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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사고의 경우 사망으로 확인이 되지 않을 경우 만 24시간이 경과한 후 실종여부를 판단하게 되는데
인근 주정부가 있는 라우손 소재 법원판사의 결정을 얻어야만 했다.
경섭은 선장에게 사고보고서를 작성하게 했다. 또한 법원에서 선·기장과 초사 및 동료 선원 등 최소한
네 명의 진술이 필요할 것이므로 말을 맞추어 놓으라고 전화상으로 미리 일러둔 터였다.
법원 일을 맡아줄 변호사는 선박대리점에서 주선해 주었다. 아침 일찍 방선하고자 했으나 해경의
저지로 그리스 국적의 운반선에서 잠시 대기해야 했다.
그 배는 한국의 오징어 합작어획물과 200해리 알젠틴 경제수역 외측에서 남북으로 오르내리며
공해조업을 하는 한국의 트롤어선 및 채낚이 어선들의 어획물을 실어 나르는 라비니아소속
냉동운반선이었다.
선장의 보고서와 지방신문에 난 선원 실종기사를 본사에 팩스로 전송한 후, 변호사와 라우손에 있는
판사를 면담한 뒤 출장재판을 요구했다. 판사를 모시고 우루과이 선원 네 명과 선장의 진술을 듣고
나니 어느덧 해가 기울었다. 우루과이 선원들이 1항사와 정종구의 불화를 언급하는 바람에 1항사의
추가진술을 위해 다음 날 라우손 법원을 한 번 더 다녀와야 했다.
우루과이 선원들은 비록 한국어선에 하급선원으로 승선했으나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으며, 강력한 노조의 힘에 길들어져 있는데다, 육체적으로 왜소한 한국선원들에게 정신적으로도
꿀리지 않아 통솔하는데 애로가 많았다.
지친 몸으로 대리점으로 돌아오니 대리점 매니저가 물 담배인 마떼를 빨며 퇴근도 않고 그 때까지 경섭을 기다리고 있었다.- 좀 너무했군 마떼가 물 담배라고?
밤 열 시가 되어야 저녁을 먹는 것이 이들의 습관이었다. 식사를 하고 대리점 사무실로 돌아오니
한국에서 두 차례나 전화가 왔다고 했다. 부산사무소로 전화를 하니 창원에 있다는 정종구의
가족들이 몰려와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현재로선 그가 죽었다고 단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말 그대로 실종이었다.
바다 한 가운데라면 몰라도 내항에서 발생한 사고였으므로 시체가 나오지 않는다면 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인지 가족들도 그때까지 우는 사람이 없었다.
마드린 항구는 상업적 부두시설이 없었다. 소형선박들을 위한 계류장과 유류보급용 선석이 해안의
왼편에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었고, 오른쪽은 넓은 백사장으로 되어 있어 휴양시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외국 어선들은 만 입구 쪽의 묘박지에 떠 있었는데 해경에서 그가 익사했으리라 추정하고
삼 일째 내항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끝내 사람의 형체를 찾을 수 없었다.
선미에 그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의 사물 중 선원수첩만 없어진 것이 확인되어 다들 그가
육지로 달아날 심산으로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짐작했다. 수영을 할 줄 안다면 이미 해안가로
헤엄을 쳐 달아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선원으로 배를 탄 작자가 하필이면 미국도
아닌 알젠틴에서 왜 육지로 달아날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미스터리였다.
나흘 만에 법원으로부터 선박억류해지명령이 떨어졌으나 배가 출항하기 직전에 느닷없이 선원
여섯 명이 배에서 뛰어 내렸다. 전날 선장이 선원들에게 알젠틴 입어에 따른 회사의 계획 등을 설명하고
분위기를 좀 달래 달라고 요구했으나 경섭은 머리가 혼란스러워 거절했던 것인데 결국 사단이 벌어진
것이었다. 양상에서 선주가 바뀐 배라서 선원들에게 애사심을 기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든 어획이 부진하여 돈이 되지 않으면 선원들은 조업거부에 돌입했다. 그런 지경에 배가 항구에
라도 들어가면 하급선원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보따리부터 싸는 일이 다반사였다.
