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여름 뵈온 주님 > 수술후기 1992.10
주 예수 내가 알기전 날 먼저 사랑했네
나를 빚으신 주님,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신 나머지 연약한 채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기쁘신 뜻대로 온전케 되기를 지금도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
해외 근무 발령을 받고 출국준비하며 받은 종합 검진에서 이상이 발견되어
정밀 검사받기를 십여일,
그 결과 폐암이라는 진단에 나는 얼마나 두려워했고 충격을 받았었는지..
결국 이런 종국을 맞이하려고 뒤도 돌아 볼 겨를 없이 여기까지 달려온 것인가
그래도 남보다는 성실하게 살아왔고
알게 모르게 구제도 하며
교회도 열심히 출석했는데 왜 이런 엄청난 고통을 나에게만 주시는지
정말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검사의 마지막 단계인 임파선 검사결과 다른 장기에는 전이 되지 않았다는 소식에
비로소 작은 희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폐암은 검사결과에 따라 환자의 1/3만이 수술이 가능하고
가슴을 열더라도 절제가능한 경우는 전체의 20%에 불과한
예후가 아주 고약한 암입니다
등과 가슴의 반이상을 절개하고 갈비뼈 3대를 잘라 버려야만 하는 대수술,
한걸음 한걸음 뗄 때마다
기도할 수 밖에 없었던 순간 순간-
폐장수술후의 아픔은 두 번 다시 참을 수 없는 고통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일이 간섭하시고 위로해주신 날 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들의 그 기도 조각 조각들이 쌓이고 쌓여
하나님께 닿았을까요?
수술결과는 모든사람들이 고대하던 근치수술이 되었습니다
여름이 지날 즈음
한달여 입원생활을 끝내고 한 쪽 폐만으로 병원을 떠나는 저의 심정은
새로운 삶에 대한 감사 그것뿐이었습니다
성자 칼릴 지브란은
밤의 길목을 지나지 않고는 새벽에 다다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랜 해외생활 끝에 깊어진 흡연습관,
피하지 못했던 잦은 술자리,
절제하지 못했던 미식습관도 이제는 지나간 옛일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끊지 못했던 맛있는 담배연기대신 한쪽 폐를 잃었습니다
오늘도 가을이 깊어가는 산길을 올라 풀숲에 떨어진 밤을 까먹으면서
문득 나의 참모습을 들여다봅니다
그동안 허탄한 것들로 강화되어온 나의 허구 -
그 헛되고 헛된 모습이 내 참모습인 양 살아온 40여년 --
내게 편한 믿음의 모습으로, 적당한 교양과 안락함을 주는 사회와 직장에서의 적절한 예우,
그에 상응하는 금방 무너져 버릴 수 밖에 없는 인간관계들,
그 덧없는 것들 속에서 나는 과연 무엇이었나
잠시 살다가는 우리의 삶 속에는
이해하기도 감당하기도 힘든 일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고
또 그와 동행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이 기쁨.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감히 분별하기 어려웠던 지난 여름은 갔습니다
질고를 통해 저를 새롭고 겸손하게 다시 빚으시는 주님,
평생 육체의 가시로 아버지 앞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리라”
남은 날을 아버지께 드립니다
안 희상
첫댓글 아멘!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