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16 (맑음) 온도- 섭씨 17도 기분지수-흐림
아침 08시경 핸폰이 따르릉 울리다. 액정에 발신인 "백룡' 두글자가 보인다. 반갑다.
몇일전 안흥 방문 이후 처음 통화다. 골짜기 전원주택 주변의 경치와 백룡의 모습이 크로즈업 되어 떠 오른다. 그간 피차 안부와 관심사에 대하여 환담후 다음 통화를 약속하고 핸폰을 끈다.
11시 40분 간편복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차조심하고 잘 다녀 오세요" 등 뒤로 들려오는 울 마눌의 잔소리다. 못들은체 대꾸를 아니한다. "못 들었어요? 다시 확인 잔소리 귓전을 울린다. "누굴 어린애로 아나" 퉁명 스래 한마디 던지고 회룡역을 향해 간다.
매사 이런식의 대화를 주고 받으며 우린 부부의 애정을 서로 확인한다.
오늘 보훈 병원 진료 예약이 오후1시50분에 있는날이다.
천호역 까지 1시간20여분 후 도착하여 8번 출구를 빠저나가 지상 도로변 셔틀버스를 타기 위하여 탑승 장소로 갔다. 별로 양기[陽氣] 없어 보이는 노인들이 긴 행렬을 지어 서있다.
20여분 동안 천호대로를 통과하는 차량들의 매연을 뒤집어 쓰며 기다리다 두번째 셔틀버스에 오르다.
작년 여름경 CT 촬영 후 우연히 알게된 간에 생긴 물혹 진료차 병원에 들렷다.
4월 초순쯤 소화기 내과에서 혈액검사,CT촬영등 해당검사를 마친후 결과를 보기 위해 담당의사를 만났을 때의 대화다.
검사 결과 자료 모니터를 보던 의사의 말" 뭐 여태 까지 그냥 살았는데 그냥 둬도,,," 잠시 침묵 후, 네가 의사에게 질문 " 아니, 선생님!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최대한 공손한 말투로) 수술을 않해도 된다는 말슴이신지.? 아니면 물혹을 제거를 해야 된 다는 말씀인지~"
의사 말 "약간 시간 차를 둔 다음 " 수술은 여기서 하는 겄이 아니고 외과에서 하니까! 외과에 에약을 해줄테니 거기서 상의를 해보세요'
오늘 오후 예약 시간 보다 좀 늦게 호명 따라 진료실로 들어갔다. 외과 의사 말 "나를 어떻게 알고 왔습니까?" 의사의 첫 마디가 멍 때린다. 공손하게 내가 말한다 "제가 선생님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내과에서 그냥 가라고 해서,,," 어처구니 없고, 황당하기 그지 없다. 환자와 진료 의사의 문답이 이게 뭔가? 이놈의 병원은 진료 체계도 과별 상호협조도 없단 말인가. 기분이 드럽다. 열 받는다. 담당의가 이것저것 뒤적 거리다 일단 내과의사하고 통화 해본 후 다시 부를 테니 나가서 기다리란다.
약 10분 뒤 호출 의사 앞에 앉았다. 의사 왈" 나는 간 담당 의[醫]가 아니라,해당 의사를 연결해 줄테니 예약 하고 가세요" 첫 소화기 내과 진료 후 한달 보름 후 만난 외과 의사의 진료는 이렇게 결과도 소득도 없이 끝났다.
이것이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둔 대한민국 보훈병원의 현 주소다.
국가와민족을 위하여 공헌하고 희생한 자를 보호하고 끝 까지 책임 지겠다고 때만 되면 떠벌리는 정부와 위정자들의 현주소 이기도하다.
옛말에 "공짜는 양잿물도 마신다"는 웃지 못할 말이 유행하던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다.
보훈 환자를 대 하는 보훈병원 일부 의사들의 사고방식은 아마도 공짜 치료,공짜 약먹는 극빈 환자를 대 하는듯하여 마음이 몹씨 불편하였다.
국가 유공자는 찬밥이고 개 밥의 도토리다
환자를 가족 처럼 사랑과 지성으로 치료에 최선의 능력을 쏟아내는 그런 의사를 만나고 싶다. 표리부동 [表裏不同] ,속빈강정 이란 말이 스쳐 지니간다. 겉만 번지르한 현대식 건물 만 보이지 그속에 崔上의仁術을 行하는 의료인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상처를 포근한 어머니 가슴에 안기듯 안심하고 내보일수 있는 그런 보훈 병원 이었으면 좋겠다.
온누리에 4월 벚꽃은 흐드러지게 만발한 화창한 봄날, 하지만 기분은 개떡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