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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가을수양회 주제 2강(임태섭 목자님)
말씀 / 창세기 39:1-41:57
요절 / 창세기 39: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
요셉을 가리켜 ‘창세기의 열매’, ‘예수님의 그림자’라 부릅니다. 이는 그가 그만큼 예수님의 생애에 근접한 아름다운 생애를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 요셉의 생애는 파란만장하고 험한 삶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미래를 바라볼 수조차 없게 만드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언제 끝날지도 모른 채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런 그가 아름다운 생애를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요셉은 우리보다 훌륭한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입니까? 원래 요셉이 날 때부터 엄친아 여서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의 인생도 아름다운 인생, 위대한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노예로 팔린 이후 애굽에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렸습니다. 요셉이 하루아침에 노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요셉이 어떠한 사람입니까? 그는 야곱의 2아내와 2첩 중에 가장 사랑받던 라헬의 자녀입니다. 거기다가 라헬은 베냐민을 낳고는 죽어버렸습니다. 엄마 없이 자라서 더욱 불쌍하고 딱해 보였던지 아버지 야곱은 다른 여러 아들들보다 유독 요셉을 아끼고 총애 했습니다. 이렇게 자란 요셉이 노예가 되어 겪어야 했던 아픔과 상실감은 어떠했을까요?
요셉이 집은 종들도 많고 곡식도 많은 부잣집이었습니다. 이리 오너라 하면 종들이 얼른 달려와서 허리를 굽혀 명령을 기다리고 요셉은 그저 이거 갖다 줘, 저거 갖다 줘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노예가 되자 그는 해보지도 않았던 변기 막힌 거 뚫는 것, 똥 퍼다 나르는 것, 멀리서 물 떠오는 것 등 자질구레한 것들을 자기가 해야 했습니다. 주인으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종으로 살려고 할 때 요셉은 너무 괴로웠습니다. 특히 자기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멀리 이방사람에게 팔렸을 때 그 형들에 대한 미움이 얼마나 컸을까요? 미움은 증오가 되고 복수를 낳습니다. 몇 달 전에 드라마 시티헌터가 종영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군인들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북한에 배를 타고 침투합니다. 임무를 다 마치고 다시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려 했지만 상부의 지시로 그들은 배반을 당해 한명 빼고 다 죽게 됩니다. 살아남은 한사람은 그 증오의 마음이 불타올라 죽은 사람의 아들과 함께 20년 후에 복수를 합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지시를 내렸던 국회의원들은 시치미를 뚝 떼고 비리와 편법으로 남을 등쳐먹는 생활을 계속 영위해 나갑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파멸시킴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대리로 통쾌함을 주고 시청자들은 그러한 복수를 열렬히 환영합니다. 하지만 미움은 결국 자신조차도 파멸시킵니다. 미움이 커지면 다른 일에 집중을 못하고 마음에 불평이 생깁니다. 드라마처럼 미움이 커지고 한이 맺혔더라면 요셉은 분통이 터져서 화병에 죽었거나 몰래 도망가서 형들에게 피를 부르는 복수를 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너무 뛰어난 절제력이 소유자여서 일까요? 그가 너무 소심하고 겁쟁이라서 그런 대담한 일을 할 용기가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실 때 요셉은 형들에 대한 미움을 내려놓고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실 때 요셉은 노예로서의 천대와 박해를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실 때 요셉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 사랑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꿈을 성취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힘든 현실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물론 현재의 요셉을 보면 결코 형통한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요셉에게 꿈을 주셨는데 왜 이런 노예생활을 하게 할까?”하는 의구심도 생길 수 있습니다. 요셉은 힘든 노예생활 가운데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왜 저를 형들의 손에 의해 상인들에게 팔려가게 하셨나요? 그들이 나를 애굽으로 이끌 때 왜 저를 구해주시지 않으셨나요?” 하나님이 이 모든 악을 조장하거나 일부러 요셉의 인생을 힘들게 하고자 하신 것은 아닙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간 것은 형들의 시기심과 미움의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형들의 악을 막으려고 했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이 애굽 노예로 팔려가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여기에는 요셉에게 주신 꿈을 성취해 가기 위한 하나님의 깊은 뜻이 숨어있습니다. 만일 요셉이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편애를 받으며 자랐다면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그저 부잣집 아들로서 원하는 것을 소유하고 부유하게 살 수는 있었겠지만 큰 인물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순수하긴 했지만 눈치가 없고 사람의 마음을 섬세하게 배려하지 못했습니다. 