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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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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말
교회에서 사용하는 음악을 교회음악, 종교음악이라고 부르며 예배목적에 사용하는 노래를 찬양가, 찬미가(찬송가), 성가라고 한다. 찬송가는 톨레도 회의(653)에서 어거스틴의 개념을 채택(찬송가란 세 요소 노래, 찬양, 하나님이 포함된다)하였다. 즉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며 Louis C.Elson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거나 예배드리는 노래로써 교회에서 부르는 짧은 종교적 서정시라고 했으며 Phil Kerr는 찬송가를 기도하는 노래로써 거룩한 하나님이나 삼위 중 일위에게 직접 간구하는 것이라 했다. 즉 찬송가는 하나님께 드리는 찬미의 제사로써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며, 감사드리는 것이다.
찬송은 하나님이 가장 즐겨 받으시는 제사이며(히13:15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구약시대는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제물로 드렸지만 신약시대는 우리를 대신해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보혈을 믿는 마음의 제사를 드리는 것인데 이것이 곧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뜻과 가르침, 명령, 약속을 인간에게 내리시는 것이라면 찬송은 은혜와 축복을 받은 감사와 찬송과 기도를 곡조에 담아서 올려 드리는 것이다.
이 찬송가에는 하나님을 찬송하되 직접적으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나 구원의 역사, 수단, 방법, 그리고 십자가의 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 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찬양한 노래가 있으며, 받는 상대가 인간들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간증을 노래하거나, 성도들에게 권면하여 믿지 않는 이들에게 호소하는 노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 찬송가 안에는 하나님을 대상, 인간 대상의 노래가 함께 있다.
이런 찬송가의 지금까지의 변천과정을 조사하고 역사적 조명을 통하여 찬송가의 역할이나 의미를 배워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 가는데 큰 도움이 되고자 한다.
Ⅱ. 본 말
1. 찬송가의 기원 : 구약에서의 찬양
구약시대의 찬미는 음악과 춤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 둘은 리듬(장단)의 자매관계이다. 춤은 감정을 몸으로 표현, 음악은 음성으로 율동을 표현 , 기악은 성악의 부속물로서 성경에서 미리암과 다윗이 춤을 추었다는 기록도 있으며 노래는 대부분 교송시로서 회당에서 서기관이 율법을 읽고 풀이하는 동안 백성들은 반주 없이 시편을 불러 응답하는 기록이 있다.
성전에서는 좀 더 정성을 기울여 제사장들이 악기의 반주를 받아가며 성가대원들은 시편과 모세오경을 노래한다. 구약시대 말에는 배교와 우상숭배가 점철되었다. 노래에도 배교사상이 뿌리내려 모세와 미리암의 노래 시편 등을 들을 수 없었다. 악기사용 없어지고 회당에서 부르는 제사장들의 의식적인 음송만 남게 되었다.
2. 초대교회 찬양
초대교회는 로마 지배하의 헬라문화와 유대교를 배경으로 시작되었다. 그들은 모일 때마다 그리스도 중심의 찬송을 응답식이나 교송식으로 불렀다. 신약성서가 헬라어로 씌여졌고 헬라어는 당시 교회뿐만 아니라 로마에서도 300년간 사용되었다. 바울의 편지에 보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미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시’는 ‘시편’을, ‘찬미’는 ‘창작 회중찬송’을, ‘신령한 노래’는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형태의 영가’라고 추측되지만 엄격하게 구분 지을 수는 없다. 그들은 3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는데 첫째는 잘 정립된 영창의 선법에 따라 복음서를 낭독이며 둘째는 시와 찬미처럼 단순한 영창에서부터 서정적이며 예술적인 노래를 부름이며 셋째는 ‘알렐루야’를 매우 아름답게 읊조림이었다.
