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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선녀어머니의 얼굴이 심각하고 고민스럽다.
나이답지않게 목소리도 떨고 잠시 뜸을 들인다.
그러고는 결심한 듯, 말을 꺼낸다.
"시골버스씨가 성격이 착하고 좋은 분이니 믿거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무슨 말이든지 이해해 주실거죠?"
그럼요~ 그럼요~ 여부있나요? 이해~ 하면 시골버스밖에 없죠.
"아까 형님이 오셨을 때에도 말씀을 드릴까 하다가
차마 말꺼내기가 어렵더군요. " 하면서 약간 떠는 목소리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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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우리아이가 한국에 오기 전에 미국에서 파혼을 하고 왔어요."
엥??? 파혼요? 그러면 결혼을 하셨던가요?
"결혼은 아니고요. 약혼을 했는데 사기를 당했어요."
어찌 그런 일이?
그때만 해도 결혼이니 이혼이니 하는 말은 알아도 파혼이란 단어를
몰랐고 결혼해서 깨진다고 해서 파혼이라는 줄 알았다.
맞선녀어머니는 변명하다시피 말을 이어간다.
"약혼남은 한국남자인데 한국에서 일류대학을 나오고
미국에 유학 중이라고 하더군요.
얼굴도 잘생기고 말도 잘해서 저희들은 한국의 재벌아들인 줄 알았고
돈도 꽤 많은 줄 알았어요.
저희는 미국에서만 살았고 딸아이를 한국남자에게 시집보내고 싶었고
딸애는 한국남자를 알아본 적도 없고 사귄적이 없으니
한국남자라니까 다 좋은 사람인 줄로만 안거죠."
그런데 왜 사기약혼이란거죠??
"저희들에게 돈을 요구하더군요. 자기는 아직 유학 중이고
결혼을 하려면 결혼비용과 생활비가 필요하니 돈이 필요치 않냐며
집살돈과 결혼패물, 등을 살 돈, 한국의 부모님을 초청할 비용, 등등
저희가 아무리 잘살아도 그렇지 그런 돈이 어디있고 설령 있더라도
그렇게 막무가내로 돈을 요구하는 남자가 어디있어요?"
그래도 그 남자를 잘 알고 있으니 약혼까지 한 거 아니겠어요?
"저희가 성급했던거죠. 딸아이 나이는 차고 미국남자는 싫다하고
한국남자는 없고 결혼은 해야겠고~~"
맞선녀어머니는 계속 이야기를 한다.
할 수없이 딸의 약혼남에 대해 계속 알아보니
비슷한 수법으로 한국남자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교포아가씨들을
대상으로 그런 짓을 하고 돈챙겨서 도망하고 그런다나?
그래서 급히 파혼을 하고 약혼패물을 도로 달래 챙기고
남자에게 말하기를 법적으로 고소한다고 했더니 남자가 아무말도
없이 사라졌다나?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기에 낯설지는 않았으나
실제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을 내가 만나는 구나 하는 신기한 생각이
들었고 그런 어려운 일을 당한 맞선녀가 한없이 측은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보호를 해주어야겠구나 하는 동정심도 생겼다.
결과론적으로 말한다면 한쪽 당사자의 말만 듣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데
옳고 그름을 따질 일은 아니지만, 좀 생각은 했어야 했다.
하지만, 아내가 예쁘면 처가집 대들보를 보고 절을 한다나?
눈알에 콩깍지가 씌워진 마당에 그깢 파혼이 대수랴, 싶었다.
남자여자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애낳고 살면 묻히는거지
그런거 신경쓰고 따지고 할 일이 뭐냐는 편한대로 멋대로 판단이 생겼다.
맞선녀어머니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고 그럴 수도 있다,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결혼해 잘사는 일이 중요하지 않겠냐며
내나름대로의 생각을 밝혔다.
그랬더니 칭찬일색이다. 기분좋았다. 험악한 용가리를 물리치고
잠자는 숲속의 피요나공주를 구출한 쉬렉의 기분을 알 것 같다.
내가 뭐나 된 듯싶었다.
나는 확실히 마녀의 손에서 백설공주를 구출한 백마탄 기사였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만 숙인 채 말이 없다.
수줍어서였을까? 부끄러워서 였을까? 자신의 그런 일이 찔려서 일까?
다른 건 몰라도 말을 안하고 고개만 숙이니 왠지 신비로와도 보이고
정숙해도 보이고 앙증스러워도 보인다.
