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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6.8-6.10간 삼각등산동호회의 설악산 雨中 산행기
동서울 터미널 속초행 06시30분 출발 버스를 꼭 타야한다는 강한 압박감 때문에 7호선 도봉산역에서 2호선 강변역까지 정확한 도착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강변역까지 모두 19개역이고 1개역당 3분씩 계산하니 57분이면 도착 가능했다.도봉산역에서 05:30분에 출발하는 첫 전철을 타도 도착 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와서 6월8일 05시10분경에 집을 나섰다.
일행은 이희섭 팀장 고준경 김승남 정박문 홍성재 조춘삼 이원일 정형기 선배를 포함해 모두 9명이었다.속초행 버스가 양평 홍천 인제 원통을 거쳐 한계령에 09시 30분경에 도착했고,중간 기착지인 홍천에서 약20분 정도 쉬었다.찌프린 날씨와 자욱한 안개 때문에 해발 920미터의 한계령에서 내려다 보이는 주변 산야의 전망 경치는 별로 좋지 아니했다.우선 전체 일행이 한계령에서 기념 촬영을 한뒤 북쪽 계단길을 올라서서 산행을 시작했다.
(한계령에서 산행 시작전 기념 촬영)
한계령 매표소 직전에는 “慰靈碑”라고 표기된 약3미터 높이의 碑가 있어서 무슨 위령비인가 궁금해서 비석 뒷면을 보니 이 지역 군단장이 순직 병사 6명의 명복을 비는 비석같은데 무슨 목적으로 무엇을 하다가 순직했다는 좀더 구체적인 내용이 설명되어 있으면 훨씬 더 호소력있는 비석이 될텐데 병사들의 이름만 각인되어 있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설악산 숲속길로 들어서니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니 일행중 누군가가 “우리를 환영하는 환영 음악이구나”라고 말하자,다른 분은 “그게 아니고 , 아이고 X 꼴려 , 아이고 X 꼴려”라고 읊조리는 것이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고 또 일행중 어떤 분은 나름대로의 등산철학이라면서 산행전날에 꼭 지켜야할 두 가지 원칙을 제시했는데 첫째 과음하지 말 것 둘째 야간등산(섹스 행위의 은유적 표현)하지 말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1000미터 이상 고지에서는 전파를 잡기 위해서 휴대폰 밧데리가 계속 작동하기 때문에 훨씬 빨리 닳아져버리니 휴대폰을 꺼놓으라는 팀장의 당부도 있었다.
한계령 출발점에서 북쪽으로 산행을 시작한지 약 3시간50분쯤 되어서 도착한 곳이 귀떼기청봉 가는 길과 서북능선 길이 갈라는 삼거리 근방이었다.좌측으로 가면 귀떼기청봉,우측으로 가면 서북능선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있는데 이곳에서 일행들은 쉬면서 귀떼기청봉을 배경으로 사진도 몇 캇트씩 찍었다.처음에는 귀떼기청봉인줄을 몰랐다.너무 멋있는 기암괴석의 암벽산을 보면서 넉을 잃은 채 이 바위산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왼쪽 암벽산을 보면서는 기암괴석의 장엄성에 놀랐고 오른쪽 암벽산을 보면서는 달걀 모양의 큰 바위가 얹혀 있는 모습에 감탄하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도면상으로 보니 앞 뒤로 나란히 서 있는 이 기암괴석의 암벽산이 귀떼기청봉이라는 것을 알았다.우리 일행은 우측 서북능선길로 접어들었다.
해발 1000미터에서 1500미터 구간의 설악산 산등성이와 산비탈에는 군데군데 고사되어 나무 등걸이만 앙상한 모습으로 서 있는 주목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어떤 곳은 온통 고사된 주목들이 군락을 이룬 곳도 있고 또 어떤 곳에는 같이 나란히 서 있는데도 왼쪽 주목은 고사목이고 오른쪽 주목은 생생하게 살아서 하늘로 치솟고 있는 곳도 있었다.이렇게 죽은 주목 나무라도 쉽게 섞지 않고 오래 버티고 있기 때문에 주목은 죽어서 천년,살아서 천년이란 말이 사람들 입에서 회자되고 있는가 보았다.비슷한 환경속에서도 살아있는 주목 나무와 죽어 있는 주목 나무을 보면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버린 이유가 뭘가 하고 무척 궁금하기도 했다.