형들이 과실을 범했을 때 아버지에게 있는 그대로 고자질해서 형들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꿈을 꾼 후에는 형들에게 말해서 염장을 질러놓았습니다. 아버지에게만 말한다든지 좀 돌려서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사랑만 받으며 자라다 보니 사람의 마음을 읽지를 못했습니다. 또한 부유한 집에서 편애를 받으며 귀하게 자라다 보니 연약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내면성도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예로서 밑바닥생활을 하며 가장 낮은 자까지 이해할 수 있는 내면을 훈련시키셨습니다. 노예생활을 하며 옳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과거처럼 염장을 질러놓지 않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 말을 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조직생활 하는 법도 배우고 사람들 사이에 지켜야 하는 예절도 배우고 가정 총무직을 감당하며 리더십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애굽에서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부모도 없고 빽도 없고 돈도 없고 애굽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학벌도 없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는 환경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형들에 대한 미움이 올라올 때마다 화장실에 들어가 기도했습니다. 외로움과 절망에 사로잡힐 때 골방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는 기도의 사람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애굽에서의 훈련을 통해서 그는 많은 사람을 품고 섬길 수 있는 리더로 준비되었습니다.
미국의 사가랴 선교사님은 3대 독자, 독실한 불교 신자로 기독교에 대해 반감이 매우 강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요셉에게 주권적으로 꿈을 주신 것처럼 대학 1학년 때 동네 선배를 통해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동네 선배는 말더듬이 매우 심해서 말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는데 성경공부 후 말더듬이 사라진 것을 보고는 성경공부를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주체 할 수 없는 끼가 많아 노래와 춤으로 대학축제에서 상을 탔고 세상을 향해 발을 뻗어서 예수님을 믿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던 사람입니다. 이런 그가 단대 회장 선거에 나가 0표를 받는 수모를 당하고서야 자기 발로 교회에 와서 회개하고 이후 심령이 변화되어 열정적으로 캠퍼스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수학과 대학원을 졸업 후에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주님을 섬기겠다고 하여 선교사로서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물건 나르고 청소하는 밑바닥 생활을 하였고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고 미국에 갔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일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드렸습니다. 그렇게 할 때 연대, 고대출신 선교사님들보다 먼저 사립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고등학생들, 뉴욕센터의 2세들을 큰 비전을 가지고 키우며 사명을 감당할 때, 타임즈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선생님으로 뽑히기 까지 했습니다. 그가 배출한 제자들만 2000명이 넘는 데 그 학생들의 인정을 받는 선생님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제주도 촌구석을 넘어 가장 경쟁이 치열한 미국 뉴욕에 도전하여 승리케 하셨습니다. 지금은 교육 사업을 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거목들을 키우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훈련을 통해 리더로 성장한 또 다른 사람은 역대 미국 대통령 42명 중에 가장 사랑받는 링컨대통령입니다. 그는 산속 깊은 골짜기 오두막집에서 살았습니다. 비가 오면 비가 뚝뚝 새고 겨울에는 집안이 다 얼어붙었습니다. 이러한 사정에도 링컨의 어머니는 어린 링컨에게 글을 읽지 못할 때부터 성경을 읽어주고 성경인물들의 재미있는 일화를 말해주는 등 성경이 그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였습니다. 후에 링컨의 고백에서 어머니의 사랑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내가 아직 어려 글을 읽지 못할 때부터, 어머니께서는 날마다 성경을 읽어 주셨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으셨네. 통나무집에서 읽어 주시던 성경 말씀과 기도 소리가 지금도 내 마음을 울리고 있네. 나의 오늘, 나의 희망, 나의 모든 것은 천사와 같은 나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네” 링컨은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영적인 가치관을 어릴 때부터 배울 수 있었고 그 이후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고 그 신조를 한 번도 저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리더로 세우기 위해 연단하셨듯이 링컨을 훌륭한 대통령으로 키우기 위해 연단하셨습니다. 링컨은 누구보다도 실패를 많이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누이가 이른 나이에 죽고 사랑하는 어린 세 아들 떠나보내야 하는 가장 큰 슬픔들을 느껴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봤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을 위로와 힘을 주는 말씀으로 사랑하였고 실패와 불행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잘 알았기에 더 하나님을 찾아가고 의지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 ‘노예제도는 하나님께 악이다. 