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서예>
기획연재 - 사경의 기법
3. 재료와 도구의 사용법
지난호에서 사경의 도구와 재료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앞서 사경은 가장 청정하고 고요한 심신의 상태와 환경에서 가장 청정한 재료와 도구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이렇게 재료와 도구를 청정히 하고 오래도록 사용하기 위해서는 각별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모든 도구와 재료는 최상의 상태로 사용하고, 사용한 후에는 다음 사용을 위해 최선의 방법으로 손질을 해 두는 것은 당연하다.
때로는 약간의 전문적인 내용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장엄경을 사성한다든지 할 때에는 보다 전문적인 내용의 학습과 수련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우선은 백지묵서 사경으로 그 내용을 제한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차후 장엄경 사경에 관한 내용은 따로 상세히 기술하기로 한다.
(1) 종이
사경지로 일반적인 서화용의 화선지 사용을 자제하고 순지(닥지)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함은 앞서 설명한 바 있다.
순지를 그냥 사용하여도 무방하나 실제로 초학자가 순지에 곧바로 사경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순지의 섬유질이 거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먹물이 잘 배어들지 않아 서사함에 장애가 많다. 뿐만 아니라 붓이 종이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쉽게 닳게 된다.
사경은 세자가 기본인 관계로 붓의 끝 부분이 마멸이 될 때에는 예리한 점획을 구사하기가 어렵다. 즉 사경의 품격을 하락시키는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도침을 하게 되면 더욱 질 좋은 순지를 만들 수 있다. 본래 순지는 도침이 이루어져 있음(기계를 사용하여 도침을 하기 때문에 수공에 비해 훨씬 거칠다.)이 기본이지만 실제로 사경하기에 좋을 정도로 도침이 잘 되어 있는 종이는 매우 드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침은 예전 우리의 전통적인 방법을 권하고 싶다. 그러나 이러한 도침은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색지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간단한 가공의 과정을 필요로 하는데 이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차후 장엄경 사성 부분에서 설명을 하기로 한다.
따라서 처음 종이를 구입할 때 도침이 잘 되어 표면이 고운 순지로 여러 장의 샘플을 미리 구하여 사용을 해 본 연후에 그 중 가장 고운 순지를 사용하면 된다.
사경에 있어서 청정함을 위해서는 사용하고 남은 종이를 잘 보관하는 일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종이는 햇볕과 습기에 약하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산화로 인하여 탈색과 변색이 된다. 이러한 탈색과 변색은 사경의 품격을 현저히 저하시킨다. 뿐만 아니라 사경을 시작할 때의 환희심을 저하시킨다. 탈색이나 변색된 바탕지는 청정하고 고요한 심신으로 사경을 하기 위해 깨끗한 종이를 처음 펼칠 때의 그 상쾌한 마음을 상쇄시키어 사경의 밀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집중력의 저하로 나타난다. 또한 사성을 한 후에도 왠지 모를 미흡한 뒷맛이 남게 된다.
그러므로 종이를 신선한 상태로 보관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항상 쓸 만큼만 깨끗이 잘라 사용하고 남은 종이는 구겨지지 않고 온도와 습도에 크게 노출되지 않도록 잘 말아 둔다.
본래 종이는 지통(종이로 만들어진 지통이나 오동나무 상자라면 더욱 좋을 것이나 요즘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 지통이나 사진을 넣는 지통을 사용하는 것도 무방하다.)을 따로 갖추고 이 지통에 보관하는 것이 가장 좋다. 물론 지통에서도 산화는 미약하게나마 일어난다.
오늘날에는 종이를 쌀 수 있도록 비닐이 전문적으로 제작이 되기 때문에 지통이 없다손 치더라도 보관에 그리 어려움은 없다. 가장 손쉬운 보관법으로는 먼저 신문지(신문지는 방충의 효과도 지닌다.)와 같은 종이로 싸고 이어 비닐에 싸서 밀봉해 두면 퇴색과 탈색 혹은 지질의 변화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이렇게 보관하면서 간혹 꺼내어 그늘에서 통풍을 시킨 후 다시 보관하는 방법으로 한다면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
(2) 붓
붓은 동물의 털을 가공하여 만들기 때문에 잘못 관리하면 충해를 입기가 쉽다. 따라서 붓 역시 사용하고 난 후에 보관에 각별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사경을 마치고 난 후 붓은 항상 깨끗이 씻어두는 일이 중요한데 사경용 붓은 세필인 관계로 보다 섬세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
붓을 사용하고 난 후에는 약하게 흐르는 물에 붓대를 곧게 세우고 붓털 부분을 적시면서 엄지와 검지를 이용하여 가볍게 비벼주면 붓에 묻은 먹물이 모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붓을 깨끗이 씻어두지 않을 경우 먹에 들어 있는 아교 성분이 붓을 상하게 하기도 하고 먹물에 의해 붓이 굳어 다음에 사경할 때에 이르러 붓을 푸는데 용이하지가 않게 된다. 이럴 경우 무리해서 붓을 풀게 되면 붓이 쉽게 상한다. 따라서 붓을 사용한 후에는 맑고 깨끗한 물로 꼭 씻고 붓 끝이 모아지도록 잘 다듬어 붓걸이에 걸어두어 붓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말려두어야 한다. 그리고 붓은 동물의 털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므로 씻을 때 비누나 세제를 쓰는 일이 없도록 한다.