서북능선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일행은 점심을 먹었다.점심으로 밥을 싸온 분도 있고 김밥을 싸온 분도 있고 빵을 가져온 분도 있었다.나는 김밥으로 점심을 때웠다.점심후 산행을 시작한지 약 20분이 지난후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우선을 꺼내 받쳤지만 빗발이 굵어지자 우산은 아무런 위력이 없었다.아랫도리와 궁둥이 부분은 온통 빗물로 질퍽질펵했고 신발도 빗물이 차서 꿀꺽꿀꺽했다.나는 중간 부분 일행이었는데 내 앞에는 홍성재 선배,내 뒤에는 정형기 선배가 걸었다.이렇게 세 사람이 중간 부문 일행을 구성해서 걸었다.선두 일행과 후미 일행은 보이질 않했다.
홍성재 선배는 우의가 배낭속 밑바닥에 있기는 있는데 우의를 꺼내자면 배낭 내용물을 꺼내는 것이 귀찮다고 그냥 비를 죄다 맞으면서 산행을 계속했다.뒤에 따라오는 정형기 선배는 1회용 흰색 우의를 입었는데 어깨를 우의의 소매자락속에 끼워서 입지 않고 대시기 위로 살짝 걸쳐입고 걷다가 우의가 바람에 날려 자꾸 벗겨지는 바람에 비를 흠뻑 맞았다.비를 만난 것이 해발 1400미터 이상인 것 같았다.이렇게 해발 1400미터의 높은 산중 비 속에서 천둥치는 소리가 요란했다.바로 머리 위에서 벼락치는 소리처럼 요란해서 혹시 벼락이라도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우산대를 타고 고압전류가 비에 젖은 내 몸속으로 흘러들면 바로 벼락이 아닌가.그렇다고 우선을 버릴 수도 없었다.
걷다가 보니“끝청”이라는 안내표지판이 나타났지만 쏟아지는 비속이라 눈여겨 볼 겨를이 없어서 그냥 지나쳐 걸었다.한참을 더 걷다가 시야에 중청 대피소 건물이 나타나자,앞서 가던 홍성재 선배는“아이고 살았구나”하고 탄성을 질렀다.얼마나 힘들었는가를 짐작케 하는 탄성소리였다.우리가 중청 대피소에 도착해서 상당한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 후미 그룹인 이희섭 팀장,정박문,김승남,조춘삼 선배 일행이 도착하지 않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하고 불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박문 선배 다리에 쥐가 나서 일행 모두가 주룩 주룩 내리는 비 속에서 같이 동행해 오느라 시간이 상당히 지체되었다고 했다.
중청 대피소는 중청봉과 대청봉 사이에 있는 해발 1600미터 능선 정상에 있는데 마치 적갈색 서양 별장처럼 생긴 것이 참 멋있어 보였다.대피소 마당에 트럭이 주차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이곳 중청 대피소까지 차량으로도 올라 올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대피소 1층에는 관리사무소,통로,화장실 등이 있고, 층계로 연결된 지하에는 침실,식당,창고가 있었다. 침실에는 중앙 복도를 사이에 두고 좌우측으로 침상 침대가 있는데 침대 번호가 86번까지 있는 것으로 봐서 수용 인원이 최대 86명인 것 같았다. 1인당 침상 할당폭은 약 50센티미터씩 검은색 페인트로 구역경계가 표시되어 있었다.즉 이 구역경계를 넘어서면 영역 침범이 되는 셈이었다.
