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사회를 향한 나눔의 철학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이집트 카이로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전남 순천에서 문을 여는 어린이 전용도서관 ‘기적의 도서관’ 1호.
돌이켜보면 2000년 벽두, 인천 만석동의 이른바 빈촌이라 불리는 도시동네에 ‘기찻길 옆 공부방’(이일훈 설계)이라는 특별하지 않은 집이 동네 아이들의 지식공간으로 설계되어 지어진 바 있었다. 세기말 세기초의 시대적 소망을 담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성큼 우리 앞에 다가왔던 그 공부방은 전형적인 나눔의 공간미학으로 지어진 사례였다. ‘기적의 도서관’을 구상하고 짓기 전까지 우리에겐 그같은 실천적 밑천이 있었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천 만석동에 들어선 ‘기찻길 옆 공부방’
이전까지만 해도 근대성의 권위로 포장된 국공립 공공도서관 내지 대중과 유리된 대학도서관 등은 경직된 사회의 한 징표로 보였는데, 구립도서관이라는 하부 행정조직이 관리하는 도서관이 늘어난 것은 문화환경과 지식기반 시설의 구축이라는 점에서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세태를 반영한다. 또한 이것의 의미가 도서관에 대한 지역사회의 공론이 모아진 흔적들로 채워진 시설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곧 현재의 구립도서관은 기획단계에서부터 고전적 의미의 도서관에 내재된 천편일률적인 지식의 창고에서 일탈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다름 아닌 커뮤니티 시설로서의 성격이 강화되며 탈권위적 지식의 분배가 일어나는 공간적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더욱 다른 점은 도서관을 설계하는 건축가들이 이런 공공성을 ‘사적’으로 풀어낸다는 데 있다. 공공도서관에 깃든 건축가의 시적인 공간 상상력 또는 건물 조형의 특수한 언어들이 과감하게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국내에 들어선 공공 도서관 가운데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서울 은평구립도서관
2000년대 들어 국내에 지어진 공공도서관 중에서 가장 호평을 받은 서울 은평구립도서관(곽재환 설계)의 경우, 책의 열람과 학습이 이뤄지는 지식의 창고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빛우물로 보이는 내부 중정에 면한 세 방향의 벽을 흡사 납골당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형태언어로 설계해 도서관이야말로 책의 무덤이라는 허무주의적 장엄성을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현존하는 세계의 도서관 중에서 최고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집트 카이로에 세워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건축집단 헤스타이 설계)의 경우, 지중해를 비추는 ‘해시계’를 연상하게 만드는 우주적 세계관을 투영해 10층 높이의 원환체 빌딩을 땅에 반쯤 묻은 독특한 형상의 건축물을 지어내 영원한 바다의 지혜를 표현하고 있다.
이렇듯 동서양 건축가들이 도서관 고유의 내부공간 프로그램의 중요성만큼이나 도서관이라는 프로젝트의 신화성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는 경향을 무시할 수 없다. 도서관이 단순히 장서와 열람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기에 앞으로도 건축가들은 도서관의 설계에서 과감한 자기 해석에 동승한 아주 특별한 디자인의 경향을 드러낼 것이다.
새로 지어지는 국내 대학 도서관들에서 보이는 가장 큰 흐름은 대형 컨벤션센터 기능을 갖춘 다목적 복합공간 형식으로의 진입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초고속 인터넷망의 확산과 서지정보의 디지털화는 자연히 도서관으로 하여금 타율적 체제에 의존하는 지식의 창고가 아니라 정보통신망의 기반 위에 자율적으로 구동하는 지식의 매트릭스로서, 네트워크 기능을 강화하는 추세다. 대학을 대표하는 지식기반의 하드웨어로서 도서관은 점차 대학 내의 정보서비스와 비즈니스 마케팅의 중심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