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런 글로버(여·42·캐나다)씨는 매주 화요일 규방공예를 배우기 위해 삼청각 천추당에 나간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등 간단한 말 외에는 한국어를 못하는 글로버씨가 영어 강좌를 들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삼청각 규방공예 강좌는 서울국제여성협회(SIWA) 회원을 대상으로 2∼4월 10주 동안 보자기, 한복, 장신구, 자수, 매듭 등을 가르치는 고급 과정. 글로버씨는 “오색 보자기 만드는 숙제를 하기 위해 한 주 동안 20시간 이상 매달린다”며 웃었다.
작년에는 1년 동안 용산구 한남동 자신의 집에서 4명의 캐나다 출신 부인들과 함께 강사를 불러 보자기 만드는 걸 배웠다. 그는 20개의 다른 스타일로 만든 보자기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글로버씨의 전통 문화 배우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강사를 집으로 모셔 자수 강좌를 열고, 금요일 오전에는 이태원의 스튜디오를 찾아 한지 공예를 배운다. 수묵화를 배웠던 적도 있다. 일반 문화센터 등에는 영어 강좌가 없어 서울 국제 여성협회에서 여는 소모임 강좌에 주로 참가해 왔다.
글로버씨는 “10여년 전부터 북미 스타일의 수예에 관심이 많았는데, 한국에 오면서 한국 수예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옮겨졌 ” 며 “언젠가 캐나다에 돌아가면 한국 전통 문화를 가르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미와 한국 수예의 차이를 우선 재료가 다른 데서 찾았다. 모시는 처음 접하는 것이었고, 비단도 캐나다에서 사용하던 것과 느낌이 달랐다. 기법은 캐나다에선 3겹을 기본으로 손바느질과 재봉틀을 이용하지만, 한국에선 1∼2겹을 모두 수작업으로 해야 했다. 그는 “바느질할 땐 한뜸 한뜸 간격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된다” 며 “한국 수예를 배우기 위해서는 ‘안경’ 이 필수적” 이라며 농담을 던졌다.
글로버씨는 지난 2000년 한 맥주회사에 근무하기 위해 한국에 온 남편 마이클 글로버(41)씨를 따라 한국에서 첫 외국 생활을 시작했다.
글로버씨는 전통 공예 재료를 사기 위해 인사동 한지 가게와 동대문시장 수예점들을 매달 한 번씩 들른다. 그는 “가게 앞을 지나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들어가는 편이기 때문에 아직 단골을 만들지는 못했다” 고 했다. 불고기·갈비 등 한식을 먹을 때도 인사동을 찾는다.
캐나다 여성 클럽(Canadian Women’s Club)의 회장을 맡고 있어, 한 달에 한 번 정도 클럽 회원들과 함께 삼청각 같은 전통 문화 공간이나 미술관을 방문한다. 미술관 탐방 때는 인사동에서 출발하는 미술관 순회 버스를 이용한다.
주말에는 집에서 가까운 남산 야외식물원, 아이들이 자전거 타기에 좋은 송파구 잠실동 올림픽공원, 전통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용인시 민속촌 등을 찾는다.
글로버씨는 이 밖에도 매달 열리는 서울 국제 여성클럽 모임에도 참석하고, 자녀가 다니는 서울 외국인 학교에서 2주에 한 번씩 보조 교사로도 활동한다.
서울에 대한 인상은 한 마디로 “큰 도시” 라고 했다. 고향인 캐나다 런던(London)시는 토론토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주민 2만5000명의 작은 도시로 ‘숲의 도시’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로 나무가 많다.
글로버씨는 “서울은 옛 건물은 없고 새 건물밖에 찾을 수 없다” 며 “나무와 전통 건물을 볼 수 있는 삼청각 같은 곳이 많았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영어로 진행되는 전통강좌 외에도 다례·규방공예·판소리·전통춤· 한지공예·민화·전통목공예 등 다채로운 강좌가 삼청각 (www.samcheonggak.or.kr)에서 열린다. 3∼6월, 9∼12월 등 1·2학기제로 운영된다. 삼청각에 가기 위해서는 서울프라자호텔, 프레스센터, 교보문고 등을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무료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게 좋다. 승용차는 프라자호텔 지하 주차장에 세워두면 삼청각 유료 이용객에 한해 4시간까지 주차료는 1000원을 받는다. 문의 3676-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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