분명히 끊어야 한다.’고 주장해 남북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전쟁 중에 링컨은 무릎 끓고 기도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전쟁의 승패가 사람의 지혜나 군사의 수나, 무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에 달려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링컨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초반에 적진에 명장들이 대거 있었기 때문에 불리했던 전세를 바꾸어 노예해방을 통해 노예들이 다 북부에 참여함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끄셨습니다. 하나님은 링컨을 쓰셔서 흑인노예들을 진정 인간답게 살도록 구원하는 역사에 쓰셨습니다. 링컨을 어릴 때부터 말씀으로 키우시고 중간 중간에 고난의 열매를 통해 그를 더욱 강인한 사람, 믿음이 견고한 자로 키웠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를 가장 드높여주어 그가 꿈꾼 대로 백인과 흑인들이 같이 수평적인 관계로 공존하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요셉, 링컨, 사가랴 선교사님과만 함께 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이렇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도록 기도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사 그가 하는 일을 형통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보디발도 요셉의 삶을 지켜보다가 그의 삶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형들을 미워하고 용서한 그를 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꼈습니다. 특별한 사랑을 받던 요셉이 노예로 팔려왔지만 절망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늘 정직하게 일하고 맡겨준 것을 충성스럽게 행하는 것을 보며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보디발은 요셉을 믿고 집안의 모든 일을 주관하는 가정총무로 세웠습니다. 가정총무로써 요셉은 보디발 다음 권세를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요셉을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요셉은 생각했습니다. “이제 내 인생에 봄날이 찾아온 모양이구나!” 그러나 하나님의 훈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고난의 때에는 절망과 불신이 우리를 무너뜨리고자 찾아옵니다. 그러나 삶이 안정되면 안일과 쾌락이 찾아와 우리를 무너뜨리고자 합니다. 요셉이 오랜만에 작은 성공을 맛보고 삶의 안정을 취하게 되었을 때 사단은 성적 유혹이라는 무기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용모가 준수 했던 요셉에게 보디발의 처가 매일 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습니다. 청년인 요셉에게 지금껏 받은 어떠한 훈련보다 더 큰 파도로 몰려왔을 것입니다. 안정된 삶이 이제야 막 펼쳐지고 있는데 보디발 처의 눈에 벗어나면 지금껏 쌓아놓은 것들이 다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이 위기의 순간에 그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9절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은 너무나 분명하게 거절했습니다. 첫째는 주인의 은혜를 절대로 배반할 수 없다는 것이요, 둘째는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이 시험을 물리쳤습니다. 청년이 때에 정욕을 물리치는 것이 힘이 듭니다. 어떤 것보다도 가장 물리치기 힘든 것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요셉처럼 분명하게 끊고 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고자 발버둥치고 그 환경에 처하지 않고자 부단히도 투쟁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욕에서 멀리하고자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요셉이 믿음으로 큰 영적 시련을 이길 수 있었지만 이 때문에 현실은 전보다 더 비참한 상황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처는 오히려 요셉에게 누명을 씌워 그를 감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요셉은 순결하게 살고자 애를 썼지만 결국은 오해와 누명으로 진실은 왜곡된 채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너무나 죄악되고 거짓되어 진실하게 살고자 몸부림치는 요셉을 사정없이 짓밟아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어디에도 그의 진실을 증명하고 하소연 할 곳이 없어 혼자 탄식하며 속병으로 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요셉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시며 그가 참고 견딜 수 있는 내적 힘을 갖도록 도우셨습니다. 또한 힘든 환경을 극복하고 감옥에서도 변함없이 충성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을 때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받으며 감옥에서 할 일을 찾아 열심히 죄인들을 섬기고 간수장에게 은혜를 얻어 옥중 제반 사무를 맡아 섬기며 가장 낮은 자까지 이해하는 목자로 빚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자가 바로에게 범죄하여 요셉이 있는 감옥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어느 날 아침 그들의 얼굴을 살핀 요셉은 근심 빛이 있음을 발견하고는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동시에 각기 다른 꿈을 꾸고는 무슨 뜻인지 몰라 번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요셉은,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40:8b) 청하며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듣고는 사흘 후에 전직이 회복될 것을 알리고 그가 전직이 회복될 때 자기의 억울한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감옥에서 풀려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은 악몽이었습니다. 