경섭은 피가 마르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무조건 다시 배에 태워야 한다고 경섭은 소리쳤다.
어둠에 묻힌 바다는 그의 그런 절박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뱃전을 찰랑이며 간지럼만 태우고
있었다. 다행히 대리점의 매니저는 눈치가 빨랐다. 해경대원들을 앞세워 무단하선자들을 부두에
억류 시킨 후 이민국에 통지해 경찰을 부르더니 그들을 강제로 승선시켰다.
3월부터 입어한다고 해놓고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 공해조업에 대한 보상책도 내놓지 않으니 하선
하겠다는 것이 선원들의 주장이었다. 배를 보낸 후 대리점에 돌아오니 선장이 목이 타는 소리로 다시
경섭을 찾았다. 계류장에서 배를 뺄 때 기관사들이 작업을 거부하는 바람에 기관장이 직접 엔진의
시동을 걸었다고 했다.
"차장님, 어쩌면 좋겠습니까? "
시계가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선원들이 선내파업에 들어간 상황이라 선장이 어떻게든 선원
들을 회유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경섭에게 구원을 요청한 것이었다.
"일단 공해어장으로 출발해. 알젠틴 입어가 무산되면 귀선만의 문제가 아니잖아. 본사와 의논해서
일주일 안으로 공해조업에 대한 보상책을 마련할 테니 선원들을 이해시켜. 일단 오늘 일을 본사에
타전하고. "
"차장님, 그럼 그 말씀을 믿고 어장으로 출발합니다. 약속하신 것 꼭 부탁합니다."
외항으로 나서며 선장이 마지막 보이스를 보내온 것은 새벽 세 시가 훨씬 지나서였다. 그 시간에 먼
바다에서는 대만선박 한 척이 영해를 침범했다가 해군함정에 나포되어 예인중 도주하다가 해군의
발포로 선원 1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고기에 대한 욕심이 영해침범을 유혹하고, 또 배가 붙들
리면 최소한 1개월 이상 육지에 발이 묶이고 50만 불 가까운 벌금을 뜯길 판이니 어선들은 왕왕
목숨을 건 도주도 불사했던 것이다.
註)
라비니아 (Lavinia): ‘80년대에 남미포클랜드어장의 냉동오징어제품을 국내로 반입하는 운
송을 도맡았던 그리스의 냉동운반선사.
[6회]
마드린항 외곽지대의 해안가에 서식하는 바다사자는 알라스카산보다 몸의 색깔이 탁하고 윤기도
덜해 보였다. 알고 보니 피부가 검고 윤기가 도는 알라스카산은 바다사자의 한 부류인 물개였고 온난한
곳에 서식하는 이 무리는 털이 황갈색인 그야말로 바다사자였다. 해안가에는 '코모드라론'이라고
부르는 펭귄과 흡사한 바다새 무리도 여기 저기 눈에 띄었다. 북태평양의 고위도에만 서식한다고
알고 있었던 바다사자가 남아메리카 남부해안의 따뜻한 바다에도 살고 있는 것이 뜻밖이었다,
암놈보다 덩치가 크고 이마에 혹이 있는 수컷을 처음 먼발치에서 일별하곤 혹 바다코끼리인가 했으나
입 밖으로 드러난 긴 송곳니가 없었다. 바다사자들은 12월이면 건너편 해안으로 가 출산하고
3월이면 새끼들을 데리고 다시 이곳으로 온다고 했다.
비행기 출발시각까진 그래도 시간이 남아 경섭은 마드린의 해변을 거닐며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황금빛 태양은 눈부셨고 바다는 코발트색으로 찬란했다. 백사장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아름다웠다. 비키니차림의 금발여인들은 너도 나도 일류모델을 연상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토스트와 빵에 바를 ‘둘세 데 레체’와 코카콜라를 한 병 사들고 경섭은 아예 그들 쪽으로 바싹 다가가
파라솔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작정하고 눈으로 그들의 가슴이며 엉덩이를 어루만졌다.