중청 대피소의 1박 이용료는 1인당 7000원이고 담요 한 장 임차료는 1000원이며 담요를 1장 더 추가시 마다 1000원씩을 더 받았다.대피소 1층 통로 벽에는 설악산 등산로 안내 도면이 붙어 있는데 이것을 보니 설악산 등산로에 대해서 대충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이 도면을 보면서 나는 우리 일행이 걸어왔던 한계령-귀떼기청봉 가는 길과 서북능선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서북능선-끝청봉-중청봉-중청대피소까지의 코스를 추적해 보기도 했다.
40번 침상은 홍성재 선배,나는 41번 침상,42번과 43번 침상은 어떤 부부가 있었는데 오늘은 비가 온 관계로 2층 침상에 빈 자리가 많아서 이 부부가 2층 침상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바람에 좀더 넓은 공간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침상 벽쪽으로 직경이 약 70밀리미터 구경의 난방용 배관이 있는데 난방중이라서 만져 보니 뜨거웠다.이 배관 파이프에 젖은 양말과 신발을 올려 놓았더니 아침에는 바싹 말라서 다행이었다. 이곳 대피소 침상에는 남녀구분 없이 혼숙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대피소 식당에서 버너 2개를(1개는 이희섭 팀장이 가져왔고 다른 1개는 정형기 선배가 가져옴) 가동시켜 돼지고기를 구워서 우선 소주파티를 벌였다.서울에서 출발전에 신창호 선배님이 사준 돼지고기 6근을 일행들이 나누어 가져 온 것이었다.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침실로 들어가자 누군가가 관리사무소에 신고한 모양이었다.관리사무소 직원이 식당으로 들어와서 삼겹살 굽는 행위를 중단해 줄 것을 요구했다.비가 오지 않으면 야외에서 굽는 것이 관행인데 이날은 비가 왔기 때문에 식당에서 굽다가 제지 받았다.그래서 식당문을 꼭 닫아서 냄새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조치한뒤 삼겹살을 계속 구어서 일행들은 소주 파티를 즐겼다.
이어서 대형 남비에 물을 끓여 라면과 햇반을 섞어 죽을 쑤었다.이런 일은 이희섭 팀장이 도맡아서 처리했다.그리고 라면과 햇반을 섞어 끓인 죽을 개인별로 스티로폴 식기에 퍼다가 저녁밥을 배불리 먹었다.식사후의 쓰레기 처리는 김승남 선배가 맡았고 식기 세척은 조춘삼 선배가 맡아서 처리했다.저녁 19시쯤 되었는데 술 좋아하는 일부 일행들은 다시 침상에 모여 2차 술 파티를 벌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저녁 19시55분경이었데(6월8일) 밖에 나갔던 고중경 선배가 침실로 들어와 “지금 밖에는 비가 개고 하늘이 깨끗하니 나가서 구경들 하십시요”라고 바깥 날씨 소식을 전해와서 밖으로 나갔더니 대청봉,중청봉,속초시 영랑호와 청초호 및 속초 시내,그리고 동해안이 시야에 들어왔다.대청봉과 중청봉은 비교적 깨끗하고 선명하게 보였지만 속초 시내 일대는 아직 희뿌연 구름속에 있지만 형체는 알아 볼 수 있었다.대청봉과 중청봉 및 중청 대피소 건물을 뒷배경으로 해서 일행들 사진을 몇 카트씩 찍었다.비가 갠 뒤의 서쪽 석양빛 배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익일(6월9일) 아침 04시55분경쯤에 일행들은 중청 대피소(해발 1600미터) 동쪽에 삼각형 모양으로 장엄하고 밋밋하게 버티고 누워 있는 대청봉을 향해서 걸었다.해발 1600미터의 중청대피소에서 해발 1700미터의 대청봉 일대 고지대에는 키가 큰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모두 0.5미터이내의 작달막한 나무들뿐이었다.등산로 왼쪽에는 눈잣나무 군락지가 있었는데 옆에 세워진 안내판 설명에 의하면 이들 눈잣나무는 낮은 고도의 평야지대에서는 수직으로 곧게 크지만 해발 16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서는 수직으로 곧게 크지 못하고 잣나무 가지들이 옆으로 갈라지면서 땅바닥으로 뻗어나간다는 것이었다.이렇게 땅바닥에 달라붙어 사는 것은 잣나무들이 고지대에서 살아 가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 내지 적자생존의 지혜가 아닌가 싶었다.