아~~ 여자란 진정 이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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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아는 일이지만, 이 망할놈의 동정심때문에 인생조졌다.
사람죽인다고 칼을 들었으면 머리칼이라도 잘라야 하는데
애꿎은 무우만 베고 말았으니 나중엔 내가 화살을 정통으로 맞는다.
이 망할놈의 얼빵!!!
세월이 흘러도 고쳐지지 않는 이 고질병을 어쩌면 좋겠는가?
그날은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고 결혼식을 하기로 마무리 지었다.
워낙 늦은 밤이라 그녀들을 호텔로 보내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결말을 큰형님께(맞선녀의 파혼이야기는 빼고) 말씀을 드렸다.
역시나 큰형님은 말씀이 없으시다. 형수님도 말씀을 안하신다.
이게 더 무섭다.
차라리 혼을 내어도 좋으니 뭐라고 말을 해주면 내가 생각을
해보겠는데... 결혼하기로 한게 잘한 건지 못한건지....
큰형님은 경상도 사나이도 아니면서 말이없다.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전화로 말씀을 드렸다.
그러냐? 글면 색시얼굴이라도 한번 보자꾸나
특히 아버님이 좋아하신다.
아버지~
아버지는 2005년도 10월 20일에 돌아가셨다. 3년 전이다.
우리 형제들은 어려서 부터 아버지를 싫어했다.
무섭고 무능력하고 사람들한테 무시당하며 살고~~
우리형제들이 기를 쓰고 공부하고 노력하고 성공하려 한 것도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않겠다는 뼈저린 각오때문이다.
20대 초반은 전투경찰에 입문하여 제주로민란(사람들이 말하기를)
여순반란을 겪고 한국전쟁에서는 일반병으로 편입되어 휴전 때까지
전쟁터를 전전하고 압록강까지 올라갔다가 후퇴할 때 죽을 뻔했다던
아버지~
한번은 대대인지 중대인지 모르는데 북한군과 전투를 치루는데
전우들이 다 죽고 아버지와 다른병사, 단 둘만 살았다나?
그리고는 살아남은 군인들끼리 다른부대에 다시 배치받고
또 전투하러 떠나고~
우리 아버지는 군번이 없다.
아마도 소속된 부대가 북한군에게 궤멸되어서 그런건지,
다른부대에 그냥 배치되어 전쟁터로 떠나는 통에 그리된 건지 모른다.
언젠가 그런 말씀을 하셨다.
하도 전투를 치루고 다니니 죽은 한국군병사들도 보고
북한군병사도 보고 중공군병사도 보고,
그러다 보니 나도 죽으면 이렇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우울해지더라나?
아버지가 전쟁이 끝나고 고향집에 돌아왔을 땐
아버지가 전사하셨다는 전사통지서가 날아들어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나?
당시 경찰이던 큰외삼촌은 북한군이 점령하자 어디론가 숨어들었고
유격대 대원이던 둘째 외삼촌은 북한군에게 잡혀 총살을 당하고~~~
당시에 어느 집안이고 박살이 나지 않은 집안 어디있겠냐만~~
아버지는 전쟁으로 인한 그런 일들이 지긋지긋하다고 하셨다.
18살에 결혼하여 큰형님낳고 20살부터 전쟁을 치루러 다녔으니~~
그러고는 평생 일도 안하고 직장도 안잡고 그냥 사셨다.
일본어도 무척 잘하고 한문도 많이 아시고 싸움도 잘하고 그랬는데....
그러면서 평생 무능력하다고 무시당하고 왕따당하며 사신 아버지~
아버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정리해야겠다.
그런 아버지께서 내가 결혼한다니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다.
다음날 맞선녀와 그녀어머니를 배웅하고 조만간 우리부모님과 상견례를
갖는 것이 어떠냐고 말씀을 드렸다. 좋다고 한다.
그다음날 다시 서울로 갔다. 그러고 보니 근래 매일 만난 것이다.
맞선녀와 그녀어머니가 큰형님께 결혼심사를 받았듯이
나도 결혼심사를 받았다. 맞선녀의 외삼촌이라고 한다.
다른건 없다. 너 결혼하고 나면 뭐해먹고 살거냐?
미국유학 어쩌고, 영문학교수 저쩌고
그딴거는 뜬구름잡는 헛소리이고 당장 호구대책이 뭐냐는 거다.
