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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이 증명하는 구약성경
6) Ebla 서판 발견
시리아 북쪽 Tell Mar- dikh라고 불리는 이 지역에서 1964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거기서 1968년 Ibbit-Lim 왕조의 상이 발견되었다. Ebla는 B.C. 2300년경에 세력을 펼치던 나라로서 약 260,000명의 인구를 갖고 있었으며, B.C. 2250년에 Nara-Sim에 의하여 멸망되었다. 1974년 이래로 17,000개의 Ebla와 관련된 서판들이 발견되었다. Ebla 서판이 성경학적으로 가진 의미는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모세 시대에는 쓸 수 있는 문자가 제정되기 전이라고 성경 비판론자들이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세가 살았었던 그 지역에 존재하였던 Ebla 나라의 서판은 모세가 나기 1,000여 년 전의 법과 풍습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이 단순한 가상이었음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특별히 이 서판에 기록된 법률들은 신명기에 기록된 규율들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법률적인 구조를 가진 구약의 신명기가 다른 책들보다도 더 늦게 기록되었었다는 주장이 틀렸음이 밝혀졌다.
또한 Ebla판이 밝힌 중요한 또 하나의 사실은 창세기 14장을 증거한 것이다.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창 14:1,2). 창세기 14장은 최근까지만 해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주장되어졌었다.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다섯 도시의 왕들과 싸워서 이긴 이야기를 하나의 소설처럼 여겼었다. 그런데 Ebla 서판은 위에 기술된 다섯 나라의 이름을 창세기에 기록된 그 순서대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 나라들이 있었던 지역의 풍습과 연대들도 기록하고 있어서 창세기 14장의 기록이 얼마나 정확한 것이었는지를 증명하였다.
7) Mari 서판
마리 서판의 발굴이 Andre Parrot의 지도 아래 1933년에 시작되었다. 유프라테스 중부에 있는 마리는 북서쪽 지방의 셈족 부조들의 생활 중심지였다. 1936년 M. Parrot은 B.C.1700년경의 것으로 확인되는 수천 개의 설형문자 서판들을 발견하였는데, 이 서판들에는 창세기 24장 10절에 나오는 나홀 성의 이야기가 하란과 같이 마리 서판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마리의 왕이었던 Arriyuk은 실제로 창세기 14장의 아리옥과 같은 사람이었으며, 벤쟈민도 마리의 한 족속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William F. Albright).
8) 요셉의 역사
창세기 37장 28절에 보면 요셉이 은 20개를 받고 팔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은 20개가 그때 당시 노예를 파는 적절한 값이었을까? K. A. Kitchen의 연구에 의하면 은 20개는 B.C. 18세기 때 노예를 파는 평균값이었다고 하며, 그 전에는 주로 은 10-15개 정도로 노예 값을 매겼다고 한다. 그러므로 은 20개에 요셉이 팔렸다고 하는 기록은 시대적 정확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흉년이 들어 요셉의 가족들이 이집트로 이사갔다는 성경의 기록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Beni Hasa의 무덤에 셈 족속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그림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가능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요셉이 노예에서 수상으로 올라가는 사건은 그 당시에 가능하지 않았던 일이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으나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여 나일 지방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발견하였다. “가나안 사람 Meri-Ra는 왕의 갑옷 드는 사람이 되었고, 또 다른 가나안 사람 Ben-Mat-Ana는 통역관의 높은 직위를 얻었으며, 셈 족속의 Yanhamu는 Amenhotep의 부수상 직위를 얻어 삼각주 지역의 곡창 지대를 관리하는, 흉년 때에 요셉에게 부여된 비슷한 일을 하게 되었다.” (Howard Vos)
또한 그 무덤에서 발견된 벽화의 그림과 상형문자들은 7마리의 살진 소와 7마리의 마른 소에 대한 그림과 이집트에 있었던 7년 동안의 풍년과 7년 동안의 흉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성경 창세기 41장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를 묘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일 강가에서 발견된 한 돌에는 놀라운 기록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기록을 고고학자 조지 배론 씨가 해석하여 그의 저서 “고고학과 성경”이란 책 306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옥수수를 모아 들였다…. 나는 씨를 뿌리는 시기 동안 잘 주시하여 보았다. 기근이 발생하여 여러 해를 계속하였을 때, 나는 옥수수를 나누어 주었다. 나일 강이 7년 동안이나 범람치 않았고, 식물들이 말라붙었다…. 창고들이 지어졌다…. 그 속에 있는 것들이 다 나누어졌다.” 이 기록을 읽은 학자들과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비평학자들은 이 사실에 대해 더는 비웃지 못하게 되었다.
9) 에돔 족속
성경에 나오는 에돔 족속에 관한 고고학적 발굴에 대하여 살펴보자. 창세기 36장 8, 11절, 기타 여러 곳에 보면 에돔 족속이 있었고, 에돔 족속의 최초의 조상은 이삭의 아들인 에서라고 되어 있다. 에서는 에돔이라고도 불리었고, 세일 산이라는 곳에 거했다. 그리고 그 자손들이 어떻게 대를 이어 내려왔다는 것이 성경에 상세히 나와 있다. 에서라는 말이나 에돔이라는 말이나 모두 붉다는 말이다. 에서가 털이 많고 붉게 생겼기에 이런 말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에돔 족속이라는 것도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었지 다른 아무 데도 없었다. 그래서 수천 년간 성경이 허위라고 비난을 받아 왔다. 그런데 이것도 역시 중동의 고고학적 발견이 붐을 일으킴에 따라서 세일 산이라고 불리는 지역을 탐사하다가, 에돔 족속이라는 집단이 그곳에서 수천 년간 거주했다는 사실이 발굴되었다.