2. 중세시대
313년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초대교회의 히브리문화, 헬라문화와 더불어 로마문화의 영향을 받게 된다. 라틴어성서가 사용되고 밀라노의 교부 암브로시우스는 시리아, 팔레스타인에서 시작된 교송법으로 시편이나 찬송을 두개의 합창단이 부르게 하였고 특히 고전적인 장단의 음율(단 장조,130장)에 의한 찬송가를 창작했다.
그 후 그레고리우스(590-604)는 당시 흩어져 있던 암브로시우스성가 프랑스성가, 스페인성가를 수집, 정리하였는데 이것이 그레고리안 성가이다. 이 시대에는 예배에서 소수의 성직자들로 구성된 성가대가 음악을 담당했고 회중들은 부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회중들은 여러 가지 의식과 축제가 늘어감에 따라 개인적이며 사회적 의식을 담고 있는 찬송가와 노래를 작곡하여 사용하였다.
3. 종교개혁시대
1) 루터와 코랄
종교개혁을 주도한 루터(1483-1546)는 독일의 회중 찬송인 코랄을 만들어 자국민에게 부르게 하였다. 루터는 신자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교회에서 부르게 하였고 신자들이 부르기 쉽도록 독일어 가사와 쉬운 곡조를 가진 노래를 만드는 데 진력하였다. 곡조나 가사를 볼 때 코랄은 3종류로 나눌 수가 있다. 첫째는 새로 창작한 것과 둘째 당시 인기가 있던 종교적?세속적 민요의 곡조나 가사를 개편한 것 그리고 셋째 그레고리오 성가의 곡조를 편곡하거나 라틴어의 가사를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그레고리오 성가가 가톨릭 교회음악의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처럼 코랄은 독일 개신교 음악의 발전에 근원적 사명을 다하였다. 루터는 찬송에 대하여 찬송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므로 하나님만 찬송해야 하며 음표가 가사를 살아있게 하고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을 잘 이해시키기 위해 이미 알려진 곡조를 가지고 코랄을 만들어야 하며 한 음표에 한 음절씩 가사를 붙였다. 그리고 자국어로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게 하고 찬송은 기쁨으로 불러야 한다고 했으며 젊은이들의 성가대 음악교육에 열의를 다했다고 한다. 그 결과 자작찬송의 활성화, 자국어 찬송의 토착화, 회중찬송가의 창시자가 되었다.
2) 칼뱅과 시편가
칼뱅은 종교개혁자 가운데 음악적 소양이 부족하였다고 하나 성서적 찬송관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말씀이 없다는 이유로 악기 연주를 반대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렸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잘 듣도록 자극하는 도구로 악기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둘째 단성부의 성악곡만을 허용하였는데 다성 음악이 말씀을 흐리게 하고, 음악의 아름다움이 말씀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셋째는 성경 안에 있는 가사(시편과 칸티쿰)만을 사용해야 한다. 넷째는 음악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가기보다는 자기도취에 빠질 수 있음을 걱정했다. 다섯째 시편을 가장 적절하고 좋은 교회의 노래하고 생각하여 시편가를 만들었다. 시편가를 만든 목적은 하나님과 사람이 교통하는 수단으로 보았기 때문이며, 실제 당시 박해 속에서 성도들은 시편가를 부르며 순교를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곡조는 불란서의 민요나 샹송에 맞추어 불렀고 불란서의 유랑시인들의 노래처럼 무반주로 함께 불렀다. 이 시편가는 후에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비롯하여 유럽 대륙에 퍼져 나가게 되었다.(제네바 시편가1장, 스코틀랜드 시편가131장)
4. 영국과 미국의 찬송가
1) 시편가에서 찬송가로 전환
16세기 영국과 스코틀랜드는 루터보다는 칼뱅의 사상을 따라서 칼뱅의 시편가 만을 허용하였고 창작찬송은 금하였다. 그러나 17세기부터 찬송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여 17세기말부터는 시편가가 점차 사라지고 찬송이 교회의 노래로서 자리를 잡아갔다.
