 또한 적(寂)입니다.
대금소리의 최상승의 경지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이러한 경지에 다다를 수 있고, 그러한 경지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대금선정(大笒禪定)에 드는 것이요, 대금삼매경(大笒三昧境)에 빠졌다고 부르겠습니다.
대금고수라야만 도달하고, 맛보는 어려운 과정이 아닙니다. 대금 초보라고 해도 얼마든지 이러한 맛을 볼 수가 있다고 봅니다. 이 맛은 남이 보고 느끼기도 하겠지만 자기 스스로도 얼마든지 느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금을 자기수행의 도구로 삼아 우리 모두 대금의 화경청적을 깊이 생각하고 마음에 새겨, 대금선정의 오묘한 맛을 보고, 대금삼매경의 희열을 맛보시길 바랍니다.
51. 대금과 사이비(似而非)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듣기 싫은 말 중 하나가 “사이비(似而非)”라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지칭하여 사용하기에도 꺼림칙한 단어이고, 다른 사람이 나를 가리켜 그러한 말을 한다면 정말 불쾌할 겁니다.
사이비라는 단어는《맹자(孟子)》의〈진심편(盡心篇)〉과《논어(論語)》의〈양화편(陽貨篇)〉에 나오는 말입니다. 어느 날 맹자에게 제자 만장(萬章)이 찾아와 "한 마을 사람들이 향원(鄕原:사이비 군자)을 모두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면 그가 어디를 가더라도 훌륭한 사람일 터인데, 유독 공자만이 그를 '덕을 해치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이유가 무엇인지요?"라고 물었습니다.
맹자는, “그를 비난하려고 하여도 비난할 것이 없고, 일반 풍속에 어긋남도 없다. 집에 있으면 성실한 척하고, 세상에서는 청렴결백한 것 같아 모두 그를 따르며,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지만 요(堯)와 순(舜)과 같은 도(道)에 함께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덕을 해치는 사람'이라 한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향원은 군자인척 하지만, 사실은 덕을 해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나는 사이비한 것을 미워한다.(孔子曰 惡似而非者)”라고 하면서,「말만 잘하는 것을 미워하는 이유는 신의를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고, 정(鄭)나라의 음란한 음악을 미워하는 이유는 아악(雅樂)을 더럽힐까 두려워서이고, 자줏빛을 미워하는 이유는 붉은빛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다.」라고 했습니다.
공자는 외모는 그럴듯하지만 본질은 전혀 다르면서 겉과 속이 따로따로이고, 말과 행동이 다르면서, 겉으로는 선량해 보이지만 실은 질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미워한다고 한 겁니다.
이렇듯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사이비”라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매우 나쁜 말이지만, 대금공부에 있어서는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대금을 공부할 때는 선생님이나 고수님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 흉내부터 내는 연습을 해야 잘한다고 합니다.
대금 뿐 아니라 그림공부나 서예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대로 본(本)을 떠 놓고 그대로 흉내 내는 연습부터 합니다.
그래야 선생님이 잘한다고 칭찬도 하고 그 다음의 진도를 나갑니다.
실제 대금으로 어떤 음악을 배운다고 할 때, 악보를 보면서 선생님이 구음을 해주거나 대금으로 시범을 보이면, 일단은 그대로 따라서 흉내를 잘 내야 합니다. 그 흉내 내는 연습이 공부의 시작이자 전부인거지요. 만약, 선생님이 가르쳐 준대로 흉내를 내지 않으면 못한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 경우가 바로 “사이비” 아닐까요.
선생님처럼 하긴 하지만, 정작 선생님의 소리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공부가 진척이 되고, 배우는 사람이 상당한 수준에 오르게 되면 그때는 진짜 “사이비”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한테 배워서 선생님 소리를 흉내 내지만, 사실은 자기만의 독특한 소리를 내야 한다는 거지요.
만약,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되어서도 선생님과 똑 같은 소리를 낸다면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국악의 판소리에서 사용하는 용어중 “무슨 제”, “무슨 바디”, “무슨 류”, ‘무슨 드늠“ 하는 것은 자기 선생님의 소리를 이어받아 공부를 했지만, 나중엔 자기 나름의 독특한 영역을 갖췄을 때 이르는 말입니다.
한 스승으로부터 동일한 음악에 대한 공부를 해도 배우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것은 자기만의 소리 세계를 구축해가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겁니다.
판소리에서 “제”라는 용어는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로 크게 나눌 수 있고, 각 제에는 명창들의 이름을 넣어 정창업바디, 이날치바디, 정응민바디 이런 식으로 표현합니다. 여기에서 “제”는 상식적으로 전승 계보를 일컫고, “바디”는 받다에서 나온 말로써 같은 전승계보를 의미하지만 “제”보다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국악에서 가장 발전의 밑거름이 된 것은 “변이‘와 ”더늠“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변이라는 말은 한 스승으로부터 공부를 했다고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배운 음악에 변화를 가져옴을 말하고, 더늠은 “더 넣다”에서 나온 말로 스승님의 음악 바탕에 자기만의 독특한 가락이나 소리를 추가하여 넣는 것을 의미 합니다.
그러니까 얼핏 들으면 스승님의 소리 같지만 사실은 자기만의 개성이 담긴 소리가 되는 거지요. 스승님의 소리와 비슷하지만, 사실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고 누가 제자를 가리켜 “너는 사이비다”라고 손가락질을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예술의 발전은 흉내에서 시작하여 새로운 창작으로 이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 하여, 근본법은 옛것을 따르되 새로운 것을 추구하여 만들어 내야 한다고 하였던 겁니다.
사이비가 좋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대금공부를 함에 있어서 처음에는 선생님의 흉내를 잘 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고, 어느 시기가 되면 선생님의 소리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대금공부에 있어서는 사이비가 좋은 의미로 쓰일 수 있지만, 실생활에 있어서는 그렇게 해선 안 될 겁니다.
그때는 진짜 사이비가 되어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되겠지요.
52. 대금의 구조와 제작
대금에는 정악용 대금과 산조대금이 있다. 정악용 대금은 궁중음악과 줄풍류 연주 및 가곡 반주 등에 쓰이며, 산조대금은 산조나 시나위, 민요 반주 등에 사용된다. 정악용 대금과 산조대금은 구조상으로는 같고, 전체 규격과 음역 등이 다들 뿐이다.
