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연극인 최경식·정경림 부부
무대 위 늘 새로운 삶…서로에게 든든한 지원군
기사등록 : 2008-06-13 오후 6:14:10
무대 위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연극인들. 이들에게 있어 무대는 어미의 자궁 같은 곳이다. 그곳에서 다양한 인생을 살아 내면서 그들 스스로도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이다.
연극인이자 마임니스트 최경식씨와 연극 배우 정경림씨 부부에게도 무대는 새로운 삶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소통의 창구다. 이러한 연극판에서 처음 만나 7년 만에 결혼 한 이들 부부는 올해로 결혼 16년차를 맞았다.
지역 연극판을 20여 년 넘게 지키고 있는 남편 최경식씨는 스무 살 무렵부터 연극이라는 무대에 자신의 삶을 걸기로 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평생 연극을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춘천이 군 복무지였는데 당시 유진규 선생이 10년 만에 재개하는 무대가 춘천에서 열렸어요. 그 공연이 너무 보고 싶어서 군대 담을 넘기도 했었습니다.”
이처럼 연극에 대한 지독한 애정으로 점철된 그였지만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무대만 지키고 있기에는 현실이 허락치 않았다. 보험사, 학습지, 간판 광고 등 무대를 떠난 후 안해 본 것 없이 다양한 일들을 하면서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했던 것. 그런 남편을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그때 남편은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꼭 연극 이야기를 했었어요. 너무 그리운 무대인데 밖에서는 이야기할 사람이 없으니 집에 오면 나를 붙잡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하지만 사실 그 이야기들을 듣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느꼈죠. 얼마나 연극을 하고 싶으면 이럴까라구요.”
그래서 2년 만에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이후 시립극단 단무장으로, 전국연극제 기획실장,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공연기획 과장 등을 거치면서 그렇게 좋아하는 무대에 다시 서게 된 것. 그리고 마르셀 마르소의 무대는 그를 마임니스트로 성장하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실 대사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는 그는 무대 위에서 대사를 ‘씹거나’, ‘건너뛰거나’, ‘까먹기’가 일쑤였다.
“배우로서는 치명적이죠. 그래서 상대 배우들도 힘들어 했어요. 그런데 마임을 알고 나서 ‘아!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이 필요 없잖아요(웃음). 마임은 침묵 가운데 모든 의미를 전달할 수 있거든요.”
사실 대사 전달보다는 마임이 주는 매력과 감동에 대한 경험이 강렬했던 그는 이후 마임 극단인 ‘달란트 연극마을’을 만들고 4년∼5년 동안 마임에만 몰두했다. 그의 20년 연극 인생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도 창작 마임인 ‘다윗과 골리앗’이다.
그러나 요즘 후배들은 마임을 전문적으로 배우겠다는 사람이 없단다. 단지 연극을 하기 위한 하나의 보조적 요소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현재 도내에서 마임니스트는 그가 유일하다.
재수 시절인 1986년 극단 ‘황토’에 친구의 오디션을 따라 왔다가 얼떨결에 연극판에 발을 들여 놓은 부인 정경림씨는 그때부터 연극 배우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예술을 하면 배 곫는다’는 인식이 강했던 그 시절 무대에 대한 꿈은 부모님에 의해 한 때 좌절되기도 했었다.
“부모님이 그때 제 선택에 맡겨뒀더라면 제가 연극을 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렇게 꿈이 한번 꺾이고 나니까 오히려 그것에 대한 열망이 강해지더라고요.”
그러한 열망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서른이 넘은 후에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오게 한 원천이 되기도 했다.
1996년부터 전주시립극단의 비상임으로 활동하다가 2년 후에 정식 단원으로 입단한 정씨는 이후 자신만의 캐릭터를 완성해 나가며 지역 연극판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배우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았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인데 다른 동료는 자기 개발을 해가며 앞서가는데 ‘나는 이게 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서글퍼 지는거에요. 남편과 함께 산으로 차를 몰고 가서 펑펑 울었어요.”
아내의 눈물에서 남편은 아내의 꿈을 보았다. 이후 지금까지 남편과 아내이기 전에 연극인으로서 서로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고 있다. 또, 두 사람의 가장 소중한 보물인 두 아이가 보내는 지지도 대단하다.
“연극하는 부모를 둔 것에 대해 자부심이 강해요. 큰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시립극단 공연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도 그 경험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해요.” 그래서 부모의 공연에 아이들은 단골 관객이다.
자신의 공연을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아빠와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자신의 공연을 보러 오라는 얘길 안 한다는 엄마. 그러나 이들 가족은 누가 뭐라 해도 서로에게 가장 좋은 관객이 되어 주고 있다.
이제 전북 연극판의 초창기 세대로서 이들이 가지고 있는 포부는 개인적인 범위를 넘어 좀 더 확장되어 있다.
현재 서울과 전주를 오가며 교육 예술과 연극치료를 공부하고 있는 정씨는 연극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준비 중이다. “연극을 하면서 인생에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연극을 활용한 다양한 교육방법을 통해 받은 만큼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바람이에요.” 하지만, 배우로서의 무대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내달 4일부터 13일까지 창작 소극장에서 ‘늙은부부’ 앵콜 공연에 들어가는 것. 남편 최씨도 마임공연을 통해 해외 빈민 어린이들을 위한 후원 공연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일회성 캠페인이 아닌 마임이 주는 감동을 다양한 후원 사업들과 연계해 지속적으로 진행해 나갈 생각입니다. 또 마임에 대한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영화를 통해 나를 알리는 방법도 생각중이에요. 대중들의 심리가 유명한 사람이 하는 공연에서 더 큰 감동을 얻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요. 제가 유명해지면 마임에서 얻는 감동이 더 크지 않을까요.”
나이가 들수록 더 바빠지고 있다는 부부는 오늘도 여전히 각자의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날 채비로 분주하다. 이들의 부지런한 발걸음 하나 하나가 초석이 되어 전북 연극판을 지켜가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한 지역 연극에 대한 희망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김효정기자 cherrya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