2)창작 복음찬송가 등장
아이작 와츠의 신학은 바울, 어거스틴, 칼뱅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칼뱅의 "시편은 문자 그대로 불러야 한다"는 것에 반대하면서 "시편은 자유롭게 불러야 하고 교회의 노래는 부르는 사람의 감정과 사상의 표현이어야 하며 현 시대 상황에서 표현된 노래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사상이다. 그래서 그는 시편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시편에 담긴 원래의 의미를 토대로 현대의 언어로, 복음의 언어로 의역하여 찬송을 만들었다.
와츠의 사상은 웨슬리에 와서 또 다른 모습의 복음찬송으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웨슬리가 모라비아교도들을 만난 후였다. 그의 찬송의 특징은 중생 경험에서 얻은 개인적인 구원의 경험과 기쁨에서 우러나는 찬송을 썼는데, 이것은 와츠가 주장하는 모든 기독교인이 공감할 수 있는 기독교의 교리와 경험에 근거한 객관성 있는 찬송이어야 한다는 것과 다르다.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불란서 시편가를 영어로 번역하여 불렀는데 어려워서 사용할 수 없었다. 1734년 조나단 에드워드(1703-1758)를 중심으로 대각성운동이 일어나 개인적인 회개와 경험을 강조하면서 집회 시 복음적인 찬송을 하게 되었고, 이때 영국의 부흥사 화이트필드(1714-1770)가 미국에서 부흥집회(1739-1741)를 인도하면서 와츠와 웨슬리의 찬송을 많이 불러 미국의 교회들은 시편가에서 찬송가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1800년 대부흥운동이 미국 서부(켄터키주)에서 일어나 사람들이 산에서 텐트를 치며 며칠씩 집회를 하였는데 집회의 형식에서 찬송은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러나 대부분 외워서 불러야 했으나 당시 사람들이 무식하여서 가사?곡조가 기억하기 쉽고 단순한 민요조의 노래를 불렀다. 이는 후렴이나 합창이 반드시 붙여져 부르기 쉽고 들어서 금방 익힐 수 있도록 반복이 많았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많이 부르는 복음찬송이다. 이 부흥운동의 영향으로 19세기 말까지 미국의 각 교파마다 그 당시의 찬송곡들과 복음찬송으로 찬송가를 출판하였다.
1857년 미국에 극심한 경제공황으로 혼란한 상황에서 1858년 제2의 각성운동으로 알려진 신앙부흥운동이 일어났다. 연합기도회 형태로 나타난 이 부흥운동으로 복음적인 찬송이 많이 불려졌고, 또한 YMCA 지도자였던 무디는 1870년 쌩키와 함께 전도단을 만들고 쌩키로 하여금 대중들에게 맞는 복음찬송을 만들게 했다. 이들은 1872년 영국에 가서 성공적인 전도 집회를 하였는데, 이들이 사용한 노래들이 영국에서 출판되었다. 1875년 교회음악가인 블리스는 무디, 쌩키와 같이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하였는데 이들이 부른 복음찬송은 대단한 파급효과가 있어서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되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복음찬송을 작곡한 사람은 맹인 작가 크로즈비이며 8,000여 편을 작사하였다. 이 당시 잘 불리던 몇 곡을 보면 510장, 498장, 297장 등이다. 복음성가는 교회예배에도 침투되어 복음적인 교파에서는 복음성가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미국의 선교사들은 선교사업의 도구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피선교지의 언어로 번역되어 많이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찬송가도 그 중의 하나이다.
5. 한국의 회중찬송가
1) 초기 찬송가
19세기 말까지 이어진 미국의 부흥운동으로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선교열을 촉진시켰고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처음 한국에 들어와 한국 사람들이 사용할 찬송가를 편찬하게 된다.