대청봉 정상에서 서니 동해 바다 수평선이 구름속에 희미한 윤곽을 드러냈고 수평선 위쪽으로 구름 속에 붉게 물들어 떠 있는 태양을 볼 수 있었다.이런 정도의 일출 모습을 본 것도 다행이라고 평가하는 일행도 있었다.일행들은“해발 1708미터 대청봉”이라는 표지석과 “오색 ← , 중청봉 → " 이란 안내표지판 옆에서 단체 및 개인별로 각각 사진을 몇 카트씩 찍었다.대청봉에서 보는 중청봉 일대는 잠시 선명한 윤곽을 드러냈다가 금방 다시 이동하는 하얀 구름속에 가려버렸다.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하얀 구름떼를 내려다보니 산상의 신비스러움이 더했다.순간적으로 구름이 거치면 중청봉 정상에는 하얀 4개의 돔이 보였는데 마치 예쁜 새알을 올려 놓은 것 같았다.이 돔은 군사용 레이다 기지로서 민간인의 접근이 차단된 곳이라고 했다.
(대청봉 정상에서 포즈를 취한 일행들 모습)
대청봉에서(1708미터)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우리 일행들이 1박하기 위해서 머물고 있는 중청 대피소(약 1600미터추정)-중청봉(1676미터)-끝청봉(1604미터)-서북능선-귀떼기청봉-내설악으로 이어지는 선상의 남쪽 구역을 남설악이라 했다.
아침식사는 저녁식사 때와 동일한 요령으로 대형 냄비에 라면과 햇반을 섞어 죽을 쒀 배불리 먹었다.식사 후에는 이희섭 팀장이 커피까지 끓여서 일행들에게 한 잔씩 제공했다.아침 식사가 끝나자 일행들은 짐을 꾸려 중청 대피소를 출발했다.중청봉 입구에 있는 서북능선 길과 소청봉쪽 길이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일행은 소청봉쪽으로 2일차 산행을 시작했다.소청봉에 도착하니 여기에는 다시 소청대피소-봉정암 가는 길과 희운각대피소 가는 길이 갈라진다는 삼거리 이정표가 (안내표지판) 설치되어 있었는데 일행은 오른쪽의 희운각대피소 가는 길로 들어섰다.반대로 왼쪽에 있는“소청대피소-봉정암 가는 길”로 들어서면 “영사암-백담사”까지 갈 수 있는데 바로 이 코스(소청대피소-봉정암-영사암-백담사 코스)의 좌측 및 우측 구역 일대를 내설악이라 했다.
희운각대피소 가는 길에서 일행은 대구에서 올라와 봉정암에서 1박한 약 40여명의 불교 여신도들을 만났는데 이들의 복장은 등산복 차림이고 경상도 사투리가 무척 정겹게 들렸다.이 분들의 설명에 의하면 설악산 봉정암에는 부처님 뇌사리(부처님 육신을 화장해서 나온 결정체)가 봉안된 곳인데 이렇게 부처님 뇌사리를 보관하고 있는 사찰은 봉정암 외에도 양산 통도사,오대산 월정사,정선 도암사,영월 법흥사가 더 있으며 이 뇌사리는 자장율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것이라 했다.
희운각 대피소 앞에는 청정수가 흐르는 개울이 있어서 이곳에서 오늘 아침 중청 대피소에서 세수를 못한 탓으로 나는 손도 씻고 세수도 했다.일행들이 희운각대피소 쉼터에 앉아 쉬면서 비스켓트와 초코렛트를 던지자 다람쥐 대여섯 마리가 몰려들기도 했다.
