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문협 채인숙 부회장과 전화 대화 중 포항 간절곶의 일출과 일몰 · 그리고 정선 이야기 하다가 채 부회장의 고향 상주 이야기 까지 발전하며 先代(선대) 중 독립운동을 하신 채기중 선생님 이야기를 듣습니다.
평소 필자는 조국을 위해 몸바친 분들의 이야기를 발굴해 소개하다 보니 이번 장에선 영주 · 상주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에 대한광복단을 이끄신 소몽/채기중 선생님의 연대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특히 2020년 보훈의 달을 맞이해 <우리 가족이 겪은 민족전쟁 이야기 10편>을 엊그제 마무리 했던차 오늘부터 채기중 선생님과 대한광복단 이야기를 쓰게 되어 榮光(영광)입니다. 먼저 sns 에서 검색한 내용을 링크로 수록하고 채 부회장이 보내준 영상을 붙임 합니다.
이 글은 객관적 근거에 의거 쓰며 完結(완결)은 현장 (상주시 이안면 소암리 봉평마을과 만세동산)을 탐방 후 맺는거로 합니다. 2편과 3편에선 채기중 선생님과 (채진환과 채순홍)선생 그리고 인천 채씨 문중에 관해 쓰며 전체 5편을 쓸 예정 입니다. 마지막 결어편은 7월 임원재 고문님을 모시고 채 작가와 필자가 현장을 다녀온 후 씁니다.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
대한광복단은 풍기광복단으로도 불리며 1913년 12월 경북 풍기에서 조직된 비밀결사에 의한 독립 운동단체였다. 대한광복단은 의병 장교출신의 인물들이 중심이 되고 그 밖에 유림, 계몽운동가 등 여러 계층의 인물들이 모여 조직한 것으로 결성 당시 채기중, 유창순, 유장열, 한훈, 강병수, 김병연, 정만교, 김상옥, 정운홍, 정진췌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풍기 광복단은 군자금 모집, 민족반역자 처단 등을 투쟁목표로 삼고 장차 무장군대를 양성하여 일제와 항쟁을 벌리려고 하였다. 따라서 광복단의 초기 구성원은 의병출신이 주도했으나 점차 계~~
1913년 1월 채기중(蔡基中)을 비롯해 전원식(全元式)·정성산(鄭星山) 등 10여 명이 경상북도 풍기군 [지금의 영주시 풍기읍]에서 결성한 비밀결사조직이다.
설립 목적
1910년 한일합방과 함께 의병투쟁이나 계몽운동을 전개했던 민족지사들은 국권 회복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기반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따라서 1910년 이후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참여하려는 민족지사들의 만주 이주는 계속 이어졌고, 한편으로는 만주로 건너갔던 민족지사들이 국내로 잠입하여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따른 인적·물적 지원을 목적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과정에서 대한광복단을 비롯해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 민단조합(民團組合),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등과 같은 비밀결사조직이 국내에서 결성되었다.
변천
대한광복단은 풍기에서 결성한 비밀결사 조직으로 전국의 의병장 및 용력(勇力)을 갖춘 인사들이 참여하였다. 주요 단원으로는 채기중[상주]·유창순(庾昌淳)[천안]· 류장렬 (柳璋烈)· 한훈(韓焄)[청양]·강순필(姜順必)[혹 강병수(姜秉秀), 풍기]·김병렬(金炳烈)·정만교(鄭萬敎)·김상오(金相五)·정운홍(鄭雲洪)[괴산]·정진화(鄭鎭華)[예천]· 장두환 (張斗煥)[천안]·황상규(黃尙奎)[밀양]·이각(李覺) 등이 있다. 이들은 대한광복단 결성 초기 단원들로 의병 출신 인물이거나 『정감록(鄭鑑錄)』에서 십승지지로 지목한 풍기를 찾아 우거한 인사들이다. 특히 의병 출신의 강순필·정진화 등 경북 북부 지역 출신자들은 이강년 의진의 의병이었고, 유창순·한훈 등은 민종식(閔宗植)의 홍주의진(洪州義陣) 출신의 의병이었다. 대한광복단은 1915년 7월 15일 대구에서 결성된 조선국권회복단의 일부 인사와 결합하여 대한광복회로 발전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한광복단은 혁명기관을 표방하였다. 혁명기관이란 무력투쟁을 통해 독립을 달성하겠다는 독립운동 단체를 뜻한다. 1911년 전개된 중국의 신해혁명과 같이 새로운 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았다. 이에 대한광복단은 국내에서 군자금 및 청장년을 모집하여 만주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지원하였다. 특히 이들은 서간도에 독립운동기지를 개척하던 망명 지사들과 직접 연락을 취하며 왕래하였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광산이나 친일 부호를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것은 국내에 기반을 둔 독립운동 단체가 비밀결사활동을 통해 국외의 독립운동기지를 지원함으로써 항일독립운동의 국민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투쟁 방략에 따른 것이었다.
의의와 평가
1910년대 만주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국외 독립운동 세력과 연락을 취하며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국외의 독립운동기지를 지원함으로써 항일독립운동의 국민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채기중 선생님 연대기
일제강점기 영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채기중(蔡基中)[1873~1921]은 1913년 대한광복단과 1915년 대한광복회의 결성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였다. [가계] 채기중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극오(極五), 호는 소몽(素夢)이며, 채기중(蔡基仲)이라고도 한다. 상주시 이안면에서 아버지 채헌락(蔡獻洛)과 어머니 곡부공씨(曲阜孔氏) 사이 5남으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채기중은 1913년 풍기군에서 대한광복단[풍기광복단]이라는 비밀결사 조직 결성을 주도하였다. 대한광복단은 독립군 양성을 위해 국내에서 군...
★獄中遺詩(옥중유시)
/素夢(소몽) 蔡基中(채기중)
살았으면서 의리가 없다면
그것은 산 것이 아니며
하늘의 뜻에따라 죽는다면
죽음이 곧 삶이로다.
죽어서 奉公(봉공)*이 되었다면
어찌 이것이 죽음이겠으며
살아서 믿음으로 보답하려 한다면
이것은 순리의 삶이로다.
지금 같이 법이 없는 때이지마는
사람은 비록 죽는다 해도
至誠(지성)은 예전같이
자연히 살아나리라.
차라리 함께 죽지 못할지언정
어찌 홀로 살려 하리오
말 없이 하늘을 보니
빛나는 태양이 나타나네.
*봉공: 나라나 사회를 위하여 힘써 일함.
★글이 길어 블로그로 이어보기 합니다.
http://m.blog.naver.com/ckcssh/221993913807
공적비 글은 채 작가의 선친이 쓰셨고 감수는 종로문협 임원재 고문이 하셨습니다.
임원재 고문님. 김운향박사 · 채인숙작가 · 필자(작년 종로 문협 단양 문학기행)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추모비 건립때 채목희씨 채동식씨가 청하여 다녀왔지요
채기중선생 대단하신 독립운동가
네~~~채씨 문중에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자료입니다. 즐겁게 감상합니다.
명순 친구와 바로 옆 동네 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