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숲에서 떠나는 수학(數學) 여행
사전 준비과정
실제 실행과정
알게 된 점
느낀 점
돌아볼 점
다음에
사전 준비 과정
3년간 책숲을 다니면서 총 5번의 여행을 갔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여행 준비 과정은 책숲의 3대 대형 프로젝트(설명회, 동지제/매듭글, 여행)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만큼 복잡하고 힘든 것이었다. 여행 한 달 전부터 책숲의 모든 일정과 시간은 여행에 맞춰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여행 준비 과정에서 피로를 호소하는 학생도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힘들다, 피곤하다는 감정을 크게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애초에 이제 곧 고등학생이니 수학을 빡세게 해야 하는 타이밍이기도 했고, 수학문화관에서 조사할 것을 선점하는 과정에서 내가 아는 것, 혹은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것 위주로 선점했기 때문이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지 못한 아쉬움이나 다른 친구들한테 너무 어려운 것을 맡긴 것에 대한 미안함은 있긴 했지만 이미 정해진 일이니 뭐 어쩌겠는가.
수학문화관을 조사할 때는 이미 아는 것이나 현재 배우고 있는 것을 위주로 조사했기 때문에 개인 공부에도 더 도움이 되었다. 다른 친구들이 어려운 수학 공식이나 내용을 어떻게든 조사하는 것을 보며 대단함을 느끼기도 했다. 한 번 공부하기로 한 것은 무조건 알아내는 학구열, 이것이 책숲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현대미술관을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학문화관에 비하면 조사해야 하는 범위가 확실하지 않아 쉽지는 않았지만 참고할만한 작품 해설이 있었던 덕분에 생각보다 덜 고생하고 끝낼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숙소, 식당 등의 여행 관련 사항들이었다. 숙소 예약은 난생처음 해보는지라 딱 좋은 숙소를 찾는 데만 이틀 이상을 써야 했고, 여행 일정이 2박 3일이었다가 3박 4일이었다가 다시 2박 3일이 되는 일도 있었다.
이번 여행 준비 과정이 짧고 널널했지만 살짝 미흡했던 이유는 ‘다들 너무 바빠서’라고 생각한다. 당장 선생님들조차 청요 앨범 발매 준비로 바쁘셨고, 학생들도 책숲 과제나 개인 공부 등으로 인해 여행 준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앞으로도 이번 여행처럼 좀 빡세더라도 짧은 기간 안에 준비를 끝냈으면 좋겠다. 준비 기간은 짧더라도 그 시간을 온전히 여행에만 쏟아부으면 2주 준비하는 것만으로 한 달 동안 준비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실행 과정
이번 돌아보기 글은 지금까지의 여행기와는 조금 다른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준비 과정과 실제 실행 과정을 상세히 적는 것, 이것이 뜻하는 의미는 여행이 우리가 준비한 대로 잘 진행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다들 똑같이 생각하겠지만, 이번 여행은 지금까지 책숲에서 갔던 여행 중 가장 변수가 많았던 여행이었다.
첫째 날에 가기로 했던 금정산성에서 금정산성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휴관이어서 급하게 금강공원 산책으로 계획을 변경하고, 숙소 예약이 안 되어 있었어서 엄동설한에 길바닥에서 노숙할 뻔하고, 수학문화관이 예약제였던 사실을 몰라 오전 시간에만 수학문화관을 구경하고, 학생들에게 독감이 전염되어 여행 조기 종료까지 일어난,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변수투성이인 여행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극한의 P인 나는 이런 변수가 많은 여행도 충분히 낭만 있고 그것대로 좋다고 생각한다. 계획이 틀어져 무작정 가게 된 장소에서도 새로운 것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획이라는 건 지키라고 있는 것, 다음부터는 여행지를 조사할 때 영업 여부나 휴업일, 특이 사항 같은 여행에 필요한 세부 사항을 조사하는 데에도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학생들도 선생님도 모두 같이.