대금은 관대 하나에 취구(吹口)와 청공(淸孔), 여섯 개의 지공(指孔), 칠성공(七星孔)으로 이루어졌다. 칠성공은 『악학궤범』에서 허공(虛孔)이라 했고, 민간에서는 바람새 또는 조종 구멍이라고 했다. 대금의 치수는 일정하지 않지만 보통 정악용 대금이 80센티미터 내외, 산조대금이 65센티미터 내지 70센티미터, 구경은 4센티미터 정도이다.
대금은 쉽게 볼 수 있는 악기가 아니기 때문에 대중적인 수요가 많지 않고, 전문 연주용 대금의 경우 좋은 악기를 하나 구해 관리만 잘하면 대를 물릴 수도 있기 때문에 악기만 전문으로 제작하는 제작자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대금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확한 음정 조절이므로 음악을 모르고서는 악기를 완성할 수 없고, 상대적으로 제작법이 그리 복잡하지는 않기 때문에 연주자들이 직접 만들어 쓰는 경우가 많다.
대금은 대나무 중에서 황죽(黃竹)이나 쌍골죽(雙骨竹)으로 만든다.
쌍골죽이란 대의 한쪽에 골이 진 정상적인 대나무가 아니라, 양쪽에 골이 패인 일종의 병죽(病竹)이다.
대나무에 양쪽 골이 지면 속이 텅 비어야 할 대나무 속에 살이 쪄서 죽세공(竹細工)에는 쓸 수가 없다. 더구나 대 속이 메워진 쌍골죽은 바람이 불 때마다 우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망국죽(亡國竹)’이라고도 하고, 또 ‘대밭에 쌍골죽이 나면 망하다’는 속설이 있어 얼른 베어 버리고 마는 ‘기분 나쁜’ 대나무다. 그런데 이렇게 일상생활에서는 쓸모없는 대나무가 대금 같은 악기의 재료로는 최상의 대접을 받는다.
그 이유는 대나무의 살찐 내경(內徑)을 자유로이 조정하여 음정을 맞출 수 있고, 음색 면에서도 두텁고 단단한 대나무 속살을 비집고 나오는 소리가 야무지고도 그윽하며, 오래 불수록 청아한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또 겉모양도 보통 대보다 더 좋다.
그러나 여러 대나무 중에서 돌연변이로 탄생하는 쌍골죽은 인위적으로 생장시킬 수 없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쌍골죽이나 황죽 모두 전라도·경상도 지역에서 구하는데, 쌍계사(雙溪寺)나 담양(潭陽)·밀양(密陽)이 유명하며, 보통 삼 년에서 오 년 이상 묵어 굵기가 4센티미터 정도 되고 마디가 다섯 개 정도 나오는 것을 최상품으로 친다. 그리고 정월에 베는 대나무라야 악기를 만들었을 때 찌그러지지도 않고 좀이 먹지도 않는다고 한다.
대나무는 밑둥을 중심으로 길이와 굵기를 가늠해서 한쪽 끝은 막히게, 다른 한쪽은 뚫리도록 자른다.
알맞게 자른 대나무는 불에 올려 천천히 돌려가면서 그을리는데, 이것을 ‘굽는다’고 한다. 예전에는 주로 화력이 좋고 불길이 고루 퍼지는 숯불에 구웠지만, 요즘은 굳이 숯불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대나무를 불에 그을리면 푸른 빛깔의 대나무에서 진이 빠져 나오고 색이 황갈색으로 변하는데, 이것을 마른 헝겊으로 닦아내면서 진이 빠질 대까지 여러 차례 반복한다.
다음은 불에 구워낸 대나무를 음지에 말리면서 아직도 남아 있는 대나무 진과 냄새가 자연스럽게 빠져 나가도록 한다.
다음은 불에 달군 쇠꼬챙이나 드릴을 이용해 대나무 내경에 구멍을 내고 취구를 뚫어 내부까지 완전히 마르도록 통풍을 시킨 후, 대나무의 재질을 강화시키기 위한 조치를 한다. 이 방법은 개인마다 좀 차이가 있다. 보통은 소금물에 담가 두거나 젓은 소금을 대통에 채워 두는데, 예전에는 오줌통에 담가 두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모두 나무 재질을 단단하게 하는 염분을 이용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해서 관대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나면 관대에 구멍을 뚫는다. 통풍을 위해 깎아 두었던 취구를 다듬고, 대나무의 성질과 속살이 찐 정도, 자연적으로 형성된 내경 등을 고려하여 지공 여섯 개를 본에 맞춰 뚫은 다음, 정확한 음정 조절을 위해 칠성공을 더 뚫는다.
황죽으로 만든 『악학궤범』의 대금은 칠성공을 다섯 개나 뚫어 음정을 맞추었는데, 음정 조절이 비교적 쉬운 쌍골죽을 쓰면서 칠성공의 수가 줄었다. 지금은 한두 개 정도 뚫는다.
다음은 대금의 관대가 갈라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명주실로 꼬아 만든 가야금 줄이나 플라스틱 재질의 현으로 네다섯 군데 적당히 위치를 잡아 감아 준다.
그리고 대금의 내경에 페인트를 칠하는 경우도 있다. 그 이유는 내경이 썩는 것을 예방하는 목적도 있지만, 사실은 내경에 페인트 칠을 하면 연주할 때 악기에 김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장시간 연주에 애용된다고 한다.
한편 대금 제작과정에서는 관대 만들기와 별도로 청(淸)을 만들어 붙이는 작업이 중요하다. 청은 갈대 속의 얇은 막을 채취해 말린 것인데, 이것을 대금의 청공에 붙이면 취구에 입김을 불어넣을 대마다 입김의 강도에 따라 다양한 떨림이 생겨 대금 특유의 음색을 낸다.
청에 쓰이는 갈대는 음력 오월 단옷날을 기준으로 전후 삼사 일 동안 연주자나 제작자들이 직접 갈밭에 가서 채취한다. 오월 단오 무렵을 고집하는 까닭은 갈대에 물기가 적당히 올라 얇은 막을 떼어내는 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넘기고 나면 더 이상 청을 채취할 수 없다.
경남과 부산의 구포(舊逋)·을숙도(乙淑島) 일대, 전남 영산강(榮山江) 유역 등지가 청 채취의 적격지로 꼽힌다.
