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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군(洪川郡)
홍천군은 고구려시대에 벌력천현(伐力川縣)으로 칭하여 오다가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녹효(綠驍)로 고쳐 삭주(朔州 : 현재의 춘천)의 영현(領縣)이 되었으며 그후 고려 제8대 현종9년(1018년)에 홍천으로 고치고 제17대 인종21년(1043년)에 감무(監務)를 두고 별호를 화산현이라 하였음. 조선시대에 이르러 태종13년(1413년)에 홍천현이 되어 현감을 두었다가 1895.5.26(고종32년) 칙령 제98호로 춘천부 홍천현이 되었으며, 1896.8.3 칙령 제35호에 의한 13도제 실시로 강원도 홍천군이 되어 화촌, 두촌, 내촌, 서석, 영귀미, 감물악, 금물산, 현내, 북방의 9개 면을 관할하게 됨. 그 후 현내면을 군내면으로 고치고 1914년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화촌면의 태학, 결운 2개리와 금물산면의 하오안, 장전평 2개리를 군내면에 편입하였으며, 1917년 금물산면을 남면, 군내면을 홍천면, 영귀미면을 동면, 감물악면을 서면으로 변경, 1935.5.1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분지리를 홍천군 서면 굴업리에 편입하였다.
1945.8.15 해방과 더불어 국토가 분단되면서 38선 이남에 해당되는 인제군 기린면의 진동리와 북리의 일부와 인제면의 원대리, 남면의 부평, 어론, 김부, 신월, 정자, 갑둔, 신충 7개리를 편입하여 신남면을 새로 만들고 인제군 내면을 편입하여 11개 면의 행정구역을 이루다가 1954.10.21 법률 제350호「수복지구 임시조치법」시행에 따라 신남면은 인제군에 환원시키고 내면은 그대로 남아 10개면이 됨. 1963.1.1 법률 제1177호로 홍천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남면의 삼마치리가 홍천읍으로 편입 되었고 1읍 9면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었으며, 1973.7.1 대통령령 제6542호('73.3.12공포)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춘성군 동산면 북방리와 풍천리가 홍천군 북방면과 화촌면에, 양양군 서면 명개리가 홍천군 내면에 편입되는 한편 홍천군 내면 미산리가 인제군에, 남면 상창봉리가 횡성군에 이양되었다. 1983.2.5 전국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남면 상오안리가 홍천읍에 편입되었으며. 1983.10.1 두촌면 천치리를 천현리로 변경하였음. 1995.7.26 북방면 성동리 일부(도심이)가 화촌면 구성포리로 편입되었고 현재 홍천읍, 화촌면, 두촌면, 내촌면, 서석면, 동면, 남면, 서면, 북방면, 내면의 1읍 9면으로 구성되어 있음. * 인구 70,187명(2006.9.30 현재. 제40대(민선4대) 군수 노승철. 2006년 예산 약 1980억원
◎ 홍천읍(洪川邑) [홍천군, 군내면, 현내면] : 홍천군 1읍 9면의 하나
본래 홍천현(洪川縣)이 있는 곳이므로 현내면(縣內面)이라 하여, 희망동(希望洞), 진리(津里), 연봉리(連峯里), 신장대(新場垈), 갈마곡(葛麻谷), 송류리(松柳里), 동막리(東幕里)의 7개 리를 관할하다가 고종 32년(1895)에 군내면으로 고치고, 1914년 면 폐합에 따라 화촌면(化村面)의 태학(太學), 결운(決雲)의 2개 리와 금물산면(今勿山面, 남면(南面))의 하오안(下吾安), 장전평 (長田坪)의 2개 리를 편입하여 다시 군내면이라하여 1개 리를 관할하였는데, 1917년에 홍천면 (洪川面)으로 고치고, 1963년 1월 1일에 남면의 삼마치리(三馬峙里)를 편입하여 홍천읍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 3월 15일 상오안리(上吾安里)를 편입하여 현재 희망(希望), 진(津), 신장대 (新場垈), 갈마곡(葛馬谷), 검률(檢律), 와동(瓦洞), 결운(決雲), 태학(太學), 연봉(連峯), 상오안 (上吾安), 하오안(下吾安), 장전평(長田坪), 삼마치(三馬峙)의 13개 법정리와 34개 행정리로 나뉘어져 있다. 동쪽은 동면, 서쪽은 북방면, 남쪽은 남면, 북쪽은 북방면과 화촌면에 닿음.
