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오래전 나가수에 임재범이 나왔을적 신드롬을 여태 기억한다.진짜배기 뮤지션들을 주말 프라임 시간대 볼수 있단것만으로 감읍할 따름이었는데 거기에 임재범이라니.가창력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고 거기에 덧씌워진 신화속 해태와 같은 이미지까지 대중들이 열광하기엔 필요충분조건을 다 갖춘 사내였고 그 수많은 대중속에 나 또한 있었다.
나가수 촬영당시 배우자 송남영씨는 암으로 투병중이었고 지난한 항암치료끝에 몇년전 사망한걸로 알고있다.나가수 방송중에도 임재범은 투병중인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내비추며 울먹였던게 여태 내 기억에 남아있다.헌데 내 기억에 그 모습은 병마와 사투를 벌이는 아내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한 고독한 사내의 모습으로 마냥 처연하게만 채색되서 기억되진 않았다.
방송에서 보여지는 모습,게다가 남녀관계라면 더욱이 그 이면의 무언가가 있을수 있음에 조심스러워야 함을 잘 안다.허나 방송 시청자 입장에서,그의 음악을 소비하는 대중입장에서 보여지는 모습으로 그를 판단할 자유 또한 내게 있음을 안다.서로가 서로를 완벽히 알아야 논평할수 있다면 우린 서로에게 다정히 재갈을 물려야할게다.
방송에서 그의 워딩은 대강 이러했다."투병중인 아내가 내가 옆에 있는걸 너무 힘겨워했다.그래서 현재 별거중이고 그녀는 친정어머님과 같이있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투병중인 아내를 혹시 자기 스스로 놓아버릴 용기가 없으니 아내의 말을 빌려 도망친게 아닐까하고.다만 그걸 인정할 용기는 당연히도 없었을테고...
어렸을적 어미가 투병중일때 내심 그런 생각을 했었다."저렇게 살 바에 주위사람 그만 괴롭히고 죽어버리지"하고 말이다.단순히 철없는 어린애여서 그랬을까.가족중에 오랜 투병생활을 하는 이가 한명이라도 있다면 한번쯤 비슷한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윤리적 잣대를 들이밀고 말고를 떠나 간병이 현실이 되고 그게 내 삶이 되면 그건 또다른 지옥이다.
임재범의 위선을 꼬집을 심산으로 쓴 글은 전혀 아니다.그가 나처럼 이기적이고 베베 꼬인 인간이 아닐수도 있음을 안다.다만 우리 사는 세상이 어쩌면 온갖 명분과 신파라는 허울좋은 포장지로 곱게 쌓여있는건 아닐까 하는 고약한 심보로 한번 접근해봤다.
2.영화관련 유투브 구독채널이 몇개 있다.단순리뷰 말고 비하인드스토리 따위를 정리해서 업로드한 채널들인데 이런 이면의 소소한 정보를 접하고 나면 영화가 한층 풍성해지는듯해 종종 찾곤 한다.
영화 한편을 제대로 보고나면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거지?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거지?감독은 뭘 의도한거야?"란 의문이 솟아날때가 있다.내가 주로 소비하는 영화들이 골치아픈 영화여서 그럴수도 있고 내 두뇌가 그닥 영민하지 않아서일수도 있겠다.
언제부턴가 열린결말이란 단어가 자연스럽게 쓰인다.예능이나 일상생활에서도 우스개로 쓰이던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한창 제5공화국이나 모래시계에 열광하던 시기엔 그런 용어 자체가 없었던거 같다. 용어가 대중화되지 않았어도 비슷한 개념이야 그 시절에도 있긴했겠지.
선뜻 와닿지 않는 씬이나 대사가 있어 열심히 검색을 해보면 관객들 제각각 각자의 해답이 있다.감독은 관객의 해석에 맡긴다라고 쿨하게 툭 던진다.감독의 의도는 실제 답이 중요한게 아니라 사유의 과정이나 사유 그 자체가 훨씬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했겠지.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봤다.이 또한 진리의 케이스 바이 케이스가 아닐까?웹툰 덴마라고 있다.예전에 너한테 추천해준 기억이 있는데 기억하려나 모르겠다.일단 웹툰이란 장르 틀안에서 이런 방대한 스토리를 담을수 있단게 놀라웠고 대사 하나하나 플롯 하나하나가 기가 막혔다.아주 긴 연재끝에 몇달전에 막을 내렸다.최악의 악평과 함께.