채취한 청은 한데 묶어 관리하며, 채취한 상태로 그냥 말렸다가 청공에 맞게 잘라 쓸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정성을 기울이는 이들은 냉온욕(冷溫浴)을 시키듯 뜨거운 증기와 찬이슬을 번갈아 쏘여 청을 질기게 만들어 쓴다. 아무래도 청이 질겨야 오래 쓸 수 있고 청의 울림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청은 물에 적셨다가 청공 주변에 아교를 바르고 덮듯이 붙이면 된다. 청은 막이 도톰하고 폭이 널찍하며 색이 하얀 것을 상품(上品)으로 친다.
청을 붙인 후에는 청공을 보호하고 연주할 때 청의 울림을 조절하기 위해 금속제 청가리개는 직사각형 모양이며 네 모서리에 구멍을 뚫어 가죽끈을 꿰어 대금에 묶는다.
53. 살풀이춤과 춤의 10대 수칙
살풀이 춤은 4박계통의 춤으로 흰 수건을 들고 남도 살풀이 장단에 맞추어 추는 춤으로 대개 권번의 예기(藝妓)를 통해서 전해진 춤인데, 1900년대 초 한성준에 의해 무대 예술로 다듬어져 전해지고 있다.
인간의 한과 흥을 잘 표현하는 대표적인 민속춤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도살풀이 춤은 원래 경기굿의 일부로 도살풀이 장단에 맞춰 무당들이 신을 청하기 위해 추었던 춤이었으나 김숙자에 의해 예술적으로 다듬어져 전해지고 있다.
흉살과 재난을 소멸시켜 복을 빈다는 무속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였던 매헌 김숙자 선생이 제자들에게 춤을 가르칠 때 늘 다짐하곤 했다던 가르침이 있다.
춤꾼이 되기 위한 가르침이지만 세상을 사는 모든 이에게도 교훈이 되리라 보인다.
1. 춤을 추기 이전에 인간이 되어라.
2. 천 번, 만 번, 수만 번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라.
3. 남을 보여주기 위해 추지 말고 널 위해 춰라.
4. 움직임 없이 가만히 서 있어도 춤이 되게 하라.
5. 춤은 교태를 부리며 절대 추지 말라.
6. 춤의 순서는 선생님이 가르쳐 주고 다듬어 줄 수 있지만,
춤에서 나오는 멋과 한은 너의 삶에서 천천히 찾아라.
7. 춤을 출 때 항상 등에 무거운 소금 가마니를 짊어지고 춘다고 생각하라. 소금이 물에 빠졌을 때는 무게가 없고, 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엄청난 무거움을 느끼게 춤을 춰라.
8. 배고픔이야말로 너의 진정한 춤의 영원한 스승이 될 것이다.
54. 대금 공부의 현실적 문제점
얼마 전 대금공부를 갓 시작한 왕초보 한분이 하소연을 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제 대금 공부 시작한지 3개월이 채 안되어 대금소리도 겨우 내고, 아직도 손가락이 다 펴지지 않아 운지도 잘 안되고, 대금소리 듣는 것은 좋은데, 왜 이렇게 힘들게 대금을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고, 대금을 공부하면 자기 수행도 된다는데 짜증날 때가 더 많고, 대금 공부하러 가면 대금 선생님이 비싼 대나무 대금을 사라고 조르고...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은 프라스틱 정악대금을 구입하여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의 문화센터에서 1주일에 한번씩 정악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 분의 말을 듣고 마음이 착잡해졌습니다.
전국의 수 많은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대금을 배우면서 겪는 공통적인 문제점이자, 대금공부를 중간에 그만두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그러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한마디 덧 붙였습니다.
“제가 초보라서 여러 가지로 서툴고 연습이 부족해서 대금소리가 안나는 것은 참고 노력하면 되겠는데, 대금선생님이 저의 프라스틱 대금을 볼 때 마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빨리 대나무 대금으로 바꾸라고 하니, 저의 형편에 큰 돈 들여서 사기도 그렇고, 아직은 초보인데 비싼 대금을 사야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대금 공부하러 가기가 싫어진다.”
그 분의 말은 솔직하고 당연한 이야기였습니다.
대금 초보가 대금 소리 잘 안나고, 운지 어려운 것은 누구나 겪는 과정중의 하나일 뿐으로 본인이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하고 세월이 가면 해결될 일이지만, 이제 공부를 갓 시작한 초보에게 비싼 대금을 사라고 종용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분과 함께 공부하는 사람은 300만원을 들여서 정악대금을 샀는데, 아직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만나 이야기도 들어보고, 대금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쉬쉬하며 공개하기 껄끄러운 부분이었지만, 이제는 터놓고 이야기해야 할 시점이고, 그동안 썩고 곪은 추잡한 내면을 도려내야 한다고 여깁니다.
서울에 아주 유명한 대금을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분이 만든 대금은 대금 전공자들이 선호하며, 값도 아주 비싸다고 합니다.
그 소문을 듣고 대금 초보자 한 사람이 좀 비싸더라도 어차피 하나 사면 평생을 갖고 불어야 할 대금인지라, 큰 맘 먹고 거금을 장만하여 그 분이 만든 대금을 사러 갔습니다.
과연 대금 만드는 분은 생면부지의 대금초보인 그 사람에게 좋은 대금을 보여줄까요? 유명한 대금 명인이나 이름 난 대금연주자가 대금을 사러 갔을 때와 아무런 차별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닐 겁니다. 분명히 차별을 할 겁니다.
대금을 취미로 공부하는 사람들은 초보일 때 대금을 구입하게 되면 대부분 대금선생님께 부탁을 하여 대금을 구입합니다.
대금 선생님은 자기가 거래하는 대금장인을 찾아가 적당한 대금을 골라서 가져 올 겁니다. 그러면서, “이 대금은 소리가 잘나고, 음정이 맞고, 대나무가 좋고, 대금 모양도 잘 생겼고, 유명한 사람이 만든 것이고, 전공자들한테만 파는 대금인데 나하고 친하고 내가 말을 잘 해서 겨우 가져 온 아주 좋은 대금이다. 원래 이정도 대금은 200만원은 줘야 하는데, 내가 특별히 150만원에 가져 왔다.”라는 식으로 말을 할 겁니다. 그리고 시범적으로 대금을 불어 볼 겁니다. 초보자의 귀에는 빵빵하고 우렁찬 소리가 들릴 겁니다.
그 말을 과연 그대로 다 믿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믿어야 할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믿을 수도 없고, 믿어서도 안 되는 말입니다.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마음이 들지...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대금 초보자 한 사람이 친구가 주었거나, 아니면 아는 사람으로부터 선물을 받거나, 직접 구입했거나 한 대나무 대금을 들고 대금선생님을 찾아가 대금 공부를 합니다.
