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書 畵 아우른 '현대판 선비'
근현대 부산문학사의 두 거목으로 요산 김정한과 향파 이주홍을 꼽는 데 크게 주저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부산이란 지역성과 문단을 뛰어넘었던 인물이었다. 이주홍은 문학의 모든 장르에 걸쳐 창작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100권이 훨씬 넘는 엄청난 분량의 책을 일생동안 쏟아냈다. 지금도 수십 종의 책이 서점에서 팔리고 있으니,정녕 그의 정신은 오늘날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향파(向破) 이주홍은 1906년 경남 합천군 두메산골 영창마을에서 합천 이씨 이동신과 진양 강씨 강정화의 2남 2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의 공식 학력은 합천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전부였지만,어릴 적에는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1920년에는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상경했는데,노동판을 전전하며 고학했다. 그리고 1924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제탄(製炭),문구 공장 등에서 힘들게 일했다. 한편 이때부터 서서히 창작에도 몰두했으며,히로시마에서 양인환(梁仁煥) 등과 함께 근영학원(槿英學院)을 설립해 교포자녀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그는 일제 강점으로 암울했던 1928년에 동화 '뱀새끼의 무도'를 '신소년'지에 발표했다. 이어서 1929년에 조선일보에 '가난과 사랑'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1929년에 일본에서 서울로 돌아온 향파는 문예지 '신소년'의 편집을 맡았는데,거의 매호마다 작품을 발표했다. 이어 1936년에는 카프 계열의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하던 문예지 '풍림(風林)'을 창간하여 6호까지 발행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의 말엽인 1945년에 사상 불온 혐의로 옥고를 치렀으나,해방과 함께 출옥하여 동래중고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49~1972년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교수로 재직했으며,1987년에 타계할 때까지 명예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했다. 이때 키워낸 문인들은 현재 부산의 문학계를 이어가는 주축이 되고 있다. 한편 그는 부산에서 1966년 종합문예지 '문학시대(文學時代)',1965년 동인지 '윤좌(輪座)'와 1978년 '갈숲'을 창간하여 문학의 기반을 다졌다. 이런 공로로 향파는 1958년에 부산시 문화상,1979년에 대한민국예술원상,1984년에 대한민국문학상 아동부문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이주홍문학비는 부산의 세 곳에 세워져 있다. 먼저 '해같이 달같이만'이란 동시가 새겨진 기념비가 동래 금강공원 내에 세워져 있으며,'감꽃'이 범어사 입구 사하촌에,'엄마의 품'이 김해공항 입구의 낙동강 둑에 세워져 있다. 한편 이주홍문학관은 향파가 1971년부터 1987년 별세할 때까지 기거했던 가옥을 2002년에 부산시의 지원금으로 구입하여 개축 및 보수했는데,부산 지역 최초의 문학관으로서 동래구 온천 1동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주홍 생전의 소장도서와 이주홍 저작물 및 문헌정보 등 5천 700여 권의 도서와 서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주홍아동문학상은 1981년에 부산수산대의 제자인 성기정,강남주,김영 등이 중심이 되어 처음 제정했는데,2002년에 이주홍문학재단이 설립되면서 이주홍문학상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때 본상,아동문학상,문학평론상 등으로 확대 개편했으며,이주홍문학제도 지내고 있다. 한편 이주홍아동문학상 운영위원회는 2000년에 '이주홍아동문학상 수상자작품집' 등 4권의 저작집을 펴내 이주홍 연구의 초석을 마련했다. 향파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아름답게 꽃피우기 위한 의미 있는 일이다.
이주홍의 문학세계는 문학의 장르가 좁을 정도로 문학의 모든 장르를 넘나들면서 각 분야별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의 다재다능한 면모를 알 수 있다.
첫째,아동문학이다. 향파는 아동문학으로 문학적 출발을 하고 있으며,아동문학에서 많은 작품을 썼다. 이런 이유로 지금도 서점에서 팔리고 있는 향파 작품의 대다수가 동화이다. 그의 아동문학은 동화,동시,아동 희곡 등 여러 장르에 걸쳐 창작되었다. 분량 면에서는 가장 큰 성취를 이루었다. 주요 작품집으로는 1946년 '못난 돼지',1987년 '아기 곰 형제' 등이 있다. 그의 아동문학은 매너리즘에만 빠져 있는 아동문학에 재미성이라는 하나의 대표적 경향을 제시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녕 향파는 생애를 어린이의 정신을 살찌게 하는 데 쏟아 부었다고 할 것이다.