여자방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남자방에서는 대체로 여행에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공부하는 내용이 재미있고 흥미로웠던 것도 있지만, 자유롭게 무언가를 하며 노는, 어찌 보면 여행의 참된 목적을 제대로 충족시킨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입을 모아 ‘노는 여행도 한번 가고 싶다’라고 말하던 것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공부할 땐 확실하게 공부하고, 놀 땐 확실하게 놀고,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책숲 여행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다.
알게 된 점
이번 여행은 ‘수학’을 공부하는 여행, 말 그대로 수학여행이다. 수학문화관에서 다른 사람들이 발표하는 것을 들으며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됐는데,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다름 아닌 수학의 역사였다. 수학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오래됐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방정식이나 함수 같은 개념들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개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길어야 100년 정도 된 줄 알았던 로그가 사실 300년 가까이 된 것이었고, 이차방정식이 무려 1000년이 넘은 공식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에서 동양 수학사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원주율의 근삿값이 3.1415926<π<3.1415927 임을 증명한, 즉 원주율의 소수점 아래 7자리까지 증명한 수학자가 중국의 조충지라는 수학자였다는 것, 중국의 수학서 구장산술과 한국의 수학서 구일집에 방정식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는 것 등 동양의 수학사에 대해 새로 알게 되었다.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우리 겨레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지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수학문화관을 모두 둘러보고 근처 설빙에서 설빙을 먹으며 꽃고 형들의 발표를 듣고, 선생님께서 둘에 대해 설명하셨던 것도 기억에 남았다. 선생님께서는 ‘둘’은 지금까지 인지하고 감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 즉 경계를 느끼며, 그 세계의 모든 것이 나에게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이라고 했다. ‘수학은 시다’, ‘수학은 나의 영혼의 눈을 뜨게 한다’와 같은 말을 남겼던 이들은 모두 자신이 마주한 새로운 수학의 세계의 황홀경에 빠져 있었기에 이런 말을 남겼던 것이라고 한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의의는 수학에 대한 인식 변화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나 학창 시절의 악몽과도 같은 수학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파고들고 탐구하면서 수학이 단순하게 어렵고 지루한 학문이 아닌, 생각보다 흥미로운 학문임을 알게 해주고 수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해주는 것. 이것이 이번 여행의 진정한 목적이라 생각한다.
느낀 점
이번 여행의 키워드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방정식’ 같은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방정식에는 흔히 x로 통용되는 미지수, 즉 변수가 존재한다. 이 x의 값에 어떤 수를 대입하느냐에 따라 방정식의 결과는 달라지지만, ‘답’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답이 없는 방정식도 없는 건 아니다.)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상수일 것만 같았던 여행에 수많은 변수들이 난입하고, 단순 사칙연산일 줄 알았던 여행 계획에 수많은 미지수들이 난입해 방정식을 만들어 낸 여행이었다. 비록 ‘정답’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뒤틀림으로 인해 만들어진 변수 x에 새로운 값을 대입해 또 다른 답을 찾았다.
이번 여행을 겪으며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수학 문제에는 정답이 있지만,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상수가 아니다. 상수라고 믿었던 것이 변수가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방정식의 해는 정해져 있지만, 삶의 해는 정해져 있지 않다. x의 값에 어떤 것을 대입할지도 내가 정하는 것이고, 그 결과로 인해 나오는 답도 온전히 나의 것이다. x의 값에 무엇을 대입할지 결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나만의 답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참된 인생의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며 새로운 세계를 맞닥뜨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은 굉장히 다르다. 그리고 아마 전자의 삶이 후자의 삶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더 건강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이 말을 몸소 증명하고 계시는 오광봉 할아버지를 부산에서 뵌 적이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실패를 두려워하고 도전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자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미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돌아볼 점
이미 앞에서 여행에 대한 피드백을 해버려서 이 문단에 쓸 분량이 없는 관계로 이 문단에서는 위에서 말했던 것들을 읽기 쉽게 요약하려고 한다. 현실에서나 인터넷에서나 글에서나 항상 말이 많은 내 특성상 글에 쓸데없는 말을 많이 쓰느라 분량이 늘어나 가독성이 떨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러고 있다.)
