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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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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스크랩 걷기로 했다(4) 북으로...점촌까지
그저물처럼 추천 0 조회 57 11.08.23 12:46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걷는 것을 무슨 방학숙제처럼 하는가보다.

우리집에서 동서남북으로...그런 계획을 방학 끝나기 전 다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오늘 마지막 코스를 감행했다.

아침 준비를 하고 내가 먹을 것도 준비한다고 부리나케 했는데도 7시 25분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점촌까지 거리는 20km정도인 것 같은데 그것은 직선으로 쭉 뻗은 국도로 달릴 때에 말이다.

내가 가는 길은 큰 길이 아니라 예전에 버스가 다니던 길- 지금은 시내버스가 다니기도 하고

그저 농로처럼 사용되는 길이다.

그러다보니 이쪽 편에서 걷다가 국도 아래 굴을 지나 저쪽편으로 갔다가 그렇게 국도 아래

로 꼬불꼬불한 길을 걸었다. 그러니 시간이 얼마나 많이 걸리던지...

시내에서 북천을 건너 만산동과 부원동을 지나자 국도 밑의 굴이 있었는데 굴을 지나서 난

길이 갑자기 상주쪽으로 구부러져서 있어 왠지 가기가 두려워졌다. 

그래서  도로 나와 직진을 해서 가 보았더니 그곳은 민가로 난 길이었다.

길을 물으려 문이 열린 집을 향해 주인을 불러도 개만 짖을 뿐....하는 수 없이 다시  돌아나와

굴을 지나니 한참 남쪽으로로 향하던 길이 다시 북쪽으로 향하며 기차길이 보이고  백원이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아! 여기가 백원이구나...백원에는 작은 학교 살리기를 하는 백원초등학교

가 있고 또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조그만 간이역인 백원역이 있는 곳이다.

역을 볼 수 있다는 기쁨이 그동안의 불안감을 다 씻어주고 또 이제는 어디라도 굴을 들어가야

길을 만날 수 있다는 확신까지 갖게되어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백원역은 기차가 서지 않는 역이다. 예전에 완행열차는 섰을 것인데... 지금은 마을사람들이

차를 주차시키고 역사 안에는 이런저런 물건들을 들여놓고 처마 밑에는 깻단을 세워놓았다.

아무도 없는 역- 혼자만의 공간을 이렇게 점할 수 있다는 게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고 역이라

는 공간이 갖는 의미를 이런저런 상상으로 새겨 볼 수 있어 좋았다. 모든 시설들이 그래도

있고 사람만 없었다. 기차가 한대 소리를 지르며 지나쳐간다. 비가 조금씩 뿌리기 시작한다.

혼자 사진도 찍고 감자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한참을 놀다 나왔다,.

 

그렇게 빙빙 돌며 길을 걸으니 상주시와 처음으로 맛닿는 공검면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10분-

거의 4시간이 걸렸다.

공검은 역사책에 공검지란 못이 있었던 곳으로 나온다. 우리는 공갈못이라 하는데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지와 함께 유명한 곳인데 의림지가 아주 잘 단장되어 유원지로 되어 있는 것에 비해

공검지는 아예 파묻혀 논으로 되었다가 최근에 다시 논을 사들여 연못으로 만들고 연꽃을 많이

심어 놓았다. 노래비도 세워놓고 해마다 7월말 연꽃이 필 때 공갈못 축제도 하고 있다.

 

공검지역은 양정리-역곡리-이안리-소암리로 이어진다.

이안리는 이안천이 있어 자주 걸었던 곳이고 소암리에는 삼일운동 당시 순국한 애국지사를

기리는 만세동산이란 곳도 있었다.

걷다보면 마을마다 자랑스런 인물들이 있다. 그런 인물들의 후손이 되어 산다는 것도 영광이리라.

그런 정신이 마을이나 지역에서도 살아서 숨쉬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 해 본다.

오늘은 걸으면서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 엄마에게, 언니에게, 그리고 오빠에게도...안부와 위로,

그리고 격려까지 해야했다. 그리고 세차례 큰 딸과 통화를 했다. 거의 중계방송 수준으로

어디까지 걸어왔다고...딸에게 보고했다.

 

공검에서 두어시간 걸어 함창읍에 도착했다.

함창읍은 이름 그대로 상주에서 가장 번성했던 곳이고 이곳 상주의 중심이기도 했다.

함창 들은 상주에서 가장 넓은 들이다. 그리고 사벌국과 마찬가지로 고령가야라는 왕국이 있었

다고 전해진다. 함창 김씨가 그 왕족의 후손이라 한다.