초보자는 그 대금을 애지중지 하여 대금의 상태가 어떤지 기회를 보아 대금선생님께 대금의 상태가 어떤지 조심스레 여쭈어 봅니다.
그런데 대금 선생님의 반응은 시원찮습니다.
몇 번 불어보고, 대나무가 여물지 않았다거나, 대금 음정이 맞지 않다거나, 초보자가 불기엔 맞지 않다거나, 어떤 음은 소리내기가 어렵다거나, 취구가 잘 못되었다거나...하는 등등의 트집을 잡아 기대를 하고 있던 초보자의 가슴이 덜컹 하도록 한마디 합니다. “그 대금은 모양만 대금이지, 대금이라고 할 수 없으니, 그 대금은 누구 주던지 버려버리고, 새로 하나 장만을 하는 게 낫겠다.”
인터넷 카페 등에 가 보면 중고로 나온 악기들이 많습니다.
그중엔 유명한 누가 만든 대금이라든지, 어느 전공자가 불던 아주 좋은 대금이라거나, 자기가 가장 아끼는 대금이라는 등의 설명이 덧붙여져 따라 다닙니다.
그렇게 좋은 대금을 왜 팔려고 내 놓았을까.
대금이라는 악기는 기계가 아니라서 쉽게 고장 나거나, 관리만 잘 했다면 거의 평생을 사용해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텐데...이런 생각이 안드십니까?
초보자 중엔 중고 대금을 구입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중고 대금이라고 해서 다 나쁜 건 절대 아닙니다. 다른 악기도 그렇다고 봅니다.
간혹, 대금선생님이 자기가 불던 대금을 자기가 가르치는 사람에게 선심 쓰듯 파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가 아끼는 대금을 선뜻 파는 이유가 뭘까...생각해보셨습니까?
불신은 좋지 않습니다.
믿고 사는 세상이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믿지 못하도록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는 세상입니다.
대금선생님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제가 알고 있는 분들중엔 정말 양심적이고, 인품도 훌륭하신 분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일부 못된 생각을 갖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좋은 분들까지 욕을 먹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은 대금을 구입할 수 있을까?
근래에 와서 느끼는 일 중 하나가 우리나라에서 대금을 좋아하고 대금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겁니다.
대학에서 대금을 전공하여 전문 연주자의 길로 나아가는 사람을 제외하고, 취미로 대금소리가 좋아 대금을 배우는 사람들은 얼핏 줄잡아 만명 가까이는 되리라 봅니다.
그 숫자의 근거는 정확하지 않지만, 인터넷을 통한 각종 동호회 활동과 대학교나 직장의 동아리 활동 및 그 밖의 각종 문화센터활동 등을 감안할 때 얼추 그 정도의 숫자가 아닐까 혼자 가늠해 봅니다.
그 이상이 되면 되었지 그 이하는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대금공부를 함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는 대금(大笒)과 대금을 가르치는 사람, 대금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대금정악을 공부하던, 대금산조를 공부하던 위의 세 가지 요소는 반드시 함께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간혹, 혼자 공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솔직히 혼자 공부한다는 것은 극히 예외의 일입니다. 어차피 혼자 공부한다 해도 대금을 갖춰야 하고, 인터넷을 통하던, 시디나 테이프를 이용하던 공부의 대상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혼자서 대금을 공부한다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대금을 공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인 대금, 선생님, 나, 이 세 가지 중에서 대금공부에 가장 장애를 주는 요인은 무엇일까요?
저는 자기 자신이라고 봅니다.
대금을 공부하기 전에 수많은 갈등을 이겨내야 합니다.
결혼하기전에 혼자서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사는 남.여이던,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사람이던, 대금을 배우고 싶다는 충동을 받고나서, 막상 대금 공부를 시작하기까지에는 시간문제, 돈 문제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단, 그렇게 어려운 갈등을 겪고 시작한 대금공부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서도 또 엄청난 내부적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대금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공감할 겁니다.
대금소리가 안나서 고민, 좋은 대금을 갖고 싶은 고민, 연습 시간의 부족, 대금선생님과의 갈등, 같이 대금 배우는 사람들과의 갈등, 대금 실력이 늘지 않는 고민, 가정생활의 지장, 레슨비의 부담 등등 따지고 보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래도 온갖 갈등을 겪고 대금공부를 하긴 합니다.
도대체 왜 그러한 좌절과 갈등을 느끼면서, 수많은 고민을 하면서 대금을 공부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항상 보이지 않는 언덕 너머에 있을 거라는 아름다운 무지갯빛 꿈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과연 그 무지개는 있을까요?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분명히 있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하찮게 여길망정, 자기 자신에게는 소중한 무지개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 무지개는 대금고수의 눈에만 보이는 게 아닙니다.
대금 전공자의, 대금선생님의, 대금명인의 눈에만 보이는 게 아닙니다.
이제, 대금을 갓 시작한 왕초보의 눈에도 힐끗힐끗 보입니다.
대금을 공부하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중간에 공부를 포기한 사람의 눈에도 가금씩 나타납니다. 그래서 다시 대금공부를 하게 되기도 합니다.
대금공부의 현실적 문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여하히 극복하느냐 입니다.
중년의 나이에 손가락도 제대로 펴지지 않는 상황에서 주위의 눈총을 받아가며 나름대로 열심히 대금을 공부하는 사람의 희망과 꿈은 정말 아름답고 소중한 것입니다.
대금으로 돈을 벌어 부자가 되려는 것도 아니고, 대금으로 건강을 지키고, 대금으로 사람을 사귀고, 대금으로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대금을 배워 전문 국악인의 길로 가려는 것도 아닌데, 틈만 나면 대금을 꺼내들고, 악보를 외우고, 고민하고, 연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연습하고...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좋은 대금 하나 갖는 게 꿈이어서, 비싼 대금을 사기 위해 용돈을 모으거나, 아내나 남편을 선의로 속이기도 하고, 길을 가다가 대밭을 보면 혹시 쌍골죽이 없을까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인터넷 중고악기 코너에 좋은 대금 싸게 나온 게 없나 살펴보고...대금 선생님이나 주변의 대금 고수를 통해 구입한 대금을 애지중지 하다가 나중에 속앗을 때의 허탈감을 스스로 삭여야 하고, 자기보다 늦게 공부를 시작한 사람이 대금을 더 잘 불면 은근히 시기심과 질투도 나고, 혼자서 좋은 대금을 사자니 대금을 보는 안목은 없고, 누구한테 부탁하자니 믿을 사람이 없어 막막하고....!