희운각 대피소에서 약 200미터쯤 내려오면 공룡능선-마등령-세존봉-비선대로 이어지는 길(외설악 북쪽 코스 등산로)과 천당폭포-양폭폭포-오련폭포-귀면암-비선대로 가는 길(외설악 남쪽 코스 등산로)이 다시 갈라지는 데 이 2개의 등산로 구역을 외설악이라 했다.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는 공룡능선 가는 길(외설악 북쪽 코스 등산로)과 양폭대피소 가는 길(외설악 남쪽 코스 등산로)이 갈라지는 갈림길에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등산객들이 혼선을 일으킨다면서 공룡능선으로 가는 어떤 등산객이 양폭 대피소쪽으로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빽코스로 돌와와서 이 부근에 갈림길 안내 표지판 하나를 세워야 한다고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희운각 대피소에서 양폭 대피소까지의 등산로는 대부분이 돌계단 길이었는데 이 돌층계 계단을 내려오는 것이 얼마나 지겨운지 정박문 선배는 “올라오는 것도 힘들지만 돌계단 내려가는 것이 정말 지겹네”라고 말하는가 하면 홍성재 선배는“층층대가 대단히 나쁘구먼”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외설악 남쪽 코스 등산로인 희운각대피소-천당폭포-양폭폭포-오련폭포-귀면암-비선대까지 이어지는 계곡 좌우측 주변에는 천태만상의 기암괴석들이 마치 천 여개의 불상을 닮았다는 의미에서 이 계곡을 천불동 계곡이라 했다.
희운각대피소에서 양폭대피소로 가는 돌층계 길은 공룡능선 남쪽 바위산를 우회에서 천불동 계곡으로 접어드는데 천불동 계곡에서 올려다 보는 공룡능선 남쪽 바위산은 경탄스러운 비경을 이루고 있었고 등산로 좌측과 우측을 왔다갔다 하면서 흐르는 천불동 계곡물은 천하제일 명경지수이고 철철 꾸륵 꾸륵 흐르는 물소리는 세상의 물욕을 씻어내리면서 인생살이를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어떤 힘이 작용하는 듯 했다.그래서인지 선두 그룹의 고중경,이원일 선배는 천불동 계곡물에 머리를 깜고 발을 닦기도 하면서 후미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천불동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가 첫 번째로 만난 폭포가 천당폭포였다.높이는 약 10미터 가량이고 폭은 약 1미터 가량의 하얀색 물줄기가 힘차게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더위와 땀이 싹 가시는 듯 했다.이 폭포를 배경으로 일행들은 사진을 몇 카트 찍은 뒤 계속해서 하산을 하다가 다시 만난 폭포가 양폭 폭포였다.양폭 폭포도 높이는 약 10미터 가량이고 폭은 약 1미터 정도되는 것 같았다.원래 양폭 폭포는 2개의 계곡인 陰폭골과 陽폭골이 서로 이웃한다는 의미였지만 지금은 양폭폭포를 의미하는 뜻으로 일반화되었다고 했다.음폭골도 계곡인데 규모고 더 작고 흐르는 물의 양도 적어서 음폭골이고 양폭골은 계곡의 규모가 더 크고 흐르는 물의 양이 많아서 양폭골이라 했다.양폭폭포에서 약 50미터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대피소가 양폭대피소였다.일행들은 양포대피소 휴게소 의자에 앉아 쉬면서 이원일씨가 내놓은 번데기 통조림과 조춘삼씨가 내놓은 김밥을 안주로 소규모 양주 및 맥주 파티를 벌여 순간을 즐기기도 했다.
하산을 계속하다가 만난 또다른 폭포가 오련폭포였다.5개의 폭포가 약 2미터 간격으로 계속 이어지는 폭포인데 처음에는 어떻게 해서 5개의 폭포가 되는지 이해를 못했는데 옆에 서 있는 안내판 사진을 보니 금방 5개의 폭포가 어떤것인지 알 수 있었다.이 오련폭포는 천불동 계곡의 수문장 같은 폭포라는 뜻으로 앞문다지 폭포라고도 불렀다.
