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서 가셨다니요. 오늘(9/11) 자택에서 향년 87세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SNS를 통해 접했습니다. 십이년전 저희 어머님 구순잔치 참석차 나갔을 때 몇번 뵈온게 마지막이 되어버렸군요. 때가 되면 떠나는게 인생인줄 알건만 그 슬픈 정을 가누기 어려운건 어쩔 수 없군요.아버님깨서 생전에 아끼시고 사랑하시던 몇분 남지 않으신 제자분이신 님께서 이렇게 또 훌쩍 떠나시다니요.
남들은 사실만큼 사시고 가셨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100세 시대라는데 90도 못채우고 가셨구나.”하는 아쉬움과 함께 저보다 9년 연상이셨던 님이셨기에 저 또한 떠날날도 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인생의 덧없음이 새삼 가슴을 시리게 하며 슬픔에 젖습니다.
님께서는 형이없는 저에게는 형님같은 존재로 아버님 관련 일들이나 추모사업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먼저 달려가 의논하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분이셨기에 더욱 허전하고 애통하기만 합니다.
마흔 여덟이란 짧은 생을 살고 가신 저희 아버님께서 타계하시자 고려대학교 교정에서 거행된 시인협회와 고려대학교 합동 영결식을 위해 동분서주 하시고 제자를 대표해서 조사를 읽으시던 그 때 당시의 님의 모습이 아직도 엊그제같이 눈에 선합니다.
저의 중고교시절, 성북동 저희집 사랑방에서 아버지께서 당신을 포함한 제자들과 술상을 앞에 놓고 고담준론과 유머로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면 언제나 빠지지 않던 “이 길로 가면 주막이 있겠지요? 나그네 가는 길에 주막이 없으랴“ 로 시작하는 저희 아버님의 시 ‘밤길’을 읊으시던 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을 맴돕니다. “나도 대학에 들어가면 아버지같은 스승님 모시고 저렇게 멋지게 술잔을 기울일 수 있을게야.” 했었는데 저는 그런 스승을 만나지 못한채 대학시절을 보내고 아직까지도 그런 스승같은 분과의 만남도 그런 멋진 낭만은 경험하지 못한채 팔십 문턱에 이렇게 서서 미마른 현실을 한탄하며 그풍경을 그리워 합니다.
나라와 몸담으셨던 학교와 제자를 가족이나 자삭보다(?) 더 사랑하셨던 저희 아버님! 저는 아버님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하고 한마디 유언조차 듣지 못했었는데,,,아버님께서는 님에게 유언까지 남기셨다지요?
“이제 민연(고려대학교 부설 민족문화연구소)은 자네가 알아서 맡아주게” 하시면서 "앞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고려대학교를 와서 보아야 한국을 알게 되고, 고려대학을 찾아오는 사람은 민연을 와서 보아야 고려대학을 알게 되도록 해야 하네. 자네가 이 일을 꼭 이루어 주게. 자네는 할 수 있다고 믿네."라고 아버님께서는 병상에서 힘들게 말씀 하셨다지요.
이제 하늘나라에 가셔서 저희 아버님을 뵙게되면 “그 유언을 훌륭히 멋지게 다 이루어놓고 왔습니다”고 마음껏 자랑하실 수 있어 좋으시겠습니다. 스승께서 얼마나 기뻐 하실가요?
아버님을 일찍여윈 저는 생전에 님과의 대화에서나 글을 통해서 저희 아버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지내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담과 향기로운 일화들을 전해 주신 것을 다행이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아버님 제자분들중에서 임종국 선생님과 님께서는 가장 연장자로, 리더로서 아버지 타계후 후배 제자분들(홍기삼, 최정호, 최동호, 인권환, 이성원, 이동환, 박노준, 김인환)과 함께 <<조지훈전집>>을 간행, ‘지훈상’제정등에 크게 기여하시고, 저희 아버님깨서 ’이달의 문화 인물‘로 선정되었을 때는 이룰 기념하는 행사를 알차고 성대히 치르시는등 스승의 추모 및 기념사업에 열과 성을 다하셨습니다.
향리 주실에 건립된 ‘지훈문학관’ 개관식에 제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계시던 든든한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기획한 아버님 탄신 100주년 기념 특별 전시회를 위해 님께서는 그동안 소중히 간직해 오던 스승의 친필 ‘사직서’를 박물관에 기증해주시기도 하셨지요.
이제 아버님께서 가신지도 어느덧 반세기하고도 5년이 더 지났습니다. 제자들의 맏형으로서 님께서는 생전에 후배 제자들을 이끌며 스승을 위해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그런점에서는 제자로서 별 후회되는 일없이 제자로서 책임과 의무에 최선을 다하셨다고 자부하셔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데 손색없는 훌륭한 제자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조지훈 기념사업회‘라는 법인체를 못만들어 놓으시고 떠나시게 되었다고 너무 자책하시지 마시고 편히 떠나세요.
민족의 명절, 풍성한 추석을 며칠 앞두고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떠나가신 님!
보름달 같이 밝고 부처님같이 길고 큰 귀에 덕스러운 남의 모습이 환히 떠오릅니다. 그동안 아버님을 통해 님과 함께 맺어준 인연에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멀리서 애도의 마음울 담아 국화 헌송이 구룸에 실어 님을 보내드립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드리지 못함을 부디 용서하여 주소서.
님이시여! 그동안의 수고와 시룸 모두 내려놓으시고 슬픔도 고통도 없는 하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울 누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