이러한 갈등과 고민을 모두 혼자서 짊어지고 그래도 대금을 공부하는 모습!
저는 이러한 모습이 바로 숭고한 수행자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얼마 전 열심히 대금을 공부하는 분과 대화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대금을 공부하려고 해도, 자꾸 방해하고, 훼방을 놓는 사람이 있는데, 누군지 아십니까?”라고 묻자 그 분은 한참을 생각하는 눈치였습니다.
그 분은 아마 속으로 자기 주변에서 자기가 대금공부 하는 것을 방해 하는 사람이 누구지 하면서 찾는 거 같았습니다. 제가 바로 답을 해 주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대금을 열심히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자기 자신이지만, 대금공부를 못하게, 하지 말라고 말리는 것도 자기 자신입니다.”라고.
대금을 연습해야지 마음먹은 순간에도 내 마음 한쪽 구석에서는 “야, 대금을 왜 연습해. 그럴 시간이 있으면 책을 보던지, 운동을 하던지, 텔레비전을 보던지, 다른 일을 하지, 괜히 다른 사람 시끄럽게 하지 말고, 그냥 쉬어...”하면서 방해하고, 대금 레슨을 받으러 가야지 하는 순간에도, “야, 오늘 하루쯤 레슨을 빼먹는다고 난리 나는 것도 아니고, 레슨 받으러 가 봐야 선생님께 대금 못 분다고 핀잔이나 듣는데, 그냥 다른 핑계대고 오늘은 빼먹는 게 어때?”라면서 못가게 하고. 대금을 불려고 꺼냈는데 청이 찢어져 있으면, “그 봐. 지금은 대금 불 때가 아닌 거야. 그냥 쉬어. 대금 청이 저절로 왜 찢어졌겠어. 대금 불지 말라는 신호야...” 잘 안 되는 부분을 집중으로 연습하면, “지금 그것을 대금이라고 불고 있냐? 어휴, 다른 사람 대금소리를 들어봐라. 지금 네가 부는 대금소리는 소음이야, 소음. 그럴 바엔 대금 때려치우고, 다른 것을 배워보는 게 어때?” 이렇듯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고 대금을 공부하려고만 하면 나타나서 방해를 놓는 친구가 바로 자기 자신 안에 있습니다. 자기 자신인 겁니다.
그래서 저는 대금공부는 자기 수행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내부적 갈등을 여하히 잘 참고, 이겨내느냐 이것이 관건입니다.
어찌 대금공부만 그렇겠습니까.
다른 공부나, 운동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삶, 인생 자체가 결국은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 아닐까요?
대금을 취미로 공부하는 사람이나 대금을 전공하는 사람이나 간절히 바라는 것은 좋은 대금 하나 갖는 것입니다.
평생을 함께 할 좋은 명품 대금....!
대금 전공자라 해서 다 자기 맘에 드는 좋은 대금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대금 초보자라 해서 나쁜 대금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연이 닿으면 누구나 좋은 대금을 갖게 되는 거 같습니다.
좋은 대금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소리가 잘 나야합니다. 생긴 모양이 어떻던, 값이 비싸고 싸던, 유명 대금장이 만들었던 무명의 손재주 있는 사람이 만들었던, 대금은 소리가 잘나야 합니다.
소리가 잘 나야 한다는 말은 현재 통용되고 있는 대금의 음정에 맞게, 취구를 입에 대고 불면 소리가 부우웅 편안하게 나는 대금을 말합니다.
아무리 비싼 돈을 주고, 유명한 누가 만들었다 해도, 음정이 안 맞거나, 자기와 궁합이 맞지 않으면 소리 내는데 엄청 힘이 들고, 고생만 하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은 자기 손을 떠나게 되지요.
그래서 여러 사람의 대금을 구경도 하고, 만져도 보고, 불어도 봐야 어떤 대금이 자기에게 맞고, 소리 내기가 편한지 알게 됩니다.
무턱대고 덜컥 비싼 돈을 주고 대금을 구입했다가 낭패를 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대금을 만들어 파는 사람은 엄청 많습니다. 그중에는 이름 있는 장인도 있고, 유명 악기사도 있고, 유명한 대금연주자도 있고,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알음알음으로 만들어 파는 사람도 있고, 다양합니다.
유명한 사람이 만들었다거나, 대금을 잘 부는 유명 연주자가 만들었다고 해서 다 좋은 대금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 조건은 나의 경제사정에 맞는 대금이어야 합니다.
어려운 살림에 취미 생활을 위해 수백만원이나 가는 대금을 구입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물론, 평생 하나로 만족할 거, 기왕이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대금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탓할 일도 아니지요. 그러나 그렇게 산 대금이 평생을 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무리를 하지 말자는 겁니다. 대금은 대금 실력이 향상되면서 중간에 몇 번은 바꾸어야 할 시기가 찾아옵니다.
약간은 사치스런 이야기일지 모르나, 대금 초보 때 불던 대금이, 어느 정도 실력이 붙고 대금에 대해 좀더 많이 알게 되면 대금에 대해 불만이 쌓이게 됩니다.
그때는 대금을 바꾸던지 아니면 수리를 하던지 해야 할 시기입니다.
주위을 살펴보면 그동안 몇 개의 대금을 바꿨는지, 아니면 몇 번의 수리를 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대금 공부하는 사람들이 겪는 과정입니다. 처음부터 무리를 해서 비싼 대금을 사는 것은 삼가하고, 숙고해야할 일입니다.
세 번째 조건은 모양도 좋으면 금상첨화입니다.
대금의 모양이 좋다는 것은 잘 생긴 대금을 말합니다. 햇대가 아니면서 너무 굵지도 않고, 가늘지도 않고 적당한 굵기에, 대금 살도 적당한 두께에, 마디수도 딱딱 맞아 떨어져 취공 한마디, 청공 한마디, 지공3개가 한마디씩 3.3. 지공에, 끝 마디가 대금 끝에 맞아 떨어지는 대금...통상 이런 대금을 잘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나무는 어디까지나 자연적으로 자라는 식물이기에 사람의 마음에 맞게 자라지 않지요. 100개의 대금이 있다면 이렇게 잘 생긴 대금은 5개 미만일 겁니다.
