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년도 |
감독 |
대통령배 |
청룡기 |
황금사자 |
봉황대기 |
비고 |
|
71 |
배동원 |
|
|
|
1회탈락 |
|
|
72 |
백기수 |
|
|
|
8강 |
|
|
73 |
백기수 |
|
|
|
32강 |
|
|
74 |
이형 |
1회탈락 |
1회탈락 |
4강 |
1회탈락 |
|
|
75 |
이형 |
1회탈락 |
1회탈락 |
우승 |
16강 |
황사기 우수선수(김영만),우수투수(노상수) |
|
76 |
성기영 |
1회탈락 |
|
16강 |
우승 |
봉황기 최우수선수(이윤섭), 수훈(조호성) |
|
77 |
성기영 |
1회탈락 |
|
|
1회탈락 |
|
|
78 |
성기영 |
|
|
16강 |
1회탈락 |
|
|
79 |
성기영 |
준우승 |
4강 |
|
16강 |
대통령배 감투상(윤학길) |
|
80 |
김윤규 |
|
|
|
1회탈락 |
|
|
81 |
이형 |
|
1회탈락 |
|
4위 |
봉황기 우수투수(이현택) |
|
82 |
이형 |
|
|
|
32강 |
|
|
83 |
이형 |
1회탈락 |
|
|
1회탈락 |
|
|
84 |
이형 |
|
|
|
32강 |
|
|
85 |
김만주 |
|
1회탈락 |
|
1회탈락 |
|
|
86 |
신종세 |
|
|
|
32강 |
|
|
87 |
노회학 |
|
|
|
1회탈락 |
|
|
88 |
노회학 |
|
|
1회탈락 |
1회탈락 |
|
|
89 |
노회학 |
|
|
|
1회탈락 |
|
|
90 |
노회학 |
|
8강 |
|
32강 |
|
|
91 |
노회학 |
|
1회탈락 |
|
32강 |
|
|
92 |
도영권 |
|
|
|
32강 |
|
|
93 |
도영권 |
|
|
|
1회탈락 |
|
|
94 |
노재완 |
1회탈락 |
|
|
1회탈락 |
|
|
95 |
박복용 |
|
|
|
1회탈락 |
|
|
96 |
조호성 |
|
1회탈락 |
|
1회탈락 |
|
|
97 |
조호성 |
1회탈락 |
16강 |
|
8강 |
|
|
98 |
조호성 |
|
|
|
1회탈락 |
|
|
99 |
조호성 |
|
8강 |
준우승 |
1회탈락 |
황사기 감투상(채태인) |
|
00 |
조호성 |
|
1회탈락 |
1회탈락 |
1회탈락 |
|
|
01 |
곽동찬 |
|
|
1회탈락 |
1회탈락 |
|
|
02 |
곽동찬 |
|
|
|
1회탈락 |
|
|
03 |
곽동찬 |
|
|
|
1회탈락 |
|
|
04 |
우선택 |
|
8강 |
|
32강 |
|
|
05 |
진동한 |
|
|
16강 |
1회탈락 |
|
|
06 |
진동한 |
1회탈락 |
|
8강 |
1회탈락 |
|
|
07 |
김상재 |
|
8강 |
|
1회탈락 |
|
@ 프로 지명&입단선수 명단
72 최옥규 (우우/P/고려대-농협(76)-육군(78)-농협(81)/롯데(82년 창단맴버)/82년은퇴)
76 김용철 (우우/1B/한일은-경리단(78중)-한일은(81)/롯데(82년 창단맴버)-삼성(89)/92년은퇴)
77 노상수 (우우/UP/고려대-한일은(81)/롯데(82년 창단맴버)/91년은퇴)
77 이윤섭 (좌좌/P/고려대-한일은(81)/롯데(82년 창단맴버)/84년은퇴)
80 김이수 (좌좌/OF/한양대/삼성(84년 2차)/86년은퇴)
80 윤학길 (우우/P/연세대-상무(84)/롯데(84년 1차, 86년 1차)/97년은퇴)
81 이동완 (우우/IF/동아대/롯데(85년 1차)/85년은퇴)
82 강수경 (우우/OF/경성대-상무(86)/미입단(롯데 86년 1차))
83 이현택 (좌좌/P-1B/동아대/삼성(87년 1번)-쌍방울(92)/92년은퇴)
85 장명덕 (우우/IF/중앙대-한국화장품(89)/미입단(한화 92년 5번))
87 김상재 (우우/1B/동아대/쌍방울(91년 우선)-롯데(94)/94년은퇴)
89 최문호 (우우/P/중앙대/삼성(93년 6번)/출전기록없음/94년은퇴)
90 한남수 (우우/P/롯데(90년 지명외)/출전기록없음/91년은퇴)
91 강경진 (우우/OF/롯데(91년 지명외)/출전기록없음/92년은퇴)
91 김태형 (좌좌/P/롯데(91년 연고지명)-한화(98)/98년은퇴)
94 김태성 (우우/IF/롯데(94년 연고지명)/출전기록없음/97년은퇴)
94 홍민구 (우우/P/한양대/현대(98년 1번)-두산(02)/02년은퇴)
95 김종혁 (좌좌/1B/롯데(95년 지명외)/출전기록없음/95년은퇴)
95 서성민 (우우/P-OF/연세대/현대(99년 4번)/04년은퇴)
95 정원욱 (우우/P/경성대/롯데(99년 1차)/02년은퇴)
96 임성호 (우우/P/롯데(96년 지명외)/출전기록없음/97년은퇴)
96 조상현 (우우/P/해태(96년 22번)/출전기록없음/96년은퇴)
97 서성환 (우우/IF/한화(97년 8번)/출전기록없음/97년은퇴)
98 권오원 (우우/P/동아대/삼성(98년 7번, 02년입단)-상무(05)-삼성(07)(現))
