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중학교 교지 1권 교사문원-----1976년 1월 출간 일기장(日記帳)에서 교사 최 신 자 5월(月) 15일(日) 오늘은 너의 집을 방문하기로 하자. 너희들 입학한 지 두 달 반, 난 한시도 너희를 놓칠 수 없었지만 그 중에도 너는 계속 나의 관심을 끌고 있었지. 너를 보기 위해 교실을 들렀었고 네 표정이 궁금해 자주 네 쪽을 바라보았지. 많은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고 자주 네 얘기도 듣고 싶었어. 네가 무슨 일이든 잘 했을 땐 그렇게도 좋을 수가 없었고 네가 실수를 했을 때는 나의 실수보다 더 붉은 얼굴이 되었을 거야. 그런 내가 너의 생활 기록부에서 이해 안가는 한 구석을 발견했을 때 심히 놀라고 의아했던 건 너무 당연했었지. 몹시 망설인 끝에 너를 통해 알아낸 아버지와의 이별은 무척이나 충격적인 것이었어. 아프고 쓰린 너에 대한 안쓰러움을 난 외면할 수는 없었어. 좀 더 제대로 보아야 할 담임으로서만 아니라 나에게 너는 커단 제자였으니까. 오늘은 엄마가 안 계실 너의 집엘 꼭 가 봐야겠다. 너와 함께 학교를 나서는 날 보고 넌 이상하다는 눈치였지. 엄마조차 없는 시간 누굴 만나러 가겠다는 거냐구. 하지만 나도 너도 보이지 않는 사제(師弟)의 정(情)이 있었는 듯, 열셋의 나이에 알맞게 자란 너의 모습을 보고 잘 생긴 머리통, 그리고 날 가끔 사로 잡는 너의 눈매, 무겁게 다물어진 입, 단정한 교복이 내 곁을 따르고 있었지. 찾아든 집은 좁고 초라한 채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어. 엄마와 네가 함께 쓰는 방이었는 듯, 책꽂이엔 중학생의 책이 꽂혀 있었고 옆으로 오래된 전축, 좀 큰 텔레비전, 그리고 냉장고 등 가구가 놓여 있었지. 남자어른 없는 집이라 하니 쓸쓸함이 감돌고 안주인마저 바삐 밖으로 나다니는 이 방엔 네가 유일한 주인이었지. 집에 와 마주 앉은 너는 더 대견스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어. 형을 찾는 동생, 오빠를 찾는 동생을 보살피는 너는 가정에 총실한, 총실한 젊은 아빠를 연상시켰어. 차근차근 묻는 말에 대답을 해 주었고 너의 아빠에 대해서 그리고 너의 엄마에 대해서 알려 주었어. 지금도 까끔 아버지 생각은 나요. 하지만 엄마 앞에선 그런 빛을 보일 수가 없어요. 난 순박한 경청장T고 애틋한 동화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어. 너를 두고 발길을 돌리면서 왜 네게 묘한 관심이 쏠리는 것일까.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내일도 모래도 언제까지도 난 네게 관심을 갖으리라. 너를 잊지 못하리라. 너로 꽉 차진 마음. 5월(月) 16일(日) 따르릉, 나를 찾는 수와기의 목소리는 그애 엄마였다. 부끄럽다는 예기다.그리고 만나고 싶다는 예기다. 오후를 약속. 오늘 그애는 침울한 표정, 무엇을 계속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내심 그애족을 보기가 두렵다. 저녁에 만난 엄마는 소탈하다.잘 생긴 남자의 윤곽이다.이야기엔 성량이 크고 주장이 뚜렷하다.엄마는 긴 얘길 서슴없이 털어놓는다. 그애의 어머니로소 보다 같은 여자로서 같은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 난 가슴이 아프다.목이 메인다.없느니만 못한 아버지, 남편. 그녀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고 있다. 그래 세상엥 이런 수도 있구나.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온다. 내일은 그애한테 무슨 애길 해야 할까. 그애를 보고 내가 먼저 우울해 지면 어쩌나. 밤새 그녀석이, 그눈, 그얼굴이 생각키운다. 7월(月) 25일(日) 방학 날이다. 몹시 즐거운 빛들이다. 날아갈 듯 부푸는 마음은 내거 더하다. 그 애의 통지표는 꽤 내려간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좀더 그 애를 성실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만이 내가 그 애를 위한 최선의 길이란 걸 생각한 뒤로 난 그애 앞에서 자주 언짢은 소리를 해야 했다. 많은 욕심을 부리게 되었다. 그애는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철 든 모습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애는 점점 내 앞에서 웃움을 잃어 가고 있었다. 오늘 또 난 그애를 붙잡고 많은 부탁을 하고 있었다. “자랑스런 너를 보고 싶구나. 믿음직한 아들을 너의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구나. 자, s는 너의 집안의 기둥이 아니냐. 너의 어머니를 위해서, 동생들을 위해서, 그리고 헤어진 너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 또 너를 위해서 내 부탁을 들어 다오.” 그앤 괴로뤄 하고 있었다.모든 과목에 흥미를 보이던 그애는, 과학자를 꿈꾸던 그애는 모든 것에서 희망을 잃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그애를 데리고 책방으로 갔다.헤밍웨이의 작은 소설을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한달 남짓 그애의 생활이 염려스러운 채 그애를 보냈다. 10월(月) 8일(日) 난 기어코 그애의 아버지를 찾아 내고야 말았다. 다섯 달을 곰곰 생각해본 나머지였다. 그애도 모르게 그 어머니도 모르게 찾아 만나본 그는 무척도 착한 사람이었다.지극히 어진 사람이었다. 지금의 사회에서 그의 능력은 도저히 인정받을 수 어Q을 듯 그는 너무 착하기만 했다. 그는 괴로우ㅏ 하고 있었다. 난 용기를 얻었다. 아 그들에게 빛을 줄 수 없을까. 그애에게 희망을, 한 가닥의 서관이 내 가슴에 비치고 있었다. 1월(月) 21일(日) 내일 그애는 내 곁을 떠난다. 삼년 전 귀여운 동안은 이제 훤칠한 키에 검으티티한 얼굴로 변하고 있다. 정말 자랑스러운 그애는 자랑스럽게 부모의 축하를 받으며 내가 보는 앞에서 졸업을 하는 것이다. 벅찬 가슴으로 오늘 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난 그애가 상급학교에 가서도 이 다음 사회에 나가서도 장한 모습으로 그애의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릴것을 믿는다. 자랑스런 젊은이가 되어 나의 조국에 빛을 더하리라는 걸 의심치 않는다. 나는 교사(敎師)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선생님이란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미워할 줄 모른다.죽도록 좋아하는 것이다. 선생의 전부가 그들인 거다. 내일의 졸업식을 앞두고 난 삼년 전 그애 모습을 생각게 된다. 아무도 없는 그애의 집을 찾아 갔던 때의, 그 뒤 반짝이던 눈동자에 빛을 잃어 가던, 그러나 서서히 그는 내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 밝은 모습을 찾아 주기 위해 대담하게 아버지를 찾았던 때를 생각한다. 한 가닥 희망을 안고 그 후 수차례 아버지를 찾았던 것은 끈질긴 나의 집착이었고 나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내일은 진심으로 그애의 졸업을 축하해 주어야 겠다. 어느새 새벽닭이 울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