요셉은 조금도 꾸미지 않고 그가 사흘 후에 사형 당할 것이라 알려주었습니다. 사흘 후에 모든 것이 요셉의 꿈 해석대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이 회복되었지만 너무 기뻐 술을 많이 마셨는지 요셉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요셉은 어떤 기대도 가지지 못하고 기약 없는 감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실망합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만족함이 없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자는 미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자는 실망하게 되고 배신감에 치를 떨게 됩니다. 그러나 살아계셔서 그 뜻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람들로 인한 실망과 미움, 냉소적인 생각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지도자가 되어야 할 요셉을 그토록 오랫동안 감옥에 가두어두신 것입니까? 이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감옥살이는 괴로움만 당하고 무의미한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요셉의 꿈은 지도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 지도자는 죄인들을 감당하고 도와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사명을 수행하는 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죄인들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는 목자의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때까지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통해 선악의 분별력을 배워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긴 하였지만 죄 지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줄 수 있는 영적 지도자의 사랑과 힘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죄인들의 목자요 영적 지도자로 쓰시기 위해 죄인들로 가득 찬 감옥에서 직접 오랫동안 그들을 섬기게 하시므로 요셉을 목자로 키우셨습니다.
또한 그는 술 맡은 관원장을 통해 감옥에서 나갈 날을 고대했지만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기약 없이 기다리면서 자기 인생이 사람의 도움으로 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하나님의 때가 되어야 나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훈련을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 하실 때가 올 것을 믿고 조용히 그 때를 기다리며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에 충성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금은 도가니에서 연단되고 사람은 고난 중에서 연단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 땅 종살이로, 감옥의 죄수로 고난 받게 하셔서 순수하고 강한 정금과 같은 겸손과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연단 하셨습니다. 가장 혹독한 시련의 때에 요셉의 믿음은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 하나님께서 귀히 쓰실 수 있는 영적 지도자로 성장하였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되자 하나님은 그를 지도자로 부르셨습니다.
저는 2004년 대학교 1학년 때 교양동에서 노아목자님을 만났습니다. 목자님은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라야 진정한 자유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연을 비유로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잘 듣고는 연락처를 적어주고 헤어졌습니다. 다음날부터 전화가 왔는데 그때는 게임중독이 심했기 때문에 굳이 시간 내서 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안 받고 있는데 그 후 하루에 3번 정도 꾸준히 전화가 왔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나중에 받게 되었고 이후에는 동방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공익 생활하는 가운데서도, 다시 학교복학해서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위해 교회를 가긴 하지만 저는 영적생활 하는 것,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쾌락적인 삶, 나를 즐겁게 만드는 삶을 살고자 학생 때 부단히도 애를 썼습니다. 돈을 벌고 펑펑 쓰면서 소비의 즐거움, 여자들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고 그저 그날그날의 즐거움을 위해 내일은 잊어버린 채 살았습니다. 이런 저에게 하나님은 처음에 저를 찾아오신 것처럼 또 손을 내미셨습니다. 