오련폭포를 지나 한참을 내려오다가 만난 바위산이 귀면암이었다.귀신의 얼굴을 닮은 바위라는 뜻이 귀면암인데 옆을 지나면서 보니 괴상하게 생긴 바위산이 맞기는 맞는데 바위산 바로 밑으로 등산로가 있어서 멀리서 이 바위산을 조망할 방법이 없으니 얼굴이 귀신처럼 생겼는지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귀면암을 지나서 하산을 계속하다가 만난 것이 맑은 천불동 계곡물이 상당량이 고여있는 푸른 빛을 띠는 연못같은 곳이었다. 안내판은 이것을 文殊潭이라고 소개하면서 석가여래의 왼쪽에서 지혜를 책임지고 있는 문수보살이 이 물에서 목욕을 했다고 문수담이라는 이름이 유래한 것이라고 했다.
천불동계곡 등산로를 타고 오다가 다리를 건너기 직전에는 금강굴로 올라가는 돌층계가 있고 그 옆에는 금강굴에 대한 안내판이 있었다.안내판 설명에 의하면 비선대 북쪽 산봉우리중에서 맨 왼쪽의 장군봉 7부 능선상에 만들어진 천연동굴이 금강굴인데 이 굴에서는 지금부터 약 1300년전에 원효대사가 수행했던 곳이라서 원효대사의 금감삼매경이란 저서 이름을 따서 금강굴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고 했으며, 이 금강굴에서만이 외설악의 최고 비경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금강굴까지는 층층대 계단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 먼 발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우리 일행의 산행계획에는 금강굴 구경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굴까지 올라가지는 못했다.금강굴 입구에서 천불동 계곡을 건너는 큰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를 건너니 바로 비선대 휴게소 식당이었다.
비선대 휴게소 직원에게 비선대의 유래를 물었더니 飛仙臺란 한 장의 넓은 바위가 연못을 이루는 곳이란 뜻으로서 마고선이라는 신선이 이 바위에 누워서 주변 경관을 감상하다가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이 구전되고 있었다.이곳 비선대에서 북쪽을 올려다보면 맨 왼쪽에는 장군봉이 있고 가운데는 무명봉이 있으며 맨 오른쪽에는 선녀봉이 있는데 장군봉은 장군이 투구를 쓰고 있는 모습을 닮아서 장군봉이고, 무명봉은 3개의 바위돌이 뭉쳐저 있어서 무명봉이며, 선녀봉은 선녀들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선녀봉이라 했다.그리고 “한장의 넓은 바위”는 비선대 휴게소 식당에서 바로 내려다 보이는데 5미터× 5미터 규모의 넓이였고 그 바위 위에는 “飛仙臺”라는 글자가 초서체 한자로 각인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보통 사람들의 성함 등이 어지럽게 각인되어 있기도 했다.
비선대 휴게소 식당에서는 신창호,전응석,주구석 선배 등의 일행이 서울에서 차량편으로 와서 이곳 식당에서 같이 합류했다.따라서 일행은 9명에서 15명으로 늘었다.먼저 오직어볶음 안주로 막걸리 마시면서 그간의 쌓인 피로를 풀고,점심식사는 황태해장국으로 했다.비선대 휴게소 물건값은 무척 비쌌다.서울 수퍼에서는 900원 받는 롯데 스카치 캔디 1봉지를 이곳에서는 1500원을 받았다.일행중 미식가들의 이곳 식당 음식에 대한 평가도 혹독했다.오징어볶음은 맛이 없어서 먹을 수가 없다는 평가와 황태해장국의 황태는 한번 닳인 것을 다시 넣어서 해장국을 끓인 것 같다고 평가하면서 속초 사람들이 서울 사람들로 하여금 돈을 쓰게 하려면 서비스 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행중 L 모씨는 중청 대피소에서 1박 하면서 코고는 사람들 때문에 생긴 일화를 털어 놓았는데 ,중청 대피소 침상 좌측에서 C 모씨의 코고는 소리와 우측에 H 모씨의 코고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어서 2층 침상으로 잠자리를 이동했더니 2층 침상에 자는 친구도 역시 코골이어서 갈 곳이 없어서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기상을 했으니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비선대 휴게소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한참을 더 걸오 내려오니 비선대 입구에 있는 휴게소가 나왔고, 이 휴게소부터는 차량이 들어올 수가 있는 도로길이었다.도로길 좌우측으로는 10미터가 넘는 노송과 잡목 숲이 울창해서 천혜의 산책길 같았다.