‣ 내촌면(乃村面, 奈村面)
내촌면(乃村面, 奈村面) : 홍천군 1읍 9면의 하나로 홍천군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래 奈村面이라고 하였는데 1830년대에 乃村面이라고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물걸(物傑), 와야(瓦野), 서곡(瑞谷), 문현(文峴), 도관(道寬), 답풍(踏楓), 화상대(和尙垈), 광암(廣岩)의 8개리를 관할하였다. 동쪽은 인제군 기린면, 서쪽은 두촌면, 남쪽은 화촌면과 인제군 남면에 닿음. 49개 자연부락, 8개 법정리와 13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음. 내촌면 인구 1,001세대 2,427명(2006.9.30 현재)
* 자료 출처 : 홍천군 홈페이지( http://www.hongcheon.gangwon.kr)의 지명 유래와 통계
• 서곡리(瑞谷里)
서곡리(瑞谷里) : 내촌면(乃村面) 중심부에 위치한 리. 본래 홍천군 내촌면 지역으로, 조선 영조 때 서곡대사 찬연의 출생지라하여 서일 또는 서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절골(寺洞), 여창이(汝昌)를 병합하여 서곡리라 함.
○ 선바위(선-바위)골 : 서일 동쪽 와야리와 경계가 되는 곳에 우뚝 서 있는 바위. 높이 8m.
○ 밧-실 [밧서일, 외서일] : 서일 바깥쪽에 있는 마을.
○ 가사-거리 : 서일 앞 내촌천가에 있는 마을. 옛 쌍계사의 중들이 내촌천에서 목욕을 할 때, 이 곳 소나무에 가사를 걸어 놓았다 함.
○ 덕탄(德灘) : 서일 앞에 있는 내촌천의 큰 여울.
○ 두봉산(頭鳳山) : 절꼴 뒷산.
○ 물안 꼴 [수왕동(水旺洞)] : 큰여창이 옆에 있는 마을. 여러 골짜기의 물이 마을 앞으로 흐름.
○ 사리탑비(舍利塔碑) [쌍봉당대선사사리탑비(雙峯堂大禪師舍利塔碑)] : 절골에 있는 쌍봉 당대선사의 사리탑비. 높이 13m. 풍화로 인해 글자를 알아볼 수 없으며, 옆에 사리탑의 탑 조각들이 흩어져 있음.
○ 서일-고개 : 서일에서 와야리로 가는 고개.
○ 수레-바우 : 안실 남쪽에 있는 바위. 수레와 같이 생겼다 함.
○ 쌍계사(雙溪寺) [쌍계암(雙溪庵)] : 두봉산 아래 곧 절꼴에 있는 절. 조선조 제 17대 효종 원년(1650)에 도전 이 창립하였다고 하는데 그 뒤 없어지고, 그 후에 다시 지었음. 앞에 쌍봉당대선사사리탑비(雙峯堂大禪師舍利 塔碑)가 있음.
○ 안-실 [내서곡, 내서일(內瑞谷, 內瑞日)] : 서일 안쪽에 있는 마을. 조선조 영조 때 서곡 대사가 출생한 곳이 라 함.
○ 여창-이 : 서일 북쪽에 있는 마을. 여씨가 살았다 함. 작은 여창이, 큰 여창이 두 마을로 나뉘어 있음.
○ 절-꼴 [절깨, 사곡(寺谷), 사동(寺洞)] : 작은 여창이 동북쪽에 있는 마을. 쌍계사가 있음.
• 와야리(瓦野里)
○ 가령-골 [가령곡(加靈谷), 개령동, 가역골, 가역곡(加驛谷)] : 와야 동북쪽 길 가에 있는 마을. 조선조 때 역 (驛)이 있었다 함.