그 시초는 『찬미가』로 1892년 감리교 선교사들인 존스와 로드와일러가 27편의 번역찬송으로 가사판 찬송가를 편찬하였으며 1895년에 81곡으로 수정 보완되었다. 그 후 『찬양가』가1894년 한국 최초의 악보찬송가로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가 출판하였는데 처음에는 감리교와 함께 편찬하기로 하였으나 감리교의 죤스 선교사가 안식년으로 미국으로 출국하자 단독으로 출판하였다. 총117편의 번역찬송가를 가사와 함께 4성부의 악보로 출판되었다. 당시 미국에서 유행했던 복음찬송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한국인의 창작찬송이 7편 실려 있다. 그리고 『찬셩시』는 1895년 평양 주재 북부 장로회 선교사 리와 기포드에 의해 편찬되었는데, 가사판으로 54곡을 수록하였으며(1905년 악보판 출간) 찬미가나 찬양가보다 쉽고 세련된 번역으로 한국인이나 선교사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493장과 585장이 처음 수록되었다. 최초의 장로교의 공인 찬송가이다.
2) 해방 이전 찬송가
『찬숑가』는 1908년 최초의 감리교, 장로교 연합찬송가로 262곡이 실려 있으며 이 중 84곡은 미국의 유명한 부흥노래집에서 발췌하였다. 전에 출간된 찬송가를 토대로 하여 새로운 찬송들을 첨가하였는데 가사가 좀 더 명확하고 교리에 맞고 존경어로 바꾼 것이 특징이다. 『찬숑가』 악보판 초판은 1909년 피터즈 목사 부부에 의하여 사적으로 출간되었으며 2판은 1916년에 발행되기에 이른다. 『찬숑가』는 전국적으로 통용되었으며 이러한 점에서 한국교인에게 끼친 그 영향은 지대하며 한국 교회음악의 기초와 뿌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찬송가 이외에 『부흥성가』라는 이름으로 1911년 성결교회의 전신인 동양선교회의 카우만과 길보른 두 설립자의 계획으로 16곡으로 출간되었는데 1919년 50여곡을 추가하여 『신정복음가』로 1930년에는 총 255곡으로 『부흥성가』로 출판되었다. 194곡이 미국의 복음가이며 당시 사회에서 애창되던 외국민요 등에 곡조를 붙여 찬송가로 사용하였다. 예배보다는 부흥집회나 전도 집회에 적합한 찬송이다. 찬송가의 보급과 필요에 의해 『신정찬송가』라는 이름으로 1931년 『찬숑가』의 개정 증보하여 편찬하였는데 감리교와 장로교가 함께 사용하기로 한 것을 장로교가 거부하므로 감리교만 1949년까지 사용하였다. 이 책에는 314편이 수록되었고 그 중 한국인의 창작찬송이 6편 실려 있었다.(345장 캄캄한 밤, 580장 삼천리 금주가 등) 이후 1935년 장로교에서 『신편 찬송가』를 발행했으며 발이 찬송가로 400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찬숑가』를 토대로 하여 잘 불리지 않는 40장을 삭제하고 『신정찬송가』에서 70장, 『부흥성가』에서 100장 가량을 새로 추가 하였다.
