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돌려받고 싶은 아름다운 추억이 있습니다.
온통 무채색으로 가득한 기차역에서 줄리앙(가스파르 마네스)은 엄마와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기숙 학교로 돌아가야 하지만 형과 달리 엄마 품을 떠나는 것이 너무 싫은 줄리앙은 엄마가 새겨준 이마 위의 선명한 붉은 입술 자국을 이별 선물로 안고 기차에 올라야만 한다. 그리고 소년은 곧 붉은 입술 자국 보다 더욱 선명하게 마음 속에 각인될 아름답고 쓰린 세상에 대한 경험을 통해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영화 <굿바이 칠드런>은 1944년 2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 파리 근교의 카톨릭 기숙 학교에서 벌어지는 소년들의 아름다운 우정과 그 순수함에 생채기를 내는 잔인한 세상을 이야기한다. 12살 줄리앙은 모든 면에서 뛰어난 우등생이고 급우들 사이에서도 인정받고 있는데 ‘보네’(라파엘 페이토)라는 친구가 새로 전학을 와 그의 옆 침대에 짐을 풀게 된다. 문학, 수학 등에서 줄리앙의 라이벌로 떠오를 만큼 영리한 보네는 말이 없고 뭔가 사연을 간직한 듯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어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하지만 줄리앙은 보네에게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피아노 레슨 시간에 선생님(이렌느 야곱) 앞에서 슈베르트를 능숙하게 연주하는 보네의 모습에 질투심을 느끼기도 한다.
보네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계속 지켜보던 줄리앙은 보네와 관계된 낯선 사실들을 접하게 된다. 보네는 본명이 장 키플스타인이고 부모님과 오랫동안 떨어져서 살며 간간이 편지를 주고 받고 있다. 이런 비밀을 마음 속에 품고 모두에게 숨기려고 하는 보네를 보며 줄리앙은 보네가 유태인이라는 것을 눈치챈다. 사실 줄리앙은 유태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들이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밝혀져선 안 될 비밀이라는 것, 사람들은 그들을 다르게 대한다는 것 정도를 알고 있을 뿐이다. 줄리앙과 보네는 함께 피아노를 치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우정을 키워간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학창 시절의 일상적인 모습에 빛을 덧입힌 영화 <굿바이 칠드런>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마지막 장면의 감동으로 향한다.
숲으로 둘러싸인 무채색의 학교는 시종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검은색 제복을 입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학교의 마당에서 놀이를 하는 모습, 안개 낀 고풍스러운 거리를 함께 노래하며 걷는 모습 등은 영화에서만 만날 수 있는 40년대 프랑스의 분위기를 실어 나른다. 그리고 그 가운데 붉고 선명하게 피어나는 줄리앙과 보네의 우정은 죽어 있던 추억에 대한 기억에 새롭게 불을 지핀다.
루이 말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을 영화화 한 <굿바이 칠드런>
“40여 년이 흘렀지만 난 그 1월의 아침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영화 <굿바이 칠드런>은 루이 말 감독 스스로의 나래이션으로 마무리 된다. 루이 말은 <라콤 루시앙>의 배경이 되는 1944년을 조사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다시 떠올리고 <굿바이 칠드런>의 기획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떠올렸다고 한다. 그가 감독이 될 결정적인 결심을 하게 했던 사건, 어린 시절 뇌리에 새겨져 잊혀지거나 지워지지 않을 그 사건을 영화화 하는 것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그리고 미국에서의 작품 활동을 뒤로 하고 다시 고향의 품에 안겨 새롭게 준비한 작품이 <굿바이 칠드런>이었다. 그리고 그가 처음 노트에 기록 했던 말이 위의 문장이었고 이 문장을 영화의 마지막 대사로 할 것을, 그것도 자신의 목소리로 할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굿바이 칠드런>은 루이 말 스스로가 경험했던 실화를 영화화 한 작품이다. 두 번 등장하면서 깊은 인상을 남기는 줄리앙의 엄마는 루이 말 스스로 자신의 어머니를 반영한 캐릭터라고 하였고 장난꾸러기인 형과 바빠서 자식들을 돌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마음의 속삭임>에서부터 이어지는 루이 말 가족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루이 말은 실제로 카톨릭 기숙 학교에서 공부하였고 보네와 비슷한 유태인 전학생과 친해졌고 그를 떠나 보냈다. 영화에서 줄리앙과 보네가 결정적으로 친해지는 계기가 되는 산 속에서 보물 찾기를 한 것도 실제 경험에서 가져 온 것이다.
부모님을 학교로 초청하여 학생들과 함께 외출을 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이후에 함께 모여 영화를 보았던 것과 다같이 영화 <이민선>을 보는 장면들도 모두 루이 말의 기억으로부터 길어 올려진 장면들이다. <굿바이 칠드런>은 감독이 직접 경험한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화 하여 사소하고 일상적인 사건들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한 작품이다. 누구나 경험하였던 학창 시절의 이야기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각자의 소중한 추억에 불씨를 되살려 준다.