내가 그랬다.
거, 두사람 못먹고 살겠냐. *랄은 폼으로 달고 있는 줄 아느냐?
먹고 사는 일이면 노가다를 하던 박스를 주워팔던 무슨짓이든 할거다.
나,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아르바이트하며 살았다.
도둑질만 빼놓고 왠만한 일을 해보았다.
지금까지 고등학교까지만 빼고 학교등록금은 내가 벌어서 다녔다.
지금은 영문학이 재미있어서 공부만 하는거다.
나, 홀딱벗고서도 100리는 달린다. 이거 왜이러냐~~
당신은 태어날 때부터 꼬치에 금테둘르고 태어났냐? 그랬다.
외삼촌이란 사람, 기가 막힌 모양이다.
그냥 허허~ 웃고 만다. 꼬치에 금테둘러? 라며(이거 음담패설인감?)
그렇게 결혼심사를 마치고 맞선녀와 단둘이 남아 커피를 마시며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나누었다.
내가 그랬다.
"일단 결혼식이 끝나면 대학원 마칠 때까지 한국에서 같이 살았으면 합니다.
혹시 대사관에서 비자연장할 수 있으면 좋고 안되면 결혼식을 올린다음에
먼저 미국에 갔다가 다시 오면 어떨까요?
부모님이랑 다른 가족들과 같이 지낸다음에 미국가는 것도 괜찮을 거 같고
제가 혹시 미국에 가 살더라도 공부는 계속 해야겠고 그러더라도 벌이는 해야하니
내일 부터라도 미국가서 써먹을 기술을 배울려구요."
그녀가 묻는다.
"무슨 기술을 배울려구요?"
"아직 운전을 못하니 운전면허도 따고, 컴퓨터 기술과 다른 기술들 많잖아요.
자동차 정비술, 하다못해, 일식전문요리, 제빵기술 요리 등요.
먹고살 일이라면 아무거나 배워서 가야죠."
그랬더니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다. 정말 그럴 생각이냐며~~
나는 진지했다.
먹고살아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사명감앞에
인간은 누구나 진지하고 엄숙하고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수천만명이 배를 주리며 길거리로 나다녀 고물을 주워팔고
휴지주워팔고 산나물을 뜯어다먹고 다니며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버티던 시절~
자살이란 죄악이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이고 부모님에 대한 존경이고
인간에 대한 예의로 머리 속에 박혀 살던 시절.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처절한 생명의식에
버티고 버티고 살았다.
요즘같았으면 다들 자살했어야 했다.
아~ 최진실!!
최진실이 자살하지 않고 죽고싶은 정도로 살기 힘들었어도
살아만 주었으면, 아니 살아남았더라면,
지금의 우리네 삶이 팍팍하고 먹먹하고 숨이 막혀도
그래도 살아가는 매력이 있을텐데~
최진실의 자살은 우리네 목숨이 일순간 얼마나 가벼워질 수도
있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생각만해도 억장이 무너지는 최진실~
한 때 우리네의 여신과도 같았던 그녀
왜 우리는 그녀의 자살을 막아주지 못했을까?
그렇게 힘들고 고달펐던 초등학교시절을
천둥벌거숭이 몸으로 제몸만큼 무거운 아이스께끼통을 메고
뜻도 모르는 "아이쓰 께끼"를 외치며 팔러다니던 시절~
그런 나를 선생님은 잡아다 패며 그랬다.
"이새끼야~ 그래도 너는 공부를 해야 나중에 살아남는거야."
삶은 그렇게 처절하고 절박하고 비굴했던 것이다.
지금껏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거나 청하지 않고
무슨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내가 직접 해결해야하는 걸고 살아온 나에게
"너, 결혼하면 어떻게 먹고살래?"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하나?
먹고사는 일에 정해진 방법과 길이 있나?
그래서 그녀에게 말했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일은 어디서나 비슷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영어로 된 소설을 읽고 시를 읽고 영화를 보아도
감동을 받고 공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결혼생활도 그럴 것이고 먹고사는 일도 그럴 것입니다.
나는 나와 내가족이 어렵고 힘들게 사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그이야기를 그녀가 어머니에게 말했나 보다.
나중에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다.
"시골버스씨~ 지금 한국에서 무슨 기술이나 그런거 배우지 않아도 되요.
저애가 하는 일(디자이너)만으로도 실컺 먹고 살아요.