함창은 우리 시어머님의 고향이고 가족이 없으셨던 우리 시아버님이 교직생활을 시작했던 곳,

그리고 남편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시아버님은 한번씩 함창에 오셔서 옛날 일을 더듬어보시고 또 정말 오래 전의 친구분을 만나

기도 하신다. 나이들수록 옛일은 생생해져서 어제일처럼 말씀하신다. 어제 일은 까마득하게

잊으시지만.......

함창 시내에서 점심을 먹었다. 짜장면이나 사먹을까 하다가 또 순대국밥을 먹었는데 사벌보다는

훨씬 나았다.

중앙통로를 걸어나오니 멀리 점촌 시내가 보인다.

목적지 거의 끝자락인데 앞에 상주와 문경땅을 나누는 팻말이 보인다.

처음으로 시 경계에 서 본다. 시간은 오후 3시 10분-거의 7시간이 걸렸다.

문경땅을 밟기 전에 조그만 표지석이 있어 살펴보았더니 당교(唐橋)라는 터의 표식이었다.

 

당교는 역사 스페셜 (1999.10.23)에 「1,300 여년전 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시체는  

다리 밑에 매장 되었다. 사건의 피살자 그는 당나라 장군 소정방 이었다」라고 방영된 다리

라고 한다.

신라의 김유신장군이 당나라 소정방 군사를 물리쳐 삼국통일을 이룩한 역사적인 장소라 했다.

옛날 여기에는 농사용의 나무다리가 놓여 있었고 함창지방 사투리로 “뙤놈(唐人)”을 쓸어

없앤 곳이라 하여 “뙤다리 또는 띄다리(唐橋)”라 불렀는데 지금은 도로를 넓히느라 다리를

없애고 표식만 남겨놓은 것이다.

 

당교를 마지막으로 문경땅으로 넘어갔다. 문경이라고 하면 문경읍을 생각하는데 문경의 중심은

이곳 점촌이다. 한창 석탄산업이 발달하였을 때는 이곳이 엄청 흥청거렸다.

그래서 지금도 상업의 중심이고 문화수준도 높은 편이다.

점촌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상주로 돌아왔는데 내가 걸었던 길을 차가 달렸다.

20분만에 상주터미널에 도착했다. 숙제끝. 그러나 아무도 검사해줄 사람도 없고 점수를 매겨줄

이도 없다.

나혼자 오랜 시간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기도 하고 차가 쌩쌩거리며 지나가는 것에 '으악'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전화하고... 두리번거리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비석을 살피

기도하고 ...그런 시간들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다는 것에 만족을 한다.

덥다가도 이따금 바람에 전해오는 풀냄새, 꽃향기 맡으며 선한 웃음이 내 얼굴에 번질 수 있어

행복했다. 시간이 지겹지 않아 좋았다. 그리고 여행 아닌 여행을 이렇게 마쳤다.

누가 물었다. '혼자 걸으면 심심하지 않느냐?'고.

내가 대답했다. '심심하고 싶어서 걷는다'고......

더 큰 욕심도 생겼다, 내 버킷 리스트에 <국토종단>을 하나 더 첨가하리라.

<이번 걷기의 마지막 코스 북쪽 점촌쪽이었다. 집에서 나와 곧장 걸으면  새로 조성된 도시공간이 아닌

예전의 중심도로를 걷게 된다>

 

<왕산, 앙산이라고도 하는데 상주의 중심에 있는 조그만 산- 예전에 이곳에 경상감영이 있었는데

임란 이후 대구로 옮겨졌다. 한다. 역사공원을 조성한다고 공사하는 중에 유물들이 발굴되어  현재

조사중이다>

 

<상주향청이 있던 곳-알미늄샤시 등으로 문을 만들고 사람이 살더니 얼마전 복원하여 다양한 문화

활동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앞에 무대를 만들어놓고..향청건물이 그대로 배경의 역할을 한다.

무엇이 主인지..혹시 주객전도는 아닌지....궁금해지는 공간이다>

 

<내서 가는 길에서 본 북천과는 달리 상주시내의 북천은 이렇게 공원화되어 직강천이 되었다.