한가지 더 첨언한다면 붓을 거꾸로 세워두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 세필이라고 하여 붓통에 꽂아둔다든지 밀폐된 플라스틱 재질의 붓두껍을 끼워두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붓통에 붓끝이 하늘을 향하도록 거꾸로 꽂아둘 때에는 붓에 묻어있는 물기가 필두 부분으로 쏠림으로써 필두의 아교를 상하게 하여 붓털이 통째로 빠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밀폐된 플라스틱 재질의 붓두껍에 끼워둘 때에는 좀을 예방하는 일이 어렵고 자칫하면 필두부분이 썩는다. 따라서 붓은 붓걸이에 걸어두는 것이 가장 좋다. 아니면 필상에 올려놓아 자연스럽게 건조시켜도 무방하다.
(3) 먹
먹을 보관함에 있어서도 주의를 해야 하는 것은 먹을 잘못 보관했을 경우 뒤틀리거나 트거나 쪼개질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발묵에 많은 문제점을 안겨 주기 때문에 먹 또한 보관에 주의해야 한다.
먹을 사용하고 난 후에는 찌꺼기가 남아 있지 않도록 갈은 면을 잘 닦아두도록 한다. 사용한 부위를 휴지나 전용의 헝겊에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잘 닦은 후 먹 상자(먹집)에 넣어 보관하면 된다. 먹상자는 종이, 혹은 나무로 되어 있어 먹의 보관에 유익하다. 먹상자에 보관하더라도 열기구를 가까이 하지 한다든지 습기가 많은 곳에 보관하는 일은 피하도록 한다.
먹을 가는 방법에 있어서는 주의를 요한다. 사경용의 먹은 매우 작고 고우며 약하기 때문에 힘을 주어 갈지 않도록 한다. 가볍게 쥐고 벼루에 좌우로 원을 그리며 갈면 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먹을 벼루면에 수직으로 세워서 가는데, 사경을 할 먹물을 만들고자 먹을 갈 때에는 다른 방법을 권하고 싶다. 즉 먹을 벼루면에 수직으로 세워서 갈지 않고 약 45°정도로 기울여 앞, 뒷면을 번갈아 가며 고르게 가는 방식이다. 이렇게 먹을 갈면 먹을 가는 손에 큰 힘을 가하지 않아도 잘 갈릴뿐더러 곱게 갈리며 발묵도 좋아 사경하기에 매우 좋다. 또한 먹물이 튈 염려가 전혀 없고 먹에 찌꺼기가 남지 않으며 먹을 벼루에 세워놓음을 미리 방지함으로써 먹이 벼루와 달라붙은 것을 방지한다.
(4) 벼루
벼루는 한 번 마련하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좋은 벼루를 좋은 상태로 영구적으로 사용하려면 평소 사용과 보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다.
벼루는 매우 단단한 석질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벼루면(연면)에 흠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사경용으로 중국제의 단계연이면 가장 무난하다고 하였는데 단계연을 사용할 때에는 그에 맞는 수준의 먹을 사용해야만 한다. 아무리 좋은 벼루라 하더라도 벼루면에 상처가 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입자가 고운 좋은 먹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벼루를 사용하고 난 뒤에는 벼루면에 먹 찌꺼기가 남아 있지 않도록 깨끗이 씻어둔다. 벼루도 사용하고 씻어두지 않을 경우에는 벼루면에 남아 있는 이전의 먹물의 아교 성분이 발묵을 떨어뜨리게 할 뿐만 아니라 벼루면의 봉망을 덮어 종국에는 벼루를 상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사경을 한 후 배접을 할 때 자칫 상한 먹물이 번져 나와 사경을 망칠 수도 있다.
벼루를 닦을 때에는 가급적 지나치게 강한 재료를 사용하여 닦아내지 않도록 한다. 벼루면의 봉망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수세미를 사용하여 닦아낸다면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는 벼루를 사용하고 난 후 연면을 충분히 적실만큼의 물을 부어둔 후 5분쯤 시간이 경과하면 그때 휴지나 전용 헝겊을 이용하여 닦아내기를 2~3회 한다면 벼루면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한 후 벼루집에 보관함으로써 벼루면에 먼지가 앉지 않도록 한다.
(5) 기타
그 밖의 사경에 필요한 재료들도 가급적이면 사경을 마친 후 곧바로 청정하게 보관하는 것이 좋다.
천지선을 비롯한 계선을 긋기 위한 보조 도구인 유리봉에는 먹물이나 다른 물질이 묻어 있지 않도록 잘 보관하고 문진 역시 가장 청정한 상태로 항상 확인을 해 둔다.
사경을 하기 위한 먹물을 만드는 물의 청정을 위하여 연적은 항상 사용 후 깨끗이 비워두도록 하고 사경을 할 때마다 청정수를 새롭게 담아 사용하도록 한다. 그리고 미리 사경용의 정간을 그어 놓은 깔개 역시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덮어두는 것이 좋으며 경상 역시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