98 이혜천 (좌좌/P/두산(98년 2번)(現))
00 윤성환 (우우/P/동의대/삼성(04년 1번)(現))
00 최금주 (우좌/IF/경성대/미입단(롯데 00년 11번))
01 이승화 (우좌/OF/롯데(01년 2번)-상무(04)-롯데(06)(現))
01 차정민 (우우/UP/동아대/기아(01년 10번, 05년입단)(現))
01 채태인 (좌좌/P-OF/보스턴(두산 01년 10번)-02년퇴단, 삼성(07년 특별지명 4번)(現))
02 정재훈 (우좌/IN/중앙대/롯데(06년 지명외)/출전기록없음/06년은퇴)
05 김동영 (우좌/OF/한화(05년 4번)(現))
05 김진석 (우우/IF/롯데(05년 4번)-군복무중(06)(現))
05 전승윤 (우좌/P/현대(05년 8번)(現))
@ comment
부산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상고 야구부는 프로에서 활동한 맴버들만으로는 학교의 진가를 설명하기에 아쉬움이 있을만큼 최근보다 과거의 연혁이 화려합니다..
우선 부산상고가 첫번째 우승을 거둔 1946년의 청룡기 제1회 대회의 기록을 뒤져보면 과거 한국야구의 큰 획을 그었던 경남의 장태영, 광주서중의 김양중, 동산의 박현식이 모두 출전하였으나 김상대라는 선수가 맹활약한 부산상업중학이 이들을 모두 제압했다고 나와있습니다..
그이후 부산상 역대 최고의 인물은 50년대말 거구의 1루수였던 김응룡입니다.. 그러나 고교대표에는 선발되었지만 당시의 부산상은 청룡기, 황금사자기 두개밖에 없던 고교대회에서 그다지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고, 대신 뒤에 건국대와 성균관대의 감독으로 지내다가 타계한 한을룡이 주전투수였던 60년 두 대회에서 모두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두 대회 모두 결승전에서 백인천-이재환의 고교최강 경동고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청룡기 첫대회 우승이후 부산상고 두 번째 우승의 주역.. 역시 반가운 이름입니다.. 유격수면서 투수로도 활동하던 강병철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75년 황금사자기, 원년 롯데자이안트의 에이스로 활약하게 되는 언더핸드 노상수가 서울의 중앙고를 맞아 1안타 완봉.. 그것도 짜릿한 1:0 승리를 거두면서 세 번째 우승을 거뒀고.. 이듬해 76년 역시 원년 롯데의 투수인 이윤섭이 선린상을 맞아 완봉승을 기록하고, 타선에서는 얼마전까지 모교감독이었던 조호성이 활약하며 네 번째 우승기인 봉황기를 차지합니다..
당시 3루수 김용철은 75년 우승 당시에 큰 활약은 없었지만 학교를 졸업한 이후, 한일은행에 입단해서 모교의 대선배 김응룡감독의 집중조련을 받으면서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강타자로 성장할 밑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실업강호였던 한일은행에서 파격적인 20살의 4번타자기용은 훗날 프로야구의 강타자로 성장하게 해주는 중요한 경험이 되었을 것입니다..
76년 봉황기 결승에서 완봉패를 안겨준 선린상고에게 3년 뒤 부상은 톡톡한 앙갚음을 당하게 됩니다.. 79년 첫대회인 대통령배에서 대투수 윤학길을 앞세워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올랐습니다만.. 당시 1년생 박노준과의 맞대결에서 무려 15:1이라는 결승전답지 않은 기록적인 점수차로 대패를 당하고 만 것입니다.. 또 같은해 청룡기 준결승에서도 또다시 선린상에게 완봉패를 당하면서 99년 황금사자기 결승진출까지 20년간 부산상은 단한번의 전국대회 결승진출 기록조차 보이지 못하고 맙니다..
97년에 우투수 권오원과 좌투수 이혜천이라는 뒤에 프로에서 활약하게될 두명의 좋은 투수들을 오랜만에 배출하였고 99년에는 채태인과 이승화의 활약으로 모처럼 결승에 진출합니다만 이승호의 군산상고에게 대패하면서 모처럼의 우승기회를 다음으로 넘겨야 했습니다...
투타에서 모두 재능을 보였던 채태인은 졸업과 함께 투수로서 보스톤 에드삭스에 스카웃되는 기회를 잡았으나 부상과 군문제가 겹치면서 1년만에 방출되었습니다만 오랜기간의 공백을 극복하고 07년초 해외진출 선수들의 특별지명에서 삼성의 지명을 받아 파워히터로 대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한해를 보냈습니다...
2005년 개성고로 교명을 변경한 부산상은 2000년대 초반의 침체기에서 벗어나서 2004년부터 4년연속으로 전국대회 8강에 진출하는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