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祖高麗平章事河東鄭公道正之壇碑(시조고려평장사하동정공도정지단비)
● 하동정씨(河東鄭氏)의 시조(始祖)는 휘 도정(諱 道正)으로 현리(縣吏)였으니 삼한말기(三韓末期)의 인물(人物)로 추정(推定)한다. 호걸(豪傑)스럽고 무용(武勇)이 뛰어나서 하동전역(河東全域)과 고을 백성(百姓)을 통합(統合)하고 공부(貢賦)를 나라에 바치니 그로 인(因)하여 그 고을 호장(戶長)이 되었고 자손(子孫)이 번성(繁盛)하니 본관(本貫)을 삼은 것이다.
● 고려(高麗)가 통합(統合)할 때 그 고을을 지키고 있었으니 그 현(縣)에 어른을 호장(戶長)이라 했고 병마(兵馬)를 통솔(統率)하는 자(者)를 장교(將校)라고 불렀으니 능(能)히 병마(兵馬)를 통솔(統率)할 수 있으므로 고려(高麗)가 통일(統一)하려 할 때 솔선(率先)해서 협력(協力)하였다. 대개 향리지족(鄕吏之族)은 공거(貢擧:추천함)나 역시(歷試:과거에 급제함)를 거쳐 사족(士族)이 되는 것이다.
● 우리 정문(鄭門)이 하동(河東)을 본관(本貫)으로 한 것은 휘 도정(諱 道正)으로부터 이고 1세 휘 석숭(諱 碩崇)까지는 세대(世代)가 분명치 않아 실전(失傳)이라는 두 글자를 남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