○ 가령-폭포 : 가령골 북쪽 산골짜기에 있는 폭포. 높이 10m.
○ 고든-골 [직골] : 곧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
○ 덕전(德田) [망전(望田)] : 와야 남서쪽에 있는 마을. 본래 덕전이라 하였는데, 100여 년 전에 이곳에 살던 큰 부자가 시주 온 중에게 거름을 퍼주고 내쫓아 버린 뒤로 망했다 함.
○ 망전산(望田山) : 망전 남서쪽에 있는 산. 높이 339m.
○ 문-바우 : 봉소대에 있는 문처럼 생긴 바위.
○ 밤-까시 [율목동(栗木洞)] : 와야 북쪽에 있는 마을. 밤나무가 많았다 함.
○ 백암산(白岩山) : 가령골 위쪽에 있는 산. 신바우가 있음.
○ 벼락-바우 : 전에 벼락을 맞았다는 바위.
○ 본부락(本部落) : 와야리의 본 마을.
○ 봉소대(鳳巢臺) : 망전 남쪽에 있는 산. 경치가 썩 아름다움.
○ 불당동(佛堂洞) : 망전 옆에 있는 마을.
○ 비선동(飛仙洞) [마을] : 봉소대 남쪽에 있는 마을.
○ 산이-동 [산리동] : 비선동과 회룡치 사이 산에 있는 마을.
○ 수작-골 [수작동(水作洞)] : 와야쪽의 물과 일문골의 물이 합치는 곳에 있는 마을.
○ 수작골 고개 [망전고개] : 수작골에서 망전으로 가는 고개.
○ 신-바우 [흰바우] : 백암산(白岩山)에 있는 크고 흰 바위.
○ 아홉-사리 [구곡치(九曲峙)] : 가령골에서 인제군 기린면 상남리의 미다리로 가는 큰 고개. 높고 험해서 길이 아홉사리로 되었다 함.
○ 연계동(煙溪洞) [영계동(詠溪洞)] : 덕전 동쪽에 있는 마을. 연계사 절이 있음.
○ 일문-골 [일문곡(一門谷), 일문동] : 연계동 동쪽에 있는 마을.
○ 폭포수-골 [폭포골] : 가령폭포가 있는 골짜기에 있는 마을.
○ 푯대-봉 : 망전에 있는 산. 세부 측량 때 기점(基點)을 잡은 푯대가 서 있었음.
○ 한바우-터 : 처음에 한바우라는 사람이 터를 닦고 살았다 함.
• 문현리(文峴里)
문현리(文峴里) : 내촌면(乃村面) 중심부에 위치한 리. 본래 홍천군 내촌면 지역으로 문고개 밑이 되므로 문고개 또는 문현동(文峴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문현리라 함.
○ 문-고개 [문현(文峴)] : 문고개 마을에서 와야리의 비선동으로 가는 고개.
○ 문현광산(文峴鑛山) : 문현리에 있는 광산. 1937년에 개광함.
• 물걸리(物傑里)
물걸리(物傑里) : 내촌면(乃村面) 동남쪽에 있는 리. 본래 홍천군 내촌면 지역으로 물거리(物巨里) 또는 물걸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복곡, 동창, 감두리, 새마을, 탑둔지, 자근솔치, 장수원, 조상골, 조룬, 된재를 병합하여 물걸리라 함.
○ 가루-고개 [갈고개, 갈현(葛峴)] : 동창 동쪽에 있는 마을. 또는 가루고개 동쪽에서 서석면 수하리 절골로 가 는 고개.
○ 감두리(甘杜里) : 동창 서쪽에 있는 마을. 내촌천이 마을을 감돌아 흘러감.
○ 귀미 : 동창 서쪽에 있는 들. 내촌천의 물이 굽이져 후미를 이룸.
○ 널-나드리 [판교(板橋)] : 동창 동남쪽에 있는 마을. 앞 냇물에 널로 놓은 다리가 있었음.
