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블라인드
전글에 이어
https://m.cafe.daum.net/ilovenba/9sGH/4
채식주의자가 어렵다는 피드백을 받아들여 커뮤니티 식으로 시작해보려 합니다.
위 블라인드 댓글 중에 이 소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 댓글이 단 하나도 없다는게 참 씁쓸하네요.
👉한강의 소설은 페미소설인가?
YES
이 소설은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억압, 그리고 여성의 자아와 몸을 둘러싼 권력 관계를 깊이 탐구하는 면에서 페미니즘적 해석이 가능합니다. 영혜의 육식 거부와 자아 해체 과정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 사회적 규범에 대한 저항, 가부장적 통제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소설에서의 페미니즘은 변질된 페미니즘이 아니라 사회적 해방운동인 본질적 페미니즘입니다.
But
동시에 실존주의적, 구조주의적, 허무주의적, 그리고 타자 철학적 주제들도 복합적으로 얽혀 있으며, 영혜의 결단과 그로 인한 사회적 충돌은 단순히 페미니즘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 존재의 보편적인 문제들인 자유, 억압, 정체성, 사회적 규범을 철학적으로 묘사합니다. 따라서 이 소설은 페미니즘 소설로서도 읽힐 수 있지만, 이를 넘어 다양한 철학적 주제를 아우르는 작품입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1️⃣실존주의적 관점에서의 자유와 선택
실존주의 철학의 핵심 개념인 ‘자유’와 ‘선택’은 채식주의자의 영혜가 경험하는 갈등의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자유롭다고 보지만, 그 자유는 동시에 무거운 책임과 불안을 동반한다고 말합니다. 영혜는 어느 날 갑자기 육식을 거부하며 자신만의 실존적 결단을 내립니다. 이는 그녀가 세계 속에서 자신이 존재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혜의 선택은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규범에 대한 거부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장 폴 사르트르가 말한 "타인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규정된다"는 명제가 영혜의 삶에서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영혜는 자신의 몸과 존재를 둘러싼 타인의 기대와 규정을 거부하지만, 그 과정에서 타인들의 억압과 폭력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녀의 선택은 사회적 구조와 충돌하며, 실존주의가 다루는 자유와 타인의 억압 사이의 본질적인 긴장을 보여줍니다. 이는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며 "나는 더 이상 동물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대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이는 그녀가 단순히 육식을 넘어서, 기존의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정의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2️⃣구조주의적 억압과 정상성의 문제
구조주의 철학에서는 인간의 행위와 생각이 언어, 사회, 문화적 구조에 의해 형성된다고 봅니다. 이 소설에서 영혜의 행동과 그에 대한 가족, 사회의 반응은 이러한 구조적 억압을 상징합니다. 특히 사회는 영혜의 ‘비정상성’을 규정하며 그녀를 정상 범주로 되돌리려는 시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부모가 그녀에게 고기를 강제로 먹이려는 장면은 사회적 규범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이라는 구조가 개인을 억압하는 방식의 상징입니다.
구조주의 철학자인 루이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를 통해 개인이 구조에 종속되는 방식을 설명하는데, 여기서 영혜의 가족과 남편은 그러한 억압 기구의 역할을 합니다. 그들은 영혜의 자유로운 선택을 존중하기보다는, 사회적 정상성에 순응하도록 강요하며 그녀의 선택을 억압합니다. 가족은 그녀에게 ‘정상’으로 돌아오라고 강요하고, 영혜는 그 구조 속에서 결국 자아를 파괴하는 과도한 고통에 시달립니다. 이는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개인이 사회적 질서와 구조 속에서 얼마나 쉽게 고립되고 파괴될 수 있는지를 강하게 시사합니다.