선글라스가 있었더라면 그는 아마도 해가 떨어질 때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을 것이다.
마드린에는 사십대 후반의 한국인이 운동화와 옷가지 등을 파는 꽤 큰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한인교포가 모두 세 가구 살고 있었다. 옷가게 주인은 사업가로서의 수완이 뛰어나 놀랍게도
주정부를 통해 합작사업용 어선도입 쿼터를 이미 5척이나 확보하고 있었다. 이미 한국의 모 회사와
채낚이 어선 한 척을 계약했고 배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현재 선박검사 중이라고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 도착하여 경섭은 또 다시 한 무리의 한국 사람들과 조우했다. 일부는 합작
입어를 위해 몰려온 자들이었고 일부는 나포된 어선을 풀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고기를 남들보다 더
많이 잡을 수만 있다면, 선장들은 영해침범도 마다하지 않았고 또한 선주들은 선박의 국적을 바꾸는
일을 누워서 떡 먹는 일쯤으로 여겼다. 떼고기를 잡기 위해 지구의 끝이라도 달려 갈 만큼 한국의
원양어선들은 용감했다. 그래서 누구라 할 것 없이 그들은 바람 잘 날 없는 북대서양 뉴펀들랜드
어장이나 남빙양의 얼음바다까지 쫓아 다녔던 것이다. 깊은 바다 속의 고기를 잡아 올리는 일은 바다
사나이들에겐 언제나 노동 그 자체가 희열이기도 했다.
경섭은 호텔로 돌아와, 타사의 합작입어러시와 차동한이 주무르고 있는 단순입어의 허위성을 요약
하고, 공해조업선들에 대한 보상대책을 시급히 마련할 것을 요청하는 기사를 작성하여 본사로 팩스를
보냈다. 7십만 불의 수취인으로 표시된 농목축수산부 차관은 2월 4일자로 사직했다는 소식도
덧붙였다. 밤이 되자 회사와 자신의 꼴이 우스워 경섭은 또 다시 마음이 울적해졌다. 할 수 없이 바에
내려가 혼자 맥주를 세 병이나 마셨다. 그리고 울어 봐야 아무도 달래 줄 사람 없는 텅 빈 집의 아이
처럼, 이내 깊은 잠 속으로 숨어 버렸다.
밤사이 본사로부터 아무런 지령도 날아오지 않았다. 거금 2백만 불이 날아갈 판이라 사장도 쉽사리
그의 보고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무는 회사의 차입보증에 서명을 거부한
터라 이 판국에 실무 총책임자로서 왈가왈부하고 나설 입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섭은 다시 차와 대면했다. 그는 수산청 국장과의 면담이 아직 성사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이
자꾸 좀 더 기다리라는 애기만 하고 있다고 했다. 경섭은 정부에 지급했다는 7십만 불의 영수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의 갑작스런 요구에 차가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차는 우물쭈물 서랍을 뒤지는
시늉을 하더니 얼굴을 바꿔 집에 따로 보관해 두었다고 둘러 댔다. 내일 볼 수 있겠느냐고 하니
그러마고 대답했다.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모른 체 하고 경섭은 다시 입어허가서의 의문점에
관해 차근차근 물어갔다.
"허가서가 합작사업의 선박도입허가서와 똑 같은데 이를 단순입어허가서라고 말하는 근거는 뭡니까? "
"아- 그건 따로 컨디션을 달 수 있다는 점이지요."
"그럼, 선박을 통관하고 국적을 바꿔야 한다는 구절은 또 뭡니까? "
"그것도 스페셜 컨디션으로 해결됩니다. 임시국적을 부여받는 방법인데 소련 선박들이 그렇게 해서
조업한 선례가 있어요."
그의 이마와 콧등에 송글송글 땀이 배어나고 있었다.