물은 탁하고 부유물이 떠다닌다. 그래도 이곳이 최고의 물놀이 지역이다. 다리밑에 물놀이하는

공간을 만들고 다양한 시설들도 만들어 놓았다>

 

 

 

 

<북천을 지나면 만산동 -처녀시절 상주중학교 근무를 할 때 후문쪽으로 나오는 곳에서 자취생활

을 했는데 이 동네이다. 아직도 옛날 건물들이 그대로 있고 골목길도 정겹다>

 

<골목길을 거쳐 큰 길로 나서려는데 가정집처럼 생긴 절집이 보이고 안을 들여다보니 이렇게

법당이나 주련이 한글로 되어 있다. 아주 색다르고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길에 나섰는데 조그만 남자아이가 할머니에게 팽이놀이 하자고 조르고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놀아주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쩔 수 없다. 사랑하는 손주녀석이 하자는데...사진 찍어 준다니 포즈를>

 

<고속화국도는 걸을 만한 곳이 아니다. 옛길이라기 보다 예전 국도-지금은 시내버스가 다니는

길로 걸었다.>

 

<외서면 세천마을 -보이는 곳으로 가면 봉갇마을을 지나 내서와 은척으로 갈 수 있다>

 

<세천에서 부원을 지나 굴에서 헤메다가 걸어나온 백원- 옆으로 기차길이 있었다>

 

<용흥 2리마을- 길 가 집들- 대부분 시내에 이사를 갔는데 땅값이 높아 팔리지도 않고 이렇게 흉가가

된 채로 버려진 집이 많았다>

 

<백원역- 조그만 역사가 정겨운데 지금은 기차가 서지 않는 곳이다.>

 

<역 안에 들어가보니 모든 것이 살아있는 듯 하다. 금새 사람들이 몰려오고 기차도 들어와 설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따금 새소리만 들려왔다>

 

<신호등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한장 찍었다. >

 

<연봉리를 지나면 온 동네가 배과수원이다. 연봉배가 유명한데...맛은 그렇게 자랑할 수 없다.

서울 먹골배보다는 못한 것 같다. 하얀 배꽃이 피면 장관인데 지금은 이렇게 하얀봉지를 쓰고

있다>

 

<4시간이 걸려 공검에 도착-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에 바로 공갈못과 공갈못 노래비가 있다.

'공갈못 타령'은 유명하다.>

 

<공갈못 연꽃 멀리 공검면 소재지 양정리가 보인다>

 

<마을을 하나 지날 때마다 이렇게 국도 밑의 굴을 지나 국도의 양쪽을 번갈아 걷게 된다>

 

<이안면에 들어서면 보이는 이안천- 상주의 북쪽을 흐르는 천-유일하게 낙동강으로 흘러들지

않는 천이기도 하다. 이안- 마을이름이 이쁜 곳 중의 하나이다.>

 

<이안에서 함창까지 이렇게 쭉 뻗은 코스모스길을 걸었다>

 

<소암리 마을의 아늑한 풍경>

 <소몽 채기중선생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우고 만세동산이라 했다. 채기중선생은 일제시대 대한광복회

활동을 통하여 독립운동을 하였고 1921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하였다 >

 <공검면에서 함창면으로 넘어가는 다리 증촌교이다. >

 <함창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것이 고령가야왕릉이라고 전해지는 것인데 이곳에 기원1세기 경

고령가야라는 고왕국이 있었다한다. 이것은 안내문이다.위쪽이 태조왕릉이고 오른쪽이 왕비릉이다. 함창

김씨의 시조라 한다.>

<태조왕릉>

<함창에서 점촌으로 가는 중앙통로에 상지여상이 있는데 그 주변이 이렇게 벽화거리가 되어 있다.

상지여상 학생들의 작품인듯>

 <드디어 상주와 점촌의 경계지점에 도달 -교통이 아주 복잡하다>

 <당교를 없애고 그 사적비만 세워놓았다>

<점촌버스정류소 부근-좌회전을 하면 문경시청이 있다-문경시의 중심은 점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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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8.23 18:37

    첫댓글 대구서 기차타고 오다가 그만 깜박 졸아서 상주역을 지나친적이 있어요. 백원역에 기차를 세워주길래 내렸는데 백원역사 근무하는 직원분들이 밤중에 어찌나 놀라시던지.ㅋㅋ 백원역. 동그라미 다섯개 짝짝짝.

  • 작성자 11.08.23 18:42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로나마 마음을 함께 하니 참 좋으네요. 아이들과 함께 걸어보세요. 자전거를 타고 가도 정말 좋을 길이 참 많았습니다.

  • 11.08.24 11:50

    너무 너무 좋습니다. 덕분에 지난 시간으로 잠시 가 보았습니다.
    가슴에 일렁이는 잔잔한 감동이 음악과 함께 울립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11.08.24 16:07

    제가 더 감사한데요. 자주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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