그러나 가급적 피해야 할 대금은 있습니다.
청공이 대나무 마디에 뚫려 있다거나, 지공이 대나무 마디에 걸쳐 있다거나, 대나무 기름을 빼면서 너무 심한 불을 쏘여 대금 몸통이 시커멓게 탔다거나, 대나무가 자란지 얼마 안된 햇대라거나, 몸통이 너무 굵거나 가느다란 대금 등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굳이 그러한 대금을 사야한다거나, 사고 싶다면 가격을 조정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대금을 만드는 사람마다 고집스런 특색이 있는데, 시간이 흐르고 많은 대금을 구경하다 보면 자기의 마음에 드는 대금은 어떻다 하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이러한 조건에 맞는 대금을 갖는 것은 한갓 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꿈을 지니고 있다보면, 언젠가는 인연이 닿아 정말 마음에 드는 대금을 갖게 될 겁니다.
한번 마음에 드는 대금을 갖게 되면 다른 사람의 대금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기왕에 대금 이야기 나왔으니, 대금 가격에 대해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솔직히 현재 거래되고 있는 대금 가격은 거품이 너무 많이 끼어 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경제논리에 의해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기 때문에 비쌀 수 밖에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대금 가격의 거품은 너무 심합니다.
대금 자체의 품질적 가치에다 만든 사람이나 추천하는 사람의 이름값까지 보태져서 너무 비싸게 거래되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대금 공부할 시간에 대밭을 뒤져 직접 대금을 만드는 사람이 늘어나겠습니까.
몇년전부터 우리나라에는 좋은 쌍골죽이 씨가 말라서 좋은 대금을 만들 만한 쌍골죽은 구경하기도 어렵다는 소문이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쌍골죽 대금은 계속 만들어져 공급되고 있습니다.
대금을 만드는 분들 중에는 이미 오래전에 많은 쌍골죽을 확보하여 그것으로 대금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매년 겨울에 대나무를 채취하거나 구입하여 대금을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간혹 들리는 풍문에는 중국산 쌍골죽이 상당량 수입되기도 한다지만, 제가 직접 확인한 바는 없습니다. 그러나 단소의 경우 중국에서 직접 만들어 완제품으로 대량 수입된 현장을 보기는 했습니다. 엄청난 량의 다양한 싸구려 단소가 어마어마하게 수입되어 창고에 가득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랬습니다. 그것도 이미 4년전 일입니다. 대부분 초등학교 교육용으로 팔려나간다고 하더군요. 일부는 악기사를 통해 국산 단소라고 하여 팔리기도 하구요.
단소의 경우를 보건데, 다른 관악기도 충분히 중국에서 만들어 들어 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보여집니다.
제가 직접 대나무 채취업자를 상대하여 쌍골 대나무를 구입한 적은 없지만, 주변에 대금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대밭에서 캐온 쌍골대나무 한 개에 보통 20-30만원을 준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구입하는 사람이 마음에 드는 대나무를 고르기 보다는 채취업자가 골라 주는데로 좋은 대나무 몇 개에 쓸모없는 대나무 몇 개를 끼워서 같이 사야한다고 합니다.
쓸모없는 쌍골죽이라 함은 오래되지 않고 여물지 않은 햇대이거나, 너무 많이 휘어져 있어 아무리 곧게 편다고 해도 모양이 나오지 않을 대나무, 대나무 마디가 애매하여 취구, 청공, 지공 등의 위치를 제대로 잡기 어려운 대나무, 속살이 얇거나, 너무 가늘거나, 대나무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금이 간 대나무...등등 대금을 만드는 사람이 한눈에 봐도 악기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는 대나무도 같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사야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사실대로 좋지 않은 대나무지만 어쩔 없이 끼워 팔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양심이라도 있는 사람입니다.
잘 아는 사람의 소개로던지, 아니면 수소문 하여 대나무 채취업자를 찾아가 대나무를 구입하는 경우엔, 틀림없이 큰 속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현재의 쌍골 대금의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대밭에 있는 쌍골 대나무라면 무조건 캐오는 사람들의 몰지각에서 비롯된 겁니다.
쌍골 대나무가 대금으로 다시 나려면 최소한 3년 이상은 묵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눈에만 띄면 마구잡이로 캐다가 팔아먹는 사람들의 비양심적인 행태는 비난받아야 할 겁니다. 그나마 국산이라면 불행 중 다행일수도 있지만, 싸구려 중국산 쌍골대나무를 가져다가 비싸게 팔아먹는다면 비난에 그칠 일이 아닙니다. 이는 사기행위가 아닐까요?
대금을 만들기 위해 10개의 대나무를 300만원에 구입했다고 칩시다.
그중엔 쓸만한 대나무 7개에 몹쓸 대나무 3개가 섞여 있습니다.
여러분이 대금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가정할 때, 몹쓸 대나무 3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과감하게 잘라서 장구채를 만들겠습니까? 아마, 그렇게 하실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일단은 사온 대나무 모두를 성심 성의껏 최선을 다해 대나무의 기름을 빼고, 곧게 펴서, 재단을 하고, 구멍을 뚫어 대금을 만들 겁니다.
쓸만한 대나무라고 모두 다 좋은 대금으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몹쓸 대나무라 하여 소리마저 엉망인 경우는 아닐 겁니다. 간혹, 개천에서 용 나듯 좋은 대금이 나오기도 한다고 합니다.
보통의 경우, 10개의 대나무라면 5개 정도(50%)는 쓸만한 악기가 되고, 3개 정도(30%)는 그저 그런 악기가 되고, 2개 정도(20%)는 상품가치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대충 그렇다는 것이지, 정확한 통계 수치는 아닙니다.
쓸만한 대금 5개는 구입하는 사람에 따라 한 개에 100~150만원 정도를 받고, 3개는 30~50만원 정도를 받고, 2개는 그냥 가지고 있다가 아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거나, 연습용이라 하여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팔기도 할 겁니다.
이렇게 대금 10개를 만드는데 넉넉잡아 두달 쯤 걸릴 겁니다.
총 수입은 대략 1000만원 정도입니다. 얼핏 보면 짭짤한 수입이라고 판단할 수 있지만, 만든 대금이 모두 팔린다는 보장도 없고, 1년 내내 이러한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므로 대금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아주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대금의 적정 가격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없을 겁니다.