○ 동창(東倉) [창촌(倉村), 창말, 비짓거리] : 물걸리 서남쪽에 있는 큰 마을. 조선조 때 홍천현의 동창(東倉)이 있었으며, 조선조의 역촌(驛村)으로 서울∼영동간 교통의 중심지로 집산지였음.
○ 동창탑(東倉塔) : 탑둔지에 있는 세 층의 돌탑. 전에는 6층이었다 함.
○ 된-재 [되용재, 회룡동(回龍洞), 회룡치(回龍峙)] : 조룬 북쪽에 있는 마을. 된재 밑이 됨. 또는 된재 마을에서 와야리 비선동으로 가는 고개. 고개가 매우 되어서 길이 여러 굽이가 되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용이 돌아 올 라간 것 같다 함.
○ 물걸교(物傑橋) : 물걸리 어귀에 놓인 나무 다리.
○ 미륵불(彌勒佛) [석불(石佛)] : 탑둔지에 있는 돌부처. 앉아 있는데, 높이 1.76m.
○ 복-골 [복곡(福谷)] : 물거리 서쪽에 있는 마을. 땅이 좋다 함.
○ 새-마을 [신촌(新村)] : 장수원 남쪽에 새로 된 마을.
○ 작은 솔치 [소송치(小松峙)] ⇒ 화촌면 장평리의 "소송치"
○ 장수원(長水院) : 감두리 남쪽에 있는 마을. 장수한 노인이 많이 있는 馬房(院)이라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함.
○ 점-말 : 물걸리 안에 있는 마을. 옹기점이 있음.
○ 조-운 [조, 조운(早, 朝雲)] : 새마을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 조상-골 [조상동(朝霜洞)] : 널다리 남쪽에 있는 마을. 지대가 높아서 서리가 일찍 내린다 함.
○ 탑둔지(塔屯地) : 창촌 서북쪽 둔지에 있는 마을. 삼층석탑과 미륵불이 있음.
• 도관리(道寬里)
내촌면(乃村面) 북서쪽에 위치한 리. 본래 홍천군 내촌면 지역으로 사방으로 산이 둘러 있어서 독의 안과 같이 되었다하여 독안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큰골, 둔덕말, 모종촌, 버섯구지, 양지떼소를 병합하여 도관리라 함.
○ 거주-개 [가주개, 거주포(巨舟浦)] : 독안이 동북쪽에 있는 마을. 조선조 제 21대 영조 때 서곡대사가 석비(石 碑)를 운반하고 배를 매 뒀던 곳이라 함. 혹은 150여년전 포(浦)를 막았는데, 그 고인 물에 큰 배만한 물고기 가 서식하였다는데서 비롯되었다 함.
○ 도관교(道寬橋) : 도관리에 있는 나무 다리. 1963년 12월에 놓았음.
○ 도관산(道寬山) : 도관리 앞산. 높이 308m.
○ 도관이-장 [장거리] : 도관리 장거리에 서는 내촌면의 장.
○ 둔덕-말 : 독안이 옆 둔덕에 있는 마을.
○ 말거리-소 : 답풍리와 도관리 경계에 있는 소. 매짓골에서 난 망아지가 주인을 잃고, 이 소에 빠져 죽었다함.
○ 매짓-골 : 독안에 있는 마을. 옛날에 이곳에 살던 전씨(全氏)가 아이를 낳았는데, 이레도 안 되어 온 마을을 뛰어 다니며 힘이 장사이므로 그 부모는 이 아이가 장차 커서 역적 모의를 하여 집안을 망칠까 두려워하여 아이를 죽였는데, 얼마 후에 큰 망아지가 이곳에 나타나서 우렁골에서 큰 소리를 내어 울고서 말거리소로 가 서 빠져 죽었다 함.
○ 모종-촌 : 둔덕말 남쪽에 있는 마을. 솔모종을 하였다 하며, 약 50년 전부터 장이 섬.
○ 배-바우 : 배뱃골에 있는 큰 바위. 배같이 생김.
○ 배뱃-골 : 큰골 안쪽에 있는 마을. 배바우가 있음.
○ 버섯-구지 : 장거리 동북쪽에 있는 마을.