"좋습니다. 입어허가 신청서 상에는 지금 기다리고 있는 스페셜 컨디션 내용이 포함되어 있겠군요.
그 신청서를 좀 보여 주세요."
"그건 작년에 이 사장한테 사본을 보내 드렸어요. 원본은 수산청에 넣었고 저는 지금 가진 것이 없어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이 자가 언제까지 나를 핫바지로 만들려는 것일까? 한국에서 송금한 돈은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 은행의 그의 구좌에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범죄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그의 구좌를 동결할 수도 없었다. 지금 내가 그의 멱살을 잡고 이 사기꾼 놈아 하고 화를 낸다면 그는
돌아서서 코를 싸잡고 쾌재를 부를 것이다. 그래 어디 나를 화나게만 해봐라. 그런 심보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은 참아야 한다. 경섭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아직까지 수산청과 타결되지 않은 게 뭡니까? "
"어획물 취급규정, 알젠틴 선원 관계. 임시국적취득 방법 등이지요.다음 주 화요일 미팅 약속이
정해졌어요."
차는 또 일주일을 늦추었다. 그가 말하는 모든 것들은 허가서상에 허가 조건으로 병기되어 있어야
할 내용들이었다. 최근 섬유원단 두 컨테이너를 통관했다고 했는데 남의 쌈짓돈으로 제 장사밑천을
삼는 게 분명했다. 그래도 지금은 참자.
저녁 무렵 경섭은 한국교포들이 많이 모여 사는 까르보보가의 백구촌을 찾았다. ‘재아 천주교 성당’의
신부를 만나 정종구의 실종사고를 알리고 혹시 그가 출현하면 연락해 줄 것을 부탁했다. 작년에
자주 들렀던 음식점 ‘장원’ 주인에게도 똑같은 부탁을 했다.
백구촌이란 이름은 109번 버스 종점에서 유래했다. 66년도에 초기 이민자들이 정착한 곳은 126번
종점인 레띠로 판자촌과 150번 종점인 비쟈 쏠닷띠에, 109번 종점인 바리오 리바다비아였다고 했다.
주로 볼리비아에서 이민 온 빈민들을 위해 정부에서 도시 외곽에 지은 난민촌 같은 지역이었다.
80년, 알젠틴정부가 이 지역의 불량주택들을 헐고 연립 임대주택 단지를 지어 이주시킬 때 봉제
삯일을 하던 초기 이민자들은 바리오 리바다비아와 인접한 까르보보로 옮겨와 한인 집단을 이루었는데,
그들은 이곳을 여전히 백구촌이라 부르고 있었다.
라마르께 영농이민단으로 출발하여 일 년도 안 되어 뿔뿔이 흩어졌던 초기 이민자들이 도시빈민의
탈을 벗게 된 계기는 근 15년 동안 너도나도 요꼬, 편물, 봉제 삯일에 전념한 때문이었다.
그리고 80년대에 이르러 그들은 온세상가로 진입하여 하나씩 의류도매업과 의류 생산업자로
변신하였던 것이다.
백구촌에만 오면 경섭은 마치 자신이 한국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김치도 있고 불고기도 있고
설렁탕과 비빔밥도 있었다. 콩나물과 고추, 배추, 무를 파는 야채상이 있는가 하면 떡집도 있었다.
심지어 한국식 대중목욕탕까지 있었던 것이다.
설렁탕을 파는 ‘할머니집’에서 경섭은 통통하게 잘 익힌 수육에 소주를 기울이며 저녁을 먹었다.
차와의 전쟁이 언제쯤 끝날 것인지는 불투명했지만 설렁탕의 국물맛은 진하고 고소했다.
첫댓글 마떼....물담배 맞다고 하던데요?
아니에욧..
마떼는 마시는 차입니다
아....마떼가 무척 좋은 차라는 거 알았어요..감사^^
물담배???? 진짜 재밌네욤~~
물담배..ㅎㅎ 저 아직도 피웁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