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다섯 가지 덕(鷄有五德)
닭은 소, 돼지와 더불어 축산법상 주요가축으로 다양한 품종이 있으며 용도에 따라서 산란용과 육용으로 나뉘지만 이와는 별도로 관상용과 싸움용(鬪鷄) 등이 있다.
닭은 인류의 생활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알과 고기는 중요한 식품으로, 부산물인 털은 의류의 솜대용이나 계분과 함께 농작물에 좋은 비료로서의 역할을 하는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는 중요한 가축이다.
닭이 사람에게 있어서 경제적이면서도 구하기 쉬운 중요한 영양공급원인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서 체중을 줄이는 일에 비용을 더 많이 지불할 만큼 먹을거리가 풍족한 오늘날에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사정이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난을 운명으로 여기며 먹을거리가 부족하여 기아(飢餓)의 어려움을 겪었던 시대에는 일반가정에서 달걀이나 닭고기는 어른의 밥상이나 설․추석명절 혹은 제사와 같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먹기가 어려웠으며, 질병을 앓고 나서 허약한 몸을 추스르기 위하여 인삼과 함께 삶아서 먹는 삼계탕은 보약으로 취급될 정도로 요긴한 영양원이었다.
명절이나 귀한 손님이 찾아 왔다든지 하는 특별한 날에 집에서 기르던 닭이라도 잡게 되면 량을 늘리기 위하여 닭고기와 함께 무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물의 량을 많게 하여 갖은 양념을 넣어서 얼큰하게 끓여낸 닭국에는 고기의 량보다는 무의 량이 훨씬 많았지만 그 맛은 그야말로 진미였다.
한편으로는 시집보낸 딸과 함께 처갓집나들이를 온 사위에게 특식으로 씨암탉을 잡아 준다거나 사위의 밥상에 달걀을 얹어주어서 장모님의 사위사랑을 나타낸 것에서도 닭의 정서적인 위치를 읽을 수가 있다.
어린 시절 추억속의 닭 사육은 사육규모 면에서 오늘날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영세하였지만 사육단계별 생산성에 맞추어 철저하게 검정되고 계산하여 만들어진 양계전용의 배합사료를 이용한 사육은 기술적인 면은 예외로 하더라도 경제적인 면에서나 공급측면에 있어서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으므로 몇 마리의 닭이 마당에 떨어져 있는 곡식이나 식물의 씨앗을 주워 먹고 주변에 자라난 풀을 쪼아 먹거나, 습한 땅을 날카로운 발가락으로 헤집어 지렁이나 굼벵이를 비롯하여 각종 벌레를 잡아먹기도 하고, 메뚜기와 각종곤충 심지어 지네까지도 잡아서 먹기도 하지만, 벼를 비롯하여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메뚜기를 잡아서 닭에게 주기도하고 개울에서 미꾸라지 등의 작은 물고기를 잡아서 먹인다던지 하는 방법으로 닭을 기르면서 생산되는 달걀은 대청마루의 한쪽구석에 계란단지를 놓아두고 달걀을 모아 두었다가 장날이면 내다 팔아서 살림에 보태어야 할 정도로 환금성이 좋은 가축이었다.
오늘날에는 양계업이 하나의 산업으로서 자리매김을 하면서 부화기를 이용한 병아리의 대량생산에 더하여 산란계의 경우 알을 낳지 못하는 수평아리의 조기도태와 이를 위한 갓 부화한 초생추의 감별에 있어서도 자격을 갖춘 감별사가 암수를 감별하던 것을 반성유전을 이용한 감별기술이 개발되어 인건비를 절약하게 되었음은 말 할 것도 없고, 한때 병아리 감별사는 특별한 기술로 대접을 받아 해외취업이나 이민에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사육의 규모화에 맞추어 시설을 비롯한 사료급여, 채란 등의 제반시스템이 자동화되어 관리에 효율성을 더하고 질병관리에 있어서도 과학화와 체계화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용도별에 따른 개량을 촉진하고 사양관리에도 발전을 거듭하게 됨에 따라 생산성향상에 더하여 대량생산체계에 맞추어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양계산물의 소비촉진을 위한 조리나 가공기술에 더하여 데이마케팅(day marketing : 매년 9월 9일을 닭고기 먹는 날-닭의 새끼병아리를 찾는지 할 때에 내는 ‘구구’하는 소리를 본떠서 정함) 이라든지 치맥(‘치킨’과 ‘맥주’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든지 하는 판매마케팅 등을 비롯하여 유통에 있어서도 많은 발전을 하고 있지만, 식량을 비롯하여 모든 것이 부족하였던 과거에는 농촌에서 몇 마리의 닭을 기르는 자체가 부담이 되어 한 알의 달걀이나 한 덩이의 닭고기를 먹는 것마저도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조들이 닭에 대한 생각은 어떠하였나를 알아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돈만 있으면 언제라도 닭고기와 계란에 더하여 관련요리 등을 기호에 맞추어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데다 모든 것을 경제성과 연계하여 가늠하는 오늘날의 닭과 관련한 관념이나 생각이 가난을 운명처럼 여기면서 살아왔던 지난날과 비교하여 차이가 있겠으나 모든 것이 부족하고 귀하였던 선대들의 입장에서는 단순하게 식재료라는 차원을 넘어서 생명존중의 정신에 더하여 관념이나 사상적인 표현으로까지 나타내었을 것이다.