여행 준비 과정에서는 생각보다 피곤하다, 힘들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준비기간이 짧기도 했고, 이미 아는 내용들이 많기도 했고, 일의 양 자체가 지난 여행들에 비해 적었다. 그러나 숙소나 식당 등 여행 준비 과정에서 미흡한 부분이 많았고, 사전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선생님도 학생들도 모두 다른 일로 바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실행 과정에서는 예상치 못한 이변이 많이 일어났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공부할 건 다 공부하고 발표할 건 다 하긴 했다. 그러나 가기로 했던 장소들의 휴업일, 예약 여부 등의 세부 사항을 체크하지 못해 생각보다 많은 변수가 발생했다. 그렇지만 그런 변수들이 아니면 만나보지 못했을 새로운 것들도 많이 만났기에 결과적으로는 전화위복이었다. 자유시간도 많아서 학생들의 ‘노는 여행’에 대한 바람도 어느 정도는 충족된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변수였고, 가장 미흡했던 점 또한 변수였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서 오히려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은 좋았지만, 애초에 위기가 생기지 않게 철저히 조사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너무 변수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것 같으니, 이번 여행에서 좋았던 점들을 이야기하며 이 문단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는 여행 준비 과정에서 (숙소 예약을 제외하면)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았다. 두 번째로는 조사해 온 것들을 발표하는 것이 이전 여행들에 비하면 덜 부담스러웠다. 마지막이자 앞으로의 여행에도 반영되었으면 좋겠는 최고로 좋았던 점은 바로 자유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친구들과 추억도 쌓을 수도 있고, 내일의 공부를 위한 재충전을 가질 수 있는, 여행 중 한 번쯤은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여행지는 상하이처럼, 공부는 제주도처럼, 노는 건 부산처럼.’ 앞으로의 책숲 여행이 나아가야 할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여행을 잘 설명하는 문장이다. 이번 여행은 공부와 쉼, 그리고 성장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여행이라고 볼 수 있다. 공부와 성장만을 챙긴 지금까지의 여행에서는 부족했던 자유시간을 통해 노는 시간의 비중도 공부 시간과 적절히 밸런스를 맞춰 쉼이라는 토끼마저 잡은 것이다.
그러나 이번 부산 여행의 가장 큰 문제는 미흡한 사전 조사였다.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우리가 여행에 가서 할 공부뿐만 아니라, 여행을 가는 데 필요한 세부적인 조사에도 조금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돌아보기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딱 하나다. 좋은 것은 가져오고, 부족한 것은 개선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번 여행에서 좋았던 것과 부족하고 미흡했던 것을 장장 4페이지에 걸쳐 이야기했다. 마지막에 와서 생각해 보면 이번 여행은 꽤 무난한 여행이었던 것 같다. 특별히 좋았던 점 하나와 특별히 아쉬웠던 점 하나 말고는 딱히 아쉬운 것이 없는, 전체적으로 만족도가 높은 여행이었다.
이 문단의 제목인 ‘앞으로’의 의미는 두 가지인 것 같다. 앞으로의 여행에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리고 이번 여행을 통해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갈지. 지금부터는 후자에 대해 짧고 굵게 이야기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4번 문단에서도 말했듯이 이번 여행에서 깨달은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인생이라는 방정식에서 x의 값에 무엇을 대입할지는 내가 정하며, 그로 인해 찾은 대답도 온전히 나의 것이라는 것.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사람의 삶은 그렇지 않은 삶보다 훨씬 풍성하고 건강하다는 것.
‘정답’에서 벗어나 새로운 답을 찾아가는 것. 그 답을 찾기 위해 필요한 삶의 공식들을 배워 나가는 것. 그것이 ‘수학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