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자도 살린다는 명의 유이태 이야기.♥
유이태 관련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이유는
산청군청에서
① 왜곡한 인물 역사를 바로잡아
② 대한민국을 짊어지고 갈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와 유산(遺産)을 물려주고,
③ 내고향 산청이 역사 왜곡 현장이란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함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청에는
두분의 명의(名醫)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분은
ㆍ역사적 업적과 수많은 설화를 남겼고,
ㆍ<백과사전>에 등재되어 있으며,
ㆍ민속노래 <강강술래>에 채록되어 있고,
ㆍ일생을 백성들과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같이 했던
선비 의사 유이태(劉以泰)로
산청군청에 의하여 철저히 배제되었고,
劉以泰의 사적(저서, 유적지, 설화)이
柳義泰의 사적(저서, 유적지, 설화)으로 바꾸어졌습니다,
다른 한분은
<소설>과 <드라마>로 인하여
허준의 선생으로 스승으로 널리 알려진
유의태(柳義泰)입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柳義泰를 허준 선생의 스승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柳義泰는
산청군청에서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하는 허구의 인물이며,
유이태 이름에서 차용(파생)된 이름입니다.
산청군청으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하여
사적을 빼앗긴
<역사적 업적을 남긴 실존인물 유이태>와
산청군청에서
막대한 투자로 널리 알리는
<허구의 인물 유(류)의태>를 살펴보겠습니다.
♣ 실존인물 유이태(劉以泰) ♣
가문과 왕실 기록에는 劉以泰,
저서에는 劉爾泰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유학자(儒學者) 의관(醫官)이다.
◙ 생몰 : 1652년~1715년
◙ 본관 : 거창(居昌).
◙ 자 : 백원(伯源)
◙ 호 : 신연당(新淵堂)·인서(麟西)·원학산인(猿鶴山人)
◙ 관직 : 어의, 숭록대부 안산군수
◙ 가계 :
ㆍ7대조 : 용양위부호군 유귀손(양령대군 손서)
ㆍ고조부 : 정유재란 때 함양의 황석산성에서
순절한 의병장 증감찰 유명개
ㆍ조 부 : 나라로부터 복호(復戶)를 받은 효자
통정대부 증첨지중추부사 유유도
ㆍ아버지 : 통정대부 호군(護軍) 유윤기
ㆍ어머니 : 동지중추부사, 초계현감, 경상좌수사
증병조판서 이의립 손녀 강양이씨
◙ 유품 : <예조정장>, <정영장>, <간찰>
유이태는
40여년 동안 향의(鄕醫)로
백성들을 치료하였고
숙종 어의로도 활동하였다.
조선을 대표하는 유의(儒醫)로
ㆍ우리나라 최초의 홍역치료서
『마진편(麻疹篇)』저술하였고,
ㆍ『인서문견록』
ㆍ『실험단방』
ㆍ1940년대 초 화재로 소실된『침구방』
ㆍ1940년대 초 화재로 소실된『부인방』
ㆍ1975년 잃어버린 저서『2권』등이 있다.
유이태는『소설 동의보감』과
드라마「허준」에서 허준의 스승으로 묘사된
유의태(류의태·柳義泰)의 모델이 된 인물이다.
▸ 출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유이태(劉以泰ㆍ劉爾泰)는
ㆍ조선의 홍역학 태두로서
ㆍ위민(爲民)ㆍ애민(愛民)의 인술(仁術)을 펼쳤고,
ㆍ사랑하는 마음으로 환자를 치료했던 심의(心醫),
ㆍ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신의(神醫)로 불리어졌으며,
ㆍ5도(道) - 정도(正道), 효도(孝道), 시도(施道),
의도(醫道), 수도(壽道) - 를
실천한 유학자 의원이다.
TV 조선 땅의 역사에 방영된 동영상을 참고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