닭은 여명(黎明)과 축귀(逐鬼), 다산(多産), 입신출세와 부귀공명을 나타내는 상서로운 동물로서 ‘닭’이 가진 5가지 덕(五德)으로 문(文), 무(武), 용(勇), 인(仁), 신(信)을 상징하는 것으로 머리에 관을 쓰고 있으니 문(文)이요, 발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있어서 무(武), 적을 맞아 물러서지 않고 죽을힘을 다하여 싸우니 용(勇), 음식을 보면 혼자 먹지 않고 나누어 먹으니 인(仁), 밤을 지키되 그 때를 잃지 않으니 신(信)이라 하였다. 또한 닭의 덕은 오덕(五德) 외에도 알과 자기의 살을 제공하는 ‘애(愛)’로 이것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베푸는 큰 희생을 뜻한다.
우리말에는 닭의 신(信)과 관계되는 말로 ‘첫닭’은 새벽에 홰를 치며 ‘처음에 우는 닭’이란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새벽에 닭이 홰를 치며 우는 동작을 ‘닭잦추다’로 ‘잦추다’는 ‘동작을 날쌔고 재빠르게 하여 잇따라 재촉하다’라는 의미로 본래의 뜻은 빨리 날이 새라고 재촉한다는 뜻이라고 하며, ‘달구리’는 ‘이른 새벽닭이 울 때’를 가리키는데 어원은 ‘닭 울이’로 ‘닭이 우는 것’ 곧 ‘닭 울음’을 뜻한다고 한다. 영국속담에 ‘수탉은 시골사람의 시계’라는 말은 닭이 시각(時刻)을 알려 준다는 신(信)에 있을 것이다.
이와는 다르게 ‘닭싸움’은 ‘시답지 않은 싸움’을 조롱하는 말로서 ‘닭 싸우듯이’라고 하면 ‘서로 엇바꾸어 가며 상대를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이며 영어로 ‘chicken-hearted(겁 많은), chicken-liver(겁쟁이․무기력한 사람)’처럼 닭이 ‘겁이 많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고집이 센 사람을 ‘황소고집’이라거나 ‘닭고집’이라고 하는 것은 닭도 고집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을 비하하는 말인 ‘닭대가리’는 기억력이 좋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며, ‘소의 꼬리보다는 닭의 대가리가 낫다, 닭의 벼슬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마라’는 속담에서 힘이 있고 거대한 조직의 말단이 되는 것보다는 비록 작고 보잘 것 없다고 할지라도 조직의 우두머리가 낫다는 말로서 머리를 조아리면서 사는 것보다는 지도자가 되어 부하들을 거느리고 사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피부가 매끈하지 않고 오톨도톨한 살을 ‘닭살’이라고 하며 ‘닭살이야 라거나, 닭살 돋는다.’라고 할 때의 ‘닭살’은 소름을 뜻하기도 한다.
‘닭’과 관련된 말 가운데에는 요리이름이 많은데 닭곰, 닭곰탕, 닭구이, 닭김치, 닭냉채, 닭백숙, 삼계탕, 닭볶음밥, 닭볶음탕, 닭산적, 닭저냐(얇게 저민 닭고기에 밀가루를 바르고, 달걀을 입혀서 기름에 튀긴 음식), 닭적, 닭전골, 닭조림, 닭죽, 닭지짐이, 닭찜, 닭튀김, 통닭’과 같은 것이다.
‘닭김치’는 계저(鷄菹)라고 하며 닭의 내장을 빼내고 쇠고기와 버섯, 두부를 넣어 삶아낸 다음 고기를 찢어 김칫국을 섞은 닭 국물에 넣어 얼음을 띄운 음식이다. ‘닭깍두기’는 삼복더위에 먹는 여름철 음식으로 깍두기에 삶은 닭고기를 잘게 뜯어 넣고 얼려서 먹는다.
거지닭(叫化鸡)은 거지가 훔치거나 얻은 닭을 조리할 마땅한 도구가 없어서 연잎으로 닭을 감싸고 겉에다 진흙을 발라서 불에 천천히 구운 다음에 흙을 뜯어내고 익은 닭을 먹은 것이 기원이라고 하며, 오늘날은 중국 항저우의 요리로 부귀한 사람이 먹는다고 하여 '부귀계' 라는 이름도 붙게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도 닭에 흙을 짓이겨 발라서 구워먹는 요리가 있다.
‘닭’은 놀이의 이름에도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여남은 명의 어린이들이 모여서 하는 ‘닭잡기’놀이는 가위 바위 보로 술래격인 너구리와 술래에게 쫒기는 격인 닭을 정한 후에 나머지는 손을 잡고 둥근 우리를 만들어서 닭은 우리 안에 있고 너구리는 우리 밖에서 신호에 따라 너구리는 닭을 잡으려 하고, 닭은 도망치는데 우리를 만든 아이들은 너구리가 닭을 잡지 못하게 막는 놀이며, ‘닭의홰타기’놀이는 줄타기에서 두 발을 일자형으로 딛고 앉는 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