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눅 18:9-14)
누가복음 18:1-14에 기록된 기도에 관한 두 가지 비유의 목적은 1절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낙심은 성공과 성취와 신앙과 기도의 적입니다. 낙심해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사탄이 하는 일의 향방과 성격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기쁨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패배를 성공으로, 상실을 성취로, 죽음을 생명으로 만드시는 분이신데 반해, 사탄은 희망을 절망으로, 생명을 파멸로, 성공을 실패로, 성취를 상실로 만듭니다. 그리고 낙심하는 것은 사탄의 선물이지 하나님의 선물은 아닙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기도에 관한 비유로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두 종류의 기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1. 바리새인의 기도입니다.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는 바리새인은 예수님 당시 유대교 종파 중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종파였습니다. 바리새라는 말의 뜻은 “분리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파라쉬에서 유래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내세우거나 주장하는 교리 자체는 그다지 나쁜 것들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신봉했고, 내세와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주장했고, 그를 위해 투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믿는 대로 살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입으로는 믿었지만 삶 속에서 드러나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 노략질하는 이리하고 책망하셨습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바리새인의 기도는 여러 가지 잘못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람직한 형태가 아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1. 자기를 의롭다고 믿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의로운 사람이 없습니다.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의로운 분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었습니다.
또 한 가지 그의 잘못은,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이 그 의를 인정할 때 가능해진다는 것을 외면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깨끗하다든지, 죄가 없다든지 하는 것으로 칭의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의롭다고 믿는 것은 자기가 의의 표준이고 의의 판정관이라는 발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의롭다고 믿을 것이 아니라 자기는 죄인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사해주실 것을 주님께 기도드려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주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자기가 자기를 의롭다고 인정하는 과오를 범했습니다.
2. 다른 사람을 멸시했습니다.
사두개파의 구성원은 대개가 상류층 사람들이었는데 반해 바리새인파는 그 구성원이 대부분 중산층과 일반 서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 평등을 외치며 소위 인권운동이라는 것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와는 달리 다른 사람을 멸시했습니다. 여기에 자기 모순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을 멸시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었습니다.
첫째, 자기들만이 특권층이라고 믿었기 때문이고 둘째, 자기네들만이 율법을 지키는 의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며 셋째, 자기네들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독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남을 멸시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남을 높여 주어야 나도 높아진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을 깎아내려야 자신이 높아진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후자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3. 서서 따로 기도했습니다.
유대인의 기도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땅에 엎드려 하는 기도도 있고, 무릎 꿇고 하는 기도도 있고, 손을 들고 드리는 기도도 있고, 일어서서 하는 기도도 있습니다. 그중 하나인 서서 기도했다는 것이 그리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서서 따로”라는 데 있습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함께 올라갔습니다. 보나마나 바리새인은 함께 올라가면서 심기가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저런 죄인과 함께 성전에 올라갈 수 있으며, 어떻게 저런 천박한 사람과 함께 기도를 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이 “따로”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교회는 “따로”가 있으면 안됩니다. 의인 따로, 죄인 따로도 있을 수 없습니다. 부자 따로, 가난한 사람 따로가 있으면 안됩니다. 윗지방 따로, 아랫 지방 따로가 있어도 안 됩니다.
바리새인의 잘못은 “따로” 서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그의 독선과 고집과 교만이 “따로”라는 행동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4. 행위를 내세웠습니다.
11절을 보면 그의 기도는 다음과 같이 전개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말입니다.
그가 말한 토색, 불의, 간음은 죄악입니다. 그런 것들은 즉시 금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경우는 기도 속에서 두 가지의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행위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있는 점과
둘째는, 기도를 통해 자기 의를 과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리새인은 “...을 하였기 때문에 의로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을 하였기 때문에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이 교리는 행실이 나빠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됩니다. 행실을 다 고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행실을 고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바리새인의 기도는 허공에 대고 쏘아 올린 공포탄이었습니다.
2. 세리의 기도입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 제국은 식민 통치를 받는 나라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해 각 지방에 세리를 임명했습니다. 그들은 대개가 로마인이었습니다. 그 세리들은 다시 유대인 가운데서 사람을 뽑아 징수원의 책임을 맡기고 일정한 지역의 세금을 거둬들이게 했습니다. 징수원들은 자기들에게 부여된 한도 내에서 세금을 거두어 로마에 납부했고, 과다 징수나 착복도 비일 비재했습니다.
본문의 세리는 바로 그 징수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리들 가운데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새롭게 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세리 마태는 회개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세리 삭개오는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청하고 대접한 후 회개와 결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본문의 세리 역시 회개한 세리 중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그의 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멀리 서서 기도했습니다.
바리새인은 따로 서서 기도했고, 세리는 멀리 서서 기도했습니다. 바리새인은 도도한 모습으로 제단 곁에 서서 따로 기도했고, 세리는 제단 곁에 서지 못하고 멀리 서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한 채 기도했습니다. 한 마디로 세리의 기도 모습은 재판관 앞에 선 죄인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2. 가슴을 쳤습니다.
구약에서 가슴을 치는 것은 애통과 회개의 동작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세리가 가슴을 쳤다는 단어는 문법상 미완료 과거형이기 때문에, 한 번만 치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쳤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억울할 때 가슴을 쳤고 답답할 때 가슴을 쳤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가슴을 쳤습니다.
여기에서도 바리새인과 세리의 다른 점이 있습니다. 세리는 자기 가슴을 쳤고, 바리새인은 다른 사람의 가슴을 쳤습니다. 세리는 자기 죄를 애통하며 회개하기 위해 가슴을 쳤지만, 바리새인은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해 곁에 서 있는 세리의 가슴을 쳤습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쳐야 할 가슴은 다른 사람의 가슴이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의 가슴을 쳐야 합니다.
3. 죄를 고백하고 긍휼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것이 세리의 기도였습니다. 그는 남의 죄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자기 죄를 고백하기에도 시간과 정력이 모자랐습니다.
세리의 기도는 짧았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들어 있는 그의 고백과 간구는 결코 짧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장황하고 설명이 많지만 그 내용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떤 기도가 옳은 기도이며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인가 하는 것은 그 응답으로 판명됩니다.
본문 14절을 주목합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바운즈는 “더 좋은 기도를 더 많이 하는 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의 비결이다”라고 했습니다.
성공적인 응답은 성공적인 기도를 드릴 때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도가 성공적인 기도입니까? 바리새인과 같은 자세로 접근하는 것은 결코 성공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세리처럼 자신을 낮추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때, 그 기도는 성공적인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크리소스톰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기도의 능력은 불의 세력을 정복하였으며, 사자들의 입을 다물게 하였으며, 무질서를 평온으로 만들었으며, 전쟁을 그치게 하였으며, 귀신들을 쫓아내었으며, 죽음의 쇠살을 끊어버렸으며, 질병을 고쳤으며, 교만을 몰아냈으며, 태양을 머물게 하였다”
하나님은 세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죄를 사하시고 칭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다음과 같은 기도의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 둘째,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멸시하지 말 것, 셋째, 독선적인 태도를 버릴 것, 넷째, 회개하고 기도할 것, 다섯째, 하나님의 긍휼을 갈망할 것 등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기도의 태도로 결정됩니다. 기도의 태도가 잘못되면 그 기도는 응답되지 않습니다.
억울했던 과부처럼, 죄 많았던 세리처럼 우리도 그렇게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