○ 사갑(沙甲) : 사방거리 남쪽에 있는 마을. 내촌천이 마을을 삥 돌아서 흘러감.
○ 사방-거리 [사방가리(四方街里)] : 거주개, 사갑, 서곡리의 서일, 독안이로 가는 네거리에 있는 마을.
○ 쉴-바우 : 독안이에 있는 큰 바위. 이 바위 옆에서 행인들이 쉬어 간다 함.
○ 안-고래 : 거주포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양지-떼소 : 도관리 양지쪽에 있는 마을. 뗏목을 맸던 곳이라 함.
○ 우렁-골 : 뒷산인 백우산(白羽山) 신령이 재난시에 도움을 주었다하여 유래된 지명임.
○ 큰-골 [대촌(大村)] : 독안이 북쪽 큰 골짜기에 있는 마을.
○ 큰골-광산 : 큰골에 있는 철광. 1910년에 개광함.
• 화상대리(和尙垈里)
본래 홍천현 내촌면 지역으로 화상사(和尙寺)가 있었으므로 화상대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월부터, 정신뜰, 연못골, 살벼울, 솔골, 신여울, 어은동을 병합하여 화상대리라 함.
○ 다름-재¹: 월부터 남쪽에 있는 마을. 다름재 고개 밑이 됨.
○ 달음-재²: 다름재 마을과 월부터 사이에 있는 재.
○ 방씨-정문 : 화상대 서쪽 길 옆 산 위에 있는 방세군의 효자 정문. 열 두 살 때 부모에게 달려드는 호랑이를 쫓아 버렸으므로 정려의 표창을 받고, 1938년 7월에 비각을 세움.
○ 살-벼울 [사탄(沙灘)] : 화상대 동쪽 내촌천가에 있는 마을. 앞 내에 여울이 져 있음.
○ 솔-골 [송곡(松谷)] : 화상대 서쪽에 있는 마을. 소나무가 많았는데, 지금도 30여 그루가 남았음.
○ 쇠목-소 : 연못골에 있는 못. 조선조때 좌수가 이 못 가에 소를 매 두었다가, 저녁 때 끌어 오려고 가보니, 소가 없어지고, 고삐만 못가운데 떠 있으므로, 이무기가 소를 잡아먹은 것이라 함.
○ 신-여울 : 화상대리 앞 냇물의 센 여울.
○ 쌍-둔지 : 양쪽으로 둔지가 된 곳에 있는 마을.
○ 아래 연못골 : 연못골 아래에 있는 마을.
○ 어은-골 [어은동(魚隱洞)] : 월부터 동쪽에 있는 마을.
○ 연못-골 [연동] : 월부터 남동쪽엥 있는 마을. 큰 연못이 있었음.
○ 웃-연못골 [상연동(上蓮洞)] : 연못골 위쪽에 있는 마을. 큰 연못이 있었음.
○ 월부-터 [월부대(月浮垈)] : 앞산의 모양이 "월(月)"자와 같음.
○ 절-터 : 다름재 안쪽에 있는 마을. 암자가 있었음.
○ 정신-뜰 [정신뜰, 경신평(庚申坪)] : 정신뜰에 있는 마을. 또는 답풍이 삼선대이 앞, 곧 어은동 북쪽에 있는 들.
○ 지르매-재 [안현(鞍峴)] : 화상대리에서 두촌면 철정리로 넘어가는 재. 모양이 길마처럼 생겼다 함.
• 답풍리(踏楓里)
본래 홍천군 내촌면 지역으로 답풍(踏楓)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래울, 논골, 삼선대이, 솔경지, 용포동, 숯고개를 병합하여 답풍리라 함.
○ 가래-울 [가래골, 추곡동(楸谷洞)] : 답풍 동남쪽에 있는 마을. 어귀에 큰 가래나무가 서 있었음.
○ 가목-소 : 옥녀가 경대봉을 앞에 놓고 머리를 감는 형국이라 함.
○ 갈매-울 [갈마곡(葛馬谷), 갈매곡] : 답풍리 안에 있는 마을, 갈매나무가 많음.