둘째,향파의 소설세계이다. 분량 면에서 향파의 업적이 아동문학에 집중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대표적인 문학적 성취는 소설 장르이다. 그의 소설은 뚜렷한 역사의식을 보이면서 현실사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서사화 작업을 해왔다.
향파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에 집중적으로 역사소설을 발표했다. 그는 전형적인 사실주의 작가라는 인상을 받는다. 특히 그의 현실 사회를 대하는 자세는 온건한 시민적 양식을 기반으로 한 관조자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향파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소극적인 내향형의 인물들이다.
향파는 이들 내향형의 인물들의 어리석음과 못남과 양심이야말로 약하면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따사로운 애정을 가지고 인물 창조에 정열을 쏟았다.
그의 역사소설은 1970년대 한국소설사의 역사소설의 현저화 현상과 맥락을 같이한다. 고려 무신란 시대의 역사를 비판한 '경대승'은 통치의 정당성 없이 사리사욕에 의한 권력투쟁을 일삼은 무인정권의 붕괴는 필연적이며,특히 무신란 주도자의 잇단 살해과정과 권력을 장악한 경대승이 불안심리에 시달리다 죽어간 내적 붕괴과정을 통해서 권력의 무상함과 허무를 일깨워준다. 조선후기의 민란에서부터 1910년 일제강점까지의 민족수난사를 민중적 역사의식으로 접근한 '아버지'에서는 역사소설이란 우회적 형식을 통해서 1970년대의 군사독재정권의 억압과 횡포를 집중적으로 고발하고 비판했다.
그의 역사소설은 역사와 허구 사이의 관습적인 차이를 없앤 기록적인 역사소설(disguised historical novel)에 해당된다. 하지만 기록적 역사에 충실하려 한 나머지 허구적 긴장감과 역동성을 해쳤다는 아쉬움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이 아쉬움을 하나의 개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셋째,향파의 시와 수필이다. 향파는 그의 유일한 시집 1984년의 '풍경'에 대해 자신의 시가 관행시(慣行詩)가 아니라 단순히 써보고 싶어서 쓴 자가시(自家詩)라는 독특한 명칭을 사용했다. 그의 시는 주관적 경험 세계를 넘어서서 인간사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향파의 성숙한 내면세계와 정신적 높이를 유감없이 드러냄으로써 비록 적은 분량이지만,향파문학의 한 영역을 확실하게 구축하고 있다.
그의 문학세계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수필장르이다. 1989년 유고집으로 발간된 '저 너머 또 그대가'는 그의 고백적 자아가 진솔하게 드러나며,동양사상에 깊게 경도된 향파의 완숙한 정신적 궤적을 드러내준 잠언적 성격의 경구집이라고 할 수 있다.
항파는 60년의 세월을 문학과 예술에 헌신하였다. 문학의 전 장르에 걸쳐 왕성한 창작활동을 전개했을 뿐만 아니라 연극,미술,서예에 이르기까지 전인적 예인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서울에서 잡지를 편집하던 시절에 표지·삽화·장정가로서 이름을 떨쳤는가 하면,해방 후 부산에서 직접 희곡을 창작하여 무대에 올리는 등 연극 운동에도 앞장섰다. 또 영화사의 자금 사정으로 비록 영화화되지는 못하였지만,시나리오 공모에도 몇 차례 당선한 경력이 있다. 서예도 특유의 단아한 서체로 널리 알려졌고,그림도 상당한 수준에 있었다. 또 한문학과 일본어에도 통달하여 많은 중국의 고전 작품을 현대 문학으로 번역 출간하여 그 책들이 베스트셀러 대열에 들기도 하였다. 송명희·부경대 국문과 교수
1906년
경남 합천에서 출생
1924년
일본으로 건너감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가난과 사랑'이 입선
1936년
문예지 '풍림' 창간 발행
1945년
사상 불온 혐의로 투옥 동래중고교에서 교편
1949년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교수로 부임
1952년
민주신보에 희곡 '성웅 이순신' 당선
1958년
부산시문화상 수상
1966년
문예종합지 '문학시대' 창간
1981년
이주홍아동문학상 제정
1984년
대한민국 문학상 아동부분 수상
1987년
별세
2002년
이주홍문학관 개관 및 이주홍문학상 제정
-부산일보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