<굿바이 칠드런>의 놓칠 수 없는 명장면과 음악
1. 찰리 채플린의 <이민선>(1917)을 상영하는 장면
부모님들을 학교로 초청하여 모든 이들이 함께 무성영화를 보는 장면에서 채플린의 <이민선>(1917)이 상영되는 것은 루이 말 개인의 기억 속에 각별히 남아 있던 추억에서 끄집어 올려진 것이라 한다. 무성영화를 스크린에 영사하며 연주를 따로 하는 것은 실제로 1930년에서 40년 사이에 유행했던 풍습인데, 이후에도 한 동안 이런 문화가 남아있었다고 한다. 루이 말은 스스로가 이런 방법으로 보았던 첫 영화가 채플린의 <이민선>이었고 이 각별한 기억을 영화에 녹여 낼 생각을 늘 마음 속에 품었다고 한다. 채플린은 유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역작, <독재자>(1940)로 인해 2차 세계 대전 당시 모든 작품이 상영 금지 조치에 취해졌지만 비밀리에 상영이 이어지고 있었다. <굿바이 칠드런>의 기숙 학교는 나치 정부 아래 유태인 학생을 숨겨 주고 있었고 영화 속에서 자유의 여신상이 보여지는 장면이 있어 <이민선>은 영화에도 안성맞춤으로 어울리게 되었다. 보네, 줄리앙, 신부님들, 학부모들, 그리고 배신자 조셉까지… 이들이 함께 모여 한 곳을 바라보고 웃으며 즐거워 하는 이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수 많은 의미와 갈등이 한 자리에서 부딪히는 묘한 정서를 전달한다.
2. 슈베르트와 생상의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 그리고 이렌느 야곱
루이 말은 본인 스스로를 재즈광이라 부를 정도로 재즈를 사랑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그의 첫 장편작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에서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를 영화 음악으로 하여 찬사를 받았고 이후의 작품에서도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굿바이 칠드런>에서는 영화와 꼭 닮은 아름다운 클래식을 감상할 수 있다. 전학 온 보네에게 관심을 보이던 줄리앙은 보네가 피아노 선생님 앞에서 슈베르트의 "Moment musical no 2"를 연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 동안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관객 역시 보네의 연주에 온 신경이 집중되는데,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피아노 선생님으로 앳된 모습의 이렌느 야곱이 출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굿바이 칠드런>이 이렌느의 데뷔작이었다. 그리고 영화 <이민선>이 상영될 때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로 합주되는 생상의 "Rondo Caprioso"를 즐길 수 있다. 모두들 대피소로 피한 틈을 타서 교실에 남은 줄리앙과 보네가 함께 부기우기를 연주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굿바이 칠드런>의 제작 스토리
1. 캐스팅
늘 그렇듯이 루이 말은 캐스팅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자신의 자화상과 같은 줄리앙, 그리고 유태인으로 보이면서도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보네, 그리고 자신의 가족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줄 형과 엄마, 이 모두는 신중한 캐스팅을 요했다. 그리고 줄리앙과 보네는 둘이 함께 있는 모습과 서로의 연기가 결합되었을 때의 느낌까지 고려하여 캐스팅에 임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줄리앙 역의 가스파르와 보네역의 라파엘 모두가 유태인의 피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가스파르는 엄마가 유태인이었기에 감정이입이 좀 더 수월했을 것이다. 그리고 루이 말은 조연이지만 ‘조셉’ 역을 캐스팅 할 때도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고 한다. ‘조셉’은 학교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무시당하는 캐릭터로 나중에 학교를 밀고하는 배신을 하는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루이 말은 이 캐릭터를 언급하며 <라콤 루시앙>의 루시앙 같은 느낌으로 캐스팅 했다고 한다. 루시앙 역시 자신의 동포를 밀고하는 캐릭터로 조셉과 일맥상통하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캐스팅이 완료되고 촬영 시작 3일 전에 함께 리허설을 시작했는데, 학생들은 금방 현장 분위기에 적응하였고 연기에 몰입했다고 한다. 어려웠던 점은 피아노를 잘 쳐야 했던 라파엘이 피아노 솜씨가 썩 좋지 않아서, 연습을 많이 했어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주역이 나이가 어려 하루 촬영을 4~5시간 정도만 진행할 수 있었고 루이 말은 학교 수업 시간 같이 오전에 시작하여 오후에 마치는 일정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2. 미술
<굿바이 칠드런>은 유독 무채색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기차역에서 시작되어 학교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영화는 내내 무채색의 건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학생과 선생님들은 줄곧 검은색의 제복을 입고 있는데 그들의 하얀 얼굴과 표정이 돋보이는 느낌을 준다. 숲으로 둘러싸인 학교는 시종 눈으로 덮여 있다. 루이 말은 그것을 원하였는데 마침 날씨가 그의 심정을 알았는지, 촬영을 하였던 1987년의 1월과 2월에는 노상 눈이 내렸다고 한다. 루이 말은 실제로도 자신의 제복과 건물 색상이 그러하기도 하였거니와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차고 시린 듯한 연출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가 제작진에게 요구한 것도 붉은 색은 엄마의 립스틱 뿐이어야만 한다는 것. 온통 시린 세상 가운데 가슴을 불에 데인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될 줄리앙의 경험을 상징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어릴적 보네에대한 추억은 아픔보다 더 강한 운명이다 어쩌면 마음속으로부터 보네를 보내기위해 세월이 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세월은 지워지지않는 기억으로 감독을 붙잡고있다 홀연히 영화가 끝날때쯤 감독의 메세지를 읽었다 그때는 알지 못한 슬픔이 늙은 감독의 마음에 꽁꽁 숨어있음을 어쩌면 그의 소년기의 고백과도 같은 그래서 겉으로는 맹숭맹숭하지만 그너머엔 우울과 존재의허무 그리고 그 시대에대한 회개로 가득한 화면.. 역시 루이말 김독이다 감독이 이영화로서 친구보네에대한 마음의빚이 덜어지길 바라며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