○ 경대봉(鏡臺峯) : 답풍리에 있는 산. 가막소에서 옥녀가 머리를 감고 경대봉을 향하여 화장을 한다 함.
○ 논-꼴 [답동(沓洞)] : 가래골 동쪽 논 옆에 있는 마을.
○ 독-바우 : 독바우소에 있는 바위. 독처럼 생겼다 함.
○ 독바우-소 : 답풍 안에 있는 소. 옆에 독바우가 솟아 있음.
○ 밋-골 : 용갯골 옆에 있는 마을. 앞산에 묘가 많음.
○ 방갯-골 : 용갯골 너머에 있는 골짜기.
○ 삼선-대이 [삼성당(三省堂), 삼선대(三仙臺)] : 답풍 서남쪽에 있는 마을. 세 정승이 날 명당이 있다 함.
○ 석장-골 [석장곡(石葬谷)] : 답풍 안에 있는 골짜기 옛 돌무덤이 있음.
○ 선-가마골 : 성씨의 묘가 있었다 함.
○ 솔-경지 [송정(松亭), 음달떼소] : 논꼴 북쪽 응달에 있는 마을. 소나무가 많이 있었으며 또는 그 소나무를 베어 뗏목을 매던 곳이라 함.
○ 숯-고개 [탄현(炭峴)] : 용포동 북쪽 숯고개 밑에 있는 마을. 또는 숯고개 마을에서 두촌면 천치리로 가는 고 개. 숯을 구었다 함.
○ 오형제-고개 : 답풍리와 화상대리 경계에 있는 고개. 고개 다섯이 연이어 있음.
○ 용갯-골 [용포(龍浦), 용포동(龍浦洞)] : 답풍 서쪽에 있는 마을. 마을 앞에 용못이 있었음
•광암리(廣岩里)
광암리(廣岩里) : 내촌면(乃村面)의 북쪽에 위치한 리. 본래 홍천군 내촌면의 지역으로 4∼5평 정도되는 넓은 바위가 있으므로 너벙바우 또는 광암(廣岩)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웃괘석(상괘석(上掛石))을 병합하여 광암리라 함.
○ 가족-이 [가족동(可足洞)] : 너벙바우 남쪽에 있는 마을. 논이 많고 살기가 좋다 함. 올바른 사람만이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다는 전설이 있음.
○ 가족이-고개 [가족현(可足峴)] : 가족동 남쪽으로 도관리로 가는 고개
○ 군-네미 [군유동(君踰洞)] : 가족이 서쪽에 있는 마을. 군네미고개 밑이 됨. 너태소, 용소등의 소(沼)와 기암 괴석이 즐비하고 경치가 좋아 어느 왕(혹은 마의태자)이 머물러갔다는 전설이 있음.
○ 군네미-고개 : 군네미 동쪽 괘석리로 가는 고개. 신라 말엽 마의태자가 넘어갔다 함.
○ 내촌괘석(乃村掛石) [괘석이, 웃개석, 상괘석(上掛石)] : 두촌면 경계에 있는 마을. 두촌면 괘석리 위쪽이 되는 데 지역을 구분하기 위하여 내촌괘석이라 함.
○ 너벙-바우 [광암] : 너벙바우 마을에 있는 넓은 바위. 넓이 20평이 됨.
○ 느와-터 [영와대(靈瓦垈)] : 너벙바우 남동쪽에 있는 마을. 능와집이 많았음. 아랫 느와터와 웃 느와터로 나 뉘어 짐.
○ 느와터 고개 [원너미고개] : 느와터에서 도관리로 넘어가는 고개.
○ 문안-고개 [문내치(門內峙)] : 황철골 동쪽에서 인제군 기린면 문내곡으로 가는 고개.
○ 신바웃-골 : 웃괘석 위쪽에 있는 골짜기. 하얀 바위가 솟아 있다 함.
○ 황철-고개 [황정고개] : 광암리에서 인제군 기린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황철나무가 많다 함.
○ 황철-골 [황철동(黃鐵洞), 황정골] : 느와터 서쪽에 있는 마을. 황철나무가 많다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