대학교 때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노아목자님을 통해 저에게 오시고 제가 다 포기하고 잠수 탈 때도 일방적인 은혜로 요회 목자님들을 통해 심방오시고 저를 다시금 회복시켜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제 삶을 돌아 볼 때 저의 하나님은 나의 상태를 아시고 저를 세상에서 훈련하시고 저를 연단하시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항상 세상을 향한 동경의 마음이 있었는데 학원생활하면서 결혼하신 선생님들 대부분이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결혼 생활 가운데 사랑이 없고 후회하는 것을 볼 때 세상적인 가치관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돈을 최고라 여기며 대학 생활하는 가운데서도 알바를 쉬지 않고 돈님을 모시고 살았었는데 돈 때문에 친구들과 사이가 안 좋아지고 돈 때문에 내 마음이 항상 매여 있음을 알았고 진정 돈이 나에게 기쁨이 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메시지를 쓰면서 최근에 저의 신앙생활,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예비하시고 준비하셨는지 묵상의 시간을 자주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작년에 가을 수양회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마지막 대학생시기였기에 많이 기도하고자 결단 하였습니다. 학생시절이 끝나면 저를 지탱하고 있던 것들이 없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준비하는 기간 동안에 육신의 본성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기도하리라 결단 했지만 저의 의지 부족, 생활의 변화 없이 내 육신대로 살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가지 못했고 오히려 나의 이런 준비 부족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양회 이후 마음이 더 완악해지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장막에서 나와 올해 초에 탑동에 있는 학원 근처에 자취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태섭님을 기쁘게 하며 살리라 마음을 먹고 열심히 먹고 마시며 쾌락적인 삶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여태껏 받았던 성경의 말씀들이 저를 세상의 문화에 융화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 삶인지 알기에 부정하려고 해도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쭉정이처럼 알맹이가 빠진 채 살고 있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해 지고 비천해졌을 때 하나님께서 소망목자님을 통해 저에게 분명한 예배관의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을 듣게 했고 저는 한순간 머리를 맞은 것처럼 모든 사고가 멈췄습니다. 그때 열심히 이 제주도의 단조로운 삶에서 벗어나려고 부산여행을 준비하던 때였는데 직격탄을 맞고서 모든 준비를 내려놓고 다 취소하였습니다. 그 주에 예배를 드리러 나가고 저의 죄를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다시 온 후에 적극적으로 주의 일을 감당하지 않으면 다시금 예전처럼 돌아갈 것을 경험으로 알았기에 양식을 주5회 쓰고자 결단하였습니다. 양식을 쓰면서 꾸준히 하나님과 관계성을 맺을 때 추석 때 집에 신앙을 드러낼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신앙을 드러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생각했던 것보다 미약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제사문제에 봉착했을 때 아버지와 대립이 일어났습니다. 집에서 아버지와 가족 사이에서 가장 관계성이 잘 맺어졌기 때문에 이 대립은 저를 아프게 했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크게 혼내도 보고 달래도 보고 하면서 저를 회유코자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저는 사람의 정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분명하게 절을 하지 않겠다고 말을 하고 다시 제주시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마음에서는 매우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현재의 이렇게 싸울 수 있고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게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기독교 방식으로 제사를 드리고자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이후 큰아버지 제사 때 정말 신기하게도 아버지께서 제가 절을 안하고 묵상하는 것에 대해 불편은 했지만 인정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더욱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되었고 더 깊은 감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실 때 저는 이 두 달 동안에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고 기도응답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의 고난도 함께 싸워주심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항상 끝을 못보고 그 중간 중간에 포기했던 저의 7년여의 신앙생활 속에서 수양회이후 받은 은혜에 좋았다가도 정욕의 죄로 인해 다시금 모든 것을 포기했던 자를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함께 하십니다. 제가 영적으로 안 좋을 때나, 세상의 가치관을 쫓아 살 때나, 하나님을 버리고 저를 위해 산 자를 하나님은 결국 선으로 이끄셔서 저를 말씀 안에 살도록 하셨습니다. 제가 현재의 믿음에 그치지 않고 더 깊은 믿음있는 자로 빚어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절망 할 수 있는 환경에서도 자신의 본성대로 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함께 하시며 방관하시는 것이 아니고 때에 맞는 힘과 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함께 하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결코 망함이 없고 중간 중간에 고난은 다 연단되어서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충성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여 장차 구속사에 귀하게 예비 되어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