3️⃣니체의 관점에서의 초인적 저항과 허무주의
영혜의 채식 선언은 니체의 철학에서 말하는 ‘초인적’ 저항을 떠올리게 합니다. 니체는 기존의 도덕적 질서와 규범을 넘어서는 ‘초인’의 개념을 통해 새로운 가치 창출을 주장했는데, 영혜는 고기를 거부함으로써 기존의 도덕적, 사회적 질서를 넘어서는 결단을 내립니다. 그녀의 결단은 사회적 통념과 관습을 깨뜨리는 것이며, 이것은 단순한 육식 거부 이상의 철학적 저항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저항은 허무주의로 귀결됩니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선언처럼, 영혜는 세계와 자신의 의미를 부정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자신을 나무로 변신하려고 시도하며, 생명을 유지하려는 본능마저도 거부합니다. 이는 니체적 허무주의의 극단적 표현으로,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는 동시에 삶의 의미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영혜의 모습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동물’이 아니라 ‘식물’이 되려 한다고 믿으며, 인간으로서의 욕망과 의무로부터 벗어나고자 합니다. 이 과정에서 영혜는 인간 존재 자체의 허무함과 고통에 직면하고, 그로 인해 파멸로 나아갑니다.
4️⃣여성주의적 관점에서의 몸과 권력
채식주의자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몸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규제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칩니다. 영혜의 몸은 남편, 가족, 사회에 의해 규정되고 통제됩니다. 그녀의 남편은 영혜의 외모와 온순한 성격을 선택 기준으로 삼았으며, 그녀의 변화에 대해 불안해합니다. 이는 여성의 몸이 가부장적 사회에서 소유물처럼 취급되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억압되는 현실을 상징합니다.
영혜가 자신의 몸을 통해 자아를 재정의하려는 시도는 그녀의 탈육식 선언과 맞물리며, 여성의 몸이 억압적 규범으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폭력적이고 파괴적입니다. 영혜는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과 순응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그 시도는 끊임없이 좌절되고 억압됩니다. 여성주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의 ‘퍼포머티비티’ 이론에서처럼, 영혜는 사회적 규범을 깨뜨리기 위해 자기 몸의 경계를 실험하지만, 그로 인해 점차 자아를 상실하고 말라갑니다.
5️⃣레비나스의 타자 철학과 비인간화
에마누엘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에서, 타자는 나의 인식에 포섭되지 않으며, 나의 윤리적 책임이 타자를 통해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채식주의자에서 영혜는 남편과 가족, 그리고 주변 인물들에게 철저히 ‘타자’로 존재합니다. 그녀는 그들의 기대와 규범에 맞지 않으며, 그녀의 변화는 그들에게 낯선 타자의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타자인 영혜는 이들 사이에서 윤리적 책임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비인간적으로 취급되며, 그녀의 고통과 선택은 이해되지 못하고 억압됩니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에 대한 책임’을 외면한 사회는 영혜를 미친 사람으로 규정하고, 그녀를 파괴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비주류, 혹은 ‘정상’에 속하지 않는 이들이 겪는 타자화와 비인간화의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저번 편에서는 간단한 줄거리 요약과 다른 소설과의 비교를 다뤘고, 이번 편에서는 앞으로 논란이 될(?) 페미 논란을 미리 다뤄봤습니다. 논란거리도 전혀 되지 않을 듯 합니다만 어디서 논란을 만들지 수가 읽히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우선 좋은글 감사합니다.
채식주의자 읽으려고 준비해 뒀는데요.
본문은 '좀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까지 읽었습니다 ㅎㅎ
나머지 부분을 책 읽고 보는것 or 읽기 전에 보는것 중 뭐가 좋을까요?
읽고 나서 보심이😊😊혹여나 스포가 될까봐서요
읽어보고싶네요
조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글 준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대하고 기다릴께요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제끼는것부터가 이상한 사고.... 하도 이상한, '해방'에 관심없는 죽자 덤비는 애들이 많아서 그렇지, 여성 작가가 여성의 삶, 여성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관심없이 글을 쓴다는게 말이 안됨. 요근래 뜨는 국내 젊은 여성작가들의 글을 추천받아 읽어보면 대부분 페미니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이해도 감.. 예전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같은 글도 사실 그 시대 속에서 여성이야기를 하는거고, 공감할 수 있었음. 사실 그게 여성작가의 힘인데.. 페미니즘이라고 제낀다는 편협한 사고 자체가 흐름을 좇지 못하는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제 기준 재밌고 가볍게 읽을수 있는 소설이라곤 말하기 어려움...ㅜㅜ
와 저 블라 댓글들 어쩌지 ㅎㅎㅎ
이념이나 사상에 대한 진지한 고찰 없이 편견에 뇌가 절여져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죠. 인터넷 터뮤니티는 그러한 확증편향을 상당히 가속화시키고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