연재 초중반에 수많은 떡밥과 복선을 던져놓고 미처 다 회수를 못했거든.본인이 감당할수 없는 일을 벌려놓고 자기 역량 밖이다 싶으니 어설프게 매조지 시켜버리더라.양영순이라고 꽤 유명한 작간데 이 사태로 최악의 모지리로 등극하기도 했지.
가끔보면 열린결말이랍시고 쿨하게 관객에게 바통을 넘기는 감독들 보면 과연 초기 의도부터 그러했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사례가 몇몇있다.애초에 관객에게 사유의 즐거움을 선사하겠단 목적이 아니라 연출자 개인의 과욕으로 감당못할 일을 벌려놓고 뒤에 수습이 안되니 비겁하게 면피하는게 아닐까하는 의구심 말이다.
한겨레 재직시절 문화부 기자 선배에게 이런 얘기를 한적있다.그때 그 선배가 그러대.예술가랑 사기꾼은 종이한장 차이라고.그 한장은 흥행여부와 실적이라고.
이 역시 포장의 기술이 필요한 사례겠지.어쩌면 인생은 꿈보다 해몽인지도 모르겠다.
3.작은누이가 생전에 종종 내 눈치를 살살 봐가며 이런 얘기를 했다."이제 그만 아빠 용서하자.용서하란게 같이 부둥켜안고 살잔게 아니라 마음속 증오를 좀 덜어내.너만 힘들다.돌아가신 엄마나 큰언니도 그걸원할거야"라고.위에 임재범씨나 감독들은 내 비뚤어진 심보로 고약하게 한번 시비 걸어봤다면 이번만큼은 자신있게 얘기할수 있다.다 개소리라고.
애당초 고인의 유지를 지멋대로 해석해서 산사람을 편하게 만드려는 그 심보 자체가 몹시 고약하고 패륜스러웠다.내 엄니와 큰누이가 뭘 원할지는 아무도 모른다.산자는 망자를 추모할순 있어도 그 뜻을 함부로 헤아릴순 없다.산자가 나름의 견해로 해석할순 있어도 그 저변엔 합리와 윤리의식이 깔려야겠지.내 아비를 용서해야할 어떤 합리적 당위도 윤리적 목적의식도 난 발견하지 못했다.
작은누이는 날 위해서라 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녀 자신을 위해서로 보였다.순간순간 타인을 미워할순 있어도 그게 평생에 걸친 증오라면 온전한 정신으로 감당하기 힘들거든.그 증오가 상대방이 아니라 스스로를 태워버리니까.작은 누이는 그걸 두려워했고 감당할 맷집이 못됐던거지.근데 나란놈은 장판파 장비마냥 우직하니 버티고 서있으니 내 눈치가 왜 안보였겠나.자기혼자 비겁해지고 싶진 않았으니 물귀신마냥 날 끌고 가고 싶었겠지.거기에 명분이 필요했으니 기껏 나온게 "산사람은 살아야지,엄마랑 큰언니도 그걸 원할거야,나 편하자고 그런게 아니라 널 위해서야"란 궤변들.
고인의 뜻이야 난 모르겠고 난 산 자로써 내 의지로 미워할거고 그게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쏘아붙이니 그제서야 내게 부질없는 권유를 거두고 나 몰래 아비와 교류한 그 인간적인 용렬함까지...
작은누이도 고인인데 이제와 어떤 악감정이 있어 욕보이려는게 아니라 글 써내려가다보니 여기까지 오게됐다.이 또한 내 의식의 흐름일테니 감안해서 읽어줬음 좋겠다.
4.삶의 온갖 추잡하고 불결한 본질 뒤에는 항상 달콤한 과실과 그럴듯한 명분,때로 감정을 자극하는 신파로 포장되있더라.요즘은 다 알면서도 그 실체를 확인하는게 두려워 포장지를 구태여 뜯지않기도 하다만 새어나오는 구린내에 코를 부여잡지 않을 정도의 평정심은 아직 요원한가보다.해탈을 하는게 먼저일지 제풀에 지쳐 쓰러지는게 먼저일지 두고봐야지 싶다.
누구나 자기안에 소피스트들이 있다.각자의 상황과 이기적 필요가 그때 그때 그들을 소환하는거겠지.내가 통제력을 상실하고 내 안의 소피스트들에게 집어삼켜지려할때 네가 막아다오."정신차려 이 새끼야"그 한마디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