한참을 더 걸어서 내려오자 금강교라는 다리가 있었고 이 다리를 건너기 전에 왼쪽길로 들어서면 울산바위와 흔들바위로 갈 수 있다는 안내판이 있었고 이 금강교를 건너니 신흥사 통일대불상이 나타났다.통일대불상은 회색의 초대형 불상이었다. 이 초대형 불상을 지나자 권금성으로 올라는 케이블카 타는 곳이었다.권금성에서는 화채봉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는데 지금은 휴식년제 구간이라서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조금 더 내려오니 설악산 매표소이고 입장료는 성인 1인당 3400원인데 왜 이렇게 비싼가 했더니 국립공원 입장료 1600원에다 문화재 관람료 1800원을 합해서 3400원을 받았다.매표소를 지나니 설악동 주차장이었다.설악동 주차장에서 일행들은 택시를 타고 척산온천으로 이동했다.택시 3대로 시차를 두고 이동했다.
척산온천에서 온탕,황토사우나,야외노천탕을 왔다 갔다 하면서 1박 2일동안 산행하면서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어냈다.특히 척산온천의 야외노천탕은 무척 좋았다.뜨거운 물속에 알몸을 담근 채 눈앞에 펼쳐진 울창한 송림 숲을 보면서 맑은 실외공기를 마시는 기분은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온천욕을 즐긴후에 일행들은 속초시 장산동(장산항이라고도 불렀음) 갈릴리회집에서 보내준 봉고 버스를 타고 횟집으로 이동했다.
횟집 2층 홀에 자리를 잡으니 동해바다 수평선이 시원하게 내다보였다.자리값만 해도 고급일 것 같았다. 노현주라는 명찰을 단 중년 부인이 서비스를 했는데 얼굴짱에 몸짱에 입담도 좋아서 말을 아주 잘했다.옷은 흰색 쓰봉에 흰색 부라우스를 입었는데 흰색 쓰봉 속으로는 팬티 라인이 예쁘게 드러났다.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자 카메라로 일행 전체 사진을 촬영하더니 바로 즉석 사진을 빼다가 돌렸다.두 장을 빼서 한 장은 우리 일행 대표에게 주고 나머지 한 장은 자기들 홀 게시판에 부착시킨다고 했지만 우리 일행은 횟집 게시판에 게시하는 것을 사양했다.홀 게시판에는 다른 일행들의 사진이 이미 많이 부착되어 있었다.어떻게 즉석에서 사진이 나오냐고 물으니 값비싼 특수 인화지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술잔이 오고 가면서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에 일행들 간에 예기치 못한 논쟁이 일어났다.논쟁의 요지는 첫째 선후배간의 예절 논쟁이었다.선배와 후배간에는 長幼有序의 질서가 절대적이어야 한다는 주장과 長幼有序의 질서는 절대적일 수가 없고 일정한 한계를 벗어나면 안된다는 요지였다.둘째는 선배라도 후배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언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과 인격권을 침해하는 말을 한 사실이 없다는 주장으로 갈등의 폭이 엄청나게 확대되었다.“자네는 입만 갖고 다니는가”라는 말이 인격권을 침해한 것인가 아니면 침해하지 않은 것인가의 문제였다.농담조로 건네는 말이었는데 인격권 침해 운운은 곤란하다는 주장과 개인의 인격을 침해할 의도가 있었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셋째는 선후배간의 인격권 침해 논란 등은 당사자 둘만의 문제인데 이 문제를 왜 일행 전체가 좌중한 자리에서 거론하여 참석자 전원에에 피해를 주느냐의 주장과 사람이 살다보면 개인만의 문제일지라도 여러사람이 있는 곳에서 거론할 수도 있다는 예외론이 또 팽팽하게 맞섰다.