다만, 대금을 만든 사람이 대금을 직접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판다면 그나마 좀 나은 경우지만, 한 다리 걸쳐 대금을 거래하게 될 경우, 중간에 거마비가 보태지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그것도 유명인사가 중간에 끼이면 그 가격은 훨씬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대금 가격은 정해진 가격이 없습니다. 부르는 게 값입니다.
한마디로 대금을 사는 사람이 봉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취미로 대금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비싼 대금 가격은 큰 부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취미로 국악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공부하면서 가장 큰 애로사항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악기 값이 너무 비싸다는 게 공통적인 대답일 겁니다.
진정으로 국악을 발전시키려 한다면, 악기 만드는 사람들을 등록제로 하고, 등록한 장인들에겐 일정한 보조금을 주어 악기 값을 대폭 낮춰야 합니다.
단, 누구나 대금을 만들어 팔고자 한다면 신고제나 등록제로 하여 허가를 해 주되, 대금 거래에 대한 명세서를 작성하여 대금 거래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거지요.
아마 이렇게 되면 불량 대금, 고가의 대금은 자취를 감추게 되리라 봅니다.
어떤 사람이 플라스틱 대금으로 대금공부를 시작하여 서너달 지나자 자꾸 대나무 대금에 눈길이 가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선뜻 어디에서 어떻게 구입해야 할지 막막하여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져보고,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나름대로 정보를 수집하지만,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워 고민을 합니다.
대금을 만들어 파는 사람도 많고, 악기사도 많지만 아무런 연고가 없다면 정말 막막할 겁니다. 그래서 대금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을 통하여 대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대금선생님하고 같이 악기사나 대금장인을 찾아가 구입하기도 하지만, 더러는 대금선생님께 부탁하면 대금을 서너개 가져와 고르라고 합니다.
대금 선생님이 불면 대금들이 모두 소리가 빵빵하게 잘 납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불면 여전히 소리가 모기 소리만하고 그게 그거라서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망설입니다. 그럴 경우 대부분 선생님이 추천해주는 대금을 구입할 겁니다.
대금선생님들은 어느 대금이나 잘 붑니다.
그러나 대금 초보자들은 자기 대금 아니면 소리 내기도 어렵습니다.
대금 값이 얼마가 되던지 일단, 구입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 때까지 무진 애를 먹을 겁니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대금을 만드는 사람은 자기의 입술에 맞춰 취구를 만듭니다.
그렇지만 대금은 대금을 부는 사람의 입술 모양, 턱뼈의 형태, 치아, 얼굴 주위의 근육, 혀의 움직임, 목구멍, 입바람 내는 요령, 체형, 체격...등등에 따라 소리를 다르게 내기 때문에 대금 실수요자의 모든 여건을 고려하여 취구를 다시 조정해주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금 초보 때 다르고, 중간쯤일 때 다르고, 고수가 되면 또 달라지게 되므로 그 상황에 맞게 대금을 손봐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과연 수시로 대금을 손 볼 수 있는 상황입니까? 아니지요.
어떤 사람은 어디 사는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대금을 고가로 사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간혹, 대금선생님이 직접 손을 봐주기도 하는데, 대금 잘 부는 것과 대금을 잘 손보는 것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요즘은 수십만원대의 어지간한 전자 제품이라도 애프터서비스를 얼마나 잘 해 줍니까.
이제는 대금도 취구 뿐 아니라, 쌍골 홈 파인 곳이 금이 가거나, 묶인 줄이 풀리거나, 기타 등등 재질상, 제작상의 실수로 인한 결함은 영원히 무상 수리를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장황하게 이야기를 한 이유는 좋은 대금과 나쁜 대금을 판별하기 위한 예비지식을 쌓기 위함이었습니다.
좋은 대금은 내 경제사정에 맞는 적정 가격이면서 모양도 좋고 소리도 잘나는 대금이고, 나쁜 대금은 모양이야 어떻던, 비싸고 소리 내기 어려운 대금입니다.
좋은 대금도 대금 만드는 사람이 만들어 팔고, 나쁜 대금도 만들어 팝니다.
운이 좋으면 좋은 대금 만나고, 운이 나쁘면 나쁜 대금을 만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은 대금을 구입할 수 있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본인 스스로 대금을 만들면 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우선 대밭에서 좋은 쌍골죽 만나기도 하늘에 별 따기고, 설령 좋은 쌍골대나무를 캤다고 해도, 대금을 만드는 기술과 지식이 없으면 허사입니다.
그 다음 방법은 대금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시는 대금입니다.
만약, 양심적이고 꼼꼼한 선생님이라면 자기가 가르치는 사람의 모든 조건에 맞는 대금을 추천해줄 겁니다. 하다못해 경제적 사정까지도 고려하여 추천해주면서, 대금의 장.단점을 일러주기도 할 겁니다. 대금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과 같이 대금 만드는 곳을 찾아가 수 많은 대금을 놓고 비교하고 불어보도록 하여 그중에 가장 적합한 대금을 추천도하고, 미리 손 볼 곳도 찾아내 주면서, 챙겨줄 겁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양심적이고 꼼꼼한 대금선생님이 몇 분이나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무턱대고 직접 구입하는 겁니다.
오히려 마음이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양심적인 대금장인들이 계시다고 봅니다. 운 좋게 그런 분들을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자기의 사정에 맞는 대금을 구입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제가 너무 절망적, 비관적인 말만 한거 같습니다.
한 가지 희망은 대금을 만드는 분들이나, 대금을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들 중엔 양심적이고 올곧은 성품을 지닌 분들이 아직은 많이 계시다는 겁니다.
그 분들이 나서지 않고 조용하게 지켜만 보고 계시지만, 그 분들이야 말로 몸소 행동으로 국악을 키워나가는 밑거름이자, 국악을 지탱해주는 큰 기둥이십니다.
부디 좋은 인연으로 좋은 대금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55. 정악과 산조, 시나위
가. 정악
대금정악이란 대금으로 연주하는 정악(正樂)이란 뜻이다.