3) 해방 이후 찬송가
1949년 조국의 해방과 함께 감리교 장로교 성결교 세 교파가 찬송가의 하나 됨을 원하여 『합동 찬송가』를 발행 하였다 이 찬송가는 처음으로 한국인의 손에 의해 편집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고 세 교파에서 사용하던 찬송가 중에서 각 교파의 특이한 것을 편입하고 공통된 것은 가사를 적절히 선택하여 수록하였다. 따라서 이 찬송가는 세 교파의 찬송가를 합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성결교의 『부흥성가』를 통해서 미국의 복음찬송이 더욱 증가하게 되어 한국 찬송가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1959년 장로교(예장)가 합동과 통합으로 분열되면서 합동 측에서 기존의 찬송가 사용을 거부하고 1962년에 『새 찬송가』를 발간했으며 이 찬송가는 『신편찬송가』를 기초로 구미 각국의 우수한 찬송을 첨부하여 원작을 직접 번역하는 것을 원칙으로 편찬되었다. 총 671장으로 독일 찬송, 일본 찬송 등 새로운 찬송이 많이 소개 되었으나 한국찬송은 결여되어 있었다. 교단 분열과 시대사상의 변화를 타고 1967년 『개편 찬송가』가 발간되었는데 이 찬송가는 감리교, 장로교(기장, 통합), 성결교가 출간한 것으로 한국인 찬송 27편을 비롯하여 600편의 찬송이 수록되었고 후에 성결교단의 복음찬송 20편을 부록으로 첨부하였다. 『개편찬송가』는 기존의 찬송가가 선교사들의 전도 목적에 사용했던 복음찬송의 비중을 줄이고 예배찬송과 교회의 의식에 관계된 찬송을 많이 보강하므로 부흥회 중심에서 예배 중심의 찬송으로, 천국에 대한 타계적인 찬송에서 현세적인 기독교인의 윤리를 강조하는 찬송으로 대치되었다.
4) 현재의 찬송가
1983년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어지던 『합동 찬송가』『새 찬송가』『개편 찬송가』를 하나로 통일하여 『통일 찬송가』라는 이름으로 발간하였다. 이 찬송가는 총 558장 가운데 80% 이상이 미국과 영국의 번역찬송이며 그 중 262곡이 부흥 집회, 전도 집회용의 찬송이다. 번역찬송 “주 예수 보다 더(94장)”가 처음 찬송가에 수록되었고 한국인 창작찬송으로는 개편찬송가보다 줄어 17곡이 수록되었는데 “어둠의 권세에서(398장)”와 “인류는 하나 되게(475장)”가 처음 수록되었다. 이 찬송가는 한국의 개신교인들이 한 가지 찬송가로 같이 부르는 장점이 있는 반면 공적인 찬송가로서 내용 편집 면에서 표기방법, 작사자, 작곡자에 대한 오류가 있고 예배를 위한 찬송가로서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학자들의 의견에 따라 『21세기 찬송가』라는 이름으로 2006년 새롭게 단장하였다. 이 찬송가는 신학자, 목회자, 국문학자, 교회 음악인들이 10년에 걸쳐 준비하였으며, 총 645장 가운데 우리의 정서가 담긴 한국인 창작찬송이 128장 수록되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고, 예배찬송가를 비롯하여 교회력에 따른 찬송과 교독문을 보강하고 내용과 분류 등을 대폭 수정하여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Ⅲ. 나가는 말
찬송가는 수 천 년의 기독교 역사 속에서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해 왔었다. 인간의 해석이나 구분을 떠나서 그리고 교리나 신조를 떠나서 곡조 있는 기도로서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존재이므로 인간이 만든 곡조라면 완전할 수 없겠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만들어 졌거나 또는 만들어진 그것을 읊조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고 그 읊조림으로 하나님을 찬양함이 된다면 설사 그것이 어린아이의 작품이라도 그것은 훌륭한 찬송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인간의 힘으로 이것을 구분하고, 마음대로 해석하고, 각자의 이기심으로 당파지으며 분리시키기를 반복했다. 찬송은 예배에 있어서 하나님께 돌려야할 거룩한 것임에도 한국 교회의 찬송은 그러한 자각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여 아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선교초기에서부터 현재 쓰이고 있는 찬송가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많은 점을 배우고 고쳐야 할 점과 또한 새롭게 노력해야 할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 성령의 감동 감화가 있는 찬양, 곡조 있는 기도의 찬양이 한국 교회에 넘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온 세상이 하나님의 복음이 선포되기를 원한다. 더불어 우리의 삶에 아름다운 찬양이 함께하고 우리의 입술이 하나님의 말씀과 찬양의 도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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