이런 논쟁의 여파로 갈릴리 횟집에서는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채 일행들은 떨떨한 기분으로 숙소까지 이동했다.숙소에서도 논쟁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다가 이튼날 아침에서야 조직의 발전을 위한 진통이었으며 아름다운 추억의 장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런 앙금은 언제라도 또 재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왜냐하면은 인식의 주체인 肉身이 살아있는 한 우리 인간에게는 수시로 변하는 생각과 감정이라는 것이 내재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행들 숙소는 고성군 용촌리 소재 XX 콘도였다.큰방이 2개인데 그 방안에는 다시 작은 방이 2개가 있고 큰 거실이 있었다.불편한 점은 이불이 모자랐다. 나중에 정형기 선배가 관리사무실에 이야기해서 이불을 보충받았다. 이튼날 아침 5시경에 기상해 숙소 앞에 있는 동해안 해변가를 나가보니 바닷가로 나가는 출입문이 모두 잠겨 있어서 바닷가에는 나갈 수가 없었다.다른 일행들도 일찍 기상한 분들은 산책을 나왔다.
이 숙소에서 1박을 한뒤 아침 식사는 일행들 배낭속에 남아있는 것을 모두 꺼내서 식사 준비를 했다.이번에는 햇반과 라면을 한꺼번에 섞어서 죽을 쑤지않고 햇반은 햇반대로 라면은 라면대로 별도로 요리했다.요리는 김승남 선배가 맡았다.식탁 준비는 고중경 선배가 맡았다. 햇반과 라면이 약간 모자라서 아침에 택시로 속초시내까지 나가 수퍼에서 추가로 사왔다.김치도 추가로 더 사왔다.양쪽 방에 있는 식탁 2개를 한테 모아서 긴 탁자를 만들고 그 탁자위에 15명분의 반찬과 식기와 젓가락을 질서있게 배치해서 멋있는 아침식사를 마쳤다.나는 햇반 1개를 먹고 약간 부족한 것 같아서 라면 끓인 것으로 보충했다.대부분의 일행들이 그렇게 한 것 같았다.식사후 설거지는 홍성재 선배와 이원일 선배가 맡아서 말끔히 뒷마무리를 하고 일행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침식사가 끝난 뒤 이희섭 팀장은 지금까지의 경비에 대한 수입 지출 리스트를 만들어 보더니 52만원이 적자가 났는데 이것을 자기가 부담하겠다고 하는 것을 김승남 선배가 나서서 그럴수는 없는 일이니 대청봉 산행팀 9명중에서 8명이 4만원씩을 더 부담하기로 해서 32만원을 추가로 갹출하기도 했다.
강원도 고성군 용촌리에서 일반버스로 속초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이동해서 서울행 10시 50분발 버스를 타고 강릉 횡성 호법 덕평 양지 신갈 기흥을 거쳐 서울 강남터미날에 도착하여 어떤 식당에 들어가 해단식을 가진 뒤 일행들은 뿔뿔이 헤어졌다.오는 도중에 영동고속도로 횡성 휴게소에들려서 3000원짜리 우동으로 간단하게 점심 요기도 했다.두고 두고 기억될 멋진 추억의 장이었다.이제 나도 설악산을 혼자 등산할 자신이 생겼으니 기회가 되는 대로 설악산 홀로 등산을 시도해 볼 생각이다.내설악(소청대피소-봉정암-영사암-백담사 코스)과 외설악 북쪽 코스(희운각대피소-공룡능선-마등령-세존봉-비선대 코스)를 언젠가는 한번 둘러 볼 셈이다.끝.
첫댓글 송형이 글 쓰는 솜씨는 대단합니다. 어느새 그 많은 것을 메모 했다가 쓰셧는지 감동입니다.