정악이란 궁정이나 관아의 연향에서 연주하던 음악 및 풍류방에서 연주하던 음악으로 우아하고 바른 음악이란 뜻이며, 민속악과 대립된다. 대금은 신라 신문왕 때 있었다는 만파식적< 萬波息笛 >이라는 악기가 오늘날 젓대와 같은 계통의 악기라 한다면 대금은 신라 때부터 있었다고 하겠다. 통일신라 때 삼현삼죽< 三絃三竹 > 음악에 대금이 중금, 과 함께 향악에 편성되었고 고려, 조선으로 내려오면서도 향악에서 주요 악기로 쓰여 왔으며, 시나위나 산조와 같은 민속음악에서도 두루 쓰이고 있다. 젓대는 쌍골죽이라는 속이 찬 대나무 밑둥으로 만드는데, 왼쪽은 막혀 있고 위 첫마디에 김을 불어넣는 취구가 있다. 그 조금 아래에는 갈대 속으로 만든 얇은 청을 대는 청구멍이 있고 다시 그 아래로 지공이 여섯 개 뚫려 있다. 저취라 하여 낮게 불면 은은한 소리가 나고, 역취라 하여 세게 불면 청아한 소리가 난다.
정악< 正樂 >으로 꼽히는 음악이 합주음악이므로 본디부터 대금독주로 연주되는 정악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나, 합주음악인 정악을 대금독주로 연주하게 되면 대금의 특이한 음색과 성능으로 말미암아 색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에 종종 독주하는 일이 있다. 정악 가운데 대금독주로 흔히 연주하는 음악에는 청성자진한잎, 평조회상, 자진한잎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음악이 언제부터 대금독주로 연주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닌 것 같다. 평조회상은 일명 유초신지곡이라 부르며 영산회상이라 하는 모음곡을 낮은 조로 옮긴 곡이며 그 첫번째 곡인 상영산을 흔히 대금에 얹어 분다. 매우 유창한 자유 리듬으로 은은하고 청아하게 뻗은 대금가락은 신선의 경지에 들게 한다. 청성자진한잎은 가곡을 높은 조로 옮긴 곡으로 이 또한 대금에 얹어 불면 그윽하고 청아하기 이를 데 없다.
대금정악은 영롱하나 가볍지 않고 부드러우나 유약하지 않으며, 섬세하나 천박하지 않은 오묘한 맛의 가락을 지닌 전통음악으로 우화등선하는 신선의 풍취를 자아내게 한다.
나. 산조
대금은 신라시대의 대표적 악기인 三絃(거문고, 가야금, 향비파)과 三竹(대금, 중금, 소금) 중의 하나로서 대나무로 만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악기중의 하나입니다. 대금은 요즘 '젓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금의 음역은 낮은 임부터 높은 태까지 약 3옥타브에 이른다. 대금에는 크게 정악대금과 산조대금으로 나눌 수 있다. 대금은 취공과 청공, 6개의 지공, 음율을 조절하기 위해 만든 칠성공을 가진 가장 긴 관악기이다.
대금에는 청이라는 것을 붙이는데 이것은 갈대 속에 붙어있는 얇은 막을 뽑아내서 대금의 청공에 붙여 떨림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산조대금은 정악 대금보다 좀 짧고 취구가 크고 음고(音高)가 높아서 시나위나 산조를 연주하기 편리하게 되어 있다.
언제부터 산조대금으로 시나위를 연주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금으로 무악(巫樂)을 연주한 지가 오래되었다면 대금으로 시나위를 연주 한 지도 오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대금산조는 우리민족의 유구 한 역사 속에서 서민의 애환을 담아 전승되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집대성해서 대금 산조를 가장 먼저 창시한 사람은 박종기(朴鍾基, 1879∼1939)로 전해지고 있다.
대금 산조는 판소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박종기류와 시나위가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강백천(姜白川, 1898∼1975)류로 나뉘며, 그 아래 여러 유파로 세분되어 전해지고 있다.
박종기의 후계자는 한주환(韓周煥, 1904∼1963)이다. 한주환은 대금산조의 중시조로 일컬어지며 오늘날 대금산조의 유파 형성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범수(韓範洙, 1911∼1984)는 박종기와 한주환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생강 (1937∼ )과 서용석(1940∼ )은 한주환에게 대금산조를 배운 뒤 자신의 특징 을 더해 독특한 류를 형성했으며, 원장현(1950∼ )은 한일섭(1927∼1973) 에게 구음(口音)을 통해 산조를 익혀 일가를 이루었다.
한주환-서용석으로 이어지고 있는 서용석류 대금산조는 이생강류 대금산조 와 쌍벽을 이루면서 오늘날 우리 나라 대금산조를 대표하고 있다.
대금 산조는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의 장단으로 구성된다.
어느 시인은 대금산조의 애절함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소리죽여 흐르는 통곡의 강물이다." "피울음을 삼키면서 돌아보는 세월이다."
다. 시나위
남도의 무악(巫樂)으로 신방곡(神房曲)·심방곡(心方曲)이라고도 한다.
한강 이남과 태백산맥 서쪽지방의 무속음악에서 유래한 기악곡으로서 특히 호남지방에서 많이 부른다. 어원은, 신라 때 노래를 뜻하던 사뇌(詞腦)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며, 외래 음악인 당악(唐樂), 즉 정악(正樂)에 대하여 토속음악인 향악(鄕樂)으로 해석하여 당악보다 격이 떨어지는 음악의 일반 명칭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는 설도 있다.
심방곡은 당초 무당의 음악이라는 뜻으로 옛 문헌에는 신방곡으로도 나오며, 육자배기토리로 된 허튼가락의 기악곡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이처럼 시나위의 역사적 전개 과정은 확실하지 않으며, 다만 무속음악에서 영혼을 달래는 의식으로부터 출발하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옛날에는 삼현육각 편성으로 시나위를 연주하였으나 지금은 가야금·거문고·해금 등의 현악기가 함께 연주한다. 연주 형태는 무당이 육자배기토리로 된 무가를 부르면 모든 악기는 저마다 허튼가락을 무가의 대선율(對旋律)로 연주한다.
이 때 무가의 선율과는 다른 선율을 연주함으로써 다성적 효과를 나타낸다. 이 같은 선율진행과 장단은 연주자들의 현장 호흡으로 맞추어지는 즉흥음악이므로 고도의 음악성과 연주기술을 요한다. 육자배기토리로 된 허튼가락은 무의식이 아닌 민속음악에도 쓰이는데 이 경우도 시나위라고 부른다. 시나위는 조선 후기에 산조·판소리·잡가 등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판소리에는 시나위의 더늠이 간혹 보인다. 최근에는 일반인에 의한 시나위 연주는 거의 없고, 다만 살풀이춤의 반주나 순음악의 합주로 연주되고 있으며, 장단조직은 산조(散調)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