단지 시골버스씨가 생활능력이나 열심히 살 의지가 있는 지를
알고 싶었던 것 뿐이예요."
아마도 내가 뚜렷한 직장없이 그나이 되도록 큰형님댁에서
빈둥거리고 공부랍시고 나이에 걸맞지 않는 생활을 하니까
왠지 믿음도 안가고 동기가 의심스럽기도 하다는 말을 들었나보다.
낭중지추(囊中之錐) 라고 했던가?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젠가는 삐져나간다.)
줄탁지기, 혹은 줄탁동기( 啐啄同機 : 쭉쭉 빨 줄. 啄 : 쫄 탁. 同 : 같을 동. 機 : 기회 기)
알 속의 병아리가 자기가 태어날 때가 되면 부리로 알을 톡톡 쪼아댄다는 뜻으로
원래 중국의 민간에서 쓰던 말인데, 임제종(臨濟宗)의 공안집(公案集:화두집)이자
선종(禪宗)의 대표적인 불서(佛書)인 송(宋)나라 때의 《벽암록(碧巖錄)》에 나오는 말이며
능력이 있는 자는 언젠가는 그능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헤르만헷세의 "데미안"을 읽으면 "병아리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이는 무슨 일을 이루든 그것을 이루는데는 필요한
노력과 고통이 있다는 뜻이다.
내가 지금 방안에서 골방구리 냄새를 풍기며 빈둥구리고 지내더라도
그리 탓할 일은 아닌 것이다.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연구하는 자의 모습은
밖에서 땀흘려 일하는 자에게 놀고먹는 것으로 보일테지~
내가 나이들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고?
괴테는 나이 80어 불후의 명작인 "파우스트"를 완성하였다.
성경의 인물인 모세는 80살에 수백만명의 이스라엘인 노예를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였다.
김대중씨도 70대 후반에 대통령이 되었고 노벨상도 탔다.
(나중에 욕을 많이 얻어먹었지만, 그래도 대단한 구석이 있지 않냐?)
현실을 원망하지말고 나이를 탓하지 말자.
무엇이든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달린 것이다.
중국에 왜 왔냐고? 그럴 일이면 한국에 살지 왜 왔냐고?
무슨 일이 있으니 중국에 온게 아니냐고???
지금 젊은 30~40대들은 탈(脫)한국 중이다.
지금, 중국에 오고싶어도 못오는 한국인들이 수백만명이다.
중국은 우리들에게 살아볼만하고 일을 해볼만한 새로운 삶의 개척지이다.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으로 중국에서 맨땅에 헤딩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우리들더러
"중국에 왜 오셨어요?"라고 한다면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까?
"한국은 왜 그꼬라지예요?"라면 좋을까?
살기위해서 중국에 온 우리들이다.
그가치의 소중함을 함부로 폄훼하거나 예단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이곳에 살고있는 한 개인의 삶의 가치를 깍아내리는 짓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하고 훌륭하고 가치있는 일인데....
어쨌거나 맞선녀와 시간을 따로내어 이러저러한 이야기도 하고
명동거리를 거닐며 비빔밥도 사먹고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운동삼아 걷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청주로 내려왔고 조만간 부모님과 맞선녀어머니와 상견례를 하기로 하였다.
첫댓글 혹시나 하고 들어와봤는데... 5편이 올라와서.. 얼마나 방가웠는지..^^ 넘 잼있게 잘 보고 있어요..
실화든 픽션이든....잼있어요~ 상해에 계시면 만나서 술한잔 하고 싶네요~~ㅎㅎ
저도 고향이 청주인데 동향분 글솜씨가 대단하십니다~
아 반가워요. 지두 청주에서 20년 살았으니 고향???넘 재밌어요.님의 글에 중독되어 자주 들어 옵니다.다음편 언제쯤 올라올려나~~....
저두 중독여~~~ 담편 기대합니다.
전 청주 옆동네..ㅎㅎ 암튼 "나, 홀딱벗고서도 100리는 달린다. 이거 왜이러냐~~ "이런 사람 또 어디 없을까요? 아..이정도라면..오케인뎅..
6편도 기대할게요...^^
동향이시군요, 글 참 재밌으십니다. 김수현 작가도 청주출신 이고요. 맑은 도시 청주에서 글 재주 가지신 분들이 많이 나셨네요**
저도 이 글 찿아 일부러 들어 왔답니다 기대 입니다
잼있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