그들은 바위산을 파 들어가 조각한 아름다운 집 페트라라는 유명한 건축 구조를 가지고 살았는데, 나바티안 상인들이 거금을 투자해서 유명한 조각가들을 초청해서 이런 집들을 조각했다고 한다.
10) 히스기야 왕과 앗시리아의 침공 이야기는 정말 꾸며낸 이야기인가?
기원전 722년에 북방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성경에 나오는 앗시리아라는 국가는 당시 매우 강력한 국가였다. 그런데 이 엄청난 앗시리아의 침공 때에 남방 유다는 힘이 약한 나라임에도 약 136년을 더 견뎌 내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 많은 비평가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비난을 하였고, 고고학자 대부분도 믿지 않았다. 그 시대에 앗시리아가 얼마가 강력한 나라인데, 힘도 없는 히스기야 왕이 어떻게 그 나라를 이기겠느냐고 믿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앗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에서 발굴된 실린더처럼 생긴 앗시리아의 비석에서 성경의 기록과 똑같은 내용이 발견되었다. 즉, 앗시리아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하러 갔다가 실패했다는 기록이 발견된 것이다.
성경 열왕기하 20장 20절에 보면, 산헤립의 침공 때 히스기야 왕이 땅을 파고 수로를 만들어서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고고학적으로 그대로 발굴되었다.
왼쪽 사진에 나오는 히스기야 왕 시절에 급히 판 수로는 완전히 암석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성안과 바깥에서 각각 400m씩 파 들어가서 총 800m의 수로를 판 것이다. 성 바깥의 기혼이라는 샘으로부터 성안의 실로암 못으로 물이 흘러 들어오도록 하였다. 그리고 기혼 샘 윗부분은 막아 버렸다. 히스기야 왕은 이 수로를 급히 만들었는데, 다행히 산헤립의 침공 전에 완성하여 성안에 물이 있으므로 앗시리아의 침공에 끝까지 버텨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성을 에워싼 앗시리아 군은 대치 상태에 있다가 여호와의 신이 그들을 쳐서 패배하여 도망을 치게 되었다고 열왕기하 19장 35절에 기록되어 있다.
11) 바벨론과 다니엘
1. 다니엘서의 예언은 언제 기록되었는가?
구약 성경에는 바벨론에 끌려간 다니엘이 기록한 “다니엘서”가 있는데, 다니엘서의 예언이 너무나 정확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다니엘서’가 그 사건들이 다 이루어진 후에 기록된 책이라고 생각하였다. 즉, 후대에 기록하고 이름만 ‘다니엘서’라고 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니엘서에 대한 신빙성이 많은 공격을 받았다. 다니엘서에는 헬라어(그리스어) 단어가 세 개 들어 있다. 이것 때문에 다니엘서가 바벨론 시대에 쓰인 것이 아니고 알렉산더가 지배하던 ‘헬라’ 즉, 그리스 시대에 쓰인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보니, 그리스와 바빌로니아는 느부갓네살 시대 이전부터 이미 광범위한 무역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말(言)도 서로 오고 갔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그 세 개의 단어들은 모두 그리스의 악기 이름이었다.
2. 풀무 불은 정말 있었던 것일까?
다니엘서에는 금신상에 절을 하지 않는다고 다니엘의 세 친구를 용광로에 집어넣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풀무 불은 다니엘의 세 친구를 던져 넣은 군병들을 죽게 할 만큼 강했으나, 세 사람은 머리카락 하나 그을리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고고학적 조사 결과 거대한 용광로가 발굴되었는데, 그 용광로의 용도에 대해 쓰인 비석에 보면 바빌로니아의 신에게 절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들을 화형시키는 데 사용되는 용광로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성경의 이야기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3. 사자 굴이 발견되다
다니엘서에 또 많은 비난을 받았던 부분은, 다니엘이 왕의 칙령을 따르지 않아서 사자 굴에 떨어졌는데, 사자들이 다니엘을 잡아먹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다니엘을 고발했던 사람을 잡아넣었더니 뼈까지 뜯어 먹었다는 이야기이다.
고대 바벨론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 결과 거대한 웅덩이가 발견되었는데, 이 웅덩이는 왕의 칙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사나운 짐승의 먹이로 떠밀어 넣던 데에 사용된 웅덩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잡아먹힌 사람들의 이름까지 다 기록되어 있었는데, 하나님의 천사의 보호로 살아났던 다니엘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다니엘서에 기록된 이 사건은 적어도 사실에 근거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5. 미쳤던 느부갓네살 왕의 이야기
성경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미쳤던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이 정신을 차려 돌아온 후에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해 두었던 것 같다. 바빌로니아의 고고학적 발견 가운데 느부갓네살 왕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명각이 발견되었는데, 그 명각에는 이 이상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니엘서에 기록되어 있